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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1 [13:03]
여성 사역자 지위 향상 방안들
심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신약학), 예장합동 세미나 발제안
 
심상법

여성사역자 지위향상과 사역개발을 위한 실제적 방안들

 

심상법 교수(총신대 신대원)

 

▲ 심상법 총신대 교수   ©뉴스파워

매우 늦은 감이 있지만 교단의 신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의 한 사람으로 이와같은 공청회를 갖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지적처럼 '21세기는 여성의 시대'(3F시대, Female,Feeling,Fiction)라고 말합니다. 부드러운 감성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무장된 여성들이야 말로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재수 없는/집안이 망하는 시대'가 아니고 '암탉이 울어야 미래의 새아침이 밝아오는 시대'입니다. '수퍼우먼', '비지니스 우먼'의 등장은 산업혁명 버금가는'여성혁명'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감성(Feeling)과 상상력(Fiction)을 갖춘 여성성(Female)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는 중에 여성의 지위향상에 대한 재미나는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자기 어머니가 처음 시집왔을 때는 식사를 부엌 부뚜막에서 했답니다. 3분 만에 나물에 비벼 드셨는데 지금도 3분 만에 비벼 드신답니다. 왜 그렇게 빨리 드시냐고 물으니 소꼴도 먹이고 죽도 쑤고 애들 젖도 먹이고 어디 감히 시아버님과 남편하고 함께 밥을 먹느냐고 했답니다.

그런데 자신이 어렸을 때는 부뚜막이아니라 방바닥에서 식사를 하셨답니다
. 상자리가 있어도 밥그릇을 방바닥에 놓고 식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출세한 겁니다. 부뚜막에서 드디어 밥상위로 올라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마주보고 식사를 하게 되었답니다. 이걸 '맞먹는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아버지와 '맞먹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학 다닐 때부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답니다
. 어머니 밥그릇이 밥상위로 올라오면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답니다. 그러더니 자기가 결혼해서 집에 가보니 이제 밥을 아버지가 직접 차려 드십니다. 어머니가 안차려 주십니다. 아버님 하시는 말씀이 엄마 교회 간다고 가방들고 나가면 해 떨어지기까지 안 들어 온다고 합니다. 요즘 엄마들도 상차려 놓고 나가면 남편이 밥을 먹든지 말든지 신경 안씁니다. 세상이 바뀐 겁니다. 어떻게 감히 남편 밥을 안차려주고 밖에 나가고 여행을 갑니까? '점심한 끼인데 뭘' 하면서 여자들이 간이 커졌답니다. 이제는 엄마가 밖에 나가 활동하는 날들이 한 달에 15일이상인데 아버지는 불만하지 않습니다. 무슨 생각으로 불만하지 않나 했더니 이 늙은 나이에 집에서 쫓겨나지 않고 밥 세끼 얻어먹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라고 하십니다.

50년 만에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여성의 지위와 역할(사회참여)의 변화는 직업의 변화를 보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2018년 고위직이나 사무직에 여성의 진출이 대단합니다. 사법고시(50%)와 판사/검사임용(70%)나 외무교시(70%) 그리고 교사임용고시(초등교사의 80%[중등70%]가 여성). 이처럼 의사, 변호사, 회계사, 약사 등의 여성비율은 날로 늘어가고 있다(70%). 27년 동안 사법고시, 외무고시, 육사, 공사, 해사, 경찰대학 수석졸업을 여자들이 휩쓸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21세기는 여성의 시대인데 여성을 무시하면 어떤 공동체든 망하게 되어 있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시대에 교회에서의 여성(사역자)의 지위와 역할은 매우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 중에 우리 합동 측의 상황은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특히 남성들과 함께 동등자격으로 목회학 석사(M. Div)를 졸업하고 여성사역자로서 교회사역을 할 때 이들이 받는 지위와 역할과 대우는 대단히 열악합니다. 여성사역자들로서 자기들의 신분에 대한 인적상황을 입증할 증명서를 발급 받는 곳도 없고 오직 신대원 졸업장과 자신이 작성한 사역경력서 외에는 이렇다고 할 증명서를 총회나 노회로부터 발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졸업한 남성사역자들은 강도사와 목사가 되어 거기에 걸맞은 신분과 사역과 대우를 받고 있는데 여성사역자들은 평생 '전도사'라는 지위(신분/)외에는 별 다른 신분적 명칭이 없이 세상에서 말하는 인턴 혹은 계약직 혹은 무기 계약직처럼 거저 남성사역자들의 보조적(?) 역할로서 뒤치다꺼리나 하는 존재(미생?)로서 전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에 보상을 생각하고 헌신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일에 소명을 가지고 헌신한 사역자들(전임사역자들)로서의 지위와 역할과 대우를 적절하게 할 때 사역의 효율성이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총회와 노회의 지도자들은 여성사역자들의 지위향상과 사역개발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을 때 이것을 여성안수 이슈에 대한 방어적 입장만을 취하여 그 논의를 무시하거나 사장시키지 말고 보다 긍정적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과 복음전파와 교회개혁과 성장에 있어 여성사역자들이 할 수 있는 역할과 공헌이 무엇인지를 성경적으로만 아니라 역사적으로올 바로 이해하여 그들의 사역을 보다 적극적으로 돕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의 사역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1. 사역에 대한 성경적 이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남자와 여자)을 만드시고(1:26-27, 하나님이자기형상곧하나님의형상대로사람을창조하시되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 인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라고 명하시고 만물(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할/돌볼 사명(지위와 역할)을 주셨습니다([청지기적/목자적 사명] 26, 28; 2:15과 시 8:6-8).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따라 창조된 인간인 남자와 여자 모두는 영으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영적 삶과 윤리적이고 도덕적 민감성, 그리고 양심을 지닌 존재로서 큰 능력과 책임을 가지고 세상(만물)을 다스리고 관리할/돌볼 존재들(벧전 2:9,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Ross 1988:112-113).

한 마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남녀)은 소통과 교제(하나님에 대하여), 위임과 사역(세상에 대하여)의 존재로서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하여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그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존재임을 의미합니다(2:10).

그런데 이 역할과 사명은 남자인 아담만의 일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이 경우 여자는 이 사명을 '돕는 배필'로서 역할을 하는데 여기서 '돕는 배필'이란 '시종'과 같은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동동한 존재'로서 '돕는 사람'(helper ashispartner)을 의미하며(상호보완과 영적 동등성[3:28과 벧전 3:7])이 둘은 서로 연합하여 한 몸(하나 됨/온전함)을이루어 이 일을 하는것입니다(2:18-25).

하나님은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이 동산을 청지기로서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에 돕는 자로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그에게 이끌어오셔서 함께 공동체('한 몸')를 이루어 이 일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사역자들의 사역을 경멸한다든가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이등시민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성사역자들의 사역적 공헌을 결코 폄하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특히 신약성경)이 여성사역자들의 사역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Schreiner 1991:209.)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의 사역은 그 내용과 종류에 있어서 다양하지만 귀천(貴賤)이나 차별(差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맡긴 사명은 세 가지로서 첫 째는 '문화적 사명'(1;28)이며, 둘째는 '복음전파의 사명'(28:16-20; 1:8)이며, 그리고 마지막은 '사랑의 사명'(13:34-35; 요일 3:234:7-21)입니다. 이 사명은 세 가지 사역으로 설명되는데 첫 째는 '문화 사역'이고 둘째는 '복음전파의 사역'이며 마지막은 '자비(사랑)의 사역'입니다. 이 세 가지 사역에 남녀 모두가 헌신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사명과 사역에 근거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는 사역자로 일해야 합니다. 사실 이 세 가지 소명과 사역은 독립된 것이면서도 상호 깊이 연결(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성사역자들은 이 세 가지 소명과 사역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역의 분야와 역할을 적절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2. 여성사역의 역사적 이해

역사적으로 여성사역자들의 헌신은 비록 기독교 역사에 많은 언급이 없다 할지라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가운데에서도 여성의 섬김과 헌신이 있었고(8:1-3), 바울의 선교사역과 초대교회의 사역에서도 그들의 사역내용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여성들의 섬김과 헌신들이 성경기록에 잘 나타납니다(12:12; 16:14, 40; 16:1-2, 14-15; 고전 1:12; 4:3; 4:15).

초대기독교 기록에 따르면, 여성들은 주로 다른 여성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역할을 하였고(2:3-4) 때론 남녀가 혼재한 그룹(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이남성들을가르치는사역도하였으며(18:26과 롬 16:3과 고전 16:19 참조) 특히 4세기 이후 드물기는 하지만 기독교 여성들에게도 '교사의 칭호'가 주어지기도 하였습니다(Osiek & Macdonald 2006:162). 그러나 대체적으로 여성들은 공적인 곳에서는 침묵을 하였지만(딤전 2:11-15과 고전 14:34-36),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여성들은 초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이 공동체 내에서 이러한 은사를 발휘하는 데에는 처음부터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리라 여겨집니다(Ibid). 물론 초대 가정교회 내에서 접대와 구제와 돌봄(심방), 그리고 교육과 의사소통(편지를 주고받거나 정보를 교환하는 일)과복음전파와선교사역에는큰문제가없었다고여겨집니다(2006:12-15).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성장과 선교적 헌신과 발전 배후에 교회여성들(여성사역자들?)의 보이지 않는 숨은 역할과 참여와 공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한국기독교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여성사역자들의 숨은 역할과 참여와 공헌을 발굴하여 기록하고 알리는 일(한국기독교역사기술은철저히남성중심의역사기록이기때문에거의전무함)은 우리가 다루는 주제인 '여성사역자의 지위향성과 사역개발'에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역사적 의미와 공헌을 찾아 기록으로 남겨 알림으로 여성사역자들의 헌신을 진작하고 그들의 공헌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문준경 전도사의 생애[다큐영화 남도의백합화와뮤지컬뮤지컬문준경]CGNTV에서 만든 미국 여자 선교사 서서평 이야기, 서서평천천히평온하게등등). 총회차원에서 이와 같은 여성사역자들의 헌신과 사역에 관한 논문들이 나오도록 기금을 조성하여 도와주는 일은 여성사역자들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여겨집니다.

 

3. 여성사역자들의 지위향상과 사역계발에 관한 제안

총회와 노회 그리고 총회특별위원회인 '총회여성사역자 지위향상 및 사역계발위원회'는 우리 교단 내의 여성사역자들의 현황을 파악하여 그들의 인적자원과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00년에 걸친 신학교졸업생들의 현황과 그들의 사역현황을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성사역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그들만의 아픔과 경험을 파악하여 문제점을 분석하는 일 또한 필요합니다. 이 일은 총회적 차원에서 여성사역자들에 대한 현황들을 파악하여 인적자원에 대한 정보들(인적관리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시급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와 동창회 그리고 지교회와 노회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여성사역자들이 갖는 가장 큰 아픔은 여성사역자들에 대한 교회와 남성사역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심지어는남성신학생들조차도여성신학생들때문에친구전도사들이신학교에오지못하게되었다고빈정됨)이고, 둘째는 그들에 대한 지위나 신분 그리고 역할과 대우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신학교에서 동등학력으로 졸업하고도 졸업 후에 여성사역자들은 교회와 교단에서 내적-외적 차별과 상처를 받아 교단을 떠나 그들을 인정하는 타 교단 혹은 독립교단으로 감으로써 교단 내 심각한 여성인적자원의 손실을 가져오게 됩니다.

성도들의 대다수가 여성인 점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미래 교회의 위상과 성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줌으로써 교회성장의 쇠퇴를 가속화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는 여성사역자를 양성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성장의 퇴보를 보는 일은 자명한 일입니다. 차별법이 재정되고 노동 상황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 교회는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는 사회를 선도하는 집단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여성을 차별하는 집단(꼴통보수집단)으로 낙인찍히고 (여성)성도들이 떠나는/이탈하는 결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근로기준법에 의해 법적 분쟁이 그칠 날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교단은 이런 변화의 파고 속에 보다 능동적인 대처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암울한 미래를 만나기 전에 먼저 우리 모두는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자유주의화'라고 성급하게 단정하지 말고 스스로 변화해야만 21세기를 복음(진리)으로 선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변화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변화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성장할수도 없고 도리어 변화당하며 도태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우리는 어떻게 여성사역자들의 사역을 격려하고 그들을 적극적으로 양성할 수 있을 것인가? 몇 가지로 정책적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1. 신학교 졸업 이후 받는 신분과 역할과 대우의 차별에 대한 해결점으로서 졸업 후 남성졸업생과 마찬가지로 강도사 고시(인허)에 준하는 자격시험을 보게 하여 강도사에 준하는 자격을 부여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반 자격시험(성경지식과 신학 일반)과 더불어 상담, 교육, 복지, 목회로 전문사역을 나누어서 그에 대한 시험을 그쳐 자격증을 부여함으로써 지교회에서 강도사 신분과 대우에 준하는 사역을 하도록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총회는 자격시험을 준비하여 시험에 합격한 여성들에게 자격증을 부여하여 노회와 지교회들에게 강도사에 준하는 역할과 대우를 하도록 행정적 지침을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2. 이어 1-2년이 지난 후에 목사에 준하는 전임사역자로서 자격(해당 전문분야 석사학위와 이에 준하는 총회적 차원의 자격요건 충족[2년 이상의 전임사역 경력포함])에 대한 시험을 다시 보게 함으로써 여성사역자들에 대한 전문사역과 그에 따른 대우를 하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일을 관리할 고시부나 여성전문인을 포함한 상설 '여성사역부'(가칭)를 신설하여 관리하게 합니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신학교와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그리고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빠른 시간 안에 노회와 총회적 차원에서 여성사역자들에 대한 인적관리 시스템을 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에 준하는 자격(?)을 가진 여성사역자들에게는 노회의 준회원(정도의 회원권?)으로 등록케 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과 지도를 할 필요는 없을까 조심스레 제안을 해 봅니다. 이처럼 확립된 인적 자원에 대한 정보를 총회적 차원에서 관리하여 총회 내의 여성인력자원의 손실이 없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여성사역자들의 지위와 복지(연급) 등에 대한 후생사업을 그들에게 확대·적용할 필요성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나가면서

총회와 총신 간에 갈등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복음전파의 사명을 망각하고 다툼과 방종과 방탕의 길을 걷는다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하는 총신과 총회가 될 것이며 한국기독교의 쇠락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변화해야만 살 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장자 됨과 정통신학에 대한 자만(Pride)과 그로 인한 태만(Sloth)을 벗어버리고 우리 안에 있는 절망과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우리의 총회와 총신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흑백의 극한 갈등과 분쟁 속에서 인종차별
(Apartheid)의 종지부를 찍고 다시 태어난 '새로운 남아공'(New South Africa)의 상황(1990)을 주시하면서 그곳에서 배웠던 진리를 마음에 담고 귀국하였습니다. 그들이 국가재건을 위하여 부르짖었던 구호는 진리안에서의화해와평화위에재건을꿈꾸는 ReconciliationPeaceDevelopment였습니다. 치킨게임(chicken game)으로 인한 공동체 내의 '완전한 실패'(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싸움?)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total failure]이 있나니”)를 만나지 않고 서로를 돌아보며, '진리와 거룩'에 대한 자성과 회개의 터 위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 신앙선배들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의 터 위에 세워진 우리 교단을 남성 사역자와 여성 사역자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대속적 섬김과 사랑과 희생)에서 한 마음이 되어(2:5-8), 다음 세대에 아름다운 신앙적 유산을 남겨주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특별히 이 일을 주관하신 '총회여성사역자 지위향상 및 사역계발위원회'인 총회특별위원회와 총신여성동문들과 총회 산하 모든 지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여성리더쉽이란 감성과 공감과 소통과 배려와 포용력과 협력을 갖춘 리더쉽을 의미한다.

Frame(1991:225-232)에 따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성적 차이나 권위와 복종에 대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하지만 감독(control)과 질서(order)와 현존(presence)의 측면에서는 그러한 차이를 가지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자주 '돕는 자'(helper)로 묘사됩니다(18:4; 33:7, 39; 삼상 7:12; 20:2; 33:20; 46:1). 이 단어의 의미는 '[열등과]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남자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자혹은 남자 홀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자로서의 의미로 남녀는 서로의 [부재와]부족을 채워줌으로써 함께 완성해 가는 존재입니다(Ross 1988:126). 이 경우 여자는 지배와 경멸의 대상이 아니라 교제와 존중의 대상을 의미하며 결국 남녀는 상호보완하고 동사함으로써 공동체의 완성을 이루고 사명의 완성을 이룹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Schreiner(1991:209-224)의 글을 보라. 그에 따르면, 성경에 언급된 여성사역자들의 사역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지만 그들의 사역은 남성사역자들의 리더십(안수형태?)'보충적이고도 협력적인'(complementary & supportive) 역할로서 교회 리더십에 대한 최종적 책임은 남성사역자들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박보경, “한국장로교회 초기여성선교사의 사역과 선교적 의의(1908-1942),” 선교와 신학19(2007), 149-183. 초기한국교회에서 파송한 여성선교사들의 모습을 조명한 박보경의 논문에 따르면, 신학과 성경지식과 목회경력을 갖춘 여성선교사들은 총회에 의해 파송되었을뿐 아니라 여전도회에 의해 독자적으로 보내진 것으로 초기에는 주로 남성선교사의 보조적 역할을 했지만 이후는 독자적 선교사역을 수행하였으며 주로 전도와 목회적 돌봄(복지와 상담/심방)과 아동교육(MK교육)과 야학에 사역을 집중하였고 이후 부녀자들을 중심으로하는 성경공부반과 사경회를 인도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까지 확대되기도 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박보경은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사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 것이 바로 여성이었다는 점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한다(173-174). 문제는 선교사들에 대한 복지와 지원에 대한 미비함으로 중도탈락의 결과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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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19 [13:4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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