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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6 [09:10]
인본주의 철학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30]
 
정성민

근대철학은 인본주의 철학이다. 왜 그럴까? 근대철학은 하나님보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한 철학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은 자본주의가 발생한 15세기로부터,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성장한 16세기에서부터 18세기, 그리고 자본주의가 확립된 프랑스 혁명에서 19세기 중반까지,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쇠퇴하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거의 5세기 동안의 철학을 말한다. 근대철학이전을 중세철학이라고 말하고, 근대철학이후를 현대 철학[i]이라고 말할 수 있다.

 

중세철학은 기원후 5세기 말에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로부터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15-16세기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서양철학을 말한다. 이 시기는 교회가 유럽을 종교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엄청난 지배력을 가진 시기로서 당시의 서양철학은 기독교 신학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근대철학은 중세철학에 대한 반동으로 신 중심적 사고에서 인간중심적 사고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1. 어떻게 근대철학은 태동하였을까?

 

근대철학은 신을 포기하고 인간의 자율성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려는 시도이다. 존 듀이는 자신의 저서, <철학의 재건>에서 서양사에서 근대이후에 발생한 4가지 변화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근대는 초자연적인 것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는다.

둘째, 교회의 권위에 복종을 강조하던 중세와는 달리, 개인의 정신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을 앞세운다.

셋째,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가진다. 즉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진보에 대한 신념이다.

넷째, 이 세계의 진보, 즉 유토피아 건설은 근면함과 자연에 대한 실험을 통해 연구하고, 자연을 통제하고, 사회가 활용할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드는 노력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ii]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는 그들의 저서, <세계관은 이야기다>에서 계몽주의 시대에 어떻게 진보적인 세계관이 형성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힌다. 계몽주의는 17-18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혁신적인 사상으로 과학적 인본주의이다. 이는 과학적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계몽주의는 어쩌면 근대철학의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근대철학은 15세기에 태동하여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철학사조이다.
오 백년에 걸친 근대철학의 형성과정에서 계몽주의는 반 기독교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철학 사조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곧 기독교 신앙을 내팽개치고 하나님의 뜻보다는 인간의 의지를 중시하려는 반기독교적 사상이었다. 결국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고 자연법을 따르려는 사상인 것이다. 계몽주의 시대에 유럽인들은 과학과 이성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을 버렸던 것이다. [iii]

 

과학은 서구 세계관이 발전하는 데에 있어 아주 결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고 과학 자체가 비 성서적이고 반기독교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과학은 오히려 중립적인 도구로 보아야 할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계몽주의 당시에 과학적인 혁명을 주도한 사람들이 모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잘 알려진 기독교 과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1473-1543), 케플러(1571-1630), 뉴턴(1642-1727) 등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서구의 과학을 인본주의자들이 지배하게 되었을까? 16세기 말에는 기독교 세계관과 인본주의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주장한 베이컨(1561-1626)만물을 지배하는 인간 제국은 기술과 과학 위에만 세워진다.” 라고 주장하였다. 베이컨은 중세 교회의 왜곡된 가르침을 바로잡고 지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경험론이다. 경험론은 지식의 기초를 세상이나 자연을 과학적으로 실험하고 나서는 그 실험 결과만을 참된 지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데카르트(1596-1650)는 근대사상의 아버지라 불리었다. 그 이유는 인간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진리의 궁극적인 권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과학으로 자연의 법칙들을 파악하고 기술로 그 법칙을 잘 적용하면 인간이 자연의 정복자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자연의 법칙들을 파악하기 위해 데카르트가 제시한 방법론이 바로 그 유명한 회의론이다. 데카르트의 회의론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우선적으로 의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모든 주장을 오직 합리적 이성의 판단아래에 종속을 시키라는 것이다. 그리고 수학적으로 분석되고 측정될 수 있는 것들만 진리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동설이 무너지는 경험을 통해서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과 같은 충격을 근대인들이 경험하였음을 느끼게 된다.

 

이제 바야흐로 과학이 서구세계의 구심점이 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과학이 서구를 지배할 우상으로 등극할 준비를 다 갖춘 것이다. ,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에 의해 주도되었던 과학이 왜 인본주의자들의 반 기독교적 도구로 전락했을까? 그것은 교회의 잘못도 있다는 것이다. 교회가 잘못한 첫 번째 실수는 새로운 과학의 발견이나 지식에 너무 부정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중세교회는 1500년 동안 이교도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B. C. 366-282)가 주장한 천동설을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코페르니쿠스(1473-1543), 케플러(1571-1630), 갈릴레이 (1564-1642), 뉴턴(1642-1727)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인 증거들을 내놓으면서 말이다.

 

교회는 너무나 당혹스러웠던 나머지 강력하게 부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과학적인 증거들에 먼저 개신교가 강하게 반박하였다. 오직 성경만을 믿는다는 확신으로 세워진 개신교는 지동설이 성경 말씀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104:5)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1:4-5) 이러한 말씀들을 기초로 지동설을 주장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된다고 보았다. 루터는 여호수아 10 11-13절을 통해 코페르니쿠스를 다음과 같이 비웃었다. “나는 성경을 믿네.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에게 정지명령을 내렸거든.”[iv]

 

과학적인 사실들에 대한 교회의 강한 부정은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고립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는 종교와 과학이 대립할 필요가 없는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교회가 강압적으로 과학을 굴복시켰던 것이다. 1633 4 12, 갈릴레오를 이단행위로 유죄판결하고 자택연금을 시킨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과학은 승리하게 되었다. 결국 교회는 패배를 자초하게 된 것이다.

 

과학이 인본주의로 넘어가게 된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종교개혁의 결과이다. 16세기 초부터 발생한 종교개혁[v]은 기독교 교회 자체의 분열을 초래하였던 것이다. 교회가 많은 교파로 나눠지고, 한 국가 안에 구교와 신교의 전쟁, 그리고 신교와 재세례파 등 각종 이단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유럽은 기독교인들의 피로 물들게 되었다. 이와는 달리 과학은 과학자들 간의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여러 가지 방면에서 지식을 증진시키고 있었다. 결국 18세기의 유럽은 기독교 신앙에 등을 돌리고 과학적 인본주의를 새로운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2. 근대철학의 핵심은 무엇일까?

 

근대철학은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천년 동안 이어온 중세의 신 중심적인 사고와 삶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의 합리적인 사고로 세상질서를 바로잡고, 과학기술을 계발하여 이 세상을 좀 더 행복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철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진보에 대한 신앙이다. 진보적 신앙은 인간의 미래는 점점 좋아져서 마침내 지상낙원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조셉 프리스틀리(1733-1804)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간에 그 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광스러운 낙원이 될 것이다.[vi] 윌리암 굿윈은 종말론적 천년왕국이 이 땅에서 실현될 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도 없고, 범죄도 없고, 소위 사법부도 없고, 정부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질병도 고통도 우울도 원망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열과 성을 다하여 만인의 선을 도모할 것이다.[vii]

 

이와 같이 계몽주의자들에게는 삶의 목적은 현실적인 행복, 즉 이 땅에서의 행복한 삶이었다. 결단코 있을지도 모르는 사후의 행복이 그들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들이 말하는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제적인 성장과 물질적인 축복이었다. 결과적으로 진보적 세계관은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진보적 세계관은 기독교신앙을 대체하는 새로운 종교로 급부상하였던 것이다.

 

둘째로 이성에 대한 신앙이다. 또한 근대철학의 두 날개는 이성과 과학이었다. 이 시대는 인간이 지닌 이성의 능력을 한없이 높게 보았다. 세상이 발전해 나가고 인류의 자유와 행복이 점차 확대되어져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바로 인간의 뜻과 자유의지라고 믿었다. 결단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이러한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기독교신앙은 점차로 무지한 자들이나 믿는 미신적인 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인류가 종교의 그늘과 쇠사슬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셋째로 과학 기술에 대한 신앙이다. 바야흐로 17-18세기 유럽은 새로운 종교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 기독교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인들의 머리와 마음은 온통 철학과 과학, 즉 이성과 과학 그리고 새로운 과학기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을 아예 버리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세운 새로운 종교와 질서에 따르는 시녀로 삼기를 원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을 포함한 모든 주관적인 사상들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검증해서 진위를 가리려고 하였다. 이제 성경의 권위나 진실성은 과학적인 실험과 이성적인 합리성에 근거하여 하나의 신화나 허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이 더 이상 공적인 문화와 생활 속에서 객관적인 자리를 차지할 수 없게 되었다.

 

넷째로 세상의 합리적 질서에 대한 신앙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성경에 나오는 율법에 의한 법질서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는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계몽주의자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주장했다. “법을 주시는 하나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해야 할 그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이란 현실의 속성상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장치일 뿐이다.[viii] 결국 인간의 합리성에 근거한 법을 만들어 인간 스스로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3. 과연 계몽주의의 꿈은 그대로 이루어졌을까?

 

그 답은 아니다 일 것이다. 인간중심주의를 외치던 계몽주의의 꿈은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과학기술을 통해 이 땅을 파라다이스로 만들겠다던 그 야심 찬 포부에 엄청난 반전이 벌어진 것이다. 그들이 신앙으로 받들었던 과학기술의 배신이 바로 그것이다. 1914-18년에 걸쳐 발생한 제1차 세계대전은 계몽주의 자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인간 스스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과학기술을 통해 이 땅에 유토피아를 세우겠다던 진보적 세계관은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완전히 허물어진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미래가 과학의 손에 달려있다고 믿는 계몽주의 신앙은 1914-19년에 걸친 세계대전을 통해서 붕괴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칼 융이 당시의 유럽인들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현대인들은 심리학적으로 말해서 거의 치명적인 충격을 받았으며 그 결과로 깊은 불안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대전의 참담한 결과는 세상을 보는 눈에 일대변혁을 불러왔고, 그것이 우리의 내면생활에도 나타나 이제 자신과 자신의 가치를 믿던 믿음이 무너져 내렸다....... 한때는 세상이 합리적으로 조직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믿음을 잃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평화와 조화가 지배하는 천년왕국이 도래하리라던 옛 꿈은 핏기를 잃고 말았다.[ix]

 

고힌과 바르톨로뮤는 계몽주의 세계관이 실패했다는 증거들을 다섯 가지로 말한다.[x]

첫째로 심각한 빈부격차이다. 물질적으로 부유해진다는 꿈은 결국 극소수만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둘째로 환경파괴이다. 곧 닥치게 될 천연자원의 고갈 그리고 자동차 매연과 냉장고 프레온 가스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그것이다. 셋째로 무기 확산이다. 온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대량으로 비축되어 있다. 이는 현대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다. 전 세계가 무기에 사용하는 돈을 1년만 줄여도 전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몇 년을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참 비극이다. 넷째로 심리적 빈곤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각종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질환들이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바로 거식증, 과식증, 스트레스, 우울증 등 셀 수없이 많다. 마지막으로 사회경제적인 문제다. 이는 가정이 붕괴되고 범죄율과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현대서구사회가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5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근대철학, 그 중에서도 계몽주의적 환상은 창세기 11장에 나온 바벨탑 사건을 통해서 재해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근대 계몽주의 철학은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요, 반항이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바벨탑 사건으로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란하게 해서 모두가 흩어졌던 것처럼 지금의 인류도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다. 아마도 인공지능시대가 인류의 자멸을 앞당길 것이라 생각된다. 결국 하나님을 떠난 나라나 백성은 망한다. 지난 500년 동안 하나님을 떠나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떠난 그 열매를 따 먹을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류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의 권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55:6-8)

 

 

 



[i]현대철학은 근대철학의 마지막 시기인 19세기 중반에서 현대에 이르는 최근의 철학적인 사조를 말한다. 현대철학의 태동은 서양철학의 정점인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의 이상주의 철학, 즉 관념론에 대한 반동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이성적인 것만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절대자를 이성적인 존재로 보았다. 결국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와 절대자가 하나라는 동일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을 절대자가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장소로 생각하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헤겔의 이상주의 철학은 기독교적 유신론을 범신론으로 탈바꿈한 것으로 비판되었고, 그 후로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발전되었다. 바로 공산주의 이론의 근거인 변증법적 유물론(포이에르바하, 마르크스)과 실존주의(키에르케고르, 니체)가 그것이다. 바로 이 시기가 현대철학이 근대철학으로부터 나뉘는 시기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1930년대에 이르러 현대철학의 주요한 사상가들이 등장한다. 바로 마틴 하이데거, 칼 야스퍼스, 버트란트 러셀, 화이트헤드, 존 듀이, 후설, 베르그송 등이다.

[ii]Ibid, 26쪽에서 재인용.

[iii]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세계관은 이야기다 (서울: IVP, 2011), 195-226 참조.

[iv]세계관은 이야기다, 200쪽에서 재인용.

[v]16-17세기 유럽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쇄신을 요구하며 등장했던 개혁운동으로 1517년에 카톨릭 사제 루터에 의해 시작되었다

[vi]Ibid, 204쪽에서 재인용.

[vii]Ibid에서 재인용.

[viii]Ibid, 210쪽에서 재인용.

[ix]Ibid, 224쪽에서 재인용.

[x]Ibid,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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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4 [04: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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