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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6.18 [08:03]
[김준곤 설교] 성령의 열매를 점검하자
다시 듣고 싶은 김준곤 목사 메시지
 
김준곤

 

▲ 김준곤 목사 흑백사진     ©뉴스파워

1. 크리스천의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다.
  예수님 당시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을 제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어의 ‘마테테스’란 말은 ‘배우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는 예수가 배우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도행전 11:26에 이방인들로 구성된 안디옥 교회에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천이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정도를 말하는 경향이 있는가하면, 높은 윤리와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기독교인의 가정에 태어나서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으면 자동으로 인정되어 불리기도 하며, 언제부터인가는 성경 공부를 하고,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를 하는 정도의 사람이라고 정의 하기도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자동적으로 크리스천이려니 하고 생각하는 것은 흔히 있는 사례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고 사실 입니 다.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천의 출생에 불과한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인데 예수님의 보혈로, 부활의 능력으로 새로 창초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는 자기가 스스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해서 자기를 대신하여 삶을 살아주는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이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고 성령의 내주를 통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2. 두 종류의 열매에 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성숙 과정에 있지만 분명한 9가지 품성의 열매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겠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각각 전도와 봉사에 필요한 수단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며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이 9가지 열매를 보아 자기 진단을 하고 영성의 점검을 해야 합니다. 열매라는 것은 내가 포도나무가지라면 포도나무에 붙어 있음으로 생명의 법칙에 의해 저절로 대개 나타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매를 맺으려 해도 생명이 통하지 않으면 결실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1) 사랑- 이 사랑은 성령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사랑에 대한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아가페의 사랑을 말하는데,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조건 없이 상대의 가치 여하를 불문하고 무조건 그의 행복과, 구원과, 치료와, 삶을 위해서 사랑을 나눠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에는 나와 하나님과의 사랑, 나와 이웃 간의 사랑, 나와 나 사이의 사랑이 있습니다. 성령이 내 속에 계시면 억지로 노력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5:5에 보면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내가 나의 삶을 살면 이기주의자가 되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내 속에서 살면서 나의 언어, 손발, 심장, 행동, 존재를 통해서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 기독교의 사랑입니다.

2) 기쁨 - ‘기뻐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입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내가 의지적으로 기뻐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는 기쁨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통해서 맺는 성령의 열매 입니다. 세속적인 기쁨과 쾌락과는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는 없는 것 입니다. 요한복음 16:22 ‘너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 요한복음 17:13 ‘내 기쁨을 너희 안에 충만케 하려 함이다’, 이는 예수님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의 내용은 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기쁨 ②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삶을 사는 기쁨 ③ 사람을 사랑하는 기쁨 ④ 죽기까지 순종하고 충성하는 기쁨 ⑤ 사람을 구속하는 기쁨 ⑥ 아버지 집의 영광을 바라보는 기쁨입니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기쁨도 마찬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기쁨, 그리스도의 절대 사랑의 기쁨, 성령의 내주에서 오는 기쁨, 전도의 기쁨, 기도의 응답에서 오는 기쁨, 찬송의 기쁨, 풍성한 삶의 기쁨, 성령이 진정한 기쁨의 원천입니다. 신령한 기쁨은 생수가 터져 나오는 것 같고 세속의 기쁨은 아편과 같습니다.

3) 화평 - 평안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① Peace with God 하나님과의 화해 ② Peace of God 하나님의 평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진노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로 변했습니다. 이 법칙으로 화해한 사람은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에게 부은 바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곳에 진정 한 평화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성령이 주는 기쁨은 언제 어디서나 인간이 빼앗을 수도, 줄 수도 없는 환경을 초월한 절대적인 평안이 주어집니다.

4) 오래 참음 - 참는 사람은 소와 같이 생겼습니다. 사랑도, 믿음도, 소망도, 오래 참습니다. 주님은 하루가 천 년 같이 천 년을 하루 같이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좋은 일을 할 때에도 욕을 먹고 오해를 받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영적 성숙을 드러냅니다. 시종 여유 있는 미소로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않고는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5) 자비 - 이 말은 ‘친절’이란 말과 가깝습니다. 크리스천의 행동 가운데 이름 없는 작은 친절, 작은 사랑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친절은 자본 없이 햇빛과 단비처럼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이 친절은 소경도 볼 수 있고 귀머거리도 들을 수 있고 벙어리도 말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이 언어는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 집에서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영적 의미도 있지만 딱한 사정을 보고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일, 삭개오를 만나신 일,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구하신 일, 십자가상에서 강도의 소청을 들으신 일, 디베랴 호숫가에서 배신한 베드로를 찾아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을 반복하여 물으신 것은 베드로의 배신의 괴롬을 사랑의 고백으로 지워 버리시기 위하여 베푸신 예수님의 친절입니다.

6) 양선 - 선량하다, 착하다, 심성이 곱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사도행전 11:24에서 바나바는 선량의 표본적 사람입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왜 착하냐 하면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입니 다. 바나바는 토지를 팔아서 사도들의 뒷바라지를 했고 안디옥에서 주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바울의 선배였지만 그를 세웠습니다. 마가라는 사람을 발굴하여 신약 성경의 인물로 만든 것도 바나바입니다. 위대한 사람 가운데는 남의 위대성을 죽이는 사람과 위대하지 못한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위대한 사람이 있습니다. 위대한 크리스천은 위대한 크리스천을 많이 만들어 내야 합니다. 바나바란 ‘권위자’곧 ‘위로해 주는 자’란 말입니다. 여러분도 남을 도와주고 키워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선량한 것입니다.

7) 충성 - 이것은 신실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충성과 반대되는 말은 배신입니다. 부모, 친구, 은인, 교회, 직장에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가룟 유다의 일일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충성은 성령 충만에서 오며 순교자적인 특징은 충성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믿을 수 있습니다. 충성은 ① 하나님께 ② 가족에게 ③ 교회에 ④ 민족과 국가에 대하여 입니다.

8) 온유 - 양 같은 일면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입니다. ‘내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 다. 하나님의 뜻을 짊어지고 자기의 뜻을 버리고 골고다를 오르는 모습이 온유입니다. 예수님도 모세도 바울도 강한 분이었지만 온유했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하나님 에게, 모든 형제에게 온유해야 합니다.

9) 절제 - 현대 교육의 치명적 결함은 절제의 부족입니다. 인간에게는 악의 경향성이 있음으로 악한 욕망을 자제하고 절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중세 수도원은 청빈, 금욕, 노동, 고행, 기도, 침묵, 명상, 금식 등으로 자기의 아집과 아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했는데 우리의 품성이 예수를 닮아 가고 성령의 지배를 받는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 근교에 기도원을 하나 가져야 겠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절제의 덕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점검하십시다.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닮고 품성을, 그의 심성을 닮아 날로 성장하고 풍성해 지는 크리스천이 되어야겠습니다.

*이 글은 김준곤 목사가 <CCC편지> 1981년 2월호에 기고한 것입니다.

*<예수칼럼>으로 국내외의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킨 유성 김준곤 목사의 진정한 영적 힘은 바로 그의 설교에 있다. 이미 엑스플로 '74, '80 세계복음화대성회 등을 주도하면서 민족 앞에 불을 토한 그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유명하다.  84년의 인생을 살면서 그의 삶의 유일한 소망은 민족복음화, 영혼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십자가 사랑을 설교한 사람이다. 어떻게 해서 진정한 주님과 만남을 통해 변화되고 확신 있는 크리스천이 되었는지 민족복음화의 환상이 잉태되었는지를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그의 설교는 목회자와 평신도, 젊은 지성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감동과 영감을 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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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28 [11: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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