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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20 [05:03]
석가모니는 왜 속세 버리고 수도자가 됐을까?
정성민 교수가 쓰는 [예수와 석가모니 2]
 
정성민

 

우리가 있는 역사적 부처, 석가모니의 생애는 어디까지가 사실일 것인가? 부처가 세상에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난 것은 기원전  586년이라고 한다. 그가태어난 곳은 갠지스유역에서 형성되고 있던 새로운 역사의 중심지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석가모니가 속한 석가족은 코살라 왕국의 통치하에 있었는데 그의 부친 정반왕은 코살라 왕국에 속한 작은 왕국의 통치자이었다. 석가모니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 호화스럽게 자라났고, 결혼을 하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결국 세속을 떠나서 떠돌아다니며 구도하는 수행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석가모니는 갑작스럽게 부유한 삶을 포기하고 떠돌아다니는 수행자의 삶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숫타니파타>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마가다국의 빔비싸라 왕은 서서 궁전위에서 (석가모니)보았습니다. 뛰어난 특징을 갖춘 님을 보고 이와 같이 말을 했습니다. Stn.409) 당신은 아직 어리고 젊습니다. 싹이 트고 있는 청년입니다. 용모도 수려하니 고귀한 왕족 태생인 같습니다. Stn.420)

(이에대해석가모니는다음과같이답합니다.) 왕이여 저쪽 히말라야 중턱에 국가가 있습니다. 꼬살라 국의 주민으로 재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Stn.422)

씨족은 아딧짜하고, 종족은 싸기야합니다. 그런 가문에서 감각적 욕망을 구하지 않고, 왕이여, 나는 출가한 것입니다. Stn.423)   

 

<중아함경> 56라마경은 석가의 출가사유를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출가한 것은 병듦이 없고, 늙음이 없고, 죽음이 없고, 근심 걱정 번뇌가 없고, 더러움이 없고, 가장 안온한 행복의 삶을 얻기 위해서였다.

 

또한 <잡아함경> 14 346경도 석가의 출가사유를 <중아함경>거의 동일하게 묘사한다,  

 

세상에 만약 늙고, 병들고, 죽는 가지가 없었다면 여래(붓다)세상에 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풍성한 열매에는 반드시 튼튼한 뿌리가 떠받치고 있듯 모든 일의 결과에는 반드시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배경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상의 부와 권력을 지닌 석가모니가 출가하게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이제부터 석가모니가 출가한 시대적인 배경과 개인적인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필자가 가지 이유를 주관적으로 추측하자면 이렇다.


첫째로,
석가모니의 신분이 비록 왕자지만 인도의 계급제도에 의하면 2신분계급인 크샤트리아다. 카스트라는 신분제도는 석가의 시절에도 매우 엄격했다고 한다. 석가는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는 이러한 제도를 몹시 싫어하였기에 그가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아예 카스트제도를 부정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해 충북대학교 정세근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사성계급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말한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아샤, 수드라를 일컬어 4계급이라고 한다. 카스트는 석존시절에도 매우 엄격했다. 석가는 샤카라는 성으로 크샤트리아 계급에 해당한다. 석가가 계급타파를 부르짖은 것도 자신이 브라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 밖에 없었다는 해석이 나올 정도로 당시에도 카스트는 엄격했다. 종종 브라만과 크샤트리야는 반목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석가는 깨달음 이후 카스트를 부정했다.[1]

 

게다가 자신의 나라는 코살라 왕국에 속하는 아주 작은 속국이라는 것이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에서 편찬한 <불교사상의이해>샤카족은 주로 벼농사를 짓던 작은 부족이었고, 카삘라와스뚜는 당시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였던 코살라의 부속 국가였다.진술한다.[2] 석가는 크샤트리아 신분으로 그리고 속국의 왕자로서 무엇인가 서러움과 답답함을 나이가 들면서 느꼈을 것이고, 자신의 힘으로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과 함께 울분도 느꼈을 것이라 추측할 있다.

둘째로, 브라만 계급의 타락이다. 브라만들이 자신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제사장 계급이라고 특권의식을 나타내는 것과 신에게 드리는 제사를 자신들이 집전하면서 누리는 특권들을 바라보면서 석가모니의 마음은 정의심에 불탔을 것이다. 이러한 석가모니의 불타는 정의심은 <숫타니파타>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소들의 무리에 둘러싸이고 아름다운 미녀들이 뒤따르는 인간의 막대한 부를 누리고 싶은 열망에 바라문들은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다의 진언들을 편찬하고, 옥까까 왕에게 가서 말했습니다. 당신의 재산도 곡식도 풍성합니다. 제사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보가 많습니다. 제사지내십시오. 당신은 재물이 많습니다.

그래서 수레 위의 정복자인 왕은 바라문들의 권유로 말의 희생제, 인간의 희생제, 막대를 던지는 제사, 쏘마를 마시는 제사, 아무에게나 공양하는 제사, 이러한 제사를 지내고, 바라문들에게 재물을 주었습니다. 소들과 침구와 의복, 치장한 여인들, 만들어지고 아름답게 수놓아진 준마가 이끄는 수레, 여러 방으로 나뉘어 있고 배치된 화려한 주택을 여러 가지 식량을 가득 채워 바라문들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그들은 재물을 얻어 축적하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욕망에 깊이 빠져들자, 그들의 갈애는 더욱 늘어만 갔습니다. Stn.301-06) 

 

셋째로, 석가모니 자신의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성향이다.이는 그가 태어난 7만에 그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인생무상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러한 마야부인의 허망한 죽음에 대하여 무샤고지 사네아츠의 <붓다>이렇게 묘사한다,

 

그러나 인생은 무상한 것이다. 마야부인은 태자가 태어난 이레 만에 행복했던 이승을 떠나야만 했다. 왕은 부인의 죽음에 몹시 슬퍼했다. 죽은 왕비가 못내 가련하기만 했다.[3]

 

이러한 가지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에다가 석가모니 자신만의 독특한 신분적 위치와 유아기적 아픔들이 석가모니로 하여금 현실을 포기하고 광야로 뛰쳐나가게 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사실 석가모니가 처한 상황 속에서 그가 취할 있는 방법이나 방향은 가지 중의 하나인 것이다. 하나는 브라만을 중심으로 하는 불합리한 계급사회구조를 뒤엎기 위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개혁을 통해 사회정화운동을 일으키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힘으로 바꿀 없는 사회를 바라보며 허무주의에 빠져 철학적 몽상가가 되거나 그냥 모든 것을 체념하고 세상을 즐기는 풍류가가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석가모니가 선택한 길은 정치적인 혁명보다는 사람의 정신을 만지는 사회정화운동이었던 것인데, 이는 어쩌면 바로 예수가 택한 길과 유사하다고 있다. 석가모니는 노인과 병자, 화장되는 시신들 그리고 걸식하는 구도자들을 보고 마음의 충격과 도전을 받게 되었고, 결국 부인과 아들을 떠나 떠돌아다니면서 극도의 금욕적인 삶과 명상의 삶을 살아가게 것이다. 이에 대해 <불교사상의이해>이렇게 묘사한다,

 

싯다르타는 카삘라와스투의 , , 서쪽 성문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도중에 그는 성문 밖에서 몹시 쇠잔하고 추해진 노인과, 괴로움으로 신음하는 병자와, 슬픔의 장례 행렬을 차례로 목격한다. 여기서 늙고, 병들고, 죽는 인생의 괴로움의 문제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북쪽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나무 아래 단정히 앉아 수도하는 수행자를 만난다. 만남은 앞의 경우들과는 달리 그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그리하여 싯다르타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도 출가수행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는것이다.[4]

 

그리고는 마침내 지금의 부다가야에 있는 보리수아래에서 세상의 이치와 고통을 극복할 있는 길을 깨닫게 된다. 드디어 그는 붓다, 부처라 불리게 것이다. 부처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그는 바라나시 외곽의 사르나트에 있는 사슴공원에서 번째 가르침베풀게 되는데,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부른다. 이는 처음으로 (진리에대한가르침)수레바퀴를 굴렸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동료수행자들이 그의 제자들이 되었으며 나아가 승가라는 수행공동체가 형성되어 새로운 종교집단의 핵심이 되었다.

석가는 후로 80세까지 45동안 여러 곳을 다니며 가르침을 펴고 승가 조직을 다듬었다. 그는 왕과 왕족들뿐만 아니라 매춘부와 대장장이들과도 교제하며 누구에게든지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 해탈의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나이 80세에 이르러 마침내 소화장애로 탈이 나면서 죽음을 맞이 하였다. 석가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교훈을 남겼는데, 이는 모든 존재는 영원히 존재하는 실체가 없기에 삶의 여러 가지 요소가 일시적으로 화합하여 생긴 무상한 것이며, 석가 자신도 또한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임을 보여준 것이다. 석가도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석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결국 익은 과일처럼, 떨어져야 하는 두려움에 처합니다. 이처럼 태어난 자들은 죽어야 하고 항상 죽음의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Stn.576) 젊은이도 장년도 어리석은 이도 현명한 이도 모두 죽음에 굴복해 버립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Stn.578)

 

석가는 자신의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후계자를 지정하여 새로운 종교로서 구조와 질서를 찾는다면 그의 가르침에 역행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가모니가 죽은 , 그의 신자들은 그의 시신을 화장했고, 남은 유해는 각지로 나누어져서 석관에 안치했다. 그리고 그것이 후대에 봉분이나 또는 고전시대 불교 사원의 중심이 탑으로 발전되었다.[5]

 

그렇다. 석가가 출가한 이유는 생노병사라는 인생의 고통을 극복하는 비결을 터득하기 위하였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생노병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이다. 생노병사는 바로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석가는 그러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 특별히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이치를 거부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단코 사후세계를 보장받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 쓸데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결국, 석가가 출가하여 궁극적으로 깨달은 것은 바로 인생무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생의 무상함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비로소 평안이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1]정세근, 윤회와반윤회 (청주: 충북대학교출판부, 2013 수정증보판), 24.

[2]윤원철외 14, 불교사상의이해 (서울: 불교시대사, 1997), 52.

[3]무샤고지사네아츠, 붓다 (서울: 현암사, 1999 개정초판), 20-21.

[4]불교사상의이해, 54.

[5]세계의종교, 81-93 참조. 또한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m: Teachings, History and Practice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26-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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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6/01 [17:3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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