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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5 [02:02]
올바른 생활은 무엇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41]
 
정성민

1. 석가가 말하는 올바른 생활은 무엇일까?

 

이제부터 팔정도의 다섯 번째 덕목인 올바른 생활을 살펴보고자 한다. 올바른 생활은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를 말한다. 석가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생계를 도모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잘못된 직업이나 생계, 즉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생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바르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섬기라. 올바른 직업에 종사하라.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사는 재가자는 스스로 빛나는 신들의 세계에 이르리라. (Stn.404)

 

올바른 직업에 종사하라는 것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적인 도리에 맞게 재산을 모으라는 것이다. 석가는 장자여, 세상에서 선남자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완력으로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 여법한 법으로 얻어진 재산을 지닌다.라고 가르친다.[1] 그렇다면 인간적인 도리에 어긋나는 직업이나 생업은 무엇이 있을까? 석가는 다섯 가지의 잘못된 직업, 즉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직업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수행승들이여, 재가신도는 이들 다섯 가지의 판매에 종사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무기의 판매, 생명의 판매, 고기의 판매, 술의 판매, 독극물의 판매이다.[2]

 

여기서 생명의 판매는 인신매매나 매춘과 같이 인간을 상대로 하는 비도덕적이고 비인도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는 또한 가축 등과 같은 동물의 판매도 의미한다. 과연 이러한 무기의 판매, 생명의 판매, 고기의 판매, 술의 판매, 독극물의 판매가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바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비도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3] 더 나아가 석가는 기만, 요설, 점성술, 점술, 그리고 고리 대부도 잘못된 생활이라고 말한다.[4] 석가는 점성술이나 점술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길조의 점, 천지이변의 점, 해몽, 관상 보는 일을 완전히 버리고,

길흉의 판단을 버린다면, 그는 세상에서 바르게 유행할 것입니다. (Stn.360)

주술적인 주문이나 해몽이나 또한 징조나 점성술에 종사해서는 안 되고,

나의 제자는 새나 짐승의 소리로 점을 치거나, 회임술이나 치병술을 행해서도 안 됩니다. (Stn.927) 

 

점성술은 우주의 천체 현상(별자리)을 관측하여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방법이고, 점술은 점을 치거나 마법, 마술 등을 통해 미래의 일들을 알아내는 주술행위이다. 그렇다면 석가는 왜 점성술이나 점술을 거부하였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석가가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이라는 운명론이나 결정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는 이 세상은 정해진 운명이기보다는 연기법에 의해 모든 것이 확정되어 있지 않고 열려진 세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운명은 인간이 결정을 짓는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가 점성술이나 점술을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한 석가는 술도 금한다. 그 이유는 술이 사람을 미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말한다,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재가자가 이 가르침을 기뻐하면, 술은 마침내 미치게 하는 것임을 알고, 마시게 해도 안 되고, 마시는 것에 동의해서도 안 된다. (Stn.398)

 

결국 석가는 우리로 하여금 건강한 경제적 행위와 도덕적으로 올바른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생활은 올바른 언어와 올바른 행위(살인이나 도둑질 그리고 간음을 하지 않는 것)에 기반을 두고서 올바른 경제활동과 올바른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특별히 올바른 직업에 종사할 경우에,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상호 이타적이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고용인은 피고용인에게 능력과 재능에 따라 일을 시키고 능력에 맞는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한 몸에 병이 낫을 때 치료해주고 종종 기부금이나 상여금을 지불해야 한다. 반대로 피고용인은 부지런해서 게으름을 피우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고용인의 말을 잘 듣고 따르며 고용인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석가의 이러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상호 이타적인 관계설정은 현대 사회의 노사 간의 관계를 위한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질 수도 있다.[5] 

 

2.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생활은 무엇일까?

 

어쩌면 석가가 제시한 올바른 생활은 성경에 드러난 것들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생활에 관한 석가의 가르침과 유사한 성경의 말씀들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로 점성술과 점술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다.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라. (출애굽기 22:18)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시는 땅에 들어간 다음, 거기에 사는 민족들이 하는 발칙한 일을 배워 그대로 행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너희 가운데 자기 아들이나 딸을 불에 살라 바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점쟁이, 복술가, 술객, 마술사, 주문을 외는 자, 도깨비 또는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자, 혼백에게 물어보는 자가 있어서도 안 된다. 이런 짓을 하는 자는 모두 야훼께서 미워하신다.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저 백성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시려는 것도 그들이 이런 발칙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신명기 18:9-12)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 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요한계시록 21:8)

 

둘째로 술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다.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명기 21:20)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잠언 21:17)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에베소서 5:18)

 

셋째로 고리대부에 관하여는 다음과 같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출애굽기 22:25)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레위기 25: 35-37)

네가 형제에게 꾸어 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신명기 23:19)

 

예수가 고리대부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는 예수가 가난하여 무엇을 원하는 자들에게 거저 주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는 고리대부를 하는 대신에 오히려 구제하라고 가르친다. 그것도 은밀히 말이다. 예수는 말한다,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42)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마태복음 6:3-4)

 

넷째로 고용인과 피고용인(주인과 노예)의 관계에 관하여 다음과 같다.

 

네가 히브리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몸값을 물지 않고 나가 자유인이 될 것이며 (출애굽기 21:2)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 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출애굽기 25:39-43)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도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에베소서 6:5-7, 9)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골로새서 4:1)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생활은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서 좀 더 인류애적 사랑의 삶으로 승화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는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2)

 

석가가 제시하는 올바른 생활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간다면 우리가 다 지킬 수 있는 덕목들이다. 만약에 이웃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무기의 판매, 생명의 판매, 술의 판매, 독극물의 판매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만, 요설, 고리 대부와 같이 이웃에 해가 되는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말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4:8-10)

 

3. 올바른 생활에 관하여 예수와 석가는 무엇이 다를까?

 

점성술과 점술에 관하여도 석가와 예수 그리고 구약성경은 한 목소리로 금한다는 것이다. 단지 이유가 다를 뿐이다. 석가는 점성술이나 점술은 사기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점술에 관하여서는 구약성경과 예수는 악한 영과 관련되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기에 금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성술에 관하여서는 인간의 미래를 아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기에 점성술을 통해 인간의 미래를 알고자 하는 시도는 불경한 죄에 해당되는 것이다.

 

석가가 올바른 생활을 권유하는 이유는 사후심판을 두려워한다거나 하나님을 의식하는 그러한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다. 단지 인류애적으로 권한다는 것이다. 물론 석가도 선한 업이나 악한 업을 쌓고, 악한 업을 쌓지 않기 위하여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석가가 말하는 업보는 기독교가 말하는 사후 심판이나 힌두교가 말하는 업보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6]결과적으로 석가의 입장에서 올바른 생활은 올바른 삼매(정신통일)로 들어가는 준비단계이다.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그리고 올바른 생활에 대한 석가의 가르침은 그가 도덕주의자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타인의 삶을 존중하고, 자신의 욕망은 제어하는 삶을 가르쳤던 것이다. 석가는 말한다,

 

생명을 해치지 말라.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말라.

거짓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시지 말라.

순결하지 못한 성적 교섭을 떠나라.

밤에는 때 아닌 때의 음식을 먹지 말라. (Stn.400)

 

비록 석가의 가르침이 종교적이지 않더라도 그의 도덕적인 가르침은 그 어떠한 종교인들의 거룩한 생활에도 뒤지지 않는다. 과연 신이나 영혼 그리고 사후세계를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현세의 삶을 거룩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우리는 왜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할까? 도대체 올바른 행위가 열반에 이르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까? 그 답은 바로 올바른 정진에 있다. 즉 올바른 생활이 올바른 정진을 위한 준비단계라는 것이다. 올바른 정진은 깊은 명상수행을 하기 전에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러운 마음이나 사악한 마음내지는 산란한 마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의 생활을 바르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올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 곧 마음의 정화를 이루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올바른 생활에 대한 구약성경이나 예수의 가르침은 지극히 종교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올바른 생활을 하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후의 심판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입장에서는 죄에서 용서함을 받은 결과로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또한 사후심판에서 상급을 받는 비결이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6,10)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0:41b-42)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6)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니.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가리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인신매매, 매춘, 고리대부, 점술 등)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요한계시록 21:3-4a, 23-27a)

 

올바른 생활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어쨌든 간에 올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석가는 부끄러움이 없이 철면피하고 무례하고 대담하고 죄악에 오염된 사람의 생활은 쉽다. 부끄러움이 있고, 항상 청정을 구하고 방일함이 없이 겸손하여 청정한 생활을 영위하는 식견 있는 사람의 생활은 어렵다.고 말하였던 것이다.[7]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올바른 생활을 좁은 길로 표현하였다. 예수는 많은 사람들이 넓고 쉬운 길을 택하고 좁고 힘든 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탄식하였던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태복음 7:13-14)

 

결론적으로 석가가 말하는 올바른 생활은 성경이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나 동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과 예수는 종교적인 이유로, 즉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후세계에서의 상급을 이유로 이 땅에서의 올바른 생활을 권고하는 것이고, 석가는 올바른 집중(정신통일)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올바른 생활을 요구하는 것이다. 올바른 생활을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할 때 명상수행을 더 깊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석가는 명상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정신통일(선정, 삼매)을 이루길 원했다. 왜냐하면 정신을 통일할 때, 궁극적인 지혜(명지)를 깨닫기 때문이다. 물론 석가가 말하는 궁극적인 지혜는 그가 깨달은 고,,,도의 네 가지 진리(사성제)이다. 이를 펼쳐서 설명한다면,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궁극적인 진리를 깨우칠 때 아무런 쓸 데가 없고 단지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욕망이나 집착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음이 평안해지고, 곧 정신적인 고통에서 자유(열반이나 해탈)를 얻는다는 가르침이다.

 

이상으로 예수나 석가에 의하면, 당신이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하는 이유나 동기는 바로 당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과연 당신은 하늘의 상급을 위하여 이 땅에서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인생무상이라는 궁극적인 진리를 깨닫기 위해 그리고 깨닫고 나서 욕망이나 집착을 버린 거룩한 생활을 선택할 것인가?   

 

 

 

 



[1]붓다의가르침과팔정도, 109.

[2] Ibid.

[3] Ibid, 108.

[4] Ibid, 109.

[5] Ibid, 109-10.

[6]    석가모니는 힌두교가 믿고 있는 영혼이라는 무형적인 물체내지는 비물질적인 자아를 부정하면서 힌두교의 미신적인 윤회설을 부정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었고, 결국에는 좀 더 합리적이고 상징적인 윤회설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사후세계나 업보에 얽매여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거나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신앙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대중들의 수동적이고 비관적인 삶의 태도를 바꾸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십분 활용하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고 또한 그 개척된 운명의 결과까지도 스스로 책임을 지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을 가르친 것이다.

[7]붓다의 가르침과 팔정도, 108쪽에서 간접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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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29 [18:0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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