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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4.25 [15:02]
십자가 흔적을 가져라
정준모 목사의 회복 치유 부흥 설교 전문
 
정준모

 

 

정준모 목사(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합동 증경 총회장, 총신, 대신, 백석대학교 교수 역임 Ph. D & D.Miss)

 

▲  십자가 흔적을 가져라  ©뉴스 파워 정준모

 

1. 십자가 서신인 갈라디아서

 

갈라디아서는 󰡐진리의 대헌장󰡑 혹은 󰡐기독교 독립 선언문󰡑이라고 불리울만큼 구원의 진리를 농축해 놓은 말씀의 보고이다. 또한 갈라디아서는 󰡐로마서의 축소판󰡑이라고 할만큼 믿음으로 말미암는 에 대한 신앙의 도를 깊이 다루고 있다. 더욱이 갈라디아서는 십자가의 서신이라고 불리울 만큼 십자가 그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한평생 십자가 중심의 삶을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심지어 십자가의 흔적을 자신의 몸에 가졌다고 담대한 고백을 하는 그를 볼 때 보통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이상스런 일이다. 왜냐하면 역사 전반에 걸쳐서 십자가는 많은 사람에게 끔찍스런 상징으로 생각되어 왔다.

유대인 역사가 클라우스너(Klausner)󰡒십자가의 처형은 사람들이 인간들에게 앙갚음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 중에서 가장 경악스럽고 잔인한 살인 방법이다.󰡓 십자가는 일찍이 극형에 처할 자들을 위한 가장 잔인한 형벌의 도구였기 때문이다. 십자가보다 더 극악한 고문도 없고 십자가만큼 더 고통스런 죽음도 없고 십자가처럼 불명예스런 죽음도 없다. 특히 유대인들은 구약 신명기 기록 때부터 󰡒저주󰡓 받은 자로 경멸하는 것이 바로 나무에 달려 죽는 죽음이라고 생각하였다(2123).

 

2. 수치스런 십자가와 자랑스런 십자가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심지어 바울은 자신의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또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1) 바울은 십자가 위의 그분이 누구인지 잘 알았다.

2) 바울은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잘 알았다.

3) 바울은 십자가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 외, 보통 십자가는 극악의 죄인을 처형하는 최악의 형구였다. 예수님이 달리시기 전 십자가는 듣기만 하여도 몸서리치고 소름이 끼치는 사형집행 도구이다. 그런데 예수 십자가 후 사람들에게 그처럼 흉측스럽고 흉악한 십자가의 이미지는 멀리 감추어지고 그대신 듣고 보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용서와 위로와 기쁨의 십자가가 되었다.

예수 십자가 후 2000년을 지나면서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에게 구원과 참 소망을 가져다주고 생명과 평화의 복음의 상징적 의미로 수많은 영역에서 수많은 의미를 인류에게 남겼다. 십자가는 우주와 인간 역사에 가장 큰 뉴스요 기사였다. 절망의 십자가는 희망의 십자가로, 저주의 십자가가 축복의 십자가로, 수욕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로, 멸시의 십자가가 존귀의 십자가로, 고통의 십자가가 평화의 십자가로, 실패의 십자가가 승리의 십자가로, 사망의 십자가가 영생의 십자가로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역사적 사건 이후이다.

그래서 진실로 진정한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체험한 바울은 그 십자가를 자랑한다고 했다.

󰡒자랑한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고 경배를 드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십자가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주신 최고의 사랑의 표시요, 중심이기에 그것 이외에는 어떤 것도 절대 존경하거나 경배를 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물과 피를 흘리시고 다 이루셨다는 대속의 사역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이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밖에 없다.

바울이 그 십자가를 자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십자가가 자신의 인생을 바뀌어 놓았기 때문이다. 바울 자신을 살린 것이 십자가라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에 달린 분이 주님이시다는 사실을 바울이 마음속 깊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바울이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주님의 거룩한 뜻이 무엇인지 깊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힌 바 되었고 세상은 그에 대해 십자가에 못박힌 바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바로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 사단의 죄악된 제도 그리고 그릇된 종교를 가리킨다.

바울은 십자가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살았다. 왜 살아야 하는가 모르고 하루하루를 지냈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십자가를 받아 드렸을 때 이제는 이 세상과 죄 그리고 그 무의미한 것들이 더 이상 그의 인생을 지배할 수 없었다.

바울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가 누구인 줄 알았고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십자가는 바울을 이 세상에 대해서 단절하고 죽어버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나게 되었다. 또한 세상이 더 이상 바울을 지배할 수 없기 때문에 십자가 때문에 바울을 포기하고 말게 된 것이다.

 

3. 십자가의 3대 의미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은 3가지 큰 의미가 있고 또한 우리가 그 십자가에 믿음으로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 역시 3가지 큰 의미가 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는

첫째, 인류의 죄짐을 지신 것이다.

둘째, 인류의 고통을 담당하신 것이다.

셋째, 인류의 죽음을 대신하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류가 인류의 원죄와 자범죄로 견딜 수 없는 죄짐에 허우적거리고 죄의 휴유증이 영적, 정신적, 육적인 모든 고통에 쓰러지고 결국에는 죄의 결과로 사망의 심판을 스스로 감당할 인류를 위하여 주님이 대신 십자가 위에서 그가 짊어지시고 고통당하시고 사망에 이르게 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말에는 3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 향하고 또한 뒤는 돌아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세상과 작별한 사람이기에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셋째로, 십자가에 못박힌 사람은 자신의 계획을 더 이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십자가는 분명코 세상에게 나에게 대한 것을 분명코 갈라 놓았고 단절시켜 놓았고 죽여 놓았는데 왜 아직도 나의 마음은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대하여 죽지 못했는가가 늘 아쉽고 부끄럽고 갈등을 느끼고 괴로움을 느끼는 자들이 있는가? 오늘 다시한번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십자가를 붙잡고 결단하시길 바란다.

 

나는 죤 뉴톤(John Newton) 목사님이 쓰신 󰡐십자가󰡑시를 함께 묵상하기를 원한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보았다.

 

나는 나무 위에 한 사람이 달려 있는 것을 보았네

고뇌와 피가 거기에 흘렀네

그의 십자가 가까이 내가 서 있었네

그는 사랑의 눈을 들어 나를 돌아보았네

 

절대로, 틀림없이,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나는 그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네

그의 죽음이 내 책임인 것 같았네

그가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네

 

나의 양심이 죄짐을 진 것을 느꼈네

그래서 절망 속에 빠졌다네

그의 피가 폭로한 내 죄들을 보았네

나는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도왔다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하였는지

지금 울어도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 떨리는 영혼은 어디에 숨어야 할꼬

내가 주님을 죽였도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주 요인적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우리는 유죄가 확정된 죄인이었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분리되고 이제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우리가 또 다시 세상과 벗이 되어 주님을 십자가에 못질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우리가 세상과 벗 되고자하면 우리는 또 다시 주님을 살해하는 자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이삭 와츠(Isaac Watts)에 의해서 쓰여 진 시는 이렇게 결단한다.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생각할 때에

세상에 속한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

 

죽으신 구주 밖에는 자랑을 말게 하소서

보혈의 공로 입어서 교만한 맘을 버리네

 

못박힌 손발 보오니 큰 자비 나타내셨네

가시로 만든 면류관 우리를 위해 쓰셨네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겠네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겠네

 

본 서신을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바울뿐 아니라 오늘날 그리스도들을 따르는 제자들은 모두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이고 또한 그리스도가 부활하실 때 그와 함께 다시 살아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친히 저주의 몸으로 달리심으로 구속함을 입은 자들 곧 그의 제자들은 십자가를 분기점으로 세상에 대하여 그의 정과 욕을 못박은 자들이다.

 

4. 자신을 못박은 십자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십자가는 당연히 너가 있어야 할 곳이다. 나의 아들 예수는 너 대신 십자가에 달여 있는 것이다. 그의 비극은 너의 생애에 있어야할 비극이다. 너는 십자가 교수형을 받아야 마땅할 반역자이다. 그러나 보라! 나는 네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너를 사랑하매, 그래서 너 대신, 너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 너를 위한 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나는 여기, 바로 십자가 위에서 너를 만나고 있다. 나는 이 외의 어느 곳에도 너를 만날 수 없다. 너는 반드시 십자가에 달려 있는 이 사람과 동일시 됨으로써 여기 십자가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동일시 되었을 때 나 하나님은 그 안에서 너를 만날 수 있으며, 그를 불렀던 것처럼 너에게도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라고 부를 것이다.󰡓

1) 세상의 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66).

2) 세상의 지혜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 120).

3) 세상의 영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 212).

4) 세상의 염려를 십자가에 못박았다(고전 732-34).

5) 세상의 초등학문을 십자가에 못박았다(412-14).

6) 세상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박았다(612-14).

7) 세상의 풍속을 십자가에 못박았다(22).

8) 세상의 일과 소망을 십자가에 못박았다(319-20).

9) 세상의 교제를 십자가에 못박았다(44).

10) 세상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벧후 14).

11) 세상의 더러움을 십자가에 못박았다(벧후 220).

12) 세상의 악한 것을 십자가에 못박았다(요일 215-17).

 

십자가로 세상을 못박기 전에는 우리에게는 진정한 자유가 없이 포로 생활을 하였다. 무엇에 대한 포로였는가?

1) 죄에 대한 포로였다.

2) 죽음에 대한 포로였다.

3) 율법에 대한 포로였다.

4) 사단에 대한 포로였다.

5) 양심에 대한 포로였다.

6) 사람에 대한 포로였다.

 

그러나 십자가의 진리가 이 모든 포로에서 자유를 허락하여 주었다. 그러기에 예수의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제자들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의 각종 구속과 속박으로부터의 포로가 아니다. 즉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의 사람이 되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이요 진리이다.

 

5. 십자가 흔적을 가슴에

 

바울은 마지막 부분에 자신이 주 예수의 십자가 흔적을 가졌다고 말했다. 주 예수의 흔적은 무엇인가? 당시 바울은 유대주의 신봉자였다.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다. 그런데 그가 예수 십자가를 만나고 난 후 십자가의 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그의 동족들과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매를 맞고 돌에 맞기도 무수히 하였다.

바울, 육체에 흔적 곧 할례를 받은 것 가지고 잘난척하면서 괴롭히는 그들을 향하여 바울은 외치고 있다. 종교적 의식, 육체적 할례를 받은 것 가지고 더 이상 종교적 의미를 부여 하고 바울 자신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겨우 할례의 흔적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단호하게 물리쳤다.

예수 흔적이란 실제적으로 예수 때문의 매맞음 흔적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매를 맞을 때 사실상 그 매는 그리스도를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기쁨으로 그 고난을 감당하였다(고후 15, 410).

세상은 예수를 공격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로 접근할 수 없어 그의 몸인 교회와 그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접근하여 무차별한 공격으로 괴롭힌다. 세상이 예수 제자를 핍박할 때마다 그들은 바로 예수를 핍박하는 것이다. 사실 바울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예수의 제자를 핍박할 때 주님이 그에게 다메섹에서 빛가운데 나타나셔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우리가 예수 때문에 당하는 핍박은 바로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6. 십자가의 흔적이 주는 의미

 

1) 󰡒온전히 헌신하는 종이 되었다󰡓는 뜻이다.

흔적이라는 말은 󰡒스틱마타󰡓라는 말이다. 신약성경에 꼭 한 번 나오는 말로 강한 소유격을 표시하는 도장이다. 이 흔적, 스틱마타는 일반적으로 주인의 소유를 밝히기 위하여 그 소유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쇠를 불에 달구어 노예의 몸에 찍는 것을 말한다. 또는 병사의 복장에 그 병사의 지휘관의 이름을 새겨 표식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전쟁 포로를 수용할 경우 역시 낙인을 찍어 구별시켰다. 그러므로 스틱마타는 (1) 누구에게 소속되었는가 (2) 주인에게 복종해야하지 않는가 (3) 너에게는 자유가 통제되어 있지 않는가 (4) 죽었다는 것이 아닌가 등의 표식이다.

바울이 이런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을 자신에게 예수의 스틱마타가 있다고 고백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제 바울은 예수의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바울은 이제 예수의 병사요 포로가 되었다는 말이며 바울이 이제 예수 위해 죽기로 각오가 된 종이 되었다는 말이다.

 

2) 󰡒철저히 순종하는 종이 되었다󰡓는 뜻이다.

종의 전부는 바로 주인에게 대한 절대 순종이다.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제자들에게 󰡒반 정도만󰡓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그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반드시 우리의 모든 부분을 통치하는 주로서 그분의 장엄한 이름과 권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적당히 그분에게 다가갈려면 절대로 그분은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다. 예수님에 대하여는 100% 순종 아니면 100% 불순종이지 20%, 30%가 있을 수 없다. 100% 순종하지 않으면 100% 불순종과 같다. 부분적인 순종이란 결코 십자가 흔적을 가진 자에게는 있을 수 없다. 주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는 것은 바로 주님이 나의 전부이며 나의 왕이시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왕되신 그분의 말씀과 권세에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자세이다.

예수님에 대한 순종은 사실 강제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십자가상에서 베푸신 사랑 때문에 주님께 순종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절대로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수 없다. 순종은 바로 주님에 대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소망, 그리고 주님에 대한 사랑의 척도계이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신 것은 사랑의 부르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에 흔적을 가진 제자의 삶은 바로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분에게 순종한다는 사실은 바로 그분의 사랑을 그만큼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립 대성전에는 196888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정신적 영웅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그녀는 바로 삼중고의 십자가를 걸머지고 일생동안 책을 써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소망과 용기와 확신을 주었던 헬렌 켈러 여사다. 그녀는 어렸을 때에 심한 병을 앓아서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 못하는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하잘 것 없는 헬렌 켈러를 위대하게 만든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헬렌 켈러 여사보다 15살 위인 가정교사 설리반이다. 설리반은 헬렌 켈러를 위하여 또 다른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녀는 헬런 켈러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그의 눈과 입이 되어 주면서 그녀에게 문자를 익히게 하면서 마침내 11권의 책을 쓰도록 하였다. 그는 50년 동안 오직 한 사람 헬렌 켈러을 위하여 십자가를 졌던 것이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 설리반에게 주어진 십자가였다.

 

3) 󰡒주인을 자랑하는 종이 되었다󰡓는 뜻이다.

바울은 예수의 노예가 되고 예수를 위하여 충성된 고난의 증인된 것이 너무나도 명예롭고 강한 자부심과 긍지를 나타내고 있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라고 그 부끄러운 노예 표시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사실 누구의 종인가? 누구를 위한 종인가? 가 그 누구라는 대상에 따라 종의 의미가 달라진다. 이제 제자들은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몸에 영광의 마크를 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한다(고전 620). 우리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우리들의 몸에서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어야 한다(120).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는 󰡒나는 그런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주님의 고통을 함께 지고 있는 것 뿐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그녀의 평소에 가졌던 신조였다. 그녀는 1950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지옥같은 인도 켈커타의 빈민굴에 첫 발을 디딘 이후 30년동안 주님의 사랑으로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해 내었다. 문맹자를 위하여 여러 학교를 세워 수많은 어린이들을 졸업시켰고 54개의 나병 치료소를 만들어 치료하였고 20여개의 고아원을 지어 1600여 명에 이르는 고아들을 길렀다. 그리고 숙소를 지어 의지할 곳이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 수천수백 사람들을 보살펴 왔다. 테레사 수녀는 그 가난한 인간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과 십자가를 보았다. 그녀는 30여 년 동안 매일같이 그 골고다에 굳건히 서서 주님과 더불어 십자가를 지는 생을 살았고 참으로 그녀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남긴 삶을 살아갔던 자이다.

 

종은 두 종류가 있다. 삯을 위한 종이 있다. 삯 때문에 움직이는 종이다. 삯만큼 주인에게 매여있는 것이다. 삯을 받기 싫으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를 가리켜 오이케타이스라고 한다. 그리고 몸 전체의 종이 있다. 이는 둘로스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몸 전체를 주인이 값을 치루고 사왔기 때문에 이제 아무리 일하여도 그 값을 치를 길이 없다. 그러므로 한평생 주인을 위하여 살아가는 존재이다. 주인의 뜻이 자신의 뜻이고 주인의 삶이 자신의 삶이요, 주인의 목적이 자신의 목적이며 주인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다. 예수의 제자는 삯을 위한 종이 아니고 몸전체를 주님이 구속하셨기에 주님을 위하여 전적으로 존재하는 둘로스이다.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의 흔적을 가졌다는 말은 바로 자신은 주님이 전적으로 사단과 세상과 사망과 율법에서 십자가의 피값을 지불하시고 사셨기에 이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는 고백이다.

 

7. 십자가 흔적을 가진 자의 삶

 

1)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자세와 방법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가 그와 함께 우리의 아담 안에서 범죄하고 타락한 옛 생명은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간주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바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서 죽었다는 의미이다.

 

로마서 62절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십자가로 우리는 죄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또한 죄와 세상 또한 우리에 대하여도 죽게 되었다.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을 줄 알지 못하느뇨? 󰡒죽은󰡓이라는 말은 과거형 시제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죽음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며 반면에 생명은 현재 계속 일어난 사건 혹은 삶이다.

갈라디아서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의 육에 속한 성품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 내 자아와 옛생명 또한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 이것이 바로 신자의 영적 위치요 바로 십자가가 남긴 흔적이다. 우리가 매일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로 󰡒간주󰡓해야 하며 우리 주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여겨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지체가 되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마음먹은대로 우리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도록 해 드려야 한다. 갈라디아서 220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라고 말했고 또한󰡒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이라고 말하였다.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죽은 자이나 한편으로 산 자란 말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내가 죽은 자가 된 것은 과거의 생명이고 내가 산 자가 된 것은 현재의 생명 때문이다. 이 말은 과거의 생명은 이미 죽은 것이므로 지금 사는 것은 과거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주신 새생명으로 산다는 말이다. 세상의 어떤 요구와 주장도 거절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고 또 세상은 우리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혔기 때문에 세상은 신자인 우리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에 세상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할 아무런 자격도 없다. 그러므로 죄와 세상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2) 날마다 십자가 아래서 죽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자요 하나님에 대하여 산자로 간주하는 일을 매일 사유해야 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923)” 우리는 매일 매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3)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가 다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순간마다 결단이 필요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십자가에 죽음은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지만 그 죽음의 의미를 순간마다 적용하여야 승리적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스스로 세상과 죄와 더불어 싸우려할 때는 실패할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자신을 의뢰하여야 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375)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의 공격에 대항할 때, 그 원수 마귀는 도망 갈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4) 항상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연결 통로를 마련해 놓도록 한다.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자의 삶은 바로 성령 안에서의 삶이다. 이 삶은 바로 항상 주님 안에서 살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다. 성도는 제자이다. 십자가로 구속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자신을 구속한 십자가를 위하여 사는 자이다. 십자가로 자신이 온전히 죽고 십자가의 흔적만이 나타날 때 진정한 제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종교다원주의, 물질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가 극심화 된 시대이다. 인간성이 극도로 상실되고 인간의 종교성도 약해지고 과학주의에 몰입하게 된다. 십자가 신학이 우습게 보일 것이다. 십자가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지혜가 더욱 어리석게 보여 질 것이다. 영적으로 극도의 위기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와 교회는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제자는 바로 십자가의 흔적을 가진 제자이다. 그 제자만이 자신이 살고 교회를 살리고 민족을 살릴 수 있다. 십자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위기 시대를 극복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길 소망한다.



정준모 목사 《선교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현,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Bible First Church)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및 뉴라이프 포커스 미션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칼럼니스트, 뉴스파워 미주 총괄 본부장, 전 대구성명교회 22년 담임목회 및 4200평 비전센터 건축 입당,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MS(세계선교이사회)총재,GSM(미국 선한목자선교회)전 국제부대표 및 현 고문, 전 교회갱신협의회 대구 경북 대표, 한국 만나(CELL)목회연구원 대표,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 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기독교 교육과 교사 영성》 《생명의 해가 길리라》,《21세기 제자는 삶으로 아멘을 말하라》 등 30여 졸조가 있습니다. 자비량 집회 안내:농어촌, 미자립, 선교지 “상처입은 영혼 -치유 회복 부흥집회”를 인도합니다(기사 제보 및 집회 문의 연락처 jmjc8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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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27 [16:4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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