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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6 [09:10]
석가가 말하는 최고의 경지는?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14]
 
정성민

자신이 어떠한 중병에 걸렸는지를 알고 아파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도 모르고 아파하는 사람은 뭔가 답답하다.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전자는 자신이 지닌 병의 원인을 알고 있으니 거기에 맞는 치료를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아파도 앞으로 치료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서 참아낼 있다. 하지만 병의 원인을 모르면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내내 불안하고 힘들기 짝이 없다. 이에 대해 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디에서 생겨났는가를 밝게 아는 사람들은 원인을 없애 버립니다. (Stn. 273)

 

석가는 인생이 지닌 고통의 원인을 깨우쳤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고통은 바로 욕심과 집착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우리가 집착을 가지고 살면 삶이 더욱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욕심과 집착을 버리게 우리의 삶이 한결 가벼워진다. 이는 아무렇게 대충 살라는 것이 아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되 거기에다 욕심과 집착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제부터 석가가 밝히는 최고의 경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석가가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

 

석가는 고행을 통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했다. 석가가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는 세상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이다.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특별히 피할 없는 죽음의 순간이나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완전한 해방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최고의 경지에 대하여 석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에게 과거는 소멸하고 새로운 태어남은 없으니, 마음은 미래의 생존에 집착하지 않고, 번뇌의 종자를 파괴하고 성장을 원치 않으니, 현자들(아라한과 같이 최고의 경지에 이른자들)등불처럼 꺼져서 열반에 드시나니...... (Stn.235)

 

하지만 석가의 바램과는 달리, 그는 출가한 6동안 지독한 고행의 길을 걸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최고의 경지에는 이를 없었다. <숫타니파타>경전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혹독한 고행의 길을 걸었는지 짐작할 있다.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갈증, 그리고 바람과 열기와 쇠파리와 , 이러한 모든 것을 극복하면서,... (Stn.52) 질병을 만나고, 굶주림에 처해도 참아내고 추위와 무더위도 참아내야 하리라. 여러가지로 없이 그러한 것들을 만나더라도 정진하며 굳세게 노력해야 한다. (Stn.966)

 

결과적으로 석가는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을 통해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할 없었다. 마침내 그는 고행을 멈추고 단식도 포기하게 되었다. 석가가 처한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불교사상의이해>이렇게 묘사한다,

 

어쨌든 정신집중을 위한 수정(修定)이어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까지 버림으로써싯다르타는 이제 전통적인 수행방법을 모두 떠난 셈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이같은 사상이나 수행방법을 모두 버린 것이어서, 이제는 따로 구해야 스승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스승이 만한 사람이 달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야말로 스스로 구도의 길을 개척해 나가지 않으면 되었다.[1]

 

그러던 어느 , 석가는 속에 들어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수행을 하게 되었다전통적인 모든 수행방법을 포기하고서 절망한 바로 그때에 그토록 그가 바라던 깨달음을 얻게 것이다. 이러한 석가의 깨달음의 과정을 <불교성전>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몸과 마음이 탐욕과 집착을 떠나 고요히 자리잡고 있어야 고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이를 있다고 생각한 싯다르타는 참담한 고행을 다시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당시 인도의 고행자들이 수행하던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고행만을 골라 수행했다. 먹고 자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고 톨의 낟알과 모금의 물로 하루를 보내는 때도 있었다. 그의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가고 뺨은 가죽만 남았다. 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로 변해갔다. 죽지 않살아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아직도 완전히 번뇌를 끊지 못했으며 삶과 죽음을 뛰어 넘지도 못했다. 그는 여러가지 무리한 고행을 계속했다...... 고행을 시작한지 다섯 해가 지나갔다. 지독한 고행을 계속해 보았지만 자기가 바라던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어느 싯다르타는 그가 지금까지 고행에 대해 문득 회의가 생겼다. 육체를 괴롭히는 일은 오히려 육체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를 괴롭히기 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맑게 가짐으로써 마음의 고요도 가져올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고행을 중지하고 단식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지나치게 지쳐버린 육체를 회복하기 위해서 네란자라 강으로 내려가 맑은 물에 씻었다. 그때 마침 강가에서 우유를 짜고 있던 소녀에게서 그릇의 우유를 얻어 마셨다. 소녀의 이름은 수자타였다. 우유를 마시고 나니 그의 몸에서는 기운이 솟아났다. 후로 속에 들어가 석가모니는 그가 바라던 깨달음을 얻게 된다.[2]

 

그렇다면 과연 석가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석가가 깨달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석가가 깨달은 진리는 사성제, 가지의 거룩한 진리나타나 있다. 사성제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석가가 베나레스 근처 이씨빠따나에서 동료인 다섯 명의 고행자들에게 행한 최초의 가르침이다. 이를 초전법륜이라고도 한다. 사성제는 "가지 높은 깨우침" 또는 "가지의 고귀한 진리"라는 뜻이다. 고제(苦諦), 집제(集諦), 멸제(滅諦), 도제(道諦) 4가지 진리를 의미한다. 흔히 가지를 간단히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부른다. 사성제가 바로 석가가 깨달은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사성제를 연구한다면 석가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있다. <불교사상의이해>사성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4성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소멸고의 소멸에 이르는 이다. 4성제는 불교의 모든 교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하다. 붓다가 녹야원에서 5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했을 때로부터 시작해서 쿠쉬나가라에서 반열반에 때까지 45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 바로   4성제이다...... 4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목표인 ()에서의 해탈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붓다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사가 병을 치료할 때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의사가 먼저 병을 진단하듯이 붓다는 인생의 실상인 말하고(고성제), 병의 원인을 찾아내듯이 고의 원인을 규명했다(집성제). 그리고 치료 후의 건강상태를 말하듯이 고가 소멸된 상태, 열반을 설명했고(멸성제), 마지막으로 병의 치료법을 말하는 것처럼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도성제).[3]

 

사성제의 첫째 가르침은 무엇일까?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라고 부르는 고제(苦諦). 이것은 삶이 고통으로 가득 있음을 말한다. 마디로 인생 자체가 괴로움의 총체라는 것이다. 다음은 고제에 관한 설명이다,

 

먼저 괴로움()진리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고, 원수를 만나게 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구하는 것을 얻을 없는 것과 그로 인한 걱정, 근심과 번민과 슬픔이 괴로움이다.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보존하고 키워가려면 천 만가지 고통을 겪게 되므로 이것을 태어남()고라 한다.

늙는 것을 괴로움이라함은 사람이나 이를 먹으면 머리털이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얼굴이 쭈그러지고 등이 굽으며 기력이 쇠해진다. 몸은 날로 무거워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다닐때는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니 이것을 늙음()고라 한다.

병드는 것을 괴로움이라 함은 몸이 균형을 잃고 기혈이 순조롭지 못해 두통이나 치통을 앓고 눈이 어둡고 귀가 먹는다. 또는 열병, 냉병, 풍병, 습병으로 사지가 뒤틀리고 온갖 고통이 엄습하니 이것을 ()고라 한다.

마지막으로 죽음의 괴로움이란 중생들이 몸의 기력이 다하고 목숨이 끝나려 죽음의 막다른 길에 이르러 여러가지 견디기 어려운 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 이것을 죽음()고라 한다. 이와같이 세상에 생을 받아 태어난 것은 결국 모든 고통의 집합체인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4]

 

이러한 인생의 괴로움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겪게 고통을 말한다.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사람이 겪어야 삶은 고통 자체라는 것이다. 고통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째가 앞서 말한 생로병사의 고통이고, 둘째가 만물이 영원히 지속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변화의 고통이다삶의 행복한 느낌, 행복한 조건 등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끊임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이로인해 고통, 아픔, 이별 등과 같은 불행이 발생한다는 것이다이러한 고통스럽고 괴로운 삶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 바로 인생무상이다. 인생무상에 대하여 석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존] 참으로 사람의 목숨은 짧으니 살도 못되어 죽습니다.

아무리 산다해도 결국은 늙어 죽는 것입니다. 

것이라고 여겨 슬퍼하지만 소유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덧 없는 것이라고 보고, 재가의 삶에 머물지 마십시오.

이것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죽음으로 그것을 잃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그를 없습니다. (Stn.804-07)

 

번째 고통은 형성의 고통이다.  이는 가지 종류의 고통 가운데서 가장 철학적인 것이다. 인간은 다섯가지 존재의 요소들(신체, 감정, 생각, 의지, 인식)구성되어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은 물질적, 정신적인 또는 에너지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결국 석가가 말하는 인간은 철저히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분석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자아혹은 영혼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집착이 불러오는 고통이 바로 형성의 고통이다. 석가는 말한다,

 

어떠한 괴로움이 생겨나든 모두 형성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모든 형성이 없어진다면 괴로움이 생기지도 않는다. (Stn.731)

세상에 있는 갖가지 괴로움이 있는데, 그것들은 집착을 인연으로 생겨납니다.    (Stn.1050) 그러므로 괴로움의 원인을 본다면, 자각하여 집착의 대상을 만들어 내서는 됩니다. (Stn.1051)

 

불교적 입장에서 이러한 고통은 진리에 이르기 위해 극복해야과정으로 본다. 기독교적 입장에서 고통이란 신이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내려주신 훈련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아니면 신에게 불순종하여 겪게 되는 채찍으로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석가가 주장하는 최고의 경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깨달은 4가지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4가지 진리는 첫째로 인생은 고통 자체라는 것이고, 둘째로 고통의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욕망과 집착이다. 셋째로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넷째로 욕망과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인생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때에 비로소 마음의 평안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석가가 말하는 인생무상은 모든 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깨달음과 그로 인해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깨달음에 기초한 철학적 결론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경지는 석가가 깨달은 자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에 우리가 동의하는 것을 말한다. 결국 석가의 자연과학적이고 무신론적인 세계관을 동의하는 것이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방법인 것이다.

 

문제는 성경도 인생무상을 노래한다는 것이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세대는 가고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내가 해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전도서 1:2-4, 11, 14)

 

세상사가 헛된 이유는 모든 것들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도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후에 내가 생각해 손으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 2:11)

내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우매자가 당한 것을 나도 당하리니 내게 지혜가 있었다한들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였도다

이에 내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것도 헛되도다 하였도다.

지혜자도 우매자와 함께 영원하도록 기억함을 얻지 못하나니 후일에는 모두 잊어버린오랠 것임이라 오호라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 
(
전도서 2:15-16)

 

결과적으로 전도서 기자도 우리로 하여금 인생무상함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석가가 말하는 인생무상과 성경이 말하는 인생무상은 어떻게 다를까? 석가가 말하는 인생무상은 신도 존재하지 않고 영혼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차도 변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원리에 종속을 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전도서 기자는 신의 존재와 인간의 영혼은 영원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허무한 세상이기에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최고의 경지인 것이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때가 있나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없게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위에 수도 없고 그것에서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하심줄을 내가 알았도다.

인생이 당하는 일을 짐승도 당하나니 그들이 당하는 일이 일반이라 동일한 호흡이 있어서 짐승이 죽음같이 사람도 죽으니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남이 없음은 모든 것이 헛됨이로다……인생들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전도서 3:1, 11, 14, 19, 21)

 

위에 사는 인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그의 고향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10)

 

 



[1]불교사상의이해, 57-58.

[2]윤병상, 종교간의대화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99), 140-41에서간접인용.

 

[3]불교사상의이해, 89-90.

[4]종교간의대화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99), 1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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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21 [16: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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