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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9.01.20 [21:04]
‘응답하라 1884’ 조선말기 크리스마스
[희망칼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나관호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나라에서 가졌던 최초의 크리스마스. 조선말기의 성탄절은 누가 맞았으며 어떻게 지냈을까요? 18849월 내한한 미국인 의사 알렌(Horace Newton Allen) 선교사. 그가 도착한 해인 18841226일자 일기에서 첫 번째 성탄절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에서 지낸 최초의 크리스마스입니다.

 

"어제는 성탄절이었다. 파니(Fannie)는 나에게 성탄 선물로 멋진 수놓은 공단 모자와 비단 케이스에 넣은 공단 넥타이 두 개를 주었다. 모두 그녀 손수 만들어 간직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서 일본 요코하마에 멋진 실크 실내복 한 벌을 15달러에 샀지만 많은 외국 우편물들과 함께 선물할 것들을 이번 정변(갑신정변)이 발생했을 때 잃어버렸다. 우리는 민영익을 잘 치료해준 대가로 이번 주에 조선 국왕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았다."(Allen's Diary, Dec. 26, 1884)

 

▲ 알렌과 최초 서양식 병원 제중원(제중원은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 , 국민일보 제공     © 나관호

 

알렌은 아내에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자신이 가족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지만 잃어버린 상황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마침, 조선 국왕 고종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알렌이 맞은 성탄절은 자신의 가족 차원에서 선물을 나누는 것으로 기념되었지만, 고종이 인정한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866년부터 1871년까지 계속되었던 천주교도들을 탄압하고 죽인 병인박해’. 프랑스를 이용하여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했던 대원군의 의도가 실패하면서 발생한 대규모 천주교 박해였습니다. 그랬던 조선이 20여 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중심에는 188412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여 187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개화당이 청국의 속방화 정책에 저항하여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일으킨 것이 갑신정변입니다. 급진개화파의 칼에 민영익은 중상을 입고 쓰러집니다. 14명이나 동원된 한의사들의 노력에도 상처부위의 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미국인 의사 알렌이 민영익을 외과 수술로 살려냅니다. 그 결과로 기독교에 대한 고종의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   알렌부부와 고종 그리고  민영익   © 나관호

 

 그 후 갑신정변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홍영식의 집 광혜원이라는 이름의 병원에서 만들어졌고, 후에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의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뀐 최초의 서구식 병원 제중원의 의사로 활동을 합니다.

 

또 다른 크리스마스 기록은 조선의 입국 허가서를 받고 정식 선교사로 18854월 조선에 들어온 한국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에게 나타납니다. 언더우드가 그 다음해인 1886년에 크리스마스에 지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는 기록이 그의 부인 일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언더우드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의 저녁 식사를 대접한 것은 1886년 크리스마스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후 그는 한국에 있는 동안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는 반드시 자기 집에서 하고 항상 모든 사람에게 해마다 참석해달라고 했다." (Underwood of Korea, 1918)

 

언더우드가 맞았던 크리스마스는 자신의 집에 외국인들을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신자들까지 참여한 성탄절 기념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리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평양지역에서 사역하던 노블(M. W. Noble) 선교사 부인이 1896년 그 지역 감리교 신자들과 함께 했던 성탄절 기념에 대해 일기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탄과 새해가 다가왔다가 지나갔다. 나는 성탄 전날 밤에 부인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는데 부인 30여명이 그들의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우리는 기도하고 노래하고 성탄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과자와 사탕, 밤으로 그들을 대접했다. 성탄절 아침 우리는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렸다. 한국인들은 밑둥치까지 그대로 둔 장식하지 않은 나무를 하나 마련했는데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두 방이 사람들로 가득 차 바닥에 앉기도 하고 뒤에서는 서기도 하여 할 수 있는 한 앞으로 오려고 했다. 우리 작은 예배당에 약 200명가량이 왔다. 아더(Rev. W. Arthur Noble)씨가 성탄절 설교를 한 후, 김창식씨 부인이 이야기하고 나서 재빨리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그 때까지는 상당히 질서를 지켰다. 그들은 그날 아침 상당히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아더씨의 한국어 구사도 상당히 자유로운 것 같았다." ( The Journals, Jan. 2, 1897.)

 

성탄절에 부인들을 초청해 집에서 식사를 하고, 교회에 모여 성탄축하 예배를 드리고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것입니다.

 

▲ 조선말기 선교사들 (국민일보 제공)     © 나관호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가졌던 최초의 크리스마스. 조선말기의 성탄절은 서로 선물을 나누며, 식사를 나누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크리스마스 모습의 모태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크리스마스는 동일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4)

 

나관호 목사 ( '뉴스제이' 대표, 발행인 /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 / 치매가족 멘토 / 칼럼니스트 / 문화평론가 /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소장 /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교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선정 한국 200대 강사’ / 세계선교연대총회 경기북부 노회장 / ‘미래목회포럼정책자문위원 / ‘한국교회언론회전문위원 )

 



작가,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와 '좋은생각언어&인생디자인연구소' 대표소장이다.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강의 교수, 치매환자가족 멘토로 봉사하고 있다, <나관호의 삶의 응원가>를 운영자이며, 기윤실 문화전략위원과 광고전략위원을 지낸 기독교윤리실천 200대 강사에 선정된 '커뮤니케이션 및 대중문화 분야 전문가'다. 또한 '생각과 말'의 영향력을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심리치료 상담과 NLP 상담(미국 NEW NLP 협회)을 통해 상처 받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목사이며, '미래목회포럼' 정책자문위원, '한국교회언론회' 전문위원으로 한국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기독신문 <뉴스제이>의 발행인 겸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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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2/24 [12:4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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