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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6.22 [10:04]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끄는 전병금 목사
방글라데시 92만 로힝야족 난민촌에 한국NGO로는 처음으로 직접 사업
 
김철영

전병금 목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목사다. 기장 총회 총회장을 역임했고, 옥한흠 목사의 주도로 각 교단 개혁적인 목회자들로 구성된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 대표회장을 맡아 한국교회 개혁과 갱신운동에도 앞장을 섰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 전병금 목사     ©뉴스파워


전 목사는 신학적으로는 가장 진보적인 교단에 속한 목회자이지만 한국 정통보수신학의 대가인 박윤선 박사가 쓴 주석 성경을 가까이 한 목회자이자 20여 년 전에는 진보적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회협)과 보수적인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한 지붕 아래 두 기관으로 하는 연합을 시도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개발을 하면서 환경문제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당시 2010년 제42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면전에서 환경보존을 강하게 강조하기도 했다. 전 목사는 은퇴한 후 인천 영종도에 살면서 지하철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꼿꼿한 선비 목회자 인상으로 비쳐지는 목회자이지만 내면은 부드러운 열린 복음주의자 전병금 목사는 중학교 3학년 때 20세기 사랑의 원자탄 순교자 순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읽고 감동을 받아 평생을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목회를 해왔다. 그가 목회했던 강남교회가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지역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다.

 

전 목사는 3년 전 교회를 은퇴하면서 9년 여 동안 부목사로 같이 사역했던 백용석 목사에게 바톤을 넘기고 지구촌구호개발연대를 설립해 구호와 개발 사업을 이끌고 있다. CBS 재단이사장과 교회협 언론위원장을 맡아 공정한 언론의 사명과 역할을 할 수 있는 든든한 산이 되어 주었던 그가 남은 여생을 지구촌 소외된 이웃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전 목사는 개발이라는 단어가 개발독재 이미지가 있다는 박경서 박사(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김성재 교수 등 이사들의 말을 듣고 ‘개이라는 영어 단어인 ‘development’ 대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무조건적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Agape)’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구촌구호개발연대는 한국의 NGO로는 최초로 미얀마 정권에 의해 탄압을 받고 조국을 탁출해 방글라데시로 간 92만 명의 로힝야족을 돕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로힝야족은 거의가 무슬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이념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들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사업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총무를 역임한 배태진 목사가 상임이사로 섬기고 있다.

 

전 목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531일 오전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6층에 있는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사무실에서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 전병금 목사     ©뉴스파워

 

은퇴 후 근황이 궁금하다.

 

은퇴한 지 3년 됐다. 지구촌구호개발연대를 설립해 지구촌 재난 현장을 방문하고, 한국교회를 대상으로 모금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목회는 그만 두었지만 교계 여러 모임도 참석하면서 여전히 바쁘게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목회할 때는) 시간에 매였다면, 지금은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서 건강도 좋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젊어졌냐고 말한다.

 

 아름다운 세대교체를 이룬 교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담임목회를 45년을 했는데, 그 중 강남교회에서만 37년을 담임목회를 했다. 설립된 지 9년쯤 되는 교회에 부임했다. 후임자도 잘 세웠다. 나는 겉으로는 사랑이 별로 없고 해서 사랑이 많은 사람을 청빙하기 위해 기도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93개월 사역했던 부목사를 청빙했는데 저보다 사랑이 많으니까 훨씬 나보다 인기가 많다. 우리 교회 부목사 출신들이 큰 교회를 많이 섬기고 있는데, 강남교회 출신들이 가는 곳마다 목회를 성실하게  잘하고 있다. 그 가운데 백 목사를 선택한 것이다.

 

한목협 대표회장과 CBS 재단이사장 등을 역임하기도 하셨는데, 은퇴 이후 한국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내가 목회할 때는 연합기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하나밖에 있었다. 그런데 1989년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 생기고, 연합기관이 (보수와 진보로)두 개가 되었다. 한기총과 교회협이 사안별로 서로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나는 오랫동안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할까 고민하면서 기도해왔다.

 

교단은 많이 분열되었지만 연합체라도 하나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고민해왔다. 1999년이 지나고 21세기를 맞으면서 세상은 달라졌는데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99911월 교회협 총회에서 발언을 했다.

▲ 한목협 직전 회장이었던 전병금 목사에게 명예회장 추대패를 전달하는 한목협 대표회장 김경원 목사     ©뉴스파워

  
발언 요지는 대충 이렇다.


그동안 교회협은 군사독재정권에 맞서서 자유와 인권, 평화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다. 세계교회는 독일의 고백교회와 한국의 교회협을 세계 기독교 역사에 기록될만한 운동을 한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서 의식과 신앙일치를 하고, 대사회적인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또한 보수 교회들의 개인적 영적신앙을 사회를 섬기는 것과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하나 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90여 년 된 교회협을 해체해서라도 한국교회 연합운동이 하나로 되어야 한다."

 

그 발언을 했더니 만장일치의 지지를 받아 한국교회 연합을 위한 준비위원회가 만들어지게 됐다.

 

당시 나는 교회협 선교위원장이었는데, 교회협 선교위원장, 헌장위원장, 일치위원장, 신학위원장, 교단 총무들, 각 교단 신학자 1명이 참여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의를 해서 그 가운데 내가 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게 됐다.

 

당시 일본 URM대회에 참석해 김동한 총무와 한국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을 역설하고 그와 함께 그 일을 추진했다. 
 

그레서 한국교회연합을 위한 특별위원회 이름으로 연세대 상남기념관에서 모이기로 하고 교회협 회원교단장을 비롯하여 한국 교회 신학대학이 있는 24개 교단장들을 초청하여 한국교회 연합운동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 토의를 진행했다.

 

그런 결과 진보 측은 내가 위원장을 맡고, 보수 측은 한기총 일치위원장은 최성규 목사가 함께한국교회 연합운동을 하나로 만드는 일을 추진했다. 그래서 24개 신학대학이 있는 교단의 허락을 얻어냈다.  
 

우리 교단만 하더라도 많은 반대가 있었다. 그 이유는 한기총과 교회협이 하나가 되면 교회협의 정신이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 교회의 개인신앙을 사회를 변화를 시키는 일을 함께 해야 한다고 호소해 허락 받았다.

예장합동만 하더라도 기독신문에서 나와 최성규 목사를 초청해서 "만약 이 두 기관이 합쳐지게 되면 WCC운동과 복음주의운동을 병합시켜 갈 것인가를 질문을 했다. 그래서 
에큐메니칼위원회, 복음주의위원회를 두고 서로 대화를 해가면서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예장합동과 예장고신총회도 수용을 해서 결의를 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잘 진행되어 한기총 대표과 교회협 대표, 주요 교단 대표들이 여러 번 모여서 한국 교회 연합을 위한 로드맵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지도자들이 바뀌면서 그 운동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교회협 실행위원회에서 어그러졌다
. 한기총은 하고 싶었지만, 교회협에서 논의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것이 깨지면서 연합운동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한목협에서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때 연합의 기회를 놓쳤지만 어쩌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 교회갱신, 개혁을 나서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러시아 교회가 공산당 혁명시에 사라졌듯이 사라지는 일을 맞이할 수 있다.

 

교회협은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두고 있는데, 거기에 내적 신앙이 보완되어야 하고, 또 보수적인 교회는 내적 신앙운동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는 양극화가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협력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 전병금 목사     ©뉴스파워

 

난민사역, 재난사역을 개발사업 차원으로 접근하는 것은 한국 교회 NGO 중 처음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사업이 특별한 것 같다.

 

처음에는 구호중심으로 하려고 했는데, 우리 이사들 가운데 박경서 박사(현 대한적십자가 총재), 김성재 교수(김대중 정부 문화부장관, 정책수석 역임), 박종화 목사(국민문화재단 이사장), 김영진 전 농림부장관, 채수일 전 한신대 총장 등이 이사로 수고하고 있는데, 구호로 끝나지 말고 개발사역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일치된 생각이었다.
 

개발’(Develomnent)은 개발독재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영문 명칭에는 ‘Develomnent’ 대신 기독교 정신을 담은 아가페’(Agape)로 명칭을 정했다. 영문 명칭은 Global Relief-Agape in Solidarity로 정하고 20166월 16일 외교부 소관 비영리법인으로서 서울시 허가를 받아 설립을 했다.

 

지난 2015년 4월 네팔 지진 피해가 발생했을 때 배태진 목사(상임이사)가 기장 총회총무로 있을 때 네팔에 르와꼿에 임시주택을 200채와 교회 6, 학교 6개를 건축하면서 타운이 이루어졌다. 배 목사가 총무를 그만두고 나와서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는데, 200채 임시주택을 반영구주택으로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지구촌구호개발연대에서 반영구주택 56채를 건축 중이다. 또한 도서관, 어린이집, 컴퓨터 교실, 보건소 등도 짓고 있다.

 

그리고 작년 8월에는 미얀마 로힝야족 92만 명이 방글라데시로 들어왔다. 그들은 1854년 영국이 서남아시를 지배하면서, 인도의 로힝야족을 강제로 미얀마에 이주시켜 미얀마를 지배하는 중간 관리자로 삼았다. 로힝야족은 미얀마를 강압 통치를 한 것 같다. 

▲ 좌측부터 배태진 목사, 전병금 목사, 김철영 목사     ©뉴스파워

  

1947년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자기들을 강제로 억압하던 로힝야족에게 공민권을 주지 않았다. 공민권을 주지 않으니까 불법체류자가 되어 학교 입학도 못하고, 의료 혜택도 못 받고, 직장을 얻지 못하게 되니까 지배계급에서 천민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러면서 로힝야족이 70여 년동 자치를 허락해 달고 투쟁했다. 반군까지 만들어서 미얀마 정부와 싸우고, 경찰 초소 30여 개를 습격해서 방화를 저질렀다. 그래서 미얀마 정부가 그들을 죽이고, 미얀마족의 종교가 불교인데 무슬림인 로힝야족에게 불교로 개종하라고 하자 그들이 순응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미얀마 군인과 경찰은 로힝야 남자들은 죽이고, 여인들은 강간까지 서슴치 않았다.
  미얀마족의 여인과 아이들은 주변국인 태국, 말레이시아, 네팔, 스리랑카, 파키스탄으로 탈출을 하려고 했으나 그들 나라에서 그들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방글라데시는 70여 년 전에 같이 살았던 로힝야족을 난민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 지구촌 방글라데시 구호병원 앞에서 로힝야족과 함께 전병금 목사(우)와 상임이사 배태진 목사(좌)     © 뉴스파워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폭스바잘의 꾸뚜팔롱 지역에 92 여 명의 거대한 난민촌을 만들게 됐다. 그런데 이들을 세계가 그렇게 돕는 것 같지 않다. 유엔(UN)이 그곳에 들어와서 그들을 돕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다른 NGO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을 방치할 수 없어서 우리 지구촌구호개발연대가 병원 건물을 짓고 지금 병원을 운영하고 있고, 그 병원에 와서 강제 강간당한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와 한국의 많은 구호단체들이 로힝야 난민들이 섬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는 한국교회가 로힝야 난민을 도와야 되겠다는 것을 실행위원회에서 결의하고, 한국교회로힝야난민구호연합을 만들게 됐다. 그래서 한국교회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해서 이 시대에 가장 큰 재난을 당한 로힝야 난민들 돕기에 나서려고 한다.

그 일에 주요 간사기관은 한국기독교봉사회가 맡게 됐다. 그 단체의 대표는 내가 담당하고 사무총장은 기독교봉사회의 사무총장이 맡게 됐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뉴스파워

 난민에 대한 관점은 어떻습니까?

 

시리아 난민들이 IS에 의해 세계로 흩어졌다. 영국 같은 나라는 브렉시트를 하면서 난민들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독일 메르켈 총리는 그들을 받았다. 그 때문에 범죄자도 생기고, 살인 사건도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메르켈이 재집권을 못할 줄 알았는데 집권을 했다. 메르켈은 난민을 받아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한 진짜 영웅이다.

 

메르켈의 아버지는 목사였다. 서독 목사였는데, 분단 후 선교를 위해 동독으로 들어갔다. 공산주의 교육을 하니까 메르켈은 가지 않고 주일예배에 참석할 정도로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다.

 

우리나라도 정말 난민이라면 외면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께서 부자와 바리새인과 같이 식탁을 나눈 것이 아니라 죄인과 세리와 창녀들이었다. 그들과 식탁을 나눈 것은 밥만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가르친 것이고, 그들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한국교회도 난민뿐 아니라 북한 굶주리는 아이들, 북한의 독제체제 속에서 시달리는 백성들,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들에 대한 큰마음으로 정책으로 압력을 가하고 해야 메르켈 스타일의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이 가지 않는 사마리아를 경유했다. 그 당시 종교인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족적으로 혼혈이고, 종교적으로는 그리심산에서 제사를 드리는 이단적 성향이있어다. 예수께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마리아를 가는 것은 경계선을 뚫어버린 행보였다. 그것도 남편 다섯이나 겪은 여성을 만난 것은 이단자나 하는 그런 행동을 했다.

 

한국교회가 너무 고정적인 신앙의 틀 곧 주일 출석, 봉사, 십일조 생활,새벽기도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나도 45년 목회를 하면서 한국의 다른 교회들처럼 그렇게 강조해왔다.

그러나 개교회 목회를 떠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것을 고정적인 틀에서만 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됐다. 굶주린 북한 주민, 
 비정규직 노동자, 수많은 실업자 그리고 세계 각지의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섬기는 한국교회로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이어 오는 612일 북미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남북관계 변화를 보면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할까.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을 담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회담을 잘해서 핵무기도 없애고, 미국과 북한이 교류하고, 국제사회에서 남북이 같이 힘을 합치면 엄청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 교회가 복음증거와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해서 예수 믿는 것이 민족을 위하는 것임을 알게 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교회가 괜찮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어야 한다.

 

김일성이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손정도 목사였다고 한다. 손 목사는 정동제일교회 담임하다가 독립운동 하던 만주로 가서 교회를 개척을 했다. 1천여 명이 출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부친이 죽으면서 김일성에게 손정도 목사에 독립운동을 배우고, 의지하라고 했다고 한다. 김일성을 만난 손 목사는 우리 집에서 살자고 했다. 김일성은 손정도 목사의 독립운동을 배웠다.

 

김일성은 미국에서 방북하는 사람들에게 손정도 목사를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고 한다. 기독교의 본래 진리를 잘 가르치면 따르게 되어 있다. 한국교회가 교회를 왜곡시키고 있는 것 같다.

 

김대중 대통령도 말했지만 처음에는 남북이 공존을 하고, 그 다음에는 교류를 해야 한다.공존하고 교류만 할 수 있으면 후세대에서 통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이사장 전병금 목사     ©뉴스파워

  

강남교회를 목회하시면서 기장교단 큰 교회로 성장을 시켰다. 기장 총회 소속 교회들의 교인수가 지난해에 10퍼센트 감소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교단이 선교적 과제를 제시한 것은 선구자적 외침이다. 민주, 인권, 창조질서 보전 등 그 방향 선교정책과 마인드는 옳은 일이다. 그렇게 가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도은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생수의 강이 흐른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속에 있어서 생수의 강이 흘러야 하한다. 민주와 인권, 정의가 흐르려면 예수가 속에 있어야 한다.

 

교회를 하면서도 속에 예수가 없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의 사회운동에 불과하며, 세상 정의운동에 그칠 뿐이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노조와 국회, 시민단체, 지성인들이 하는 것일 뿐이다.

 

복음을 알려면 보수교단처럼 성경을 가까이 해야 하고, 기도생활은 순복음교회처럼 해야 한다. 기독교의 중요한 내적변화, 영성이 없으면 교회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 우리 교회에서 다른 교단들과 함께 큰 행사를 했다. 말씀과 기도생활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 그것이 담보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은 정치적 쇼일 수밖에 없다.

 

은퇴하기 2~3년 전에 총회에서 주제강연을 하면서 교회가 사회운동 그룹에 그칠 수 있을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성경 말씀이 정의와 평화를 말하고 있는데, 단순히 진보신학에서 나오면 안 된다.

      

목회를 해오시면서 좌우명이 있을 것 같다.

 

시골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목회자가 되어서 잘 되기보다 바르게 살려고 했던 것이 감사하다. 항상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높이면서 살아야 겠다 생각한다.

 

내가 좀 뻣뻣한 스타일이라 오해도 받지만, 내 마음 속에는 성도들과 교계 안에서도 부족함으로 예수님의 모습대로 살고 싶어 했다. 그것이 평생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지표로 삼았다.

▲ 지구촌구호개발연대     ©뉴스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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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3 [17:2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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