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버전으로 보기 ▶
교계뉴스문화/교육국제/NGO/언론생활/건강파워인터뷰오피니언연재정치/경제/사회한 줄 뉴스
전체기사보기
편집  2018.10.18 [01:02]
박용규 교수 "찰스 피니 신학 비판했다"
정이철 목사('바른믿음' 운영자)의 "피니 글 수정" 요구에 반박
 
김철영

 

▲ 박용규 교수(총신대)     ©뉴스파워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의 담임목사이자 인터넷 <바른믿음>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정이철 목사가 총신대 신대원 교회사 박용규 교수가 쓴 세계부흥운동사(서울: 한국기독교회사, 2016)에서 찰스 피니 등을 다루면서 그들을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며 관련 내용의 수정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찰스피니의 문제점도 지적했다고 관련 내용을 본지에 보내왔다
. 박 교수는 자신의 책 중 <13장 찰스피니와 미국 제 2차 대각성운동> (pp.576-580) "찰스 피니의 부흥관, 그 예찬과 비판"(pp.576-580)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박 교수는 스튜어트 피긴은 그의 자서전을 읽은 후 피니의 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피니가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고, 기도가 부흥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며, 일상용어를 사용하여 집회를 인도했고 구령의 열정에 불타올랐으며 자신의 핵심 논점을 반복적으로 청중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박 교수는 이어 분명 하나님께서 피니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를 통해 가는 곳마다 부흥이 놀랍게 일어났다. 게다가 피니는 부흥운동을 사회개혁과 연관시켜 노예제도를 반대하고 여성의 지위를 고양하고 기독교의 대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참으로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찰스 피니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하고 있다. 다음은 박 교수의 글이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피니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그의 인간론과 부흥관이었다. 그는 칼빈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청교도 전통의 지도자들이 수납해온 원죄와 인간의 전적 부패를 가르치지 않았다. ‘죄인들은 본질상 부패한 것이 아니라 의지적 결심을 하지 않아 부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죄는 우리의 자유의지의 사용 측면에서의 인류의 이기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이해했다. 우리의 의지를 바르게 사용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인간의 의지적 결단을 내리지 않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보았다.”

   

박 교수는 인간론 못지않게 피니가 비판을 받아 온 것은 그가 이해한 부흥관이라며 그를 통해 일어난 부흥이 참된 부흥이었느냐 하는, 부흥의 진위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를 통해 발흥한 놀라운 부흥은 분명 성령의 역사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박 교수는 또 부흥과 관련하여 피니의 문제는 부흥에 대한 그의 관점이었다. 피긴이 지적한 것처럼 피니는 부흥이 기적이 아니라 정형화된 수단의 바른 사용의 결과라고 믿었다. 자기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면서 피니는 인간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찰스 피니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오랫동안 교회는 부흥을 하나의 기적, 혹은 신적 능력의 개입으로 생각해왔다. 목사들이 일정한 수단을 사용하여 얼마든지 부흥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부터이다. .... 하나님께서는 부흥을 기적으로 이해하던 이론을 완전히 뒤집어 놓으신 것이다.”

 

박 교수는 스튜어트 피긴이 지적한 것처럼 부흥주의 혹은 부흥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인간적 기술과 프로그램은 그가 1790년부터 1830년까지의 소위 뉴욕 주의 ‘ 2차대각성운동에서 자신의 놀라운 체험과 성공으로부터 발전시킨 찰스 피니의 새로운 방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인간의 죄성과 원죄를 강조했던 에드워즈와 달리 낙관론에 기초한 그의 부흥관은 전통적인 부흥회 스타일을 바꾸어 놓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어 피니는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바치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서 앞자리에 앉기를 호소했고, 은혜를 받기 위해 즉시 결단할 것을 촉구했다.”이 같은 피니의 부흥 이해는 그의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피니는 인간에게는 복음을 듣는 자들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교수는 또 인간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결단을 통해서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 인간은 어떤 행동인가를 해야 한다고 보았다. 만일 이것을 반대하면 복음적 설교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피니는 생각했다.”부흥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부흥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고, 교회가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다시 피니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당신이 왜 부흥을 체험하지 못하는 줄 아는가? 그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즉 당신이 부흥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위해 기도하지도 않고 갈망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위해 별 노력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1820년대 중반에 10년 동안 내가 알고 있는 몇몇 목사님들이 계속해 왔던 노력들을 온 교회가 한 몸이 되어 함께 하였더라면 지금쯤 이 땅에는 회개하지 않은 완고한 죄인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만약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다 수행한다면 천년 왕국은 3년 안에 이 나라에 임할 수 있다. 만약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의무를 수행한다면 전 인류 복음화는 머지않은 날에 완성될 것이다.”

박 교수는 피니의 낙관주의 인간론에서 역사가들은 일정한 법칙을 따르고 조건만 충족시키면 언제든지 부흥이 임할 것이라는 피니의 부흥주의’(revivalism)를 이전의 에드워즈의 부흥운동’(revival)과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확실히 부흥에 대한 에드워즈와 피니의 견해는 차이가 있었다.”윌리엄 맥로히린(William McLoughlin)의 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피니의 차이는 본질적으로 중세와 현대 사상의 차이이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기도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피니는 부흥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에드워즈는 부흥이 기도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으나 피니는 부흥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박 교수는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주시는 것이라며 미국의 적지 않은 교회사가들은 이 같은 피니의 낙관적인 부흥운동의 견해가 원죄를 부인하는 펠라기안적 인간의 본성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고 의심의 눈총을 보냈다. 실제로 피니는 무조건적 선택교리와 불가항력적 은혜를 비롯한 칼빈주의 교리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인간의 원죄와 인간의 전적 부패의 교리를 반대해 프린스톤 신학자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았다. ”고 밝히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인간의 책임, 인간 자신의 역할, 결단 여부가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견해는 바울-어거스틴-칼빈으로 이어져온 역사적인 기독교 인간론과는 대립되는 견해라며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거부하고 인간의 결단 여부를 강조한 결과 찰스 피니는 인간의 구원에서 자신의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는 현대주의의 낙관론적인 구원관으로 이어지는 브리지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박 교수는 찰스 핫지가 지적한 것처럼 죄인들이 스스로 거듭날 수 있으며, 자신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회개하고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이 교리처럼 영혼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교리는 없다.’”이런 이유로 피니는 부흥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라고 믿지 않고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일정 조건이 갖추어지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믿었다. 철저한 회개, 복음전파, 기도의 실천을 통해 얼마든지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 정이철 목사가 운영하는 바른믿음 사이트.     ©뉴스파워

 

 

박 교수는 그래서 피니는 부흥론에서 부흥을 촉진시키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길 것을 촉구했다.”자신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는 것을 목도하면서 피니는 부흥의 저자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여기 있다.”인간의 결단과 의지적 행동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피니의 사고는 지금까지 역사적 칼빈주의 입장을 견지해온 이들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를 만인구원설을 주장하는 자라고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는 만인구원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며 다음과 같이 찰스 피니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은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믿음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의무인지 자주 묻는다. 그럴 리가 없다. 왜냐하면 만인 구원설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인 구원설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과 상반되며, 또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하여 동정심을 느껴야 하며, 또한 그들의 구원을 바라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저주받게 될 것이라고 계시하셨다. 따라서 정 반대로 가르치고 있는 계시 앞에서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것이라고 믿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 수는 없다."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1730년부터 1830년경까지 지배하던 부흥운동의 견해 곧, 부흥운동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는 견해는 찰스 피니가 등장하면서 일대 수정을 맞았다.”그는 부흥운동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인간의 노력에 의해 그것이 발흥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정이철 목사는 박용규 교수를 비판하는 글 중 총신대 신대원 이상웅 교수의 페이스북 글을 발췌해 박용규 교수를 비판했다.

 

정 목사는 어제 또 한 분이 박용규 교수의 신학과 관련된 내용이라면서 제보하였다. 총신대 신대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한 교수님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찰스 피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물론 박용규 교수를 의식하고 쓴 글은 아니지만, 찰스 피니의 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주는 내용이라며 이 교수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다음은 이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어제 오후 7:30· 사당 수업 마치고 세 번째로 또 제출해야하는 승진 심사 자료 박스 회수하여 무거운 마음으로 양지로 돌아와 노회 사무실에 발송할 등기우편 챙기고 ... 연구실에 잠시 앉아 베일러 대학의 알미니안 로저 올슨이 쓴 <Arminian Theology>를 펼쳤다. 며칠 동안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찰스 피니의 신학적 정체성 문제 때문이다. 올슨은 전적타락, 대속론 등을 부정한 피니를 알미니안이 아니라 세미 펠라기우스주의에 더 가깝다고 비판한다. 그를 존경하지만, 그의 신학은 ‘bad theology’란다(Roger Olson, Arminian Theology [IVP ], 26-28, 237).

 

어쩐다! 알미니안 신학자가 피니를 자신들 보다 더 나간 세미 펠라기안이라는데, 왜 국내에서는 그를 칼빈주의자로 추켜세우는 학자들이 있는걸까? 정말 피니의 조직신학을 들추어 보기라도 한 것일까? 그가 2차 대각성 시 쓰임 받았다는 게 그의 신학의 건전성을 보증하는 게 아닌데 ... 왜 구별을 못하는 걸까? 누가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이상웅 교수는 지난 4일 바른믿음 사이트 관련 글 밑에 댓글을 올려 자신의 SNS에 쓴 글은 박용규 교수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라며 삭제를 요구했다.

 

이 교수는 특히 박 교수님이 1992년 겨울호 신학지남에 박교수님이 기고하신 바 "찰스 피니와 완전주의"(594: 131-159)라는 논문을 찾아서 읽어 보았다. 157쪽에 보면 박용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피니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비판했고, 피니와 오벌린신학교의 완전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교수가 정 목사에게 쓴 글이다.

 

정이철 목사님께

총신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상웅교수입니다.

피차 전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학교동창회 홈피에서 검색해 보니 88회 동기라고 뜨더군요. 언젠가 스치고 지나가면서라도 여러 차례 보았을 터인데 서로를 기억할 수가 없네요.

 

위에 쓰신 기사를 누가 알려 주어서 읽어 보고 당사자 중 하나가 되어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일단 박용규교수님과의 논쟁에 저의 페이스 북 글을 이렇게 무단으로 덧붙여 비록 박용규교수를 겨냥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단다고 해도 많은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목사님의 기사 편집은 제자이자 후배교수인 제가 박교수님을 비판하는 것으로 읽혀질 수 밖에 없음을 알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430일에 올린 포스팅(인용하신 바)은 전혀 박교수님과 상관없는 일입니다. 복음주의 권 안에서 찰스 피니를 복음주의자를 넘어 칼빈주의신학자로 말하는 몇 몇 신학자들(총신 신학자들 아닙니다)과 그 영향하에 있는 목회자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하는 대상이 전혀 다른데 제 글을 따다 붙이시어 목사님의 논조에 이용하는 것은 전혀 온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 저에 대한 인용을 삭제하시기를 바라고, 더욱이 초상권 침해랄 수 밖에 없는데 기독신문에서 무단으로 가져온 제 사진도 삭제해 주시기를 정중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목사님의 기사에 놀라 일부러 박 교수님이 1992년 겨울호 신학지남에 박교수님이 기고하신 바 "찰스 피니와 완전주의"(594: 131-159)라는 논문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157쪽에 보면 박용규 교수님은 다음과 같이 피니가 칼빈주의자가 아니라고 분명히 비판했고, 피니와 오벌린신학교의 완전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했습니다.

 

"찰스 피니는 결코 전통적인 의미의 칼빈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안의 전통속에서 그의 신학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의 후기 신학은 초기보다도 더욱 반칼빈주의, 친알미니안주의적이었다. 피니의 완전주의 역시 웨슬리안 완전주의에서 빌려온 것이다."

 

박교수님이 쓰신 세계부흥운동사는 제가 읽어보지 못해서 논급할 순 없지만, 평소에 죽산 박형룡과 개혁신학에 대해 박교수님이 보여주신 분명한 입장을 잘 알고 있고, 수 많은 역사서들을 통해 유익을 얻은 저같은 입장에서 제가 페북에서 다른 대상들을 염두에 둔 글을 허락도 없이 가져오셔서 스승을 비판하는 것처럼 사용하신 것은 박교수님께도 실례이지만 저에게도 무척 충격과 상처를 주는 처사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법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은 일입니다. 더욱이 정목사님의 모교이기도 한 총신이 학내사태로 긴 시간 진통을 겪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교수들 사이에 신학적인 이견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편집기사를 내시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입니다. 정목사님은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변명하시더라도 수 많은 독자들은 이미 그런 오해를 가지고 저에게까지 문의가 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총신의 문제는 교수들 간의 신학적인 논쟁이나 이견의 문제로 불거진 것이 전혀 아니며, 더욱이 박교수님의 신학에 대해서 어떤 비판이나 반대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기사를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인 이메일을 몰라서 이곳에 글을 올리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이 문제는 사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공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시정을 바라면서 글을 이만 줄입니다.

평안을 바랍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밴드 구글+
기사입력: 2018/05/07 [10:12]  최종편집: ⓒ newspower
 
관련기사목록
[박용규 교수] 박용규 "한국교회, 왜 개혁대상 됐나" 김철영 2018/05/22/
[박용규 교수] 박용규 교수 "찰스 피니 신학 비판했다" 김철영 2018/05/07/
[박용규 교수] “주기철, 목사면직 아닌 권고사직 맞다” 김철영 2016/07/08/
[박용규 교수] "한국교회 교세 감소 계기는 1992년 10월28일" 정하라 2012/10/28/
뉴스
최근 인기기사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개인정보취급방침회사소개후원 및 광고 만드는사람들기사제보보도자료기사검색
서울 종로구 김상옥로 17(연지동 대호빌딩136-5) 본관 107호 TEL 02-391-4945~6| FAX 02-391-4947,
Copyright2003-2018뉴스파워. all right reserved. mail to newspower@newspower.co.kr 등록번호 서울 아 00122 등록일 2005.11.11 발행 및 편집인 김철영. 청소년보호책임자:김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