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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7 [15:03]
‘판문점 선언’의 역사적 위치를 살핀다
이만열 박사(숙명여대 명예교수) 다산칼럼
 
이만열
▲ 이만열 교수(전 국사편찬위원장)     ©뉴스파워

우리는 앞에서 1972‘7·4 남북공동선언부터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까지 보았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노태우 정권이 수행한 대북 및 북방정책이다. 노 정권은 1990년 전후하여 사회주의권이 붕괴될 때 남북 간의 중요한 공동선언들을 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1988‘7·7선언의 연장선상에서 북방정책을 감행하여 중국,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했다. 이 때 북한도 미국·일본과 국교수립에 성공했다면, 핵개발의 유혹을 덜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은 북한과의 수교를 거부했고 북한은 그 반발로 핵개발에 나섰다. 이게 ‘40년 가까이 지속된 북핵 문제의 배경이자 본질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1차 북핵 위기에 직면한 한반도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다.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김영삼·김일성 남북정상회담이 마련되었지만 199478일 김일성의 사망으로 무산되었고, 이어서 19941021일에는 제네바에서 북한과 미국 간의 핵무기 개발에 관한 특별계약이 타결되어 북핵 문제는 일단 가라앉았다. 그 뒤 1997년 외환위기로 IMF 사태가 몰려왔고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4. ‘6·15 남북공동선언문’(2000.6.15.)

1998년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구하면서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한 선언문이다. 1991~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었지만, 남북관계는 패러다임 전환의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바로 햇볕정책이다. 전문 5개 항으로 된 이 공동선언은 친척방문단 교환과 비전향장기수 문제, 사회 문화 분야의 교류의 활성화 및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 등의 합의를 명시했다. 중요한 것은 제2항의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것으로, 이는 통일을 지향하는 새로운 공간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5.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일명 ‘10.4선언’, 2007.10.4.)

노무현 대통령이 200710월 초 평양을 방문,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합의하여 발표한 공동선언이다. 2006109일 북한이 1차 핵실험을 단행한 후 국제사회의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합의·발표한 것이다. 선언의 내용은 전문과 8개 항으로 되어있는데, 각 항마다 구체적인 실천 사항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 선언은 정전체제의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체제의 구축을 강조하고 경제협력과 관련,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와 공동어로수역 설정, 경의선 철도와 평양~개성 간 고속도로 공동이용 등 남북이 협력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나열해 놓았다. 그러나 이 선언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5개월을 남겨 놓은 때에 이뤄져 그 실천동력을 얻기 어려웠고, 정권이 바뀌자 후임 정권은 이를 전혀 실천하지 않았다.

 

6.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판문점 선언’, 2018.4.27.)

발표된 기존의 선언들을 총화한 데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형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사이에 이뤄졌다. 전문과 3개 조 13개 항의 실천내용을 구체화한 이 선언은 남북관계의 개선과 공동번영·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기 위한 노력,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와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는 문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력 등을 아주 세부적으로 지적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2018년 가을, 평양방문도 약속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의 핵심 골자는, 한반도의 완전 비핵화,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그리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증진,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판문점 선언이전의 공동성명들에서 거의 언급된 바 있으나, 핵 문제에서 완전한 비핵화로 명시한 점은 질적인 차이가 있다. 위에서 지적한 세 가지 중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완화와 교류협력 증진은 남북관계에서 적용되어야 할 문제이지만, 핵문제는 제네바 협의6자회담 등에서 보였듯이 남북 사이의 문제일 수만은 없었는데 북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기한 것은 세계사적 의의가 있다. 정전체제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도,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2차대전 및 냉전체제의 유물을 가장 늦게 종식시킨다는 점에서 그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판문점 선언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판문점 선언은 그 앞의 선언들과 비교해 볼 때, 한반도의 통일과 남북관계의 큰 원칙을 제시한 점에서는 ‘7·4 공동선언’(1972)‘6·15 남북공동선언문’(2000)을 참조하고, 남북관계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점에서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1991)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2007)의 내용을 답습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판문점 선언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발표된 여러 공동선언들의 정신과 실천사항을 녹이고 온축시켜 작성했다는 뜻이다. 특히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합의서’(1991)가 그 뒤의 ‘10·4선언’(2007)판문점 선언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판문점 선언에서 제시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실천방안 중, 서해 평화수역문제나 남북철도 연결문제 등은 ‘10·4선언에서 이미 거론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 남북관계 및 통일 운동사에서 그 가치가 돋보이는 판문점 선언은 그 앞에 발표된 여러 공동선언들을 온축·여과시키는 과정에서 작성된 역사적 산물임을 알 수 있다.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선언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민족 공동번영과 통일의 길로 향하는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라고 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위대한 역사는 그 시대 인간들의 성실한 노력과 뜨거운 숨결로 이뤄지며 그 길에는 외풍과 역풍도 있을 수 있고 좌절과 시련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판문점 선언이 외풍과 역풍, 좌절과 시련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공동번영과 통일을 완수토록 하는 것은 남북·해외의 우리 8천만 민족 책임임을 다시 통감한다.

   

이만열 박사.

· 숙명여대 명예교수

· 사학자(전 국사편찬위원장)

 

· 저서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지식산업사, 2014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지식산업사, 2010

역사의 중심은 나다현암사, 2007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푸른역사, 2007

역사에 살아있는 그리스도인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03

한국기독교의료사아카넷, 2003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바다출판사, 2000

단채 신채호의 역사학 연구문학과지성사, 1990

한국 기독교 수용사 연구 두레시대, 1998

 
*다산연구소 실학산책에 기고한 칼럼을 재게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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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5/20 [14:3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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