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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6 [07:04]
레위 지파의 조상, 레위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레위는 개인의 자격으로보다는 주로 하나님의 전을 담당하는 지파로서 더 유명하다. 또한 그의 자손들 중에 모세, 아론, 비느하스, 에스라 등 출중한 인물들이 많이 있다.

 

1. 야곱의 아들로서의 레위(창 29:34; 참고 35:23)


  레위(Levi)는 야곱과 레아에게서 난 셋째 아들이다. 야곱의 아내 레아는 야곱에게서 사랑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 속에 표현하면서, 그녀의 셋째 아들의 이름을 야곱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며 '연합하다', '결합하다'의 뜻을 지닌 '레위'(Levi)로 지었다. 그러니까 어미의 한(恨)이 아들의 이름 속에 새겨 있는 것이다.

 

2. 레위의 실추(창 34장; 34:25~26, 30)


  세월이 지나 장면이 바뀌어 야곱이 라반의 집(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귀환하여 세겜 성에 이르러 그곳에 땅을 사고 장막을 치며 지내는 가운데(창 33:18) 디나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저자는 디나를 단순히 야곱의 딸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는 사건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발견해 보도록 하자.

  디나가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가 그 땅 추장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옛날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여자 혼자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비록 '그 땅 여자를 보러 나갔다'고 하지만 여자들만 따로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것도 아니므로 일단 디나의 부주의와 경솔함이 엿보인다. 세겜의 행동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디나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이 악한 것이다(참고: 신 22:28~29). 그러나 파렴치한 자들과 달리 그는 디나를 깊이 사랑하여 결혼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인다(참고: 삼하 13:15~17).


  그의 아비 하몰이 야곱에게 결혼을 요청하러 왔는데, 여기서 대조를 보여 주는 것은 디나의 사건에 대한 야곱의 태도와 그의 아들들의 태도이다. 야곱은 '잠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34:5). 이에 반하여 야곱의 아들들은 '심히 근심하고 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아비보다도 오라비들이 더 이 일에 흥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중에 보면 이 일에 대하여 응징을 행하는 자들도 디나의 오라비들이다. 야곱의 이러한 태도는 훗날에 그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의 아들 요셉을 잃어버렸을 때와 심히 대조를 이룬다: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陰府)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창 37:34~35)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디나의 사건에 대한 야곱의 냉담한 태도에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은(창 34:7) 세겜과 그 아비 하몰의 요청에 대해 '속여 대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문은 그 이유를 '세겜이 그 누이 디나를 더럽혔음이라.'(13절)고 가르쳐 주고 있다. 그러니까 야곱의 아들들이 한 행동 속에는 나름대로 그럴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었음을 본문은 지적해 주고 있다. 또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에게 어떠한 제안을 하던 그 뒤에는 다른 목적이 숨어 있으며, 순수한 것이 아님을 미리 가르쳐 주고 있다.

  야곱의 아들들은 종교적인 명목을 내세워 그들과 성읍의 모든 사람들에게 할례받을 것을 요청한다. 17절에 '너희가 만일 우리를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라는 은근한 조건부의 협박을 보면 무리한 요구를 하여 그들이 듣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디나를 그들 손에 주지 않으려 한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몰과 세겜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그 이유는 세겜이 그만큼 야곱의 딸을 사랑하기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19절). 일이 묘하게 진행되는 가운데 하몰과 세겜이 그들의 성읍 사람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설득하는 장면이 나온다(20~23절). 재미있는 것은 야곱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진의를 숨기고 제안을 한 것처럼, 하몰과 세겜도 자신들의 진정한 목적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경제적인 이윤을 내세워 성읍 사람들을 설득하는 면에서 두 그룹이 똑같은 종류의 수법을 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사건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다음 장면에 있다: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부지중(不知中)에 성을 엄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칼로 하몰과 그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 누이를 더럽힌 연고라.'(34:25~28)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서 몇 가지를 관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야곱의 아들들은 세겜 사람들을 철저히 속였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일의 주동이 디나의 친오라비들인 시므온과 레위였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야곱은 레아도 사랑하지 않았지만 끝내 그 자녀들에게도 별 애정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시작부터 디나가 '레아가 낳은 딸'(34:1)임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후에 궁극적으로 요셉과 그 형제들과의 갈등을 일으킨 요소였다. 야곱은 레아의 딸 디나의 비극에 잠잠하였으나, 그녀의 친오라비들은 아버지를 대신해서라도 그녀를 위해 보복하려 한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시므온과 레위의 행동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섞여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는 디나가 세겜의 집에 감금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세겜도 정당한 결혼 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디나를 이미 볼모로 잡아놓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형식의 청혼을 한 것이다. 넷째는 그들이 이런 지경을 당한 것은 디나를 더럽힌 연고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게 본문은 야곱의 아들들의 행동에 약간의 동정은 던지지만 그래도 도가 지나쳤음을 그들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잔인한 행동들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다. '모든 남자를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 '자녀와 아내들을 사로잡고', '노략하였으며'(25~29절) 등의 표현 속에는 무고한 사람까지 무참하게 죽인 그들의 행동에 변명의 여지가 없음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주동인물 중의 하나가 다름 아닌 디나의 친오라비 레위였던 것이다.


  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자들간의 대화는 야곱 가정의 문제점을 보여 주며,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야곱은 디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며 시므온과 레위를 꾸짖는다. 여기에 대해 레아의 아들들은 격렬하게 야곱에게 대들며 답변한다. 마치 야곱에게 들으라고 항변하듯이 말이다: '그가 우리 누이를 창녀같이 대우함이 가하니이까'(31절). 레위는 이렇듯 나쁘게 보면 잔인하고, 반항적이며, 맹렬하여 분을 다스리지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좋게 보면 의협심이 강하고, 가족을 보호하고, 종족의 순수성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강한 인물로 나타난다. 후에 이러한 모습은 그의 자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비느하스도 그 좋은 예(민 25:1~13, 비느하스 참조)이며, 또한 레위 지파 전체 속에서도 그러한 면모가 드러난다(출 32장 참고). 레위의 아들들의 이름은 그 연치(年齒)대로 게르손과 고핫과 므라리이며, 레위는 일백삼십칠 년을 살다가 죽는다(출 6:16).

 

3. 야곱의 저주(창 49:5~7)

  창세기 49장은 야곱이 열두 아들들에게 예언적으로 축복을 주고 있는 장이다. 그 중에서도 본문은 시므온과 레위에 대해 함께 언급하면서, 위에 기록된 창세기 34장의 사건 속에서 그들의 잔인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고 있다: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49:5~7). 축복대신 이러한 저주로 인하여 실제 시므온 지파는 가나안 정복 직전에 시행된 인구 조사(민 26장)에 따르면 열두 지파 중 가장 숫자가 적은 미미한 지파로 전락되었으며, 레위의 후손들의 운명도 비슷할 뻔했지만 또 다른 사건으로 인하여 운명이 역전되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4. 레위 지파의 충성심(출 32:25~29)


  출애굽기 32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시내 산에 진 치고 있을 때에 모세가 산 위에 올라가 십계명과 더불어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있는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 동안 백성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아론을 부추겨 그를 주동으로 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섬기고 있었다. 출애굽기 32장은 모세가 십계명이 새겨진 판을 가지고 산을 내려와 우상을 섬기고 있는 백성들의 모습을 보고 대노하여 십계명의 판을 깨뜨린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백성 전체가 심판받는 것을 막기 위하여 모세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고 징집을 하는데, 그때 모세 편에 모여 온 지파가 다름 아닌 레위 자손들이었다(27절). 모세는 레위 자손들에게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28절)고 지시한다.

  이에 대하여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레위 지파의 충성에 대하여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29절)고 레위 지파를 축복한다. 그 옛날 레위의 의협심 강하고, 잔인하고, 과도하기는 했지만 정의를 지키려 했던 면모가 그의 후손들에게서도 여지없이 발휘된 것 같다. 이 사건을 통하여 레위의 자손들은 다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되며, 레위 지파로서 특별한 하나님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선택함을 받는다.

 

5. 레위 제도의 시작(출 13:1~2, 11~13; 민 3:11~13; 40~41)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초태생을 살리신 것을 계기로 모든 처음 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하나님께 돌리라고 가르치신다(출 13:1~2, 11~13). 이것을 계기로 레위 제도가 생기게 되었으며, 레위인들은 위에서 언급된 출애굽기 32장의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들을 대신하여 여호와를 섬기고 성막에서 사역하는 자들로 선택함을 받는다(민 3:11~13).

 

6. 레위 자손에 대한 축복(신 33:8~11)

신명기 33장은 이스라엘 지파들을 위한 모세의 축복을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9절의 말씀은 위에서 언급된 출애굽기 32장 사건을 다루며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지파들은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는'(신 33:10) 일을 맡게 된 것이다. 또한 모세는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신 33:11)라며 레위 자손들을 축복하고 있다. 창세기 49장에서의 야곱의 저주가 신명기 33장에서는 모세의 축복으로 승화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창세기 34장의 사건을 보면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은 동정을 살 만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세겜은 비록 강간은 했으나 디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레위는 세겜을 속이고 잔인하게 세겜인들을 살해했을망정 누이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복수심의 발로였다. 야곱은 디나의 일에 대해 무정하게 처리했으나, 그것은 그가 첫 번째 아내 레아를 한번도 사랑해 본 적이 없으며,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고(창 29:25),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 그녀의 자녀들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의 딸이 당한 불행보다는 세겜인들의 복수를 더 두려워했다. 외교적이고 계산적인 야곱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본문은 사건을 전개해 가는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행동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잘못된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세겜은 강간이라는 무서운 범죄를 저질렀고, 레위는 대량학살의 주범이 되었으며, 야곱은 아비로서 가족을 지키고 자녀들을 올바로 지도하는 일에 무관심했다. 결국 그들 모두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겜은 죽임을 당했고, 레위는 아버지에게 축복대신 저주를 받았으며(창 49장), 야곱은 자신이 두려워한 대로(34:30) 가나안 족속의 위협도 감수해야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가족 속에 내재해 있는 불협화음과 자신을 향한 자녀들의 불만을 경험해야 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뿌리 깊은 문제점이었는가는 후에 요셉이 없어지고 나서야(창 37장) 절감을 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과정보다는, 그리고 수단보다는 목적과 대의 명분을 중요시 여기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 사회가 얼마나 불건전한 것인가는 요즈음 과정과 절차와 방법론에 있어서 투명성과 정당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구의 지하철 참사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하고 선진국의 어느 것과도 뒤질 것 같지 않는 지하철이, 알고 보면 내장재의 사용에 있어서나 소방시설, 경비체제 등 많은 면에서 부실함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가겠지 하다가 참사를 당한 것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 속에 '소 잃어야 외양간 고치는' 의식이 형성되어 가는 것도 경종을 울려야 하는 부분이다. 바로 목적만을 중요시 여기고 수단과 과정은 중요시 여기지 않을 때 생기는 결과들인 것이다.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기독교인들은 목적과 동기에 있어서도 순수해야 함은 물론 삶을 살아가는 과정과 절차에 있어서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정의로워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돈을 많이 벌어 '헌금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지'하는 것은 훌륭한 생각이지만 버는 과정과 방식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어야 한다. 즉 하나님은 마지막 결과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과정, 순간순간을 보시고 판단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자.

  둘째, 우리는 분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몇년 전 베트남 출신 시인이자 세계적인 평화 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이 한국을 방문하여 '화를 다스리는 법'을 강연하며 '평화를 위한 걸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 성경에서는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 주고 있는데, 그것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에베소서의 말씀이다(엡 4:26).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인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엡 4:23~24)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원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니까 레위가 자기의 누이의 불행을 보고 '근심하고 노한 것'(창 34:7)은 당연한 것이나, 그는 그 분노를 가지고 죄를 지음으로 말씀의 원리에 순종하는 데 실패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해가 질 때까지는 분을 내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분을 오래 가짐으로 '마귀에게 틈 탈 기회를 주지 못하게 할 목적'(엡 4:27)임으로 분이 오래 가지 않도록 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분을 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말씀은 '서로 인자하게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는 요구인 것이다.

  한국 사람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고 분을 잘 낸다.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사회 속에서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은 성격의 사람들조차도 분통터지는 일들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말씀을 붙들고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제어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셋째, 레위의 삶과 관계없이 레위 자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한다. 비록 레위 자신은 세겜에서의 복수극 때문에 야곱에게서 축복을 잃어버렸지만, 출애굽에서 금송아지 숭배자들을 심판할 때에 레위 자손들의 역할 때문에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복 주심을 경험하게 된다.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레위 지파를 구별하여 여호와의 언약궤(言約櫃)를 메이며 여호와 앞에 서서 그를 섬기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셨고 그 일은 오늘날까지 이르느니라 그러므로 레위는 그 형제 중에 분깃이 없으며 기업이 없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같이 여호와가 그의 기업이시니라.'(신 10:8~9)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조상이나 집안의 죄나 자신의 과거의 잘못으로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포기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다시 말씀 안에 거하면 얼마든지 저주에서 축복의 역전이 가능함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음을 믿고, 그의 은혜의 손길을 구하는 삶의 자세가 늘 요구된다.

▲ 2016년 새해 소망을 말하는 김윤희 교수(FWIA대표)     ©뉴스파워



김윤희 교수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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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8/01 [10:2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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