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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7 [03:27]
시스라의 어머니, 적장의 어미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이 세상에서 ‘어머니’라는 언어만큼 긍정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단어도 별로 없을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에게나 ‘어머니’는 존재한다. 특히 군대를 가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 중에, ‘애인’도 있겠으나, 그보다 더 만만치 않게 그리운 사람으로 거론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이다. 결국 살다 보면 나를 가장 희생적으로 끝까지 염려해 주시는 분은 ‘어머니’라고 고백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사람에게 특별하다.

 

시스라는 드보라 시대에 이스라엘을 20년 동안이나 억압하고 학대했던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이다(삿 4:2~3). 사사기 5장에 보면 그의 어머니(우리말 성경에는 ‘어미’로 표현됨)의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이곳이 유일하게 그의 ‘어머니’가 언급된 곳이다. 궁금한 것은 왜 갑자기 시스라의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왔냐는 것이다.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며,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저자가 그녀에 대하여 기록했느냐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 본문을 보기로 하겠다.

 

드보라의 노래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사기 4장과 5장은 한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한 단위(unit)로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써 5장은 “이 날에”로 시작하고 있는데, 이것은 4장 23절에 “이 날에”를 그대로 사용함으로 같은 날에 같은 사건을 보면서 쓰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사사들의 사건을 기록할 때에 패턴 중의 하나가 한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그 땅이 태평한 지 몇 년이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삿 3:11, 30; 8:28), 이것이 5장 마지막 절에 나옴으로 4장의 사건이 5장에서 끝남을 알려주고 있다(“그 땅이 40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5:31). 또한 5장은 4장의 사건들과 인물들을 이미 기정 사실로 놓고 거기에 근거해서 쓰고 있다. 4장은 서술(narrative)로서 사건을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5장은 소위 ‘드보라의 노래’라고 불리는 시(poetry) 형식을 빌려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이렇게 서술문과 시를 나란히 배열하는 문학적 기교는 모세오경에서도 익히 관찰된 바이다.

 

예를 들면 출애굽기에서도 홍해를 건너는 기적의 서술문(출 14장) 다음에 곧 바로 ‘바다의 노래’(‘the Song of the Sea’, 출 15장)라는 시 형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는 방법으로 홍해 사건의 의미를 강화하고 축하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서술문과 시라는 두 가지의 다른 문학적 장르를 통하여 나타내 는 주제의 강조와 전달하려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사사기 5장도 같은 사건을 다루지만, 4장과 전달하는 시각을 달리함으로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하며, 그것을 통하여 특히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장에서는 드보라와 바락이 한 쌍으로 등장하여 바락의 주저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전쟁의 승리를 주시지만 야엘이라는 이방 여인이 적장의 장수인 시스라를 죽임으로 바락은 장수로서 적장의 두목을 처치하는 명예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4장에서의 초점은 드보라의 예언과 성취, 즉 바락의 주저함에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런데 5장은 초점을 달리하고 있다. 먼저 간단히 5장의 구조를 보면서 중요한 점 몇 가지를 지적해 보겠다.

 

사사기 5장의 구조

사사기 5장은 서론 (1절)과 결론 (31절)을 제외하고 5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ABCDE로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서론 5:1

A 5:2~8 여호와의 출현

B 5:9~13 여호와의 의로우신 행위

C 5:14~18 여호와의 전쟁에 대한 지파들의 반응

D 5:19~23 여호와의 전쟁

E 5:24~31b 여호와의 응징

결론 5:31

 

A 부분은 ‘여호와를 찬송하라’(2절)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출현을 알리고 있다. 여기에서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다’(7절)는 표현으로 여호와께서 드보라를 통하여 일하시는 모습으로 여호와를 대표하는 역할로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돌보고 지키는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여호와를 묘사하고 있다. B 부분은 다시 ‘여호와를 찬송하라’(9절)로 시작하며, 여호와의 의로운 행위를 찬양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쟁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 여기에서도 보면 드보라를 하나님의 중개인으로 전쟁을 불러모으는 자로 묘사하고 있다.

 

C 부분은 이러한 부르심에 대한 각 지파들간의 반응을 보여 주고 있다. 여호와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파들과 그렇지 아니한 지파들을 분리하여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전쟁에 열심인 지파를 ‘드보라와 함께한 지파’로 묘사하고 있다(15절). D 부분은 특별히 4장 15절의 표현을 시적으로 확대해서 묘사하며, 여호와께서 직접 전쟁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여호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아니한 메로스의 이스라엘 거민들을 저주하고 있다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삿 5:23). E 부분은 우리의 본문의 주요 관심사이므로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시스라의 어미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위에서 언급된 ‘저주하라’는 표현과 반대되는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단어이다. 메로스의 이스라엘 거민들은 여호와를 돕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방 여인인(‘겐 사람 헤벨의 아내’라는 표현이 강조되어 있음)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며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야엘이 이스라엘의 원수인 적장의 용사 시스라를 죽였기 때문이다. 시스라의 죽음이 생동감 있게, 시적이고 극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27절). 마치 ‘느린 동작(slow motion)’을 보면서 그의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주고 있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려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려져 죽었도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시스라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장면이 갑자기 바뀌며 ‘시스라의 어미’가 등장하면서 ‘드보라의 시’는 극적인 결론으로 이어진다. 장막 생활을 하는 평범한 야엘과 그녀의 텐트의 장면과 궁전에서 시녀를 거느린 화려한 시스라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하여 두 여인의 대조를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방금 시스라의 죽음을 목격한 독자들은 시스라의 어미가 등장하면서 당황함과 안타까움과 민망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삿 5:28). 더욱이 그녀가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연민의 정까지 느끼게 만든다. 아무리 나쁜 장수라도 결국은 한 어머니의 아들이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심정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보편적인 감정인 것이다.

 

더욱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아들의 운명도 모르고 초조하게 아들을 기다리는 어미의 모습을 읽으며 독자들은 동정의 감정을 느끼며 시스라의 어미와 잠시나마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은근히 시스라를 죽인 야엘이 야속하기도 하다. 여기까지 보면 시스라의 어미를 등장시킨 저자의 의도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약간의 혼동을 준다. 어떻게 그녀의 출현을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력이 서지 않는다. 여기에 대한 해답은 그 다음 부분에 있다. 시스라의 어미를 위로하기 위하여 지혜로운 시녀들과 그녀 자신 스스로가 대답을 한다 :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삿 5:30).

 

죽음의 정당성

 

위의 30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어를 보면 ‘노략’이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뛴다. 우리말 성경에는 3번만 번역되었으나, 실제로 4번이나 반복하여 쓰였다. ‘노략’으로 시작하여 ‘노략’으로 끝나고 있다. 그 노략물의 종류가 열거되어 있는데,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모든 병사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처녀’라는 단어는 원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궁’(라함)이라는 뜻이다. 상당히 노골적인 성적인 표현으로 이스라엘 여인들이 가나안 병사들의 성적 노리개와 착취 대상으로 일회용적인 용도로 전락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이 가나안의 최고 장수인 시스라의 어머니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언어임을 생각할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여성으로서 28절에서 ‘시스라의 어미’에게 좀 더 고상한 인간 존엄성적인 발언을 기대한다. 자식을 기다리는 여인으로 다른 여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도 해 본다. 아니 ‘이해는 못 하더라도’ 같은 여자로서 다른 여성들을 언급할 때 적어도 지금의 언어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표현을 쓰지 않을까라는 기본적인 상식 수준의 기대감을 가져보는데, 저자는 그것을 여지없이 부숴버린다. 약육강식이라는 전쟁의 현실은 ‘여성’이라는 성(性)을 초월하여 단지 침략자의 멘탈리티(mentality)로 바뀌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의 저자의 의도는 ‘시스라의 어미’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음으로 그녀를 시스라와 동일시하고 있으며, 또한 가나안의 침략자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녀가 이스라엘의 여인들을 단순한 노략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순간, 저자는 이방 여인의 손에서 가장 잔인하고 처참하고 불명예스럽게 죽어간 그녀의 아들이 오히려 여인의 손에 노략물이 된 아이러니에(27절) 대하여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더 이상의 연민이 아닌 ‘시스라의 어미’는 이스라엘의 적일 뿐임을 저자는 분명히 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이 죽지 않는 한 이스라엘의 모든 여인들은 전쟁의 전략물의 희생자가 될 뿐이다. 이것이 가나안 여인들의 지극히 세속적이고 비인도적인 생각이었다. 노략물의 명단은 이스라엘의 여인들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을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 양편에 수놓은 채색 옷으로 노략자의 목에 꾸몄을것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생명의 희생이 이 모든 노략물들 속에 들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운명은 이러한 전리품보다도 못한 것으로 표현이 되어 있다.

 

사사기 5장에는 중요한 3명의 여인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드보라로서 그녀를 하나님의 역할을 대변하여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지키는 ‘이스라엘의 어미’로 표현하고 있다. 두 번째는 야엘로서 하나님이 원래 세우신 바락을 대신하여 적장인 시스라를 죽이는 하나님의 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전쟁에 참여하여 여호와를 돕지 아니한 이스라엘 거민들이 저주를 받을 때에 두 번씩 강조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24절). 세 번째는 ‘시스라의 어미’로서 시스라를 대변하고 있으며, 그녀의 ‘지혜로운 시녀들’은 가나안을 대표하고 있다. ‘시스라의 어미’는 ‘이스라엘의 어미’ 드보라와 대조를 이루며, 이스라엘을 학대하고 괴롭히는 적의 대명사로 나오고 있다. 이렇게 3명의 강한 여인들을 등장시킴으로 사사 시대의 한 면모를 극적으로 잘 묘사해 주고 있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31절을 읽을 때에 이 구절이 저절로 이해가 되는 동시에, 이 구절은 마지막으로 ‘드보라의 노래’의 신학적인 결론을 내려주고 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노래’의 초점은 여호와에게 있고, 여호와의 적은 다 망하며,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마치 여호와가 나오시면(4절) 누구도 그 앞에서 설 수 없는 것처럼, 어떠한 대적도 그 앞에서 설 수가 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며, 그 백성들은 하나님이 지키시고 하나님의 대적은 다 망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시스라의 어미’는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의 대표적인 여인으로 등장하는 악역을 맡은 것이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하나님의 대적은 반드시 망한다는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사사기 5장의 중심은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신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31절의 신학적 결론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무조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뜻은 아니다. 31절은 분명히 ‘하나님의 대적’의 반대급부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나타내고 있다. 아무리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의 명령과 언약을 지키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모든 하나님의 대적은 궁극적으로 망한다는 것이다. ‘드보라의 노래’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시스라의 어미’를 등장시켜 극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가장 심금을 울리는 단어인 ‘어미’라는 언어를 가지고 순간 독자들로 하여금 시스라를 인간적인 동정을 가지고 희생자로 보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들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희생을 담보로 한 이기적이고도 비인도주의적인, 세속적이고 속물적인 면모’를 보여 줌으로 하나님의 대적에 대한 분개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일시적인 동정은 사라지고 오히려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정당성과 정의를 느끼게 만든다. 과연 드보라의 시의 천재성이 여기에서 엿보인다. 시스라가 죽지 않았다면 드보라로 대표하는 이스라엘 여인들 모두가 하나의 노략물이 될 수밖에 없음을 시라는 형식을 빌려 표현함으로 극적인 효과를 훨씬 극대화하고 있다. 결국 말세 때도 하나님의 적에 대한 심판은 이처럼 단호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할 일은 오히려 부지런히 그러한 자들을 어두움에서 빛으로 빨리 인도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생명에 대하여 소홀히 하는 이기주의적인 자들로 전락할 수 있다. 결국 시스라도 시스라의 어미도 우리의 전도 대상인 것이다.

 

둘째, 하나님 나라의 일에 열심히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중요성을 보아야 한다. 본문에 보면 여호와를 도와 적의 용사를 치지 아니한 메로스의 거민들에게 저주를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구약에서 유일하게 ‘돕는다’는 단어가 인간이 하나님을 돕는다는 문맥 하에서 쓰인 경우이다. 즉, 하나님도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지파와(삿 5:14~15, 18절) 그렇지 아니한 지파들의(16~17절) 명단들도 분명히 나와 있다. 야엘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함으로 복을 받은 이방 여인으로 표출되어 있다. 이러한 메시지를 통하여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왕국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자들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하나님을 돕는다는 것은 “그의 자비하심을 우리 안에 흐르도록 하여 고통 받는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어떤 학자는 이야기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 각자를 냉정히 평가해 보아야 한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열심히 충성을 다해 하나님의 일에 어떠한 형태로든지 주어진 상황에서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저함으로 확신함이 없어 세월을 보내므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복과 기회를 잃어버리고 잊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대신에 다른 일에 투자함으로 얻는 순간적 이득이나 육체적인 안일함의 추구는 일시적으로 만족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런 자들은 시스라의 어미나 지혜로운 시녀들이 자신들의 물질적인 충족과 안일함만을 생각하는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즉,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서 참여하지 않은 지파는 이방인들과 가치관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본문은 보여 주고 있다. 성경은 그러한 자들을 ‘맛을 잃은 소금’이라고도 비유한다. 우리의 참여는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기억하며, 삶을 점검하고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셋째, 세속적인 시각을 조심해야 한다. ‘시스라의 어미’는 전형적으로 세속에 물든 가치관을 가진 여인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사야 47장에 나오는 갈대아 여인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주모가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 종말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사 47:7~8) 하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렇게까지 완벽히 세속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그러한 영향력과 가치관의 침투와 팽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을 아랑곳하지 않는 기독교인들, ‘나만 복 받고 잘 살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자들, ‘내가 이렇게 남보다 더 하나님께 잘 하고 있는데 나를 설마 어쩌시랴’라는 자위적인 안도주의자들은 모두 생명력 있는 기독교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고 착각하는 종교인의 모습일 뿐임을 보아야 한다. 그런 자들을 향한 이사야에서의 심판은 실로 두려운 것이다: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그 근본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이 없을 것이며…”(사 47:11). 그러나 두려워 말고 다음을 기억하고 위로를 삼자: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삿 5:31). 아멘!

 

 

▲ 김윤희 교수(FWIA대표)     ©뉴스파워


김윤희·철학 박사(Ph.D),  FWIA 대표, ykimpark@hotmail.com


김윤희 박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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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4 [11:3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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