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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8.25 [06:01]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3)
교육신학적 원리 탐색
 
정준모

 

▲  칼빈의 성시화 운동의 모체인 제네바 아카데미 전경   ©뉴스파워 정준모

 

글쓰는 목적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은 곧, 제네바 아카데미를 비롯한 교육개혁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최근 한국교회의 성시화 운동과 제네바 아카데미 운동에 대하여 전적 동감하며 전폭 지지를 표한다. 20회를 걸처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의 교육적 측면에서 역사적 배경, 신학적 통찰력, 교육 신학적 특성과 원리 세계 성시화 운동의 방향과 제언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칼빈의 󰡔2차 신앙교육서󰡕

칼빈과 제네바 시의회와의 갈등 때문에, 그의 󰡔1차 신앙교육서󰡕는 본래 의도대로 제네바 교회와 목회 현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1차 신앙교육서󰡕를 작성한 이듬해인 1538년에 파렐과 함께 스트라스부르그로 떠나게 됨으로󰡔신앙교육서󰡕를 실험해 볼 시간적 여유와 목회적 현장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칼빈은 스트라스부르그에 머물면서 유럽의 훌륭한 교육적인 사상과 정신들을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또한 이미 성공적으로 개혁주의적인 훈련과 교육이 이루어진 교회의 현장들을 목도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칼빈은 파리에서 교육을 받은 인문주의자이며 교육 전문가였던 스트라스부르그 아카데미의 총장 슈트름(Jean Sturm)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부처(M. Bucer)의 영향을 받게 된 칼빈은 이 아카데미의 강사와 프랑스 피난민 교회의 목사로 사역하였다. 이 교회 사역을 통하여, 그는 교육과 치리의 문제들에 관하여 가치 있는 실제적인 경험들을 많이 얻었다. 이 교회에는 약 5백 명 미만의 교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목회 방식을 가지고 실험적 목회를 할 수 있었다. 바로 교인 각 사람이 성찬식 이전에 목사와 개인적인 면담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결실이었다. 그 결과, 그는 마음이 혼란하였던 자들에게 다시 확신을 줄 수 있었고, 지식이 부족하거나 혹은 무지한 자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칼빈은 15389월부터 15419월까지 만 3년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그에 머물면서 󰡔2차 신앙교육서󰡕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가 󰡔2차 신앙교육서󰡕를 만들게 된 배후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게 되었다. 첫 번째, 칼빈은 이곳에 머물면서 종교개혁자 부처가 1537년에 󰡔소 요리문답서󰡕(Kurtzer Katechismus)를 작성하고 출판하여 교회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는 목회 현장을 목격하였다. 두 번째, 그는 자신이 작성한 󰡔1차 신앙교육서󰡕가 신학적, 사상적인 면에서는 매우 특출하였으나 목회 현장의 적용 과정에서는 약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 󰡔1차 신앙교육서󰡕는 단순히 기독교 교리의 요약과 신앙고백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목회 현장에서 쉽게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이것을 요리문답 형식에 맞출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이 때 만든 󰡔신앙교육서󰡕에 대하여, 칼빈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으며, 얼마나 그의 평생 목회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는지, 1564428일 그가 임종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고별연설을 하였던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스트라스부르그에서 다시 돌아오는 도중에 나는 서둘러서 이 󰡔신앙교육서󰡕를 기록하였다. 그 이유는 만약 그들이 이 두 가지 것들, 즉 이 󰡔신앙교육서󰡕󰡔치리서󰡕를 고수하는 것을 내게 맹세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역을 전혀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네바 사역에서 칼빈에게 이 두 가지 책자가 어느 정도 불가분의 관계였으며, 또한 그의 목회 사역에서 얼마나 핵심적 역할을 했는가를 보여준다.


15419월에 칼빈은 개혁에 관한 그의 계획에 대하여 제네바 인들이 전적으로 수용한다는 보장을 받은 후, 마지못해 제네바에 있는 그의 사역지로 돌아왔다. 그는 도착한 후 20일이 채 못 되어 제네바 시의회에 󰡔교회법󰡕(Eccesiastical Ordinances)을 제출하였다. 이 교회법은 교회의 조직과 치리에 대한 개정, 증보된 안()이었다.이 법령은 2개월 안에 총회에 의해 완전히 승인되어졌다. 이 교회법은 목사, 박사, 장로, 그리고 집사로 된 칼빈의 특유한 정치 형태가 구상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 법령은 제네바 도시의 교육 방향성에 대하여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 우선, 가르침에 대한 엄격한 계획이 도시의 여러 교회에서 세워지고, 각 교구에는 매 주일에 두 번의 예배, 주간에 세 번의 예배가 더 드려지도록 하였다.어린이를 위한 󰡔신앙교육서󰡕 교육은 각 교구에서 주일 오후에 행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신앙교육서󰡕 교육을 실제로 실시할 수 있는 일정한 의식서가 작성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칼빈의 1536년판 󰡔기독교강요󰡕의 초두에 󰡔신앙교육서󰡕에 대한 그의 계획들이 피력되어 있다.

 

󰡔신앙교육서󰡕로 교육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것의 실천을 위해 초안된 입문서를 가지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입문서는 단순한 방식으로 거의 모든 우리의 종교에 관한 기사들을 포함하고 요약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입문서에 대해서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들은 논쟁의 여지없이 동의하여야 한다. 10세의 어린이는 그의 신앙고백을 선언하기 위해 스스로 교회에 출석하고, 각 조항에 대한 점검을 받고 응답해야 할 것이다. 만약 그가 어떤 것에도 무지하거나 혹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는 배워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가 증인으로 간주될 때, 그는 하나의 참되고 신실한 믿음을 고백해야 할 것이고, 그 믿음 안에서 믿는 자들은, 한 마음으로 한 분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오늘날, 몇몇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을 관심 없는 문제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므로 만약 󰡔신앙교육서󰡕 교육이 지금도 여전히 효력을 가진다면, 이것은 이런 부모들의 나태함을 일깨워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나태함으로 인하여 공개적으로 망신당하지 않을 것이다.

 

1537년의 소논문들처럼, 󰡔교회법󰡕은 전반적으로 교육적인 기획과 형식적인 치리를 위한 예비 책으로 준비되어야 한다. 평신도 장로들과 목사들로 구성된 장로 법원(Consistory)은 부모들이 그들의 임무들을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주의 깊은 눈으로 살펴야 한다. 침체된 자들은 권고를 받아야 하고, 완강한 범법자들은 시 행정관들에게 보고 되어야 한다.또한 이󰡔교회법󰡕교리 안에서 일치를 유지하고 󰡔신앙교육서󰡕 교육과 다른 것들에 관한 그들의 임무들을 양심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목사들의 주간 모임들을 준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회법󰡕을 채택함으로써 칼빈은 새로운 󰡔신앙교육서󰡕 도입에 착수하였다. 그는 1542년 초에 󰡔제네바 교리문답서󰡕 󰡔2차 신앙교육서󰡕(Le Catechisme de L'Eglise de Geneve)의 첫 번째 판을 프랑스어로 출판했다.또한, 1545년에 칼빈은 불어권에 속하지 않은 성도와 교회를 위하여 라틴어 번역을 하였다. 그는 1537년의 󰡔1차 신앙교육서󰡕(Instruction in Faith)55개 과목 및 373 개의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전체 구조를 바꾸어 매주 한 과목씩 교리교육를 하도록 개작을 하였다.또한 칼빈은 오후 예배 때에는 신앙의 기초 교육을 위하여 매 주 한 과목씩 순서에 따라 교리 설교를 하였다.


󰡔2차 신앙교육서󰡕는 네 개의 중요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각 부분은 하나님께 적절하게 경배 드리는 측면들을 다룬다. 첫 번째 것은 신뢰에 집중하면서 사도신경을 설명한다. 두 번째 것은 십계명 주석과 함께 순종에 초점을 맞춘다. 세 번째 것은 주기도문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필요할 때에 하나님께 요구하는 우리의 의무를 고찰한다. 그리고 네 번째 것은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이 모든 좋은 것들의 유일한 창조자이심을 인정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를 통하여 칼빈은 예배에서 말씀과 성례를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서는 󰡔소 요리 문답서를 받아들이기 원하는 어린이들을 점검하기 위한 형식󰡕(The Form For Examining Children Who Wish to Receive the Shorter Catechism)이라는 제목으로 나타났다. 󰡔신앙교육서󰡕는 신앙에 관한 간결한 요약인데, 그 속에 포함된 21개의 질문은 십계명, 선한 행위들, 칭의, 기도, 성례, 그리고 성령의 역사에 관한 어린이들의 이해를 시험한다. 여러 사본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제네바 소 요리문답서󰡕의 초기 복사본은 󰡔제네바 신앙교육서󰡕1553년 판이 공식적인 판본으로 인정된다.


어린이들의 마지막 시험은 분기별로 이루어지는 성찬식이 거행되기 전에 공개적으로 개최되었다.시험을 성공적으로 완성했던 어린이들은 그 다음 주 성찬식에 처음으로 참석할 수 있는 허락을 받게 되었다. 칼빈은 제네바 목회 사역 초기에는 시험과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나이를 10세 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제네바 아카데미의 교과과정에는 11세에서 12세 때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칼빈의 󰡔신앙교육서󰡕를 통한 교리교육이 공교육에서도 강조되어 실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칼빈은 1536년에 이 도시에 있는 학교들을 철저히 검사할 것을 제의했다. 그러한 초기 노력들은 도시 전체에 도움이 되는 초급 학교인 리브 전문학교(College de Rive) 설립의 필요성에 집중되었다.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출석하도록 요구되며, 가난한 가정들도 수험료의 면제로 자녀들을 학교에 부담 없이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노력은 실패되었고, 1559년에 제네바 아카데미가 설립될 때에야 비로소 칼빈은 이 도시에서 공립교육을 위한 그의 계획들이 결실을 맺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아카데미는 초등학교와 상급학교로 구성되는데, 후자의 교육은 여러 개혁주의 교회에서 사역할 목사들을 준비시키려고 신학에서의 진전된 과정들을 제공해 주었다.어린 학생들은 주간 구두시험을 준비하기 위하여 매주 토요일에 교육을 받았다. 나이가 든 학생들은 성경 언어학습을 위하여 기초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공부하였다.


칼빈은 가정, 교회, 그리고 학교 등 모든 장소에서 󰡔신앙교육서󰡕를 중심으로 남녀노소를 교육시키는 데 목회적 정렬을 쏟았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칼빈의 제네바 목회는 교육목회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교육 목회의 지침과 핵심은 바로 󰡔2차 신앙교육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2차 신앙교육서󰡕를 통한 교리교육에 비중을 둔 칼빈은 󰡔2차 신앙교육서󰡕 교육에 교인들이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하였고, 이에 소홀하거나 불응할 경우에는 치리를 하도록 하였다. 특별히 청소년들에게는 일정 기간 동안 󰡔신앙교육서󰡕의 핵심적인 내용을 회중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는 자에게 한하여 입교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칼빈은 매우 엄격하였고 지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은 교리 교육 운동, 기본 신앙 훈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성시화 운동은 영적 긴 안목과 인내력을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야 할 것이며, 모든 교회, 모든 가정, 모든 교단이 함께 연합으로 참여하여야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속전속결로 단 숨에 결과를 얻으려는 속단은 금물임을 밝혀 둔다. 성시화 운동은 신앙교육 운동에서 비롯되고 그 운동은 지속적으로 장기적 시야가 요청된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저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719.248.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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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20 [01: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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