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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4 [06:02]
나의 십자가
시애틀 이동근 장로(전 중앙일보 시애틀 편집국장)칼럼
 
이동근

 

내가 정식으로 십자가를 처음 본 것은 결혼 전 미국에 연수차 왔을 때였다. 원래 불교 집안에서 자란 나였기 때문에 결혼 후 아내가 전도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할 때까지는 교회 안에 들어가 예배를 드린 적도 전혀 없었다.



그래서 어렸을 적 본 십자가는 교회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교회 건물 위에 달려있는 십자가로만 생각했다.가끔 본 고향 전주의 성당이나 서울 명동 성당 밖에서 본 커다란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조각되어 있는 것도 보았다.

그러던 중 35년 전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때에 미시간 주 앤아버의 미시간 대학교로 단기 연수를 오게 되어 미국에 처음 오게 되었다. 당시에는 차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학교 캠퍼스에서 공부를 하고 기숙사에 자며 시간이 나면 주위를 걸어 다니고 인근 디트로이트 구경은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다.

처음 본 미시간 대학교는 유명한 풋볼 경기장을 비롯해 캠퍼스가 도시전체에 퍼져 있는 그야말로 거대한 대학촌 이었다.

어느 날 수업 후 캠퍼스 공원에 앉아 있는데 마침 한 미국 젊은 남자도 같이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인근 도시에 살고 있는데 자기 여자 친구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기다렸다가 차로 픽업해 집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처음 본 미국에 실망했다는 소리를 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책을 통해 배운 미국은 교통질서도 잘 지키고 거리도 깨끗한 선진국으로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달랐기 때문이었다.

처음 도착한 곳이 뉴욕이어서 맨해튼에 가보니 시민들은 빨강 신호등에도 마구 길을 건너가고 지하철은 낙서 투성이었으며 범죄 지역 할렘가는 더럽고 위험한 곳들이 많았다. 또 서울보다도 대도시여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어깨를 부딪쳐도 “익스큐즈 미” 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길에도 담배꽁초 등 쓰레기들로 더러웠다.

당시 사진작가 활동을 했기에 기회를 놓칠 새라 맨해튼에서 비싼 카메라 몇 대를 목에 걸치고 사진 촬영했는데 공원에서 한 미국인이 이곳은 위험하니 카메라를 숨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아차하고 다음부터는 관광객 티를 하지 않고 카메라도 옷 속에 숨겨 가지고 다녔다.

미시간 대학교도 문제가 있었다. 언젠가는 캠퍼스에서 한 여학생이 하얀 것을 보여주었는데 코케인 이었다. 기숙사에 있었는데 저녁에도 시간제한이 없이 열쇠를 주고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게 했고 남녀 구분도 없었다.

대학 인근 공원에서도 술 마시고 마약하고 싸우는 추태도 보였다. 학창시절 우리가 생각하던 선진 미국이 아니었다.

캠퍼스에서 처음 만난 미국인에게 이 같은 실망적인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다 그런 것이 아니라며 교회에 다니는 착한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나는 교회를 미국에서는커녕 한국에서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교회는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자고 다음 주일에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나도 선뜻 수락해 토요일에 그를 만나 그 여자 친구는 뒤에 타고 나는 앞에 같이 앉아 조그만 차로 그의 집에 갔다.

한여름 더운 날씨였는데 앤하버에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시골에 살고 있었다. 호수에 동네사람들이 수영들을 하고 있었다. 저녁에 그 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조그만 2층 다락방에서 잠을 잔후 다음날 미국 교회에 가족과 함께 갔다.

시골 교회는 크지 않았고 사람들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전부가 백인인 이 교회에서 사상 첫 한국인 방문이어서 성도들은 모두가 환영해 주었다. 같이 예배를 드리는데 강대 위에 십자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예수님이 달려있는 십자가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그랬더니 그 미국인 친구가 예수님이 부활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십자가에 달려 계시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다.

나중에 내가 지금처럼 믿음을 가진 후에는 천주교 십자가에는 예수님이 있고 기독교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정말 적절하게 그 설명을 해준 그 미국 젊은 친구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미국 교회를 한번 가보고 싶다는 처음 본 한국인의 요청에 자기 집, 자기 교회에까지 초청해 준 그 미국인은 지금 이름도 잊어버리고 어디에 사는 지도 모르지만 그 첫 미국교회와 친절했던 가족들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평생 잊지 못한다.

그 후 하나님의 뜻이 있어 몇 년 후 결혼해 33년 전 미국에 이민 왔고 지금 장로로서 문서선교를 할 정도로 달라졌다. 그때 보여준 미국 기독교인의 믿음과 친절을 보면 지금도 한쪽은 미국이 총격, 갱단, 마약, 동성결혼 등 죄악으로 오염되어 가고 있지만 그래도 그러한 기독교인들이 남아 있기에 미국은 청교도 정신으로 앞으로도 계속해 선진국으로 남아 있고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것으로 믿는다.

또하나 잊지 못할 십자가는 집사 시절인 18년전 아내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수술 날짜를 받았는데 어느 날 직장에서 당시 내가 섬기던 교회를 지나 집으로 퇴근해 가는데 교회에 들려 기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본당에 앉아 십자가를 보며 하나님께 아내를 살려달라고 기도 했다. 시애틀에서 10여년동안 같은 교회를 섬기며 매 예배시간 마다 보던 십자가였는데 이번에는 달리 보였다.

강대 위의 커다란 십자가가 예수님 얼굴처럼 보였다. 십자가가 줌업되어 얼굴이 긴 인자한 예수님 얼굴 모습으로 크게 보였다. 이어 줌 아웃이 되어 이번에는 커다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나는 너희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었다. 유방암 치료의 고통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 정말 큰 소망과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날 본 십자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아내는 다시 건강하게 회복되어 이제는 암을 이긴 사람들 회장으로 암 환자들을 돕고 전도사로서 사역을 하고 있다.

교회뿐만 아니라돌아보니 우리 집에도여러 십자가가 있다. 아내 화장대 앞에있는나무 십자가는 지난 2003년 교회에서 부부 동산 모임을 가졌을 때 부부가 나무 십자가를 만들고 그 뒤에 기도 제목들을 적은 것이었다.

새삼스레 뒤에 적은 것을 읽어보니 “우리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영혼 구원” 이라고 쓰여 있었다.

내 방 달력 위에도아주 작은 크리스털 십자가가 있었다. 언제 이 십자가를 받았나 생각해보니 어느 선교단체에서 현지인들이 만든 것이라며 후원자들에게 나눠준 것이었다.

바로 내 방 문 앞에 붙어있는 조그만 십자가에는 로마서 8장 18절 말씀이 인쇄되어 있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로 내 컴퓨터 책상 위에도 조그만 석고 십자가가 세워 있었다. 이 십자가에는 기도하는 손이 조각되어 있고 밑에는 “God Bless You"라고 쓰여 있었다. 오래전 어느 선교 단체에서 받은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방뿐만 아니라 우리 아들 방에도 벽에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는 등 생각보다 많은 십자가가 집에 있었다.

십자가들은 이처럼 교회와 집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일터에도 걸려 있었다. 어느 테리야기 식당을 하는 한인의 경우 식당에 십자가가 걸려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 성경구절까지 붙여 놓고 한국 찬송가도 들려주고 있었다.일터에서도 그처럼 열심히 전도를 하는 그 한인 주인은 미국인들도 자신이 기독교인 인줄 알고 더 좋아한다고 말해 자랑스러웠다.

반면 어떤 한인의 경우 업소에 십자가가 걸려 있으나 막상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니 십자가를 보이지 않게 해달라거나 아예 기독교인 이라는 것을 나타내지 말라는 한인들도 있어 정말 안타까웠다.

나의 경우 35여년 전 미국에서 정식으로 처음 보았던 십자가가 이제는 단지 교회 강대 앞에 걸려 있거나 집안에 있는 나무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맘속에서 언제나 자리 잡고 있는것에 감사하다. 특히 그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난과 사랑의 십자가로 언제나 나에게 다가와항상 나의 삶속에서 많은 소망과 용기를 주었다.

또 세상에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 같은 경험담을 이야기 하면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증거하고 자랑할 수 있어 기쁘다.

“그러나 내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어려운 삶을 살고 있는 우리지만거의 매일 대하는 십자가를 통해 항상 평강을 누리고 소망과 용기를 얻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을 수 있기를소원한다.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찬송구절과 찬양 가사가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절)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이동근:시애틀 뉴비전교회(담임 천우석 목사) 시무 장로. 전 중앙일보 시애틀지사 편집국장. 전 월간 신앙지 ‘새하늘 새땅’ 발행인

지은 책: 100명 신앙 간증집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사람들’ 상.하권, 서북미 여행가이드(2018), ‘아름다운 오리건’, ‘아름다운 워싱턴’, 중앙일보 칼럼모음집 ‘비, 눈, 바람 그리고 튤립’. 대한민국 국전을 비롯 일본 아사히 신문국제 사진전, 홍콩, 한국 국제사진전 등 수많은 사진전에 입상, 입선했다. 또 오리건주 오리거니안 신문 사진전에서 1위, 3위를 했고 미국에서 개인 사진전도 개최했다.

이메일:nhne70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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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11/07 [08:3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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