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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20 [06:03]
과연 열반과 성화는 무엇이 다를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18]
 
정성민

열반에 도달하려면 내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 신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신이 도와준다고 생각그저 환상일 뿐이다. 이것이 석가의 지론이다.


1. 과연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가 깨달아야진리는 무엇일까?

 

석가가 깨달은 진리란 세상에는 절대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조건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아와 영혼과 같은 불변하고 영원하며 절대적인 실체는 세상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더욱 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절대적인 진리를 깨달을비로소 환상이나 무지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호진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불교의 궁극목표는 인간이 겪고 있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이다. 괴로움을 일으키는 근본원인은 내가 존재한다생각과 여기서 파생된 나의 대한 욕망과 집착이다. 나는 늙지도 병들지도 않아야 하고, 나의 가족, 나의 , 나의 나라 등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은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기를 욕망한다. 그러나 이와같은 욕망과 생각은 모두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늙고 병들고 마침내 사라진다역시 세상의 온갖 것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번민하고 괴로워한다...... 사람들은 것이라고 집착한 물건때문에 근심한다.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것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사람의 죽음과 더불어 모두 없어져 버린다. 붓다는 무아설과 무상설을 중심교리로 삼아 인간 존재가 무아이고 무상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도록 했다. 이렇게 함으로서 욕망의 불을 끄고 집착의 사슬을 끊어 괴로움을 소멸시킬 있기 때문이었다.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주체인 내가 없고 욕망의 대상도 모두 변하고 소멸하는데 도대체 누가 무엇에 욕망하고 집착할 것인가. 욕망하고 집착하는 것은 인간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착각에서 벗어날 욕망은 다스려지고 괴로움은 소멸된다는 것이다.[1]

 

그렇다. 석가가 말하는 열반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을 때에 가능한 것이다.

첫째, 신은 없다

둘째,영원히 존재하는 영혼이라는 실체가 없다

셋째,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사후세계도 없다

넷째,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은 항상 변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죽음과 함께 모두 사라진다

다섯째,위의 4가지 사실로 인해 인생은 무상하다


그러므로
열반은 아무 것도 없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숫타니파타> 경전에서 존자 우빠씨바가 석가에게 이렇게 질문을 한다,

 

싸끼야시여,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서 크나큰 거센흐름을 건널 없습니다. 제가 의지해 거센흐름을 건널 있도록, 의지처를 가르쳐 주십시오.

널리 보는 눈을 지닌 님이여. (Stn.1069)

 

이에 석가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빠씨바여, 새김(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관찰)을 확립하여 아무 것도 없는 경지지각하며 나아가, 없다의지하여 거센흐름을 건너십시오.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의혹에서 벗어나 갈애의 소멸에 대해 밤낮으로 살피시오. (Stn.1070)


모든
감각적 쾌락에 대한 탐착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없는 의지해 일체를 버리고 최상의 지각이 있는 해탈에 도달한 , 우빠씨바여, 거기에 종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Stn.1072)

 

결과적으로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전혀 없다인생무상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모든 강박관념(유신론, 유아론, 사후세계의 존재, 윤회)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그래서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또한 다가올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다. 이는 순수하고 절대적인 평안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버릴 때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에 만족하여 하루하루를 아무런 집착없이 살아갈 때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감관을 제어하여 청정하게 살며, 거룩한 진리를 관조하여,

열반을 실현하니, 이것이야말로 없는 축복입니다. (Stn.267)

 

마음의 거처를 제거하여 어떠한 소유도 갖지 않으며,

세상이나 세상에서나 집착이 없으니..... (Stn.470)

 

배를 가득 채우지 말고 음식을 절제하고,

욕심을 적게 하고 탐욕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욕망이 없어지고 버려져서, 욕망을 여읜 것이 적멸입니다. (Stn.707)

 

과거에 있었던 것을 말려 버리고, 미래에는 그대에게 아무 것도 없게 하십시오.

현재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적멸을 이룰 것입니다. (Stn.1099)

 

그렇다. 열반의 경지는 석가가 도달하고자 했던 최고의 경지이다. 그리고 열반의 경지는 사후세계에서나 경험하는 초월적인 경험이 아니다. 열반은 바로 지금 내가 땅에서 누릴 있는 천국경험이다. 석가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살이 많은 일에 부딪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슬픔없이 티끌없이 안온하니, 이것이야말로 없는 축복입니다. (Stn.268)

 

지혜에 통달한 님이라고 알려지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감각적 쾌락의 존재에 집착 없는 거룩한 님이라면,

그는 확실히 거센흐름을 건넜습니다.

그는 피안에 이르러 황무지가 없고, 의혹도 없습니다. (Stn.1059)

 

2. 열반과 성화는 유사하다?!


어쩌면
석가가 말하는 이러한 열반의 경지는 기독교가 말하는 현재적인 천국의 체험 내지는 성화의 체험과도 유사하게 보일 있다. 이유는 가지 인데, 첫째로 열반이나 성화는 모두 내세적인 체험이 아니라 현세적이고 현재적인 체험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열반이나 성화는 자신이 지닌 내면의 탐욕이나 욕망을 벗어나서 거룩한 삶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사도 바울선생이나 기독교 초대교부 어거스틴, 종교개혁자 칼빈, 그리고 18세기 영국의 복음전도자 웨슬리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땅에서의 거룩한 삶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삶을 성화라고 부른다. 예수는 그의 제자들이 거룩한 삶을 것을 가르쳤다. 이는 예수의 산상수훈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1-3,6,8)

 

사도 바울도 기독교인들이 죄를 벗어나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로마서 6:12-13)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로마서 8:12-13)

 

그렇다. 열반이나 성화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아주 유사하다고 있다. 왜냐하면 열반이나 성화는 바로 내가 지금 세상에서 나의 인간적인 욕망이나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자꾸 죄를 짓게 만드는 육신의 생각이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는 이러한 인간의 육체적인 욕구나 욕망을 아주 더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있는 것처럼 저것도 있고, 저것이 있는 것처럼 이것도 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몸에 대한 욕망에서 떠나야 한다. (Stn.203)

인간의 몸뚱이는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며, 가꾸어지더라도,

온갖 오물이 가득 , 여기저기 흘러나오고 있다. (Stn.205)

 

성적교섭에서 떠나 온갖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버리고,..... (Stn.704)

 

일반 사람들이 집착하는 욕망과 탐욕을 떠나 눈을 갖춘 님이 된다면,

바른 길을 있고, 지옥을 벗어날 있습니다. (Stn.706)

 

놀라운 것은 이렇게 몸이나 신체적인 욕망을 죄악시하는 석가의 입장은 사도 바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울은 육신의 생각이 죄요 사망이라고 말한다,

 

18.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로마서 7:18-20)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아니라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느니라. (로마서 8:5-8)

 

결과적으로 기독교와 불교는 육신적인 생각과 육체적인 욕구를 죄악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육체적인 욕구로부터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죄와 욕망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것이 열반이요 성화이다.  

 

3. 그렇다면 열반과 성화가 무엇이 다른 것일까?


비록
열반과 성화가 지향점이 비슷할지라도 여러가지 면에서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우리는 있다. 열반은 자신 스스로의 수행이나 도덕적인 노력으로 안에 거하는 모든 이기적인 탐욕과 갈애를 제거하는 것이기에 열반은 능동적이고 자력적인 자기구원결과라고 있다. 하지만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거룩해지는 타력적인 구원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예수라는 구원자를 믿음으로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수동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예수를 믿고서 죄에서 자유를 얻게 후에 스스로 거룩해지려는 성도 자신의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가 성화의 경지에 도달할 없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성화가 신의 은총과 인간의 노력이라는 신인 협동적인 결과라 말할 수 도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반은 이생에서 경험할 있는 능동적이고 자력적인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혀 신비스럽지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화는 열반보다는 수동적이고 타력적인 구원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신비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화의 타력적인 측면에 대하여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6-19)

 

결국 성화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초월적인 성령이 영적인 존재인 우리에게 임할 때에 경험하는 아주 신비한 현상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예수와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서 아주 쉽게 이해할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있사옵나이까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없느니라.

육으로 것은 육이요 영으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사람도 그러하니라. (요한복음 3:3-8)

 

결국 니고데모는 예수가 말하는 영적인 세계를 결단코 이해할 없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있나이까 (요한복음 3:9)

 

이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답한다,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못하느냐……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0, 12)

 

결과적으로 열반은 인간적인 노력으로 얻게 되는 자연적이고 심리적인 마음의 평정심이고, 성화는 신과의 관계를 통해서 얻게 되는 초월적이고 신비한 마음의 평안을 말한다. 어쩌면 니고데모의 인간적이고 자연 과학적인 생각이 석가의 가르침과도 일치한다고 있다. 이에 반해 예수가 말하는 성화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없는 초자연적이고 신비한 구원이라는 것이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27)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이러한 하늘의 평안함을 누림과 더불어 매일매일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당부한다,

 

그런사랑하는 자들아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고린도후서 7:1)

 

 



[1]무아, 윤회문제의연구, 1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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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07 [02:2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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