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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22 [01:02]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7]
 
정성민

불교에서는 만물은 저절로 생겨나서 변하다가 저절로 소멸되어 다시 ()으로 돌아간다고 가르친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인간의 정신세계를 강조하는 측면에서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라 말할 있다. 19세기 미국의 철학자이며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윌리암 제임스는 불교를 무신론적 사상체계로 정의한다.

▲ 2008년  7월  전국 불교 27개 종단 승려와 신도들이 시청 앞에서 정권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파워 자료사진

 

 

 

세상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하나의 가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흔히 종교적이라고 부르는 사상 체계들이 있다. 불교가 그런 경우이다. 물론 대중적으로 붓다 자신은 신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불교체계는 무신론적이다...... 신을 추상적 관념성 안으로 증발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신이나 초인간적 인격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주의 영적 구조에, 만물 속에 내재하는 신성은 초절주의자들의 예배 대상이다.[1]

 

레이몬드 파니카는 불교도가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타당한 것일 뿐만 아니라 불교도는 어떠한 종류의 신도 믿지 않는다고 주장한다.[2]사실 석가는 신의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 종교가 해야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3]하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하면서도 인간이 신적인 거룩한 존재가 있다는 주장은 정말 이해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신을 부정하고 인간 내면세계를 관찰하는 철학적이고 심리학적인 측면인간이 신처럼 거룩한 존재가 있다고 믿는 종교의 신비적인 측면서로 모순되어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인간의 내면을 깊이 성찰하고,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제어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를 있다는 믿음은 상당히 매혹적으로여겨질 있다. 특별히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길 원하는 모든 독립적인 사람들에게 말이다. 윌리엄 페이든은 그의 저서 <종교의세계>에서 불교를 욕망을 넘어서 순수함에 이르려는 자기정화의 길이라고 소개한다,

 

초기 힌두교의 전통 속에서 자라난 불교는 자기정화의 길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총체적인 종교체계이다. 불교의 체계에서는 신의 범주가 중요하지 않다. 불교도의 명상 안내서 <비수디막가/정화의>순수와 열반을 동일시 한다. 불교의 체계에서 궁극적인 목표는 모든 욕망을 제거한 상태인 열반이다. 욕망은 정욕, 탐욕, 성냄, 망상으로 향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올바른 마음과 행위의 상태를 제시하는 팔정도는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분별과 완전의 길이다. 팔정도에는 올바른 지식, 올바른 사유, 올바른 , 올바른 행동, 올바른 생활수단, 올바른 노력, 올바른 정신과 생각, 올바른 명상이 포함된다. 아마도 다양한 형태의 정신적인 불순함에 대해 불교만큼 체계적으로 분석한 종교전통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좌부 불교전통에서는 승려가 순수의 길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상징이다.[4]

 

결과적으로 석가는 세상과 구별되어 따로 존재하는 초월적인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무신론적 세계관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탐욕이나 욕망을 제거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적 세계관은 하나님과 인간의 분리, 인간과 자연의 분리, 인간과 인간의 분리라는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세계관과는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비춰진다석가에게 있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를 제거할 화해자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구원자가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후대 불교에서 나타나는 관세음 보살, 문수 보살, 보현 보살, 지장 보살, 미륵 보살과 같이 중생들을 보살피는 보살들 조차도 석가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존재들로 여겨질 것이. 왜냐하면 석가는 어떠한 타력적인 구원이라도 배척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세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은 힘든 것일까, 쉬운 것일까? 철저하게 자기에게로 문제를 귀결시키는 선종과는 달리,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불교의 종파도 있다. 오로지 염불 하나로만 성불할 있다는 것이다. 나무아미타불반복함으로써 극락왕생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아미타경>타력신앙의 성격을 띤다. 이름을 한번 외치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구원이 약속된다니 엄청난 타인에게로의 기댐이다. 아미타불과 관세음을 이상 불렀으면 서방 정토에로의 극락왕생은 확실하게 보장된 셈이다. 정토종이 주로 여기에 속하고, 미얀마와 월남남방불교에 이러한 성격이 강하다. 가장 대표적인 타력불교는 밀교로 대승후기에 흥성한다사실 불성론이나 여래장 사상도 대승후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타력신앙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여래(석가모니)인격화시켜서 구원을 약속하는 것이다. 이때 부처는 신이 된다. 부처는 신인가? 전통적인 설명에서 불교는 무신론이다. 신이라는 정의가 울고 웃는 인격성을 지닌 초월적인 존재자라면, 불교에 신은 없다. 부처 자신도 깨달은 붓다일, 그가 신은 아니다......원칙적으로 (불교는) 내가 각성하는 종교이지 남이 구원하는 종교가 아니다.[5]

 

석가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의 욕망을 제거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고 가르친다. 그는 해탈하여 자유로워진 존재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뿐나까여, 세상에서 높고 낮은 것을 성찰하여 어디에도 동요하지 않고

적멸에 들어, 연기를 여의고, 고뇌도 없고, 탐욕도 없다면,

그가 태어남과 늙음을 뛰어 넘었다고 나는 말합니다. Stn.1048)

 

그는 것이나 들은 것이나 감지한 것이 어떠한 것이든 모든 현상에 사로 잡히지 않습니다. 성자는 짐을 내려놓아 완전히 해탈했습니다.

그는 분별이 없고, 혐오가 없고, 원하는 바가 없습니다. Stn.914)

 

결국 무지를 벗어나 지혜를 얻어 해탈한 사람은 태어남과 죽음의 반복인 윤회를 끊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신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것이 석가의 주장이다. 이생에서 말이다.

 

무릇 집착하는 바가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없이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

그를 나는 고귀한 님이라고 부릅니다. Stn.635)

 

가지 명지를 성취하고, 적멸에 들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 님이 하느님이며 제석천입니다. 바셋타여, 이처럼 알아야 합니다. Stn.656)

 

<숫타니파타>경에서 학인 마가는 석가를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고 고백한다,

 

세존께서는 오늘 하느님으로 화현하신 것으로 저는 압니다.                                         진실로 당신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Stn.508)

 

결국은 모든 해탈한 자들은 신과 같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고 삶과 죽음의 올무에서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생에서 말이다. 이는 특별히 정신적인 고통에서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이다. 집착을 뛰어넘어 열반에 이른 자들은 불사의 경지, 최후의 몸조차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석가의 주장이다,

 

어떠한 것에도 어리석음이 없고, 모든 현상에 대하여 앎과 봄을 지니고,

최후의 몸을 가지고 없는 깨달음을 얻어, 이처럼 최상의 청정함을 얻었으니

이렇게 오신 님은 헌과를 받을 만합니다. Stn.478)

 

살아서 진리를 깨닫기만 한다면 인간은 과연 신처럼 완전한 존재가 있는가? 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인간이 스스로의 수행으로 진리를 깨달아 완벽한 존재가 있다는 말인가? 과연 인간이 아무리 깨달음을 얻었다한들 불사의 경지, 최후의 몸을 얻게 되어서 신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있을까? 물론 최후의 몸을 가져 신이 자들이 창조자 하나님이 된다는 것은 단연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힌두교의 자연 신들처럼 생사를 초월한 존재가 것이라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힌두교의 신들과는 달리 해탈한(아라한)들은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거룩한 존재가 된다는 주장이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도 이러한 최후의 , 부활하신 예수처럼 영광스럽게 변화된 몸을 말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석가는 이생에서 이러한 영원히 죽지 않는 최후의 몸을 얻을 있다는 주장이고, 사도바울은 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성도들이 이러한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리니 52.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 지리라. (고린도전서 15:51-54)

 

정말 석가는 인간이 해탈하여신적인 존재가 것을 실제로 믿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서 변하지도 않고 영원히 사라지지도 않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해탈의 경지는 세상에는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인간이 불사의 존재내지는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된다는 석가의 주장은 아무래도 상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으리라 여겨진다

 

 하지만 과연 석가가 주장하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가르침(무아론)진실일까? 정말로 영혼이라는 불멸의 실체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지혜의 깨달음을 통해서 과연 인간이 죽음을 초월하는 신적인 존재가 있을까? 문제는 이러한 석가의 주장들은 만약 초월적인 하나님이 정말로 실재한다면 아주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석가의 가르침의 진실여부는 바로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석가의 가르침의 진실성은 유신론이냐 아니면 무신론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있다. 이런 면에서 석가의 사상은 기독교의 유신론과 정면으로 충돌할  밖에 없는 무신론적인 철학 사상인 것이다.

결국 인간이 신처럼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석가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인생무상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서 그 모든 욕심이나 욕망을 다 버리고 나면, 쓸데없는 고통들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정신적인 고통이 없는 평안한 삶을 이 생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고 병들어가는 육신적인 고통과 한계는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생에서 해탈을 이룬 아라한들은 자신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육체적인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자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탈한 자들은 다시 윤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석가의 가르침이다. 이런 면에서 해탈한 자들이 이 생에서 신처럼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석가의 주장은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윌리암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파주: 한길사, 1999), 90. 토마스 하트먼과 마크 젤먼은 그들의 저서, <세계종교산책>에서 불교는 무신론을 가르친다고 기술한다. 세계종교산책 (서울: 가톨릭출판사, 2006), 30. 

[2]Raimon Panikkar, Myth, Faith and Hermeneutics (New York: Paulist Press, 1979), 191, 328.

[3]Ibid, 259.

[4]윌리암 페이든, 종교의 세계 (파주: 청년사, 2004), 203-04.

[5]윤회와 반윤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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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8 [10: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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