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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7 [03:27]
영광을 가로챈 여인, 야엘
김윤희 박사의 구약의 조연들
 
김윤희

사사기 4~5장에 보면 세 명의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는 한 명의 남자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남자의 운명은 결국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짓는 데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 남성의 이름은 시스라요, 그 여인들의 이름은 시스라의 죽음을 예언한 사사 드보라와, 시스라를 죽음으로 이끈 야엘과, 시스라를 전쟁에서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의 어머니이다.

 

여성들의 두드러진 역할과 함께 사사 시대의 영적으로 어두운 상황 속에서 ‘리더십의 역전’(Reversal)이라는 주제가 반영되어 있다. 이 여성들 중에서 본문에서는 사사기 4:17~24를 중심으로 ‘야엘’에 대하여 연구해 보고자 한다.

 

의존적 리더 버락

 

야엘의 등장은 여선지 드보라(삿 4:4)와 바락의 사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자 여호와께서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 하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십 년 동안 학대받도록 놔 두신다(“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2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3절)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드보라를 통하여 바락에게 군대를 모으도록 지시하시며, 그에게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7절)고 약속하신다. 사사기의 주제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이 강도를 더해가며 심화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삿 2:19). 그 속에서 등장하는 사사들 역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리더들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을 반영하듯 불완전한 리더십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옷니엘과 에홋에 이어 세 번째 대사사로 등장하는 바락은 여선지 드보라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대해 즉각적으로 순종하고 신뢰하는 모습보다는 드보라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심약한 모습을 보여 준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8절). 바락이 영적으로 리더십의 의존도를 보이자 드보라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9절)는 말로 그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락의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그의 계획을 바꾸신다. 드보라는 바락에게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9절)는 예언을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이 예언 속에서 드보라의 역할을 자연히 기대하게 된다. 그러한 기대감과 함께 바락은 게데스로 가고 일 만 인의 이스라엘 군대들도 그를 따라가고, 그 다음에 약속대로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고 기록하고 있다(10절)

 

겐 사람 헤벨 장막

 

이러한 가운데 본문은 갑자기 어떤 한 사람을 소개한다 :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11절)고 기록하고 있다. 바락이 게데스로 갔다는 것과 연결하여 게데스 가까이에 장박을 치고 있는 헤벨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그와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겐 사람으로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이라는 점이다. 1장에서 이미 모세의 장인의 자손들인 겐 사람들이 유다 자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언급했는데(1:l6), 여기에서는 그들이 ‘자기 족속을 떠나’ 멀리 장막을 쳤다는 표현으로 보아 그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애매한 가운데 소개가 되고 있다. 잠깐 헤벨에 대한 삽입적인 언급이 끝나고 장면은 다시 바락과 시스라의 전쟁으로 옮겨져 실전의 모습이 나온다. 드보라의 지시로 전쟁이 시작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여호와께서 이 전쟁을 주도하셨지, 사실 바락의 역할이라는 것은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흐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 만 명을 느리고 거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14˜15절)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 본문에서는 전쟁은 이렇게 요약적으로 보도가 되고, 관심의 초점은 드보라의 예언의 대상인 시스라의 일거수일투족에 맞추고 있다. 이미 드보라와는 거리가 멀어진 시스라의 모습을 지켜보는 독자는 어떻게 드보라의 예언이 성취될 것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내용의 진행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가 도보로 도망하는 모습에 저자의 시각도 함께 따라가며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시스라는 바싹 추격하는 바락을 피해 정신없이 사력을 다해 도망했을 것

이고, 그가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아까 위에서 잠깐 삽입 구절처럼 언급한 헤벨의 장막(11절)이었다. 헤벨은 외출 중이고 없었는지 그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17절)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 한 가지가 더 언급되는데, 그것은 하솔 왕 야빈은 겐 삭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다’(17절)는 것이다. 여기에서 ‘화평이 있다’는 것은 서로 계약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시스라는 적어도 적진이 아닌 아군 편에 서 있는 사람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목숨만은 건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한 것이다. 역으로 이것을 통하여 헤벨은 모세의 장인의 자손이기는 하나 이스라엘과 친한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엘의 등장

 

기진맥진해 있는 시스라를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다. 군대 장관으로서 남성보다는 여성의 접대가 일단 훨씬 더 경계심을 늦출 수 있는 분위기를 주었을 것이며,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시스라가 어떠한 말을 하기도 전에 야엘이 처음부터 주도하여 나가 그를 맞이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18절)고 기록하고 있다. ‘들어오라’, ‘두려워 말라’, ‘이불로 덮으니라’는 현재 시스라의 상황에서 절박한 요구 조건을 다 만족시키고 있다. 숨을 곳이 필요한 시스라에게 가장 안전한 방법과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일단 일차적인 위기 상황을 넘긴 시스라는 드디어 입을 열어 그 다음으로 긴급한 자신의 요구 사항을 예의 있게 요청한다. ‘목이 마르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야엘은 ‘젖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라고 함으로 시스라의 요구 사항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다시 주도적으로 그를 덮어 줌으로 숨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물을 요청했는데 ‘우유’를 주었다는 것은 정성스런 대우와 함께 ‘수면’의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그녀는 요청한 이상으로 친절과 성심을 다하는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있다.

 

시스라는 목마름이 사라지자 다시 자신의 신변의 안전에 대한 것을 염려한다. 야엘에게 “또 가로되 장막 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20절)고 부탁 겸 지시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말은 그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가 ‘없다 하라’는 말처럼 그를 찾는 자가 왔을 때에는 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20절을 원어를 반영하여 다시 살펴보면 여기에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원어에서는 ‘남자’라는 단어이다 : ‘만일 남자가 와서 묻기를’(바락을 가리킨다)---- ‘여기 남자가 있느냐 하면’(시스라를 가리킨다)---- 대답은 ‘아무도 없다’ 는 것이다(야엘의 대답이다). 머레이(Murray)라는 학자는 이것을 한 여성 앞에서의 두 남자의 대면으로 보았다. 즉, 두 사람 다 리더십을 여성에게 주어버린 결과로 두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아닌, 없는’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시스라는 빠르게 곤비함으로 깊이 잠들어 버린다. 자신의 운명이 누구의 손에 있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두 남자를 정복한 야엘

 

이제까지 시스라에게는 구원자요 천사 같던 야엘이 그가 잠들자마자 180도로 돌변한다. 그 다음 장면은 너무나 뜻밖으로 잔인하고 끔찍하게 진행된다. 여인의 손으로 행해진 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본문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21절)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장면은 사실상 사사 에훗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행한 것과 동일한 것으로 비추어지고 있다(3:12∼30). 두 장면 다 살인 장면 다음에 발견 장면을 다루고 있다. 둘 다 속임수를 써서 살인을 감행한다. 에훗은 ‘하나님의 명, 즉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지를 갖고 왔다’고 왕을 속이고, 야엘은 마치 보호해 줄 것처럼 시스라를 속인다. 두 사람의 살인 장면에서 같은 히브리어 동사를 사옹하고 있으며, 살인 장면 자체를 자세히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에훗이…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taqa 3:21)”와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taqa 4:21)”’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들의 죽은 장면도 같은 단어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다: “주(에글론)가 이미 죽어(met) 땅에 엎드려(nopel)졌더라.”(3:25)와 “시스라가 죽어(met) 누웠고(nopel)”(4:22) 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것을 통하여 의도된 것은 자신들의 왕의 신변을 지켜주지 못하고, 왕이 죽은 것을 뒤늦게 발견한 어리석은 에글론의 신하들의 위치(3:25)와 적의 장수인 시스라를 직접 죽이지 못하고 그의 죽은 것을 뒤늦게 바락의 위치(4:22)를 같게 놓는 것이다. 에굴론의 신하들은 자신들의 왕을 잃어버렸고, 바락은 자신이 가져야 할 명예를 여인에게 알맹이 없는 전쟁 영웅으로 남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야엘이 시스라를 따라왔을 때에 시스라를 맞이한 것과 똑같이 주도적으로 바락을 영접한다. 그가 시스라를 초대해 장막 안으로 그를 죽이듯이 이번에는 바락을 초대해 장막 안으로 들여 죽은 시스라를 보여 준다. 영거(Younger)라는 학자가 지적한 대로 야엘이라는 여인은 두 남자를 다 정복했다. 시스라는 목숨을 빼앗겼고 바락은 사사로서의 명예를 빼앗겼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셨기 때문이다(비교 : 삿 4:9).

 

구원자’ 야엘

 

우리는 야엘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를 해야 한다. 어떤 학자는 그녀의 남편은 겐 사람이지만 그녀는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보다는 자기 백성의 어려움에 동참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학자는 그녀가 이방 여인임에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녀는 고대 근동 문화 속에서 자기 집에 유하는 손님에 대해 베푸는 기본적인 예의와 환대에 대한 규율을 과감하게 깨어버리는 범법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남편의 집과 화평이 있는 하솔 왕의 군대 장관을 죽이는 대범함도 보여 주었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있어서도 잔인성과 조야함을 드러내었다. 전혀 주저함이 없이 감쪽같이 본인의 저의를 습기고 상대방을 속이는 교묘함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장막 안에 남자를 들여 그를 죽일 수 있는 용맹성도 보여 주었다.

 

성경 본문은 그녀의 동기라든가 그녀가 이스라엘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조차 확실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우리는 영원히(?) 그녀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모를 것이다. 저자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 본문이 확실하게 보여 준 것이 있다. 그것은 야엘이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느냐보다는, 그녀의 행동은 바락의 행동과는 완전한 대조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바락은 드보라에게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는 나약함을 보여 주었다. 그에 반해 야엘은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지만 본인의 주도하에 결정적으로 대사(大事)를 치루었다. 그렇기 때문에 드보라는 5장의 그녀의 노래 속에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삿 5:24)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는 표현은 성경세서 딱 두 군데에 쓰였는데, 야엘의 경우와 그 다음에 신약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라아를 향하여 쓰여 졌다(“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눅 1:42) 물론 야엘의 경우는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녀와 같이 유목 생활을 하는 여인들 중에서 그녀는 복을 받을 일을 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와 야엘, 너무나 대조적이며 비교될 점이라는 찾아볼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굳이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두 사람 다 ‘구원’이라는 주제에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야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의 압제’에서 구하는 데에 공헌을 했으며, 마리아는 메시아를 탄생시킴으로 인류를 ‘구원’하는 데에 공헌을 했다는 점에 있어서 같은 역할을 했다고 보겠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진정한 영웅은 하나님이심을 보아야 한다. 사사기 4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야빈, 시스라, 드보라, 야엘 모두 진정한 주인공들은 아니다. 본문의 시작의 주체는 여호와시며(“여호와께서”, 2절),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을 드보라를 통해 예언하셨으며(9절),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셨으며’ 야엘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여호와의 말씀의 성취를 보여 주었으며, 궁극적인 본문은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의 진정한 주체이심을 보여 주고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가나안 왕 야빈이라는 적을 사용하여 치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을 때에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역사를 본문은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사사기 3장에서 밝힌 목적대로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삿 3:4)는 말씀과 일치한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주체이심을 우리 모두는 기억해야 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둘째, 리더십의 부재와 부족함에 대한 교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 장에서는 특별히 ‘리더십 역할의 역전’(Reversal)이라는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물론 21세 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녀차별이라는 주제를 부각시켜 남성들이 주도를 잡아야만 정상적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논리를 펴려는 것은 아니다. 사사기 4장 속에서 바락을 통하여 보여 주는 것은 두 가지의 차원이 있다. 한 가지는 바락은 리더로서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니까 바락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구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불순종과 불완전한 순종,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좇지 않는 모습이 당시의 영적 상황인 것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지도자가 자신의 임무에 대해 온전히 순종치 못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 안에서 계획하선 바를 성취하시지마는 부족한 리더십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혼란이다. 사회적으로는 ‘역할의 역전’이라든가(적어도 당시 문화적 상황에서는 그렇다), 기대치 않은 자나 모델이 될 수 없는 엉뚱한 인물이 영웅으로 부상되는 현상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러한 요소들이 이스라엘 사회를 더 혼란으로 몰아넣은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또한 바락 자신으로 보았을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려 했던 영광을 잃어버리는 개인적으로도 명예롭지 못한 대가를 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리더들이지만 사사들이 치리할 때에는 그 땅에 평안함이 있었음을 보았을 때에(5:31) ‘영적 리더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 준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올바른 지도자들이 있을 때에 안정이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요사이 그 동안 교계를 이끌어 오시고 한국에 기독교를 뿌리내리게 하신 많은 노종들과 거목들이 은퇴하시면서 리더십의 교체라는 새로운 전환 국면을 맞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우리 모두에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지도자들이 많이 나오도록 계속적으로 ‘리더십’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 구속사 속에서의 시너지(Synergy) 효과를 생각해 보자. 사사기 4장 본문 마지막에 보면 “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23절)고 기록하고 있고 또한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눌러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24절)고 기록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역할과 그의 백성들의 역할이 시너지를 이루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지금도 이러한 역할은 계속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의 왕국 사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계신다. 이 속에서 나는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드보라인가? 바락인가? 야엘인가? 우리는 각자 주어진 역할을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겠다.

▲ 김윤희 박사·FWIA 대표     ©정희수


김윤희·철학 박사(Ph.D),  FWIA 대표, ykimpark@hotmail.com


김윤희 박사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턴신학교 석사, 미국 트리니티신학교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구약학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는 한국FWIA(Faith&Work Institute Asia) 대표로 ‘일의 신학’을 위해 활발한 사역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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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13 [15:1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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