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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7 [03:27]
비곗 덩어리, 어떤 레위의 첩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프랑스 작가 모파상이 쓴 소설 중에 『비계덩어리』라는 작품이 있다. 그의 문단 데뷔를 확고히 한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차 안에서의 불 드 쉬프(Boule de Suif, 비계덩어리)라는 창녀와 다른 인물들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여러 모습을 그리면서 불 드 쉬프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프러시아 장교에게 몸을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멸시와 외면을 당하며 한없이 우는 주인공의 비참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조금 뚱뚱한 외모에서 얻은 별명인 ‘비계덩어리’는 상징적으로 그녀에 대한 당시 사회의 시각을 보여 주고 있다.

모파상의 작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이 어쩐지 불 드 쉬프의 모습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는 물론 모파상의 여인보다 훨씬 더 참담하고 비참하게 끝나는 ‘어떤 레위의 첩’으로 등장하는 이 여인은 이름조차도 소개되지 않는다. 그녀의 삶의 한 단면과 죽음을 통하여 저자는 모파상이 당시 프랑스 사회의 한 일면을 리얼하게 그린 것처럼 사사 시대의 일면을 현실성 있게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본문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에”(삿 19:1; 참고: 17:6; 18:1; 21:25; 서론은 미가의 어미 참고)로 시작하고 있다. 하나님이 왕인 신권정치하에서 ‘왕이 없다’라는 표현은 결국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나타냄과 동시에, 실제적인 리더십의 부재라는 이중의미를 전달해 주고 있다. 그런 상황하에서 그들 사회의 모습을 한 레위인과 그의 첩을 통해서 진술하고 있다.

사건의 배경

본문의 사건의 인물들의 특징은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레위, 그의 첩, 첩의 아비, 레위의 종, 한 노인, 기브아 성읍의 비류들 등 모두 이름 없는 자들이다.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이들의 사례는 단순히 그 당시 사회의 어느 특정 인물들의 특수 경우가 아닌 모든 사람의 영적, 정신적, 도덕적 상태를 대표하고 있음을 알리려는 저자의 노력이다. 그러니까 ‘어떤 레위인’이나 ‘첩’은 당시 만연한 시대상의 인물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표출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어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각각 그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는’(삿 21:25) 사회 속에서는 개체로서의 개개인의 정체성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음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당시 사회에 냉소적인 평가를 이미 내리고 있다. 사건의 배경은 이러하다.

어떤 레위인이 있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자였다. 레위인이라 함은 그가 영적 지도자임을 의미하며, ‘우거한다’는 단어는 그가 현재 있는 곳에 잠시 머물러 사는 자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뚜렷한 사역의 사명이 없는 자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17장에서도 떠돌이 레위인이 등장하는데, 그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옮겨간다. 여기에 등장하는 레위인은 역으로 에브라임 산지에서 유다 베들레헴으로 가게 된다. 그가 첩을 취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여인이 사건의 핵심이 된다. 레위인에게 부인이 있었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다. 단순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택한 여인은 아내가 아닌 첩이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첩이라는 여인은 레위인에게 성적 만족의 대상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레위와 첩은 시작부터가 어울리지 않는 관계이다.

아이러니한 가족 관계

그런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자신의 아비의 집에 거처하기를 넉 달이 지났다고 되어 있다. ‘행음’이라는 단어를 그녀가 남편에게 ‘화가 났다’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는 있는 그대로 첩이 레위인에게 신실하지 못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남편 몰래 행음한 여인은 죽여야 하는 것이 모세 율법이 규정하는 바이기 때문에(신 22:21)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그녀가 후에 당하는 운명에도 미안하지만 약간은 인과응보의 요소도 있다고 보겠다. 그가 그 여자를 설득하고자 ‘다정히 말한다’(3절)는 표현 속에서 평상시에 레위인이 그렇지 않았음을 감지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첩도 문제가 있지만 레위인도 첩이 떠난 데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 어쨌든 이 레위인은 첩을 찾아서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장인의 집으로 간다.

본문에서는 불필요한 부분들은 빠르게 진행시켜 버린다. 레위와 그의 첩이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는 몰라도 3절에서 이미 그 문제는 “여자가 그를 인도하여 아비의 집에 들어가니라.”라는 한마디로 해결해 버린다. 초점은 오히려 첩의 아비에게 있다. 4∼9절까지는 레위의 장인, 즉 첩의 아비의 극심한 환대를 보여 주고 있다. 3일 정도의 환대는 당시의 풍습상 기본 예의에 들어간다. 그러나 3일을 초과한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포함한다. 그러나 6일째까지 가는 것은 지나친 환대라고 볼 수 있다.

첩의 아비의 동기는 분명치 않다. 딸과 헤어지기가 섭섭했는지, 아니면 사위에게 딸을 잘 보아달라는 의도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호의 베풀기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는지 전혀 동기를 밝히고 있지 않다. 더구나 딸을 첩으로 준 것을 보면 경제 사정이 그렇게 좋지도 않은 가정인데도 무리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반복적으로 사위에게 머무르라고 하는 간청은 유머마저 느끼게 한다. 이토록 강조적으로 지나치다 할 만큼의 호의를 저자가 부각시키는 이유는 그 다음에 나오는 사건 속에서 기브아인들과 대조를 시키는 데 있다. 어쨌든, 6일째가 되어서야 간신히 레위인 사위는 장인의 청을 뿌리치고 해가 기울어 감에도 드디어 출발을 강행하게 된다. 바로 그가 출발한 시간대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동족의 울타리 - 범죄의 온상

너무 늦게 출발을 했기 때문에 레위의 일행들은 곧 잠잘 곳을 찾아야 했다. 여부스는 이스라엘이 점령하지 못한 곳으로서 여부스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인은 ‘외인의 성읍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리고 자신들의 민족의 성읍인 기브아까지 간다. 그곳에서 기대한 것은 장인의 환대 정도는 물론 아니지만 같은 민족으로서 당시의 풍습대로 기본적인 나그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충분히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케 하는 자가 없었더라.”(15절)고 기록하고 있다. 이미 해가 저문 상태에서 마침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고 돌아오다가 이들을 발견한다. 이 노인은 기브아 사람이 아닌 원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 기브아에 우거하는 자였다. 그러니까 베냐민 족에 속하는 기브아 사람과 동(同)지파가 아닌 자이다. 다행히 노인의 환대로 일단 기브아에 대한 일시적인 실망은 사라지고, 그들은 노인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큰 긴장감 없이 진행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22절)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사실 22∼26절을 읽어 보면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사건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인간의 추악한 타락상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이 장면은 우리에게 즉각적으로 창세기 19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원어상으로 보면 창세기 19장 4∼8절과 69개의 단어를 일치시킴으로 저자는 의도적으로 두 사건을 유사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사사기 19장에서 주목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는 이방인들의 타락상을 다룬 사건이었지만 기브아의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이 가공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이방인을 피해 동족의 안전한 울타리로 들어왔는데, 그곳이 범죄의 온상이었던 것이다.

보호받지 못하는 첩

창세기에서 롯이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처럼(창 19:7) 사사기에서도 집 주인이 나서서 그들을 설득한다: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23절). 창세기에서 롯이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자신의 두 딸을 그들에게 주려고 한 것처럼 여기에서도 두 여자를 제안한다. 주인의 처녀 딸과 레위인의 첩이다. 그러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 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레위의 첩’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본문 가운데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연극으로 따지면 전혀 대사가 주어지지 않은 역할을 맡았다고나 할까. 행음하다 남편을 떠나 친정으로 가버린 여자. 남편이 다시 데리러 왔을 때 그녀의 감정은 전혀 알 길이 없다. 가기를 기뻐했는지, 억지로 따라 나섰는지 저자는 여자의 의견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여부스에 왔을 때도 대화는 그의 종과 이루어졌지 첩의 의견을 물었다는 기록은 없다(11∼13절). 10절에서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하였더라.”는 표현 속에서 보면 마치 나귀 둘과 첩을 같은 취급을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든다. 모든 일행을 기록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면 종이 당연히 언급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다. 기브아에서 레위 일행을 환대한 노인은 레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그의 첩을 대안으로 제안한다. 첩은 보호받아야 할 손님의 대상에 끼지도 못하는가?

처참하고 허망하게 찢긴 여인의 삶

이 부분에서 우리는 집 주인과 레위인의 행동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집 주인이 레위인을 위하여 두 여인을 제안한 것은 당시의 관습상 손님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 경우는 최소한 남자 손님이라도 보호하고자 하는 집 주인으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처사이다. 또한 레위인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의 첩을 그들에게 내어 준 것도 자신의 체면과 집 주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자기가 살자고 자신의 첩을 희생 제물로 바친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실로 남자로서, 또한 남편으로서 가장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었다.

첩을 내어 준 결과, 그녀가 당한 처참한 광경이 3개의 동사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들은 그녀를 ‘행음하였고’, 밤새도록 ‘욕보였고’, 새벽 미명에 ‘놓아주었다’. 짧은 이 표현들 속에서 우리는 여인의 처지가 마치 맹수들이 먹이를 갈취하여 저녁 내내 배를 채울 때까지 실컷 뜯어먹고 내어다 버린 고기조각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으며, 여인은 모두에게 쓰다 버려진 ‘소모품’ 정도로 전락해 버린다.

동틀 때에 여인이 간신히 찾아와 쓰러진 곳은 그의 주인들(복수 사용)이 머무는 곳이었다. 저자는 미묘하게 여인의 신분을 ‘첩’에서 ‘종’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녀의 ‘주인들이 일어났다’(27절)는 표현 속에서 저자는 단수 대신에 복수를 사용하는데, 집 주인을 포함했다고 이해할 수도 있고, 또한 그녀의 주인은 이미 한 사람이 아닌 여려 명이었다는 것을 강조하여 그녀가 밤새도록 당한 치욕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저자는 다시 단수를 사용하여 레위인에게로 초점을 맞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는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문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보고 그에게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라고 말한다. 애당초 왜 이 여인이 레위에게서 떠나갔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어떻게 취급을 당해 왔는지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그녀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었다’는 표현이다(27절).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남편에게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아내로 대해 주기를 애처롭게 바랐던 것이다.

레위인은 첩을 나귀에 싣고 자기 집에 이르러 여인을 열두 조각으로 토막내어 이스라엘 사방에 보내어 기브아인에 대한 심판을 촉구한다(29∼30절). 한없이 친절하고 호의적인 한 아버지의 귀한 딸인 여인의 삶은 이렇게 허망하게 조각난 ‘고기 덩어리’로 전락하고 만다. 그녀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한 사람의, 비록 첩이기는 하나, 아내로서의 권리, 여성으로서의 자존심, 이 모든 것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처럼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는’ 사회 속에서는 결코 보호받을 수 없는 사치스러운 단어들에 불과함을 본문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올바른 결혼관을 가져야 한다. 레위의 첩의 스토리는 사사기 1장에 나오는 악사와 대조가 되고 있다(악사 참고). 아비에게 약속의 땅의 일부를 유산으로 요청하기 위해 나귀에서 내려오는 악사와(1:14) 시체가 되어 나귀에 실리는(19:28) ‘첩’의 대조적인 운명 뒤에는 결혼이라는 배경이 받쳐주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드빌을 쳐서 승리한 전쟁 영웅이며 모범 사사가 되는 옷니엘과 악사의 결혼은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서의 축복 받은 자들의 귀감으로 사사기의 시작을 긍정적으로 비추어 주고 있다.

그러나 사사기의 종결 부분에서는 영적인 임무보다는 육적인 요구에 시간을 낭비하는, 사명감 없이 떠도는 한 레위인과 정식적인 결혼도 아닌 떳떳하지 않은 관계로 유지하고 있는 그의 신실하지 못한 첩과의 관계를 통하여 당시 시대상을 지극히 부정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저자의 의도 속에는 시대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해 감에 따라 가장 영향을 받는 제도 중의 하나로 결혼을 통하여 당시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말세의 증상이 점점 드러나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의 결혼관을 올바로 다지지 않는다면 바로 우리의 결혼, 가정이 가장 먼저 파괴되고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혼율이 급증해 가고 있고, ‘옥탑방 고양이’라는 드라마로 청춘남녀의 동거생활이 미화되어 호기심과 부러움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며, 심심치 않게 소설, 드라마, 영화 등에서 ‘외도’에 대한 갈등을 이해심과 포용력으로 감싸고, 심지어는 유머까지 섞어가며 인생의 감미로써 표출시킴으로 우리의 비판력을 무색하게 하고, 보수적 도덕관을 고루한 골동품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날카롭게 보아야 한다. 그러한 매체들이 보여 주지 않는 측면에 관심을 기울여 보아야 한다. 잘못된 남녀관계, 결혼관, 부부관계, 가정생활 등이 낳는 고통, 피해, 상처, 소외감, 피폐함 등이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부분에까지 우리를 멍들게 하고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온다는 면은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한 모습의 극단적인 예가 바로 ‘레위의 첩’에서 발견된다. 그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고(29:1∼2),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음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이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 속에서 기준을 성경에 두고 각자의 결혼관을 다시 한번 점검해야겠다.

둘째, 올바른 삶의 기준을 다져야 한다. 사사기 19장의 인물들은 각기 주목할 만하다. 영적인 삶과 거리가 먼 레위인, 냉혹한 남편으로서의 레위인, 이기적이고 비겁한 레위인(아내를 보호하지 않은), 이 모두가 한 인물이다. 철없는 그의 ‘첩’, 성적으로 정숙하지 못한 여인(19:2), 무책임한 아내(19:2), 이 모두가 또한 한 인물이다. 지나치게 관대한 레위의 장인, 현실보다는 감정에 치우쳐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호의만을 베푸는 첩의 아버지도 한 인물이다. 친절했지만 손님의 첩을 희생하려는 기브아의 의문의 노인(19:23)도 있다. 기브아의 동성연애자들, 강간범들, 폭력배들, 살인자들은 가장 악질들이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의 레위인의 이미지를 또 한번 바꾸어 버리는, 아내의 시체를 토막 낸 시체유기범으로서의 레위인이 있다. 누구 한 사람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마치 잔인하고 폭력적인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이다. 더 두려운 것은 이것이 사사 시대의 현실이었고, 이러한 모습이 현재 이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심리학이라든가, 상담학이 점점 더 인기를 끌 것 같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사는 세상 자체가 그렇게 정상적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를 일종의 정신병자로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가 세 아이를 죽이고 자살을 했으며, 최근 경제계의 한 거목이 의문을 남긴 채 자살을 했으며,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향해 야당에서는 ‘언론 편집증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한 최근 언론의 한 사건의 보도에 대해 어떤 이는 우리 사회를 ‘가학적 집단적 테러리즘에 빠진 사회’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청와대의 사건 조사에 대해 ‘패거리 의식’이 작용했다는 등 거친 용어들이 정치권에서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을 부지런히 외치지만 어느새 ‘힘과 억지’가 훨씬 신속 정확하다는 분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끝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 속에서 믿는 자들은 중심을 잃지 않고 말씀에 기준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자신의 모습을 조명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사기 19장의 인물들 중의 하나로 합류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슈가 걸려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처리할 수는 없다. 또한 지면의 제약상 여기에서는 사사기와 관련하여 한 측면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창세기 19장과 사사기 19장은 모두 시대의 극심한 타락상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두 곳에서 다 동성애를 그러한 측면을 부각시키는 대표적인 예로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또한 성경은 결혼의 테두리를 벗어난 모든 성적 관계를 정죄하고 있다. 동성애의 문제점은 여기에도 분명히 있다.

또한 창세기 1장에서 결혼의 목적 중의 하나로 하나님이 복 주신 것이 ‘생육과 번성’이다. 동성애는 이러한 근본적인 결혼 목적도 달성할 수 없다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앞으로 동성애의 문제는 계속적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이슈 중의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사회가 그러한 관계를 인정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가치 판단과 도덕 기준에 근거한다기보다는 그들을 마이너리티로써 보호한다는 인권과 권리의 논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도 그들의 기본권과 인권을 간섭할 의사는 없다. 또한 최근에 미국 성공회 사상 첫 동성애자 주교가 인준되었다(2003. 8. 5). ‘게이 주교 1호’가 탄생한 것이다. 레위가 첩을 둔 것보다 동성애자가 주교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임을 볼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사사기의 현실보다 결코 뒤지고 있지 않음을 직시해야 한다.

▲ 김윤희 박사·FWIA 대표     ©정희수


김윤희·철학 박사(Ph.D),  FWIA 대표, ykimpark@hotmail.com


김윤희 박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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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9 [14:5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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