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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20 [06:02]
경쟁심 많은 여인, 라헬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프랑스 작가인 모파상이 쓴 글 중에 ‘여자의 일생’(Une Vie)이라는 작품이 있다. ‘잔느’라는 한 여인이 ‘줄리앙’이라는 세속적인 인간을 남편으로 맞이하고 그의 불륜과 죽음을 경험하면서 결혼을 향한 꿈과 신비가 하나하나 무너져 가고 아들에 대한 기대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한 여인의 비참한 삶이 잘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라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때 문득 청소년 시절에 읽었던 이 작품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잔느와 라헬의 결혼생활 자체는 판이하게 다르다.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결혼과 자녀라는 요소가 라헬의 삶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떠오른다는 점이다. 라헬의 삶은 야곱을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기에 그녀도 야곱의 가슴속에 끝까지 남아 있는 ‘끝없는 사랑’(endless love)의 주인공이 었을망정 결국은 야곱이라는 족장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조연일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삶을 야곱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개요를 잡아 보았다.

첫 만남(창 29:1˜14)

본문은 야곱이 에서에게서 장자권을 빼앗아 이삭의 복을 받고 형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몸을 피해 어머니 리브가의 친정이며 그녀의 오라비 집이 있는 하란에 도착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우물가에서의 여인과의 만남’ 장면은 리브가와의 만남과 십보라와의 만남에서 보듯 모세오경 내에서는 이미 배우자를 만나는 전형적인 장소로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창 24장,  출 2:15∼21). 야곱과 라헬과의 만남을 기록한 이 사건은 세 가지의 의미를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의 사건에서 보듯 그들의 만남이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임을 보여 준다. 두 번째는 이 사건은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밧단 아람으로 가서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고 부탁한 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결혼 상대를 구하는 문제가 아닌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수혜자로서의 선택을 의미함을 이삭의 축복의 내용 속에서 알 수 있다(창 28:1∼4). 라반의 ‘딸 중에서’ 선택하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지시사항이 눈길을 끈다. 라반의 두 딸 중에서 택해야 하는데 라헬을 우물가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그녀가 후보자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본문은 그렇게 정석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유도하고는 나중에 반전이 됨으로(29:23) 상당히 뛰어난 문학적인 구성과 기교를 보여 주고 있다. 세 번째, 우물가에서의 이 사건을 통하여 저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야곱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본문을 보면서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에서 저자는 야곱이 밧단 아람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기보다는 ‘동방사람의 땅’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야곱이 약속의 땅을 떠났음을 강조하고 있는 표현이다(창 11:1 참고). 우물가에 도착했는데 저자는 미리 우리에게 왜 다른 그룹의 양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다 같이 모이면 목자들이 협력하여 우물가에서 돌을 옮기고 물을 다 먹인 후에는 다시 그 자리에 돌을 덮기 위해서이다. 이런 식으로 돌을 옮기는 수고를 아끼고 골고루 물을 먹이며 수질도 보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야곱이 보여 있는 목자들에게 네 가지의 질문을 하는데 야곱의 질문에 비하여 목자들의 대담은 마치 대화하기가 싫은 것처럼 최소한의 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첫 번째 질문은 목자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다. 그들의 답은 하란에서로라”이다. 두 번째 질문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노라”이다. 세 번째 질문은 “그가 평안하냐’는 것이다. 답은 “평안하니라.”이다. 그리고는 “그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는 정보를 더한다. 마치 귀찮으니 나머지는 그녀에게 물어보라는 의도인 것 같다. 야곱은 목표 지향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재빠르게 얻어낸다. 네 번째로 야곱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양떼가 모일 시간도 아닌데 모여 있는 그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고 어서 물을 먹이고 풀을 뜯길 것을 제안한다.

야곱의 상당히 적극적인 면이 드러난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금방 문제 해결사로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목자들은 이제까지의 어느 답보다도 가장 길게 대답을 한다. 야곱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에 라헬이 양떼들과 함께 우물에 도착한다. 10절에 보면 우리말 성경에는 번역이 생략되었지만 원문에 보면 “외삼촌 라반”이라는 표현이 세 번이나 나온다.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 ‘외삼촌 라반의 양,’ ‘외삼촌 라반의 양떼’라는 표현 속에서 앞으로 야곱 이야기 속에서 한동안 진행될 주제들을 이미 다 소개하고 있다. ‘외삼촌 라반, 그의 양떼, 그리고 라헬이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돌을 옮겼다는 것은 그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보여 준다. 그가 리브가 밑에서 마마보이같이 유약한 인상을 주었다면 여기에서는 실제로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남자로서의 힘을 보여 줌으로 앞으로 있을 라반과 야곱의 대결은 야곱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그의 절제력과 인내가 많았음을 보여 준다. 야곱이 라헬을 보고 입 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은 야곱의 열정적인 성격을 보여 준다. 이렇게 하여 야곱과 라헬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아직까지는 라헬이 어떠한 여성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밝히고 있지 않다. 단지 그녀는 라반의 딸로서 소개되었을 뿐이다.

뒤바뀐 결혼(29:15˜30)


라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그녀의 언니와의 비교에서 시작된다. 레아에 비해 라헬은 ‘곱고 아리땁다’고 표현되어  있다. 요사이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얼짱, 몸짱’이라는 뜻이다. 야곱은 이러한 라헬을 사랑했고(외모에 반했다는 뜻인가!) 결혼 지참금이 없는 야곱은 외삼촌에게 대신 칠 년을 봉사할 것을 제의한다. 모세오경에서의 율법을 살펴보면 히브리 종의 경우 6년을 주인을 위하여 섬기고 7년째는 자유로 그 종을 놓아주도록 되어 있는데(출 21:1∼6; 신 15:12∼18) 야곱의 7년 봉사의 제안은 후에 나오는 율법의 요구를 넘어선 것으로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다’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수일 같이’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을 떠나올 때 그의 어머니 리브가가 라반에게 가서 ‘몇 날 동안’ 피했다 오라던 말과 동일하다. 안타깝게도 리브가의 ‘몇 날 이 이미 7년의 세월로 둔갑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야곱은 7년을 채우고 드디어 사랑하던 라헬과의 결혼을 라반에게 요청한다. 레아와 라헬이 뒤바뀐 라반의 결혼 계략은 유명한 사건이며 이미 레아를 소개하며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겹치는 부분을 생략하도록 한다(‘레아’편 참고). 졸지에 언니 레아를 엉똥하게 신부로 맞이한 야곱은 7일 후에 다시 라헬을 아내로 맞이한다. 그러나 야곱의 결혼의 환상은 이미 깨어진 상태이며 야곱은 어쩔 수 없는 ‘다처(多妻)제’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뿐 아니라 원하지 않게 라반에게 7년을 더 봉사하도록 덜미가 잡히고 만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최대한 착취하는 악덕 업주로 전락한다.


야곱과 라헬과의 결혼생활은 단적으로 ‘야곱이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했다’는 표현 속에서 잘 드러난다. 흥미로운 것은 계속적으로 레아와 라헬은 비교가 되어 묘사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비교가 초래하는 것은 두 사람의 경쟁관계를 의미한다. 무엇에 대한 경쟁인지가 본문 속에서 더 구체화된다. 그러나 여기까지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본문은 라헬을 둘러싸고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만을 기록했을 뿐 정작 그녀가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어떠한 생각을 했는지 그녀의 감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과연 그녀도 야곱을 사랑했는지, 이것이 야곱만의 짝사랑이었으며 라반과의 거래에서 이루어진 결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자신이 둘째라는 이유 때문에 레아에게 첫 번째 아내의 자리를 빼앗긴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매우 흥미롭게도 본문은 결혼생활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라헬의 성격에 대해서, 또한 그녀와 야곱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치열한 경쟁(29:31˜30:24)


여호와께서 레아가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여신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본문은 ‘라헬은 무자하였더라”고 하며 언니와의 비교를 잊지 않고 기록한다. 언니 레아는 여호와의 자비하심으로 네 명의 자녀를 생산한다(29:31∼35). 이에 대하여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라헬이다. 본문은 “라헬이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라고 하며 여호와의 시각과 라헬의 시각을 대조시킨다. 여호와의 시각으로 보실 때에 일어나는 일은 레아에게 베푸신 것처럼 자비로운 은혜이다. 그러나 라헬의 시각의 결과는 투기와 싸움이다. 야곱의 연애 감정, 달콤한 로맨스 스토리를 지나 우리는 두 사람의 부부싸움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라헬의 말은 상당히 과격하다.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이 말 속에서 몇 가지를 관찰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그녀의 극단적인 히스테리적 반응에서 볼 수 있는 성격이다. 현대의 부부싸움에서도 ‘죽겠다는 등’의 이야기는 타부시 된다. 자녀를 생산하고자 하는 염원은 족장들의 아내들의 사건들을 통해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이다(비교 ;  창 16:2; 25:21). 그러나 그들에 비해서도 라헬은 훨씬 더 날카로운 반응과 성격을 보여 준다. 둘째는 그녀의 발언 속에 담겨 있는 신학적 오류이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이시라는 가르침에도 불구하고(창 1장;  시 113:9; 127:3) 그녀는 남편에게 자식을 내라는 불경건한 태도를 보인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한나와 같은 기도이다(삼상 1장). 그녀의 영적 상태가 잘 드러난다. 세 번째 그녀는 모든 책임을 야곱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야곱에게 불가능한 일을 요구함으로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뿐더러 이제까지 야곱의 그녀에 대한 사랑과 그녀를 위해 치른 대가에 비한다면 그녀의 발언과 행동은 기대 밖이다.

이러한 경우에 남편인 야곱의 응수는 어떠한 것일까? 그는 두 가지로 반응한다. 첫째는 불손한 요구와 성격 부림에 대하여 노를 발한다. 두 번째는 그녀의 잘못된 신학을 바로 잡아 준다. 그의 대답은 “그대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근신하고 반성했을 만도 한데 라헬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방식과 시각으로 해결한다. 시녀 빌하를 남편에게 주어 자식을 얻기로 작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사라의 종 하갈을 통해서도 알고 있다. 그녀가 빌하를 통하여 두 명의 자녀를 보게 되는데 하나의 이름은 단이고 또 하나의 이름은 납달리이다. 단이라는 이름의 뜻에는 ‘옹호하심’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데 이것을 이용하여 본문에서 라헬은 ‘하나님이 아들을 주심으로 본인의 억울함을 푸셨다, 즉 ‘옹호하셨다’라고 해석한다. 납달리는 ‘나의 경쟁’이란 뜻인데 그너는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겼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라헬의 경쟁심과 한 맺힘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부분이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레아에게 이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외모, 남편에게서의 사랑)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에서도 이기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라헬이 자신의 신세를 ‘보고’ 행동에 옮겼듯이(30:1), 레아도 “자기의 생산이 멈춤을 보고”(30:9) 자신의 시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첩을 삼게 하고 두 명의 자식을 생산한다. 레아의 시각도 또 다른 인간적인 시각일 뿐이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지지 않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동생이 한 대로 갚아 주는 것이며 마치 계획이나 한 것처럼 두 시녀들이 공평하게 각각 두 명씩의 아들들을 생산한다.

이후에 합환채 사건이 벌어지는데(3:14˜21) 이것은 레아를 다룰 때에 언급된 부분이므로 생략한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두 자매가 경쟁을 하다못해 이번에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합환채를 가지고 야곱을 사이에 두고 거래를 한 사실이다. 레아가 “내가 당신을 샀느니라.” 할 때에 ‘샀다’는 단어는 야곱 스토리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는 핵심 단어 중의 하나이다(29:15: 30:18, 28, 32, 33; 31:7, 8;41). 라반의 거래에 당한 야곱은 또 다시 그의 딸들의 거래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토록 라헬과 레아의 경쟁은 참으로 치열한 것이었다.

 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일단락 지어지는 대목은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30:22)는 구절부터이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라헬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고자 작정하신 것이다. 하나님 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와중에서도 그녀가 여호와께 계속 자식에 대해 호소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아들을 낳자 그녀는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고백하고 드디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짓는데 그 뜻은 ‘하나님이 더하심”이다. 여호와께서 다른 아들을 그녀에게 더하시기를 원하는 염원에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 물론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만 그것이 라헬의 마지막이었다는 것은 그녀도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본문의 핵심은 요셉의 탄생함에 있다. 이 사건은 야곱이 드디어 약속의 땅으로 떠나기로 결심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도주, 절도, 속임수(창 31장)


창세기 31장은 상당히 긴 장이며 여러 가지 이슈들이 섞여 있다. 전체 장을 보기보다는 라헬과 관계된 몇 가지 부분만을 전체 문맥을 염두에 두고 살펴보기로 하겠다. 31장의 시작 부분은 30장의 마지막 멘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그 사람이(야곱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奴婢)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창 30:43). 이것은 라반과의 거래를 통하여 야곱이 정당하게 얻은 것이다. 그러나 라반의 아들들이 자신들의 재산이 야곱에게 간 것에 대하여 라반에게 의의를 제기하자 라반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기에 야곱이 여호와의 부름을 받고 드디어 가나안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떠날 준비로 그의 아내들에게 자신의 계획의 정당성을 알리고 그들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설득한다.

설득의 내용은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라반이 야곱에 대한 태도가 최근 비호의적임을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이야기한다(5절). 두 번째는 라반이 품삯에 대하여 자신을 속인 것을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라반이 자신을 해치지 못하도록 보호하셨음을 이야기한다(6˜7절). 세 번째는 라반의 재산이 어떻게 자신의 것이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빼앗아 자신에게 주셨음을 간증한다(8˜9절). 네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꿈에 자신에게 현몽하신 내용을 설명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간증한다. 야곱의 영적인 상태를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이에 대하여 라헬과 레아의 대답은(라헬이 먼저 언급됨) 야곱과 철저히 동의하면서도 관점이 물질에 맞추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14~17절). 그들은 물질적인 면에서 자신들의 아버지가 야곱을 이용해 먹고 그의 삯을 부당하게 한 점은 결국 자신들을 팔고 자신들의 돈을 착취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고 상당히 분한 심정을 드러낸다. 야곱의 영적인 간증에 비해 그의 아내들은 물질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드러난다. 마지막 발언에 가서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고 그것을 따르도록 동의한다(31:16)

아내들의 동의가 떨어지자 야곱은 즉시 떠나는 것을 행동에 옮긴다. 야곱의 도주와 뒤늦게 발견한 라반의 추격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라헬의 행동이다. 19절에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라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다. 양털 깎는 시기는 모든 이들에게 아주 바쁜 시기였으므로 야곱의 도주와 라헬의 도적질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본문은 왜 라헬이 드라빔을 홈쳤는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잊지 않다. ‘드라빔’ 은 구약에 모두 15번이 나오는데 가정에서 섬기는 신상 또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동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 추측, 주장들이 많이 있다. 그중에서 타당성이 있는 이론은 라헬이 드라빔과 자녀의 생산력을 연결시키고 있었을 가능성과 또 다른 한 가지는 멀리 떠나는 딸들에게 아버지가 드라빔을 마련해 주어 일종의 심리적인 수호용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경우는 몰래 떠나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그 아비의 드라빔을 훔친 것이다. 역시 레아보다는 라헬이 민첩하고 집요한 면이 있다.

야곱을 간신히 따라잡은 라반의 긴 스피치가 이어진다. 그 내용 중에 야곱이 자신의 드라빔을 훔친 것을 고발하며 그를 질책한다(31:30). 이에 대하여 야곱은 “외삼촌의 신은 뉘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취하소서.” 라고 당당한 발언을 한다. 야곱은 그만큼 자신의 결백함에 자신이 있었다. 물질적인 면에서 야곱이 투명함을 입증하는 발언이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적질한 줄을 알지 못했다.’고 본문은 밝히고 있다. 이 야곱의 발언으로 인하여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라반의 수색이 진행된다(31:33∼35). 차례대로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제의 라헬을 가장 마지막의 순서에 둠으로 더욱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있다. 라헬이 드라빔을 가져다가 약대 안장 아래 놓고 그 위에 앉아 있는 바람에 라반은 다시 허탕을 치고 만다. 그가 ‘찾다가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라헬이 경수 때문에 일어나 라반을 영접하지 못함을 사과한다. 그리고 본문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다가 얻지 못했다’고 세 번째로 언급함으로 그의 완전 패배를 선언한다. 라헬의 경수는 월경을 의미하는데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 기간 중에는 의식적으로(ceremonialiy)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접촉이 금지되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수호신으로 간주되었던 우상의 딱한 신세이다. 경수가 난 불결한 여인이 깔고 앉았으니 어떤 주석가의 말대로 그야말로 ‘월경의 패드’역할을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통하여 저자는 드라빔이라는 우상의 무가치함과 무력함을 철저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꿈에 현몽하시고 자신이 택한 자를 지키시고 벧엘에서 한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과 경수가 난 여인이 깔고 앉은 드라빔을 유머러스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라헬의 죽음(35:16˜20)


 야곱이 벧엘에서 에브랏을 향하여 가는 도중 라헬이 임신하여 난 산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에브랏은 베들레헴이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옆에 있던 산파가 “두려워 말라 지금 그대가 또 득남하느니라.”고 산모에게 힘을 더해 준다. 산모의 이 발언은 요셉을 나을 때에 라헬이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염원을 상기시키고 있다. 산고로 인해 죽어가며 라헬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 즉, “나의 슬픔의 아들,” 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야곱은 그를 베냐민, “오른손의 아들”즉, 오른손이 상징하는 것처럼 기쁨이 되고 명예가 되는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라헬은 죽고 그녀는 베들레헴을 가는 길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기록을 보면 베냐민 영역에 속한 곳에서 베냐민을 낳은 것으로 간주된다(수 18:25; 삼상 10:2; 렘 31:15).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성질을 부리던 라헬은 묘하게도 자식을 낳다가 죽는다. 이렇게 하여 야곱에게 무척 사랑을 받았고 그에게 잊
을 수 없는 여인이었던 ‘한 여자의 일생’이 마감한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여호와의 시각에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 하나님께 속한 영역과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구분하며 살아야 한다. 라헬은 전형적으로 자신이 조종할 수 없는 하나님께 속한 영역에 대하여 잘못된 태도와 방법으로 도전하고 있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여호와께 자비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면서 자식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였다. 우리도 때로는 이러한 영역들을 혼돈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기도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계속적으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여 오히려 화를 자초하는지 지혜롭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은 여호와의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며 그분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는 것이다.

둘째,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보다는 자신이 기진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지혜롭다. 본문에서 계속 강조한 것은 라헬은 여성으로서 언니인 레아보다 너무나 좋은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미모에 특히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점이다. 라헬이 여기에 감사하고 조금 더 관용을 베푸는 태도를 보였다면 레아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경쟁심과 이기심에 레아는 울어야 했고 그 집안의 자녀들의 관계도 나중에 보면 그녀의 아들 요셉이 팔리는 등 역기능적인 관계로 변하고 만다. 우리가 우리의 가진 것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감사하고 산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풍성해지고 쓸데없는 일에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음으로 더 많은 일을 이루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여호와와 은혜와 관용의 깊이를 묵상해 보자. 사실 라헬이라는 여인은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질투심 많고 경쟁심 많고 아비의 드라빔이라도 홈칠 수 있는 교활하고 이기적이고 억척스러운 여인이다. 은혜스럽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헬은 레아와 더불어 야곱의 아내들로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기초를 세운 여인들로 기억된다(룻 4:11). 또한 예레미야서는 국가의 패망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어미로 라헬을 언급하며 그녀가 무덤에서 애곡하는 것으로 국자의 멸망을 예언한다(렘 31:15). 또한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헤롯이 아이들을 학살하는 장면에서도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예언한 라헬의 애곡이 인용된다. 이렇듯 그녀의 자식에 대한 염원을 인정하여 이스라엘을 위하는 어미의 대명사로 그녀가 떠오른 것은 그녀가 특별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라 하겠다. 그러기에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은 언제든지 은혜를 베푸심을 기억하며 그분께 우리의 얼굴을 늘 돌리는 자세가 필요하다.

 

▲ 김윤희 박사·FWIA 대표     ©정희수

 

김윤희·철학 박사(Ph.D),  FWIA 대표, ykimpark@hotmail.com


김윤희 박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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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8 [13:5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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