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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7 [03:27]
과연 석가는 허무주의자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23]
 
정성민

1. 초월자는 어떤 존재일까?

 

야스퍼스에 의하면 초월자는 절대타자이다. 절대타자란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초월자와 세상의 관계는 무엇일까? 초월자는 세계나 세상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초월자가 세상을 통해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은 초월자를 드러내는 창구나 도구내지는 무대나 장소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야스퍼스는 세상은 초월자를 지시하는 암호라고 표현한다,

 

초월자의 존재는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절대타자이다. 다만 그것에 근거하여 우리가 존재하고 그와 관계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대상은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세계 자체는 아니다. 초월자는 세계가 될 수가 없으나 세계의 존재를 통해서 말한다. 세계는 스스로 성립될 수 없고 자기 자신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자기를 초월하는 존재를 지시할 때 비로소 초월자의 존재는 분명해진다. 세계가 전부라면 초월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월자가 존재한다면 이 세계의 존재는 초월자를 지시하는 암호가 될 수 있다.[i]

 

암호는 그리스어로 비밀이란 뜻이다. 결국 세상은 하나님에 관한 비밀스러운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보는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암호를 누가 어떻게 해석내지는 해독하는가에 따라 암호에 실린 비밀스러운 정보의 내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우리 피조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초월적 존재로 해석한다. 바로 절대타자라는 말이다. 그리고 세상은 창조된 세계로 해석한다. 이는 신은 창조자이고, 인간은 피조물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관계에서 본다면, 피조물은 초월자와의 관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초월자는 자신이 만든 세상과는 구별되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창세기는 이러한 사실을 아주 잘 드러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 (창세기 1:1)

 

우주와 자연, 즉 세상은 초월자의 존재를 보여주고 암시하는 통로일 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출생이 우연히 던져진 존재로 보여 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짧고 유한한 인간의 시야로 보기 때문이다.[ii] 초월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필연이요, 계획이라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니라. (창세기 2:7-8)

 

야스퍼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인간이 근원적으로 그 자신이 되는 것 역시 그 자신을 통해서인 것은 아니다.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현존재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인간의 실존적 자기 역시 초월자로부터 선물 받는 것이다.[iii]

 

2. 허무주의란 무엇일까?

 

허무주의는 무신론에서 비롯된다. 무신론은 세상의 무질서와 부정의로 말미암아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로 여겼던 신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사상이다. 결국 무신론적 사고를 통해서 도덕적 가치를 부정하려는 도덕회의론과 인생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인생무상론이 대두되는 것이다. 야스퍼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세 (무신론), 신의 존재를 자연이나 우주로 동일시하는 자세 (범신론), 더 나아가 인간의 출생이 초월자의 선물이 아니라 우연하게 던져진 것으로 보는 삶의 자세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허무주의적인 태도라고 말한다. 다음은 허무주의에 대한 야스퍼스의 설명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연현상에 내맡겨지고 허무주의적인 태도는 자연적인 것으로 단순화되어 버린다. 이러한 허무주의와 구별되는 속인의 허무주의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세계와 인생의 현실에서 느낀 당혹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을 의미했던 사상으로서의 선, 사랑, 진리, 전능자의 개념들 때문에 이제는 도리어 하나님과 세계를 배척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진리를 원한다면 그는 인간과 세계를 지금보다는 더 나은 것으로 설계하고 창조했을 것인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결국 신이 전능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선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역사상의 숱한 인간들이 절망 속에서 하나님에 대해 퍼붓는 많은 비난들이 있어왔다. 이 세계는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악마가 창조한 것이라고 그들은 신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비난들은 철저한 허무주의에 있어서는 의미를 상실한다. 비난의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신도 없고 사악한 악마도 없다. 존재하는 것이 그대로 존재할 뿐이다. 결국 그런 비난들은 인간 존재의 허무와 악마성 만을 드러냈을 뿐인 것이다.[iv]

 

그렇다. 철저한 허무주의자에게는 신도 없고 사후세계도 없다. 이들은 세상이

무질서 하다거나 부조리하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무질서나 부조리에 대해 책임을 질 대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없거나 아니면 죽은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냥 고장 난 그대로의 무질서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는 인생의 무상함과 도덕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말하는 것이다.

 

3. 과연 석가모니는 허무주의자일까?

 

야스퍼스에 의하면, 무신론은 철저한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허무주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첫째가 바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이나 조물주의 실재는 증명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존재의 가능성을 믿게 하는 아무런 증거의 실마리도 없기 때문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v]

 

둘째는 신과 인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신이 존재하지 않기에 신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을 경험했다는 주장은 심리적인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체험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인간은 신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를 갖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하였다고 믿는 도덕적인 명령이나 계명들은 그 당위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허무주의와 관련된 위의 3가지 조건으로 따져보면, 석가는 허무주의자임이 틀림없다.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하고 또한 이 세상을 통치하는 전능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석가에게는 종교적인 신비는 있을 수 없다. 그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찰과 분석만이 있을 뿐이다. 그냥 보이는 자연 과학적인 세상이 전부이다. 그 어떠한 영적인 경험이나 신비는 불가능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러한 종교적인 신비를 경험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그것을 종교적인 사기나 심리적인 최면으로 간주할 것이다. 결국 석가가 생각하는 인생은 한없이 덧없고 무상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석가는 허무주의자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인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왜냐하면 야스퍼스가 말하는 허무주의의 3번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석가는 도덕주의자이다. 그는 쾌락주의자들이 말하는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육체적인 욕망과 집착을 버렸다. 왜냐하면 모든 정신적인 고통이 바로 욕망과 집착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더 나아가 도덕적이고 거룩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결과적으로 석가는 절대적인 허무주의자는 아니다.

 

4. 전도서 기자가 말하는 허무주의와는 무엇이 다를까?

 

전도서 기자도 세상의 부조리와 무질서를 고발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니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 (전도서 3:16)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전도서 4:1)

 

그는 세상에서 모든 악한 일들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 (전도서 5:8)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죄인은 백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전도서 8:11-13)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착하고 선하게 살 것을 가르친다. 아무리 세상이 악하고 허무하더라도 도덕적으로 선하게 살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 3:12-13)

  

그렇다면 전도서 기자의 허무주의는 무신론도 아니고 도덕폐기론도 아니다. 전도서 기자는 단지 인생무상을 노래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여러가지 종류의 허무주의를 보게 된다.

 

1) 절대적 허무주의

무신론, 도덕폐기론, 인생무상을 말하며, 더 나아가 종교적 신비를 부정하는 허무주의이다. 아마도 철학자 니체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2) 불교적 허무주의

무신론, 인생무상을 말하며, 종교적 신비도 부정하는 허무주의이다. 불교적 허무주의가 절대적 허무주의와 다른 것은 바로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도덕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도덕적이고 거룩한 삶을 추구한다. 석가모니가 여기에 해당된다.

 

3) 성경적 허무주의

유신론, 종교적 신비,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는 허무주의이다. 단지 인생의 유한함과 삶의 고통을 탄식하는 것이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 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12-14)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일 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 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전도서 2:22-23)

 

전도서 기자는 비록 세상을 사는 것이 고통스럽고 슬픔 뿐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그 모든 인생의 고통과 무상함을 극복하려는 삶의 자세를 보여준다. 그는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고

해 아래에서 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보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그것이 그의 몫이로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는 자기의 생명의 날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기뻐하는 것으로 응답하심이니라. (전도서 5:18-20)

 

 

 

 



[i]철학적 신앙, 23.

[ii]야스퍼스는모든생명의탄생을우연으로보고, 진화론을주장하는다윈의입장을전적으로부정하였다. 야스퍼스는진화론의논리를허무맹랑한생각에불과하다고주장하였다, 인간은처음부터계속생존해있었고, 여러가지동물형태로살았지만형태학적으로친족관계에있는물고기, 파충류와는전혀다른동물형태를유지했다는것이다. 걸음나아가서는아래와같은주장이가능할있다. 인간은처음부터고유한자신의생명형태를갖고있었으며이외의다른생명체들은인간으로부터파생된것이라는주장이그것이다...... 하지만이런이론들은허무맹랑한생각들이다. 그러나이런사고의유희는인간에관한우리의무지를드러내주는효과가있다. 1세계대전동안발간된 <심플리시즘>실린우스개이야기는위의사실을가장간명한형식으로표현해준다. 바이에른의농부사람이대화하고있었다. 어처구니없는일이군. 정말다윈이라는사람의말이옳았어. 우린원숭이의후예인거야.라고농부가말한다. 그러자또한농부도말을받으며그러나나는자신이이미원숭이가아니라는처음으로깨달은원숭이를보고싶어라고말했다. 인간은다른존재로부터도출될없으며오히려직접적으로만물의근원과관계하는존재이다....... 인간이다른동물로부터진화해왔다고이해할수는없다. 하지만이에반대하는다음과같은명제도있다. 이와같은진화개념에의하지않고서는인간의기원을달리이해할길이없다는것이다. 이것만이유일의파악가능성인데다가세상만물이모두합리적이치에따라일어나는것이기때문에인간은그런진화의과정을통해생겨났음이분명하다는것이다....... 그러나이런인식이전체를지시하려때에는근본적인오류에빠지게된다. Ibid, 63-65.

[iii] Ibid, 68.

[iv] Ibid, 136.

[v] Ibid,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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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0 [01:2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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