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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3.26 [02:02]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2)
-교육신학적 원리 탐색-
 
정준모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2)

-교육신학적 원리 탐색(2)-

정준모 목사(철학박사, 선교신학박사, 말씀제일교회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원 박사원 교수, 합동교단 증경총회장, 총신대, 대신대, 백석대 교수 엮임, 현 뉴스파워 미주 총괄본부장)

▲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의 요람인 제네바 아카데미 전경   ©뉴스 파워 정준모

  

글쓰는 목적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은 곧, 제네바 아카데미를 비롯한 교육개혁 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최근 한국교회의 성시화 운동과 제네바 아카데미 운동에 대하여 전적 동감하며 전폭 지지를 표한다. 20회를 걸처 칼빈의 제네바 성시화 운동의 교육적 측면에서 역사적 배경, 신학적 통찰력, 교육신학적 특성과 원리 세계 성시화 운동의 방향과 제언 등을 살펴 보고자 한다. 참고적으로 본 글은 본인의 철학박사 (Ph. D)학위 논문인 칼빈의 교리교육론” -한국교회 목회 현장 적용론 중심-을 요약 보충한 것임을 밝힌다. 부끄럽지만 본 논문은 최초 칼빈의 교리 교육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음을 밝혀 둔다.

 

 

제네바 성시화 운동의 원리인 칼빈의 1차 신앙교육서작성 배경 살피기

 

칼빈이 종교 개혁자로 제네바 교회의 목회 사역을 감당한 것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차 사역 시기는 1536년에서 1541년 사이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는 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채 중단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칼빈은 신학 대전인 기독교 강요를 만들었고 이 책의 요약된 해설서라고 불리 우는 1차 신앙 교육서를 역사적 집필을 하게 되었다. 2차 사역 시기는 1541년에서 1546년 사이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제네바 시 전역의 개혁 뿐 아니라 전 구라파와 전 세계 교회의 개혁까지 큰 영향을 끼친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이 시기에 그는 교회 법을 작성하였고 신조를 비롯하여 예배 모범서 그리고 제 2차 신앙 교육서(일명, 제네바 신앙 교육서)를 만들었고 어린이 교육과 청소년 교육 및 성인 교육에 온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워 서구 구라파 지역에 신앙 교육과 일반 학교 교육에 큰 영향을 주었다.


칼빈의
1차 신앙 교육서153611월에서 15371월 사이에 작정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15368월 경 칼빈은 제네바 종교 개혁자인 월리암 파렐(William Farel)의 권유로 종교 개혁 운동에 가담하기로 결정한 지 불과 몇 달이 채 안 되는 때였다. 칼빈은 자신의 시편 서문에서 당시 파렐의 권유로 제네바 사역을 시작한 것이 그의 생애에 가장 큰 전환점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나는 예전과 같이 혼자 계속해서 은거하려는 마음을 먹었으나 결국 윌리암 파렐이 조언과 권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무서운 저주를 통해서 나를 제네바에 붙잡아 두었다. 그 저주를 틀었을 때,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를 체포하기 위해 억센 손을 내 위에 내려놓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때 쉬려고 했던 스트라스부르그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전쟁에 의해 폐쇄되었기 때문에 제네바에서 하룻밤 이상 머무르지 않고 빨리 그 도시를 통과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그 때 비열하게 신앙을 버리고 변절해서 카톨릭 교도로 되돌아간 한 사람(까롤리를 의미함)이 나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복음을 퍼뜨리는데 남다른 정열로 불탔던 파렐은 즉시 나를 붙잡아 두기 위해 모든 신경을 썼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인 연구(그것을 위해 나는 다른 일로부터 자유로와 지기를 원했다)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고, 정중하게 요청에 의해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한 후에 그는 저주를 퍼붓기까지 되었다. 만약 내가 가장 필요로 할 때 물러서서 도와주기를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휴식과 내가 추구한 평온한 연구생활을 저주하실 것이다.”

 

칼빈이 1536년 여름에 처음으로 제네바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제네바 시민들이 몇 개월 전부터 앞으로 복음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고, 교황주의와 관련된 모든 잘못된 종교적인 악습들을 폐지하기로스스로 다짐하였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그 곳에는 옛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사회적이며 종교적인 체제들의 발전은 매우 미성숙한 상태였다.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칼빈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내가 처음 (제네바에 있는) 이 교회에 도착했을 때 거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들은 말씀을 선포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전부였다. 그들은 우상들은 찾아내어 그것들을 불태우는데 열심을 다했으나, 개혁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혼란 가운데 있었다.

 

이처럼 당시 제네바 시는 옛 체계에 따른 모든 이교도적인 악습을 금지하고 복음과 말씀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교회 생활을 시도가 요청되었다. 그래서 칼빈은 성도들의 철저한 교육을 통하여 순수한 성경 진리와 교리를 전수시키는 길만이 옛 사상과 악습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하고 성공적인 종교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간파는 칼빈과 파렐은 혼란으로부터 질서를 되찾기 위해서 목회 사역에 착수하였다
. 그들은 제네바 시의 철저한 개혁 을 단행하기 위하여 그들은 153611월에 여러 시 행정관들에게 제네바의 모든 시민들과 거주민들 그리고 이 나라의 백성들이 고수하고 움켜지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신앙 고백문(Confession of Faith which all the citizens and inhabitants of Geneva and the subjects of the country must promise to keep and hold)이라는 제목이 붙은 짤막한 신앙 고백적인 문서를 제출하였다.이 문서는 21개의 항목들이 있는 복음적인 신앙의 확실한 본질들에 관한 짤막한 개요이다. 칼빈은 이것을 성경의 메시지에 대한 간단한 내용 요약으로 여겼으며 그것을 읽는 것은 시민권자의 자격을 가질만한 하나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시 행정관들은 이 문서를 받아들였지만, 제네바 시민들의 거센 저항 때문에 이것을 의무적으로 구독하는 시키는 일을 이행하지 못하였다.

두 번째 문서인 제네바에서의 교회 조직과 예배에 관한 논설들(Articles concerning the Organization of the Church and of Worship at Genever)에는 주의 만찬이 항상 거룩하게 거행되어져야 하며 만약 절실하게 거행되지 못하고 진정한 경외심을 가지고 행하지 않는 경우는 적절하고 충분한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네 가지 조치를 제시하였다.”


이 문서에는 성례의 거룩함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음의 네 가지 사항을 언급하였다
. 치리(discipline)는 장로들과 목사들로 구성된 위원회의 통제하에서 제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다같이 사람들의 생활을 감독하고 도시의 모든 구역들을 통치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위원회는 말을 안 듣는 사람들에게 우정어린 훈계를 하고 완강한 범법자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추방이라는 수단을 가지기도 하였다. 이 논설들은 또한 다음의 것들을 제시한다. 시편 낭송이 여러 교회들에서 확립되었다. “그 결과로 모든 이들의 마음은 기도하는 자들과 같이 되어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도록 고무되며 자극되어야 한다.” 이 도시의 결혼에 관한 여러 법들은 옛 교황주의 체제에서 불거져 나왔던 일련의 추문들과 논쟁들을 막기 위하여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목적들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렇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신앙의 원인들을 제시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복음적인 교리는 부패한 채로 남지 않는다. 또한 실질적인 내용들은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부지런히 유지되며 전달되어진다.”고 하였다.

이 교육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는 수단으로서, 이 논설들은 다음의 내용들은 제시한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간결하고 단순한 요약이 있는데, 모든 아이들이 충분하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증명되어질 때까지, 그들 각자의 능력에 대한 필요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따라서, 그들이 이것을 배워야 하며, 일년의 어떤 때에는 그들이 목사 앞에 나와서 질문 받고 점검 받아야 하며, 더욱 충분한 설명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논설로 인하여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신앙 교육에 대하여 관심과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537년의 논설들은 제네바 시의회 승인 절차에 의해서 결국 1541년의 교회법(Eccesiastical Ordinances)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개혁 교회의 원리를 따라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는 제네바 시민을 위하여 신앙 기초 교리를 배울 수 있는 교본이 없었다.

특별히 칼빈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태만하고 나태한 것을 직시하였다. 이러한 신앙 교육의 현장을 평가 분석한 칼빈은 그 해결책으로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기독교 신앙 교육 내용을 간략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신앙 교육서 작성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필요성과 목적으로 칼빈이 신앙 교육 문서를 작성하게 되었고 그 문서의 원명은 제네바 교회가 사용하는 신앙 교육 요강 및 신조라고 명명하였다.

칼빈의 1신앙 교육서는 구성 면에 있어서 루터의 대 요리문답서(Gröβer Katechismus)를 본받아 작성되었다. 그러나 내용 면에 있어서는 기독교 강요 초판을 만들고 난 후 그 내용을 가지고 신앙교육서를 만들었다. 그러므로 칼빈의 1신앙 교육서와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은 신학적 사상적인 맥락에서 매우 강한 상호 유사성이 있다. 또한 특이한 것은 칼빈의 1 신앙 교육서의 원명에는 신앙고백(confession)이라는 단어가 첨가되어 있음이 주목할 만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칼빈은 1차 신앙교육서신앙고백을 대신할 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를 공적으로 선서하고 이 기본 교리를 이해하고 믿어야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이 작은 책자는 평범한 시민들에게 단순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한 대중적인 저작이다. 그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기독교 교육 위한 지침서이다. 당시 적대적 위치에 있던 교회 교회와 논쟁을 벌이거나 로마 교회를 공격하기보다는 기독교적 신앙의 긍정적인 교리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칼빈은 신앙교육서를 한 편으로 로마 카톨릭 교회측으로부터 가해지는 비난과 공격에 대해 종교 개혁 운동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변증서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본래의 저술 목적은 본 신앙 교육서는 영적인 성장과 기독교 신앙 교육을 위함이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아무튼 신앙 교육서는 칼빈의 초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개혁 교회의 살아있는 신앙을 매우 간략하면서도 웅장함을 보여 주고 있다.


당시 칼빈은 기독교인을 교육하기 위하여 신앙 고백과 교리 교육을 위한 제안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

 

우리가 제안한 의안은 기독교 신앙을 간단 명료하게 요약하여 모든 자녀들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어떤 때에는 그들을 목사들 앞에 불러와서 질문하고 시험을 치르도록 한 후 그들 각자의 역량에 필요로 하는 만큼의 충분한 설명을 듣게 함으로써 마침내 완전한 교육이 되어지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만들어진 신앙교육서는 개혁 교회에 있어서 기독교 교육의 뿌리와 전통이 되었다. 이러한 칼빈의 신앙교육서 작성, 제네바 성시화 운동의 목적과 방향, 기초와 원동력이 되었다( 본 글은 다음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조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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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3 [02:5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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