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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7.18 [20:02]
"한국 교회, 이념우상 극복해야 한다"
4.19혁명 직후 '새생활운동' 주역 김명혁, 김상복, 손봉호, 이형기 교수 좌담
 
김철영

19604.19혁명 직후인 6월과 7월 두 달 동안 서울대 문리대에 재학 중이던 10여 명의 크리스천이 중심이 되어 전개했던 새생활운동을 회고하고 오늘날 크리스천 젊은이들과 한국교회를 향한 고언(苦言)을 들려주는 자리가 마련됐다.

▲ 서울대 새생활운동의 주역들과의 좌담...좌측부터 손봉호 교수, 김명혁 목사, 김상복 목사, 이형기 교수     ©뉴스파워

 

새생활운동의 주역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 손봉호 장로(서울대 명예교수), 이형기 교수(장신대 명예교수) 등은 지난 6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도곡동 강변교회(담임목사 이수환) 비전홀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김상복 목사는 “19604.19를 끝낸 서울대 문리대생들은 4.19의 의미를 토론했다. 결론은 국민이 바닥에서부터 의식의 변화와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 생활혁명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사실상 4.19혁명은 이제부터 국민의 혁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목사는 학생들은 당시 가장 시급한 문제들을 토론했다. 두명씩 8개의 팀을 구성해서 8분야의 사회상을 조사해서 학생들에게 보고하도록 했다.”양담배와 커피는 100퍼센트 불법 밀수품이었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군대의 찝차를 개조한 자가용 자동차들은 전부 면허가 없는 가()자 번호를 단 불법 자동차들이고, 국회원들이 밀수 휘발유를 국민의 세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이후 국방부에서는 모든 군인들의 자동차는 절대로 민간인용으로 사용할 없다고 결정하고 전군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새생활운동을 전개하면서 명예심 때문에 다툼을 피하기 위해 회장, 부회장, 총무 등의 피라밋 식의 하향식 명령적 수동적 조직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었다. 가장 중요한 행동대원들은 운동원들 자신이었다. 이들을 연락원이라고 불렀다.”이는 예수의 섬기는 종의 모델이었다. 또한 팀마다 아이디어를 내서 슬로건도 만들고 전단 등 제작비용도 팀마다 스스로 호주머니를 털어서 비용을 충당하는 등 완전한 민주적 운영체제였다.”고 말했다.

▲ 김상복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새생활운동은 다른 대학과 중고등학교로까지 확산되었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이 방학 때 고향에 내려가 알리면서 광주, 대구, 마산 등으로까지 확산되었다.”며 이같은 활동인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에 사설과 기사로 실린 것을 소개했다.

 

김 목사는 당시 국방부에서는 군용 자동차를 민간인용으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장면 총리는 새생활운동을 3대 정책 가운데 하나로 도입하려고 했다. 곽상훈 국회의장은 이제형 부의장을 보내서 새생활운동을 입법화를 제안해 토론까지 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1998년 3월호 월간 [CCC 편지]에 기고한 "'새생활운동'의 횃불, 20대 리더들!"이라는 기고에서는 "박정희 장군은 '국민재건운동'이란 이름으로 우리의 아이디어들을 많이 수용했다."며 "우리는 새생활운동을 통해 자발적 국민운동이 얼마나 힘이 있는가를 잠시나마 체험하며, 우리 국민은 동기부여만 잘 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고 썼다.

 

김 목사는 “UN 소속 터어키 군인 대위 한 명이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를 찾아와서 미화 1000달러를 건네주면서 자기가 일본에 다니며 밀수한 물건으로 번 돈인데 코리아헤럴드신문에 난 새생활운동에 대한 기사를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양심의 가책을 받아 이 돈을 운동에 쓰라고 주고 갔다.”고 밝혔다.

 

이형기 교수는 대학교 1학년 때 김상복 박사의 전도를 받아 서울 역 맞은편 세브란스병원 안의 Joy-Bible Class에 나가면서 신사훈 박사가 목회하시는 새싹교회에 다녔다.”문리대 교과목들을 수강할 때 친구처럼 되었는데, 새생활운동을 끌고 나감에 있어서 상호소통과 공동체적 연대의식도 뛰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는 기독학생들이 중심이 된 새생활운동은 많은 비기독교인 운동 참여자들의 보편적 가치와 공명을 일으키면서 길거리로 함게 나갔던 것은 참으로 인상적인 사건이었다.”우리 교회는 이와 같은 경험을 살려 오늘의 한국의 상황에서 불신자들의 보편적 가치들에 상응하는 가치들을 제시하면서 학생운동뿐만 아니라 기독교 시민사회운동들에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 이형기 교수     ©뉴스파워

 

이 교수는 새생활운동은 10명 내외의 고려파 출신 학생들이 중심이 되었다.”비폭력 저항정신과 개인적 윤리를 강조하는 고려파 장로교회의 신앙과 신학이 정신적 근원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새생활운동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the ultimate) 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기독교의 역사적 사명들'(the pen-ultimate) 가운데 하나로 보면서 기독교적 윤리는 기독교적 종말론을 전제해야 한다. 기독교윤리(새생활운동)는 믿음과 희망 사이에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기독교윤리의 출발점은 신앙이고, 그것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밍이다. 이는 예수님과 바울이 공유는 진리라며 오늘날 공적인 윤리 혹은 공동선의 차원에서 공통점들을 찾아내어 보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헌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손봉호 교수는 여운형 전도사가 김규식 선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해서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것이 3.1운동의 배경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독교가 3.1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면서 새생활운동도 소수의 크리스천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독특한 운동이었다.”고 말했다.

▲ 손봉호 교수     ©뉴스파워

 

손 교수는 민주주의의 꽃은 시민사회다. 보상과 이익을 바라지 않는 자발적 활동이라며 시민사회의 역할을 권력을 가진 정부나 기업을 견제하는 일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인데, 새생활운동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운동으로 우리 사회 민주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1991년 낙동강 페놀오염사건 때 일본의 기자가 찾아와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수습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길래 일본과는 달리 기독교 때문에 빨리 수습이 된 것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며 기독교가 시민사회활동의 중심 역할을 해온 것을 높게 평가했다.

 

손 교수는 오늘 한국 교회는 상당히 후퇴하고 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잘못된 것이 분명하면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한국교회는 능력도 있고, 기회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교회가 너무 이데올로기에 경도되어 극우와 극진보로 갈라져 있다.”성경보다 이념을 우선하는 것은 우상이다. 이념우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직하지 못한 것이라며 정직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좌담을 제안한 김명혁 목사는 우리 몇 사람들이 소박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열정적으로 시작했던 새 생활 운동이 전국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우리 자신들에게도 한 평생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 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교수나 목회나 사회운동이나 연합운동을 하는 현장에도 지금까지 잔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김 목사는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젊었을 때 올바른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한 번 쏟아 보라고 권면하면서 그러나 분노와 증오를 품지는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인권운동이 중요하고 민주화 운동이 중요하고 통일 운동이 중요하지만 분노와 증오를 품고 하는 운동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가슴과 몸에 깊은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라며 긍휼과 용서와 사랑이 없는 모든 옳은 일은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서울대 새생활운동의 주역들과의 좌담...좌측부터 김상복 목사, 손봉호 교수, 김명혁 목사, 이형기 교수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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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3/07 [08:3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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