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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16 [19:02]
그 아버지에 그 딸, 갈렙의 딸 악사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빌리 그래함 목사 하면, 비기독교인들도 아는 사람이 많다. 미국의 현재 대통령인 조지 부시 2세가 대통령 취임식을 할 때, 빌리 그래함의 아들인 프랭크 그래함이 기도 순서를 맡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 목사의 자녀들 중에 앤 그래함이라는 딸이 있는데, 얼마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을 도와주면서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부흥 설교가로서 아버지의 은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칭송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녀의 설교를 들은 사람마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어쨌든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들의 자녀들이 잘 성장해서 부모의 역량을 이어받아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것처럼 대견하고 축복으로 여겨지는 일도 없다. 아마 모든 부모들의 바람일 것이다.

구약에서 보면 많은 여성들의 역할 중에서 주로 아내나 며느리들은 활약을 많이 했는데, 유명한 사람들의 딸들 중에서는 주연격인 인물들이 별로 없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누군가의 딸이다. 예를 들면, 미리암이나 드보라나 에스더도 누군가의 딸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부모들을 잘 모르거나 그들이 생각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믿음의  용장, 갈렙

본문에 소개될 사람은 사실 딸보다도 그 아버지의 명성이 더 알려져 있는 경우이다. 악사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갈렙이다. 갈렙은 민수기 13~14장에서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정탐꾼들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며, 믿음의 사람으로 여호수와와 함께 그 세대 중에서는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허락받은 장수이다. 또한 여호수아 14장에서는 가장 견고한 성읍 중에 하나로 알려진 아낙 자손의 땅을 쳐서 헤브론을 분깃으로 분배받은 믿음의 용장이다. 그러한 갈렙이 사사기 1장에 다시 등장한다.

사사기 1장은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약속의 땅을 차지하고 분배하는 과정은 끝났지만, 여호수아에서도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땅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수 13:1).

이제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그 뒤를 이어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복의 임무를 완성시키는 책임이 주어졌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삿 1:1)라고 묻는 것으로 사사기 1장이 시작된다. 여호와의 답은 ‘유다가 올라가라’(삿 1:2)는 것으로 지시를 내리신다. 그리고 “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여호수아 시절 때와 같은 약속으로 확신을 주신다. 1장에서 3~19절까지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여 유다 지파가 가나안 땅을 점령해 나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1절에서는 ‘드빌’이라는 곳을 치게 되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세벨’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드빌과 관계되어 소개되는 인물이 갈렙이다. 갈렙은 유다 지파의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12~15절까지는 잠시 갈렙과 연결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땅의 정복 과정에서 갈렙의 가정에서 일어나는 조그마한 사건을 소개함으로 스토리의 템포를 늦추고, 내용을 감상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마치 요사이 뉴스 시간에 이라크 전쟁을 보도하다가 전쟁 중에 있는 어느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스토리를 보고함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더 생생하면서도 휴머니스틱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과 같다.

사사기의 저자도 유다 지파의 정복을 기록해 나가다가 그들의 영웅인 갈렙과 그의 가정 스토리를 잠시 소개함으로 흥미를 더해 주며, 좀 더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본문을 대할 수 있는 효과도 함께 노리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사사기 1:1~2:5까지는 사사기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하는데, 갈렙 스토리도 앞으로 사사기를 이해하는 데 서론으로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여호수아 15:15~19에서도 거의 똑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호수아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사사기 1장에서의 역할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선 사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11~15절의 의미를 찾아 보고자 한다.     


옷니엘의 도전

12절에서 갈렙은 드빌을 치기 전에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고 (12절) 약속한다.이 도전을 받아들인 자가 다름 아닌 옷니엘이다.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그나스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그나스 자손’, 즉 ‘그나스족’이라는 표현과 같기 때문에 갈렙은 그나스족이요, ‘갈렙의 아우’로 나와 있다.


우리 말 번역으로 따지면 옷니엘이 갈렙의 어린 동생처럼 생각되지만, ‘아우’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그 범위가 더 넓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아우’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헬라어 필사본에서는 옷니엘을 갈렙의 ‘조카’로 해석하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옷니엘은 갈렙의 다음 세대의 리더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드디어 갈렙의 딸 악사라는 이름이 언급이 되는데, 시작 부분에서는 그녀의 역할이 전혀 없다. 어떤 사람은 갈렙이 자신의 딸 악사를 마치 장수의 전리품처럼 다루며, 드빌을 취하는 자에게 그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보상으로 주는 소유물처럼 취급한다고 해석함으로 본문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사사기의 본문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며, 단순히 현대적인 우리의 시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의 의사와 권리를 중요시 여기는 우리의 눈으로 보았을 때에 갈렙의 결정은 너무나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적인, 악사의 의사와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독재 부모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성경 본문을 독자의 시각으로 자유분방하게 보는 것이지 성경 저자의 의도와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12~13절에 대한 저자의 의도를 사사기 시각 속에서 살펴보자.

첫째, 당시 문화적인 배경으로 보았을 때에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딸의 결혼 상대를 고르는 데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족장 시대의 아브라함도 이삭의 신부감을 고르도록 종을 하란으로 보낸 것이다. 둘째로, 본문은 사사기 3:6의 배경하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족속들과 통혼하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가장 염려하시고 신명기 7:3에서 금지한 명령 중의 하나였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에, 갈렙의 결정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믿음의 행위였음을 보아야 한다.

갈렙의 제안은 자신이 속한 지파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요, 그것을 통하여 같은 지파 안에서 사윗감을 고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용장이었던 갈렙의 눈에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자신과 같은 용장이었을 것이고, ‘드빌’을 취할 수 있는 장수라면 갈렙이 흡족할 수 있는 사윗감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갈렙으로서는 자기가 아끼는 딸에게 가장 최상의 사윗감을 골라 준 셈이다. 전쟁 영웅인 옷니엘에게 악사를 아내로 주는 것은 악사로서도 흔치 않은 귀한 신랑감을 만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셋째, 옷니엘은 후에 사사들 중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모범 사사이기 때문에 서론에서 미리 그에 대해 긍정적인 면모를 소개하고 있다.

14~15절의 본문에 보면 짧은 구절이기는 하나 이제까지 침묵하던 악사가 드디어 그녀의 모습과 생각을 나타낸다. 먼저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남편에게 청하여 자기 아비에게 밭을 구하도록’ 요청한다. 여기에서 ‘청한다’는 단어는 상당히 강도가 높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통하여 그녀의 땅에 대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비와의 관계에 있어서 그녀는 출가하기 전에 나귀에서 내려 갈렙에게 예의를 갖춘다.

여기에서 ‘내린다’는 단어도 단순한 단어가 아닌, 아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나귀에서 거의 떨어지는 속도 정도로 급히 내려 갈렙에게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한 딸에게 갈렙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묻는다. 그 질문에 대해 악사는 먼저 복을 요청한다(“내게 복을 주소서”, 참고: 창 24:60). 그리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본인이 지참금으로 받은 남방의 땅을 언급하며 샘물도 함께 요청한다.

사실 ‘남방’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곳이 ‘사막 지대’이기 때문에 샘물은 필수 조건이다. 그녀의 남편도, 아비도 생각지 못한 점을 악사가 정확히 요청함으로 갈렙은 그녀에게 요청한 것 이상으로 윗샘과 아랫샘을 허락해 준다. 악사와 갈렙의 이러한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려면 사사기 속에서 이들의 역할이 어떻게 조명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음의 몇 가지 점을 지적해 볼 수 있다.

첫째, 악사가 ‘나귀에서 내렸다’는 표현은 사사기 19:28에 어떤 레위인의 첩이 기브아에서 그곳의 거민들에게 밤새도록 욕보임을 당하다가 문 앞에 쓰러져 죽은 것을 레위인이 ‘그 시체를 나귀 위에 싣는’ 장면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의도적으로 ‘나귀’를 언급하고, 한 장면은 아비의 축복을 받기 위해 나귀에서 내려오고, 또 다른 장면은 싸늘한 시체로 변하여 나귀에 실리는 장면을 대조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사사기의 시대상의 악함을 보여 주는 동시에 악사와 갈렙의 모습이 얼마나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시작이었는가를 보여 준다.

비록 여호수아는 죽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갈렙이 살아 있을 때에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타락하지는 않았음을 갈렙 가정의 모습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악사가 나귀에서 내려와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은 창세기에서 라헬이 드라빔을 찾는 자신의 아버지 라반 앞에서 거짓으로 자신의 경수 때문에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다고 사과하는 장면과도 대조를 이룬다. 라헬은 약대 안장 ‘위’에 앉아 있었고, 악사는 나귀 ‘위’에서 내려왔다. 여기에서도 ‘위’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전치사가 똑같이 사용되고 있다. 즉, 악사의 이러한 행동은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둘째, 악사는 자신의 남편과 가정을 위하여 샘물과 밭을 마련하기 위해 지혜로운 전략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 준다(비교: 잠 31:10~31; 시 126:4). 이러한 점에서 악사는 삼손의 블레셋 여인들과 대조를 이룬다. 딤나의 블레셋 여인은 협박에 못이겨 삼손의 수수께끼의 정답을 캐내어 알려 주고(삿 14:15~17), 들릴라는 돈의 유혹을 받아 삼손을 배반한다(삿 16:4~21). 옷니엘과 삼손 모두 같은 사사들인데, 그들의 아내들은 천지 차이임을 잘 보여 줌으로 사사들도 시대상에 따라 점점 퇴락해 감을 나타내고 있다.

셋째, 악사가 요청한 것은 축복과 땅이었다. 또한 땅은 악사 자신만을 위한 것만 아니라 후대의 자손들을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창세기에서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여 주신 언약의 요소들(땅, 후손, 복: 창 12:1~3)과 일치하는 것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종했을 때에 복 주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는 것(신 8:7 참고)처럼 악사의 믿음의 요청에 대하여 갈렙도 순종적인 자녀에게 축복과 땅을 예비하여 준 것이다. 이것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셔서 그들의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한’ 모습과도 대조를 이루고 있다(삿 6:4). 땅을 소유하고 차지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인 것이다. 그러므로 악사는 그러한 복을 선물로 요청한 것이다. 여기에 ‘복’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선물’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넷째, 갈렙은 딸에게 이상적인 남편을 찾아 주었을 뿐 아니라 딸의 요구에 민감하고(“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또한 그것을 관용있게 베풀어 주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것은 사사기에서 후에 성급한 서원으로 인하여 자신의 딸이 불운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입다의 모습(삿 11:30, 39)과 대조를 이룬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자신들의 딸들을 베냐민 사람들에게 아내로 주지 않기로 맹세한 후에(삿 21:1) 그것에 대한 자구책으로 야베스 길르앗의 젊은 처녀들을 끌어다가 베냐민 족속에게 주고(삿 21:8~12, 14), 그것도 부족하여 실로의 여인들을 납치하여 아내를 삼게 하는 장면(삿 21:19~23)과도 극과 극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사사기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가나안 사람들의 모습처럼 급속히 세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가정의 심각한 파괴상을 여러 모습들을 통해 잘 그려 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서 사사기 1장에 등장하는 갈렙과 그 사위 옷니엘, 그리고 악사의 가정의 모습은 유다 지파를 긍정적으로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사기 처음 부분에 믿음의 가장(家長)하에서 가정의 분위기가 아름답고 이상적인 것이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악사는 아주 짧게 등장하지만, 과연 ‘그 아버지에 그 딸’답게 굵은 역할을 하고 지나간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사사기 1장에서 악사의 신부(bride)로서의 신선한 모습은 후에 사사기 속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배역하는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삿 2:11~12)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레미야에서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음 순수하던 모습을 결혼 때의 신부의 모습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 “네 결혼 때의 사랑 …(중략)…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記憶)하노라”(렘 2:2). 그러나 그들의 변모되고 타락한 모습 또한 적나라하게 행음한 여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중략)…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렘 3:2).

즉, 사사기 속의 악사의 모습과 후에 변질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잘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그렇게 변해 버렸느냐는 것이다. 사사기는 거기에 대한 답으로 그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그가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기 때문”(삿 2:10)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믿음의 세대인 여호수아와 갈렙 이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에게 영적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임을 사사기는 또한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사회도 현재 많은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그 전의 영적인 권위를 가진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은퇴를 하면서 그 다음 세대들이 교체되어 가고 있다. 지금이 한국 교회의 영적인 위기의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말씀을 붙잡고, 그 다음 세대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의 세대가 가르쳐 준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아 옷니엘과 악사와 같은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많이 길러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 교회가 더욱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것이다. 말씀과 성경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큰 소리만 내는 것은 결코 건강한 기독교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욱 혼탁한 분위기만을 조성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더욱 순수하게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둘째, 우리의 신앙 생활의 모습을 한번 생각해 보자. 그러기 전에 악사가 어떤 여인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자. 예나 지금이나 우리들에게 감명을 주는 여인들의 모습 속에는 자신의 문화적인 범주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적극성과 유능함을 발휘함이 있었다. 악사는 당시의 가부장적이고 족장 중심의 문화적인 한계 속에서 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로 이용하여 예의와 범주를 뛰어넘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이고도 창조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가정과 후손들을 위하여 살아갈 수 있는 자원을 예비한 지혜로운 여인에 속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요청들은 단순한 인간적인 욕심의 차원이 아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의 요청이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사기에서 그녀의 모습은 가장 이상적인 믿음의 여성의 첫출발로 등장한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미 허락해 주신 영적인 유산이 무한하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악사와 같이 적극적으로 이러한 자원들을 활용하여 지상명령 성취를 위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갈렙보다도 훨씬 관용이 있으시며, 훨씬 무한한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임을 생각해 볼 때, 우리 모두는 악사의 모습에서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적극성과 지혜를 배워야 한다.


셋째, 우리의 가정관을 한번 점검해 보자. 가정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다. 또한 요즈음은 가정 세미나가 많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화의 중요성이라든가, 서로의 감정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방법이라든가, 의사 표현 방법이라든가, 부모와 자녀간의 효과적인 훈육 방법이라든가 등등 많은 이론들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러한 면보다는 악사의 모습에서 볼 수 있는 갈렙에 대한 존경심과 예의를 갖추는 면모이다. 물론 그때와 현재는 엄청난 시대 차이가 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형식적인 예의를 강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너무 그 반대로 극단적으로 가고 있지 않나 염려가 된다. ‘권위’와 ‘권위주의적인 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적인 것을 배제하자는 노력이 자칫하면 권위 자체를 무시해도 되는 메시지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권위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선생은 학생들 앞에서 권위가 있어야 하고, 교장은 선생들에게 권위를 유지해야 하며, 한 나라의 대통령 또한 국민들 앞에서 권위와 품격을 지녀야 한다. ‘권위주의’라는 것은 권위를 휘둘러 남을 무조건 억누르려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일컫기 때문에 지양되어야 하지만, 사회의 질서가 올바로 유지되고 건전한 사회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권위가 각 위치에서 다 유지되어야 하며, 그것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각 가정에서 부모들은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회복하고 지키며, 자녀들에게 부모를 존중하고 권위에 순종하도록 가르치는 자세가 필요한 사회인 것 같다. 

▲ 김윤희 교수     ©뉴스 파워

 
김윤희 교수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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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30 [10:1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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