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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8.19 [01:04]
석가모니는 인도판 종교개혁자 루터?1!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3]
 
정성민

1. 우리에게 석가모니는 어떤 사람인가?

표면상으로 보면, 석가는 불교의 창시자로 기억되지만, 실제로 그는 불교의 창시자이기 이전에 종교개혁자라는 사실이다. 타락한 힌두교를 개혁한 것이 먼저이고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발생은 결과라는 것이다. 석가는 3억이 넘는 자연 신들에게 생사화복을 빌면서 인간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기는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민간신앙을 거부하고, 인간의 운명을 자신 스스로 짊어지는 인간 중심적인 종교를 창시하였던 것이다.

나는 나를 주인으로 하니 외에 따로 주인은 없네. 그러므로 마땅히 나를 다루어야 하나니 말을 다루는 장수처럼[1](법구경, 380)같은 석가의 가르침은 중심적인 종교들을 배격하고 인간 중심적인 삶을 천명한 것이라 있다. 이러한 석가의 인간중심적이고 자력적인 구원에 대하여 <불교사상의이해>이렇게 진술한다,

 

불교에서 인간의 병으로 진단하는 것이 바로 세상과 자기에 대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과 그로 인한 각종의 그릇된 행태이다. 그러므로 치료방법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는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내는있어서 전적으로 관건을 쥐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다. 물론 밖으로부터의 영향이 전혀 작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결국 모두가 주변적인 것이고, 자신의 병을 치유할 이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2]

 

석가는 의인화된 수많은 자연 신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신의 존재의 유무는 수가 없다는 무신론적이고도 불가지론적인 입장을 주장한 자체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었다. 나아가 운명의 주체가 중심에서 인간으로 전환되었기에 업보를 강조하는 전통 힌두교의 수동적이고 숙명적인 윤회설보다는 인간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보다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윤회설을 주장했던것이다.

 

그렇다. 석가는 기복신앙으로 점철된 힌두교의 중심적인 종교를 인간 중심적인 종교로 탈바꿈한 종교개혁자인 것이다. 석가는 인간은 자신이 자신의 피난처이다. 다른 누가 피난처가 되겠는가?라고 말했듯이 자신의 제자들에게 제자들 각자가 자신의 피난처가 되어서 신과 같은 초월적인 대상들에게 조차도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석가는 우리들 각자가 우리 자신을 의지하고 우리 자신을 계발해서 우리 스스로 해탈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사용하여 모든 고통과 속박에서 벗어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자력적인 종교로서의 불교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인간의 자유와 능력에 관하여 월폴라 라훌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붓다가 제자들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은 이러한 개인적인 책임의 원리 때문이었다...... 붓다가 허락한 생각의 자유는 어떠한 종교의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다. 붓다에 의하면, 인간의 해탈은 진리에 대한 자신의 자각에 기인하는 것이지 헌신적인 선행에 대한 보수로서 드리워지는 영예로운 은총이나 외적인 힘에 의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자유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3]

 

2. 마르틴 루터가 구교의 타락을 혁신하였듯 석가는 힌두교의 문제점을 깨부수었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로서의 석가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과학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철학자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것도 무신론적인 철학자이기에 그렇다. 석가는 맹목적인 믿음을 거부하는 철학자로서 매우 현실적인 합리적인 사고를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신들, 특별히 자연 신들을 거부하였는데, 이유는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세상의 악이나 고통이 만연할 있느냐는 합리적인 추론에 의한 결과이다.

석가는 또한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다는 힌두교의 유아론을 거부하였다. 그에게 존재란 단지 물리적인 힘이나 정신적인 에너지의 집합에 불과한 것이다. 영원하다고 우리가 믿고 있는 영혼의 존재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그는 사후세계도 부정하였다. 이유는 현재의 자아나 영혼과 동일한 불변의 실체가 사후에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의 학승 라훌라는 이러한 석가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원하고 불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똑같이 이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므로 분명히 영원하고 불변한 것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파괴되지 않은 채로 지속하지만 순간마다 변화하는 연속이다. 연속이란 실제로 움직임 자체에 지나지 않는다. 밤을 새워 타는 불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불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불꽃도 아닌 것이다...... 이처럼 여기서 죽은 사람과 다른 곳에서 윤회하여 태어난 사람은 같은 사람도 아니고 다른 사람도 아니다.[4]  

 

결과적으로 죽음은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로서 이해가 되는 것인데, 이는 인간 존재가 심리적이고 물리적인 유기체에 불과하다는 현대무신론 철학자들의 입장과도 동일한 것이다. 이러한 무아론은 석가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고 영혼을 단지 두뇌활동이나 중추신경계의 작용이나 활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마음과 , 영혼과 육체를 동일하게 보는 심신동일론동일한 주장이라고 있다석가에게 있어서는 육체를 떠나서 정신이나 영혼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을 없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석가는 현대무신론 심리철학의 선구자로 수도 있다. 이러한 석가의 심신동일론, 무아론에 대하여 한국의 학승, 윤호진 스님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와같이 5요소(오온)모여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형성하면서 라고 불리는 것이다..... 5가운데 첫째 온인 ()인간의 육체로서 죽은 화장을 하면 그것은 즉시 재로 변해 흩어진다. 역시 속에 매장을 하는 경우에도 얼마 지나지 않아 부패되어 흙과 물로 되돌아간다. 육체는 , , , 4대로 분해되어 원래의 상태로 환원해 버린다. 이와 같은 사실 앞에서 육체가 고정 불변적인것도 실체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할 있다. 그러나 정신적인 문제는 다르다. 소위 말하는 영혼이나 아트만과 같은 실체적인 것이 존재해서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 정신적인 기능을 맡고 육체가 사라진 뒤에도 소멸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생각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은 육체보다 정신적인 부분에 대해 훨씬 많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붓다는 차라리 육체에 대해서 나와 나의 것이고 얽매일지라도 정신대해서는 나다, 나의 것이다라고 얽매여서는 된다.가르쳤다. 왜냐하면 육체는 10, 20, 30내지 100동안 활동하는 것을있지만 정신은 , 낮과 때를 다투어 생기고 소멸하기 때문이다.[5]

 

3. 석가가 환생했다면 무신론적 철학자 니체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과연 석가모니는 누구인가?
번째로, 그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무신론 철학자라는 것이다.
번째로, 석가는 자신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민간신앙을 비판하고 개혁을 시도한 종교개혁자라는 것이다. 그는 힌두교의 유신론, 유아론, 유신론적 윤회론 등을 부정하면서 타력적인 종교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인본주의적인 종교개혁자이었다. 석가는 초월적인 신이나 영원한 영혼의 존재, 그리고 그로 인한 사후세계는 불가능한 것이고, 단지 자연법칙만이 존재하는 세계만이 진실한 세계라고 믿었던 것이다.

셋째로 석가는 불교의 창시자이다. 그는 타력종교로서 힌두교의 타락과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하는 자력종교의 세계를 열어 놓은 종교창시자인 것이다. 힌두교의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신앙을 비판하는 부정적인 입장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한 종교 창시자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석가는 자신이 가르친 구원의 길을 스스로 행한 성인이라는 것이다. 구원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를 스스로 행하면서 극도의 금욕의 길을 걸어간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인 우리들조차도 석가를 성인의 사람으로서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신을 팔아서 금권에 집착하는 타락한 종교 사제들의 잘못된 행태를 타파하고 스스로 금욕적 정진을 통해 깨달음과 구원의 세계인 열반의 경지에 이르려고 석가의 피나는 노력은 어쩌면 인간의 경지를 뛰어넘은 초인간적 행보라고 보아야한다.

 

 

 



[1]

[2]불교사상의이해, 32.

[3]붓다의가르침과팔정도, 22-24.

[4]Ibid, 74.

[5]윤호진, 무아, 윤회문제의연구 (서울: 불광출판사, 2015), 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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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2 [02:5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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