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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1.14 [16:02]
석가모니는 왜 신의 존재에 관심 없었나?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4]
 
정성민

지금 배가 고프다. 굶어죽을 정도로 허기진 상태라 찬밥 더운밥 가릴 없다. 배고프면 먹어야 한다. 당장 생사(生死)오락가락하는 판에 영혼이며 사후세계이며 하는 말들은 무의미하다. 석가는 이상이나 내세가 아니라 현실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내가 주체가 되어 이생에서 겪는 현실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석가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제사를 드리라면서 신을 팔아 잇속을 챙기는 힌두교의 타락한 종교행태에 환멸을 느꼈다. 그는 결국 신과 함께 사후세계도 포기하였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 수행을 통해 근심과 걱정이 없는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기로 결심하였다.

 

1. 석가모니를 확실한 무신론자로 단정지을 있는 일화

 

  석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토론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현실성있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직면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할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그러기에 신의존재우주그리고 사후세계같은 이상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다. 왜냐하면 현실적인 삶의 문제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때문이다. 다음은 말룽끼야뿟따라는 석가의 제자가 석가에게 우주와 사후세계에 관한 이상적인 질문이다.

 

존귀한 선생님이시여, 제가 홀로 명상할때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습니다. 당신께서 설명하지 않은 것이 있다. 첫째, 우주는 영원한가? 둘째, 우주는 영원하지 않은가? 셋째, 우주는 유한한가? 넷째, 우주는 유한하지 않은가? 다섯째, 영혼은 육체와 같은가? 여섯째, 영혼은 육체와 다른가? 일곱째, 부처는 사후에 존재하는가? 여덟째, 부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가? 아홉째, 부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가? 열째, 부처는 사후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기도 하는가? 당신께서는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이러한 것이 저에게는 못마땅합니다. 저는 존귀한 선생님께 이러한 것을 묻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저에게 대답을 주신다면 저는 밑에 머물러서 거룩한 삶을 따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알고 계신다면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1]

 

이에 석가는 묻은 화살의 비유들어 말룽끼야뿟따에게 대답하였다.

 

말룽끼야뿟따여, 어떤 사람이 묻은 화살을 맞았다고 하자. 그의 친구가 와서 그를 외과의사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사람이 말했다고 하자. 나를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그가 귀족인지 바라문인지 평민인지 노예인지, 그의 이름과 성은 무엇인지, 그의 키가 작은중간인지, 그의 안색이 검은푸른노란, 그가 어떤 마을이나 도시에서 왔는지를 알아야 겠다.그리고 그가 말했다고 하자. 나를 활을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보통의 활인지 석궁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말룽끼야뿟따여, 사람은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을 것이다. 이와같이 말룽끼야뿟따여, 만약 어떤 사람이 우주가 영원한가 아닌가.같은 문제에 해답을 얻고서야 비로소 나는 부처 밑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는 부처로부터 해답을 얻기 전에 죽어갈 것이다.[2]

 

석가에게 있어서 세상에 대한 집착과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은 마음의 평안함을 얻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고서 마냥 신을 찾아헤매면서 불멸의 영혼을 갈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하였다.


결과적으로
석가는 이상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 인간이 처한 현실적인 괴로움을 풀어주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우주와 사후세계에 관한 그의 제자의 질문에 대답할 필요를 느낄 없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고통 자체였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멈출 있는 실제적인 방법이 그에게 있어서 최우선 순위였다. 그렇다면 과연 묻은 화살은 무엇일까? 석가에게 있어서 묻은 화살은 바로 번뇌의 화살인 것이다. 그는 번뇌의 화살이 우리들의 심장에 박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이 끝까지 반목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혐오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보기 어려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심장에 박힌 화살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화살이든 맞은 자는 모든 방향으로 내닫지만, 화살을 뽑아버리면 내닫지도 않고 주저앉지도 않습니다. Stn.938-39)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심장에 박힌 묻은 화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석가는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바로 묻은 화살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러한 배움의 이치를 암송합니다. 세상에는 족쇄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걸려 들어서는 되니,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을 모두 꿰뚫어 보고 자신을 위해 열반을 배우라. Stn.940)

 

결과적으로 우리가 신의 존재나 사후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것보다 시급한 것은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번뇌의 화살, 감각적 쾌락의 욕망들을 뽑아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의 길에 들어서 욕망이 생겨 난 사람에게 만일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는 화살에 맞은 자처럼 괴로워 합니다. Stn.767)

자신을 위해 행복을 구하는 님이라면, 자신에게 있는 비탄과 애착과 근심과 자기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려야 합니다. 번뇌의 화살을 뽑아 집착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슬픔을 뛰어 넘어 슬픔 없는 님으로 열반에 것입니다. Stn.592-93) 

 

<숫타니파타>셀라의 경에서 석가는 자신의 심장에 박힌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린 위대한 영웅 그리고 악마의 정복자로 묘사되어진다. 이는 우리 내면의 악한 경향, 죄악성을 제거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불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우선 순위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대들이여, 눈을 갖춘 님께서 말씀하시는대로 경청하라.

화살을 뽑아버린 위대한 영웅은 사자처럼 속에서 포효한다. Stn.562)

당신은 깨달은 분이고, 스승이고, 악마의 정복자이며, 성자이십니다.

당신은 모든 악한 경향을 끊고 몸소 건너시고, 사람들을 건네주십니다. Stn.571)

 

결론적으로 석가에게 있어서 신의 존재나 사후세계를 논하는 것은 매우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유는 우리가 지닌 번뇌의 고통을 해결하는데 신이나 내세에 대한 관심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통의 원인과 고통을 제거할 있는 실제적인 방법을 찾는 것이 석가의 최우선 순위였다. 이에 관하여 한국의 학승, 윤호진 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붓다는 불교를 한마디로 정의해서 괴로움과 해탈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했다. 붓다의 표현을 빌리면 나는 단지 괴로움과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만을 가르친다.것이다. 불교의 모든 교리와 실천 방법은 하나의 목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붓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괴로움의 원인을 찾아내고 원인을 제거할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목적을 성취할있도록 했다.[3]

 

그렇다면 인간이 가진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인가? 석가는 우리 내면의 죄악성을 제거하는 것만이 우리의 번뇌를 없애는데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긴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이 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석가에게 있어,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이유는 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잘 보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후세계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석가에게 있어서 죽은 후에 우리의 선한 행위에 대해 보상을 받을 천국과 같은 실제적인 장소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가? 석가는 이 땅에서 경험하는 그 모든 번뇌와 정신적인 고통이 바로 감각적인 쾌락의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욕망을 버리고 거룩하게 살라는 것이다.  탐욕을 버리고 거룩한 삶을 살면 두통이나 정신적인 고통은 저절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일 하나님도 천국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도 동시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이유는 더 더욱 없다는 것이다.차라리 자살을 하거나 쾌락적인 삶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결과적으로 고통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석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인이 거룩한 삶을 사는 이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천국에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나 당위성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1]붓다의가르침과팔정도, 42쪽에서간접인용.

[2]Ibid, 44쪽에서간접인용.

[3]무아, 윤회문제의연구,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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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4 [12:0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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