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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6.24 [15:03]
추억 속의 나를 만나다
소강석 목사의 목양칼럼
 
소강석

  

3 · 1절 특집 다큐 촬영을 위해 저의 모교인 군산제일고등학교에 특강하러 갔습니다. 군산제일고등학교는 1902년 전킨 선교사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03년엔 여선교사 스트래퍼가 여학교를 세웠는데 지금 군산영광여자고등학교입니다.

▲ 모교인 군산제일고에서 특강하는 소강석 목사     © 뉴스파워



그런데 1919년 호남에서 최초로 군산제일고와 영광여고가 힘을 합하여 3.1운동을 주도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군산의 3.1운동이 전주와 익산으로 번져가고 광주와 목포까지 번져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교는 일제의 신사참배에 끝까지 저항하고 거절을하다 나중에는 신사참배를 하느니 차라리 폐교 하자고 문을 닫았던 학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는 이러한 자세한 역사를 몰랐습니다. 그저 일류대만 보내려는 학교로만 알았지요. 그런데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학교의 목표와 방향과는 달리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완전히 교회생활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과 사감선생님께 얼마나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교장실에 끌려가 반성문도 써야 했습니다.

▲ 1919년 호남에서 최초로 군산제일고와 영광여고가 힘을 합하여 3.1운동을 주도했다.     © 뉴스파워


그래도 저는 교회 나가는 것을 중단할 수가 없었고 결국 기숙사에서 쫓겨나 자유롭게 교회 다니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학교와의 관계가 서먹서먹하고 그 이후로도 모교를 방문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따금씩 군산에 집회를 가도 그저 학교 변두리만 맴돌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졸업한지 38년만에 특강 하러 공식적 방문을 한 것입니다. 가기 전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적어도 한 5천만 원이나 1억 정도는 장학금 겸 발전기금을 가져가야 하는데 지금 한국교회를 위해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2천만 원을 들고 갔습니다. 그걸 전달하면서 참 부끄럽고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3.1운동과 영명학교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교지만 아직도 좀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감정이 가슴 한 구석에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교장선생님 방에 갔을 때 옛날 교장실에 불려갔던 때가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더구나 옛날에 제가 공부했던 교실과 기숙사도 가보고 싶었지만 바로 이어서 영광여고로 가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영광여고에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교보다도 더 훈훈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교는 여자가 시댁을 가는 기분이었다면 영광여고는 친정에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왜냐면 학교 정문에서부터 선교사를 소개하는 사진들이 쭉 전시되어서 미션스쿨의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영광여고를 방문해 특강하는 소강석 목사     © 뉴스파워



 
거기다가 장로님이신 교장선생님이 따뜻하게 맞이해 주지요, 그 학교를 대대로 지켜 오신 권사 이사장님이 마치 담임목사를 맞이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맞이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더 가슴이 설렜던 것은 제가 군산에서 처음 교회를 나가게 된 동기가 그영광여고 여학생들을 만나러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여학생들 앞에 서니 지금의 여고생들이 왜 그렇게 철없는 어린 애들로만 보이는지요. ‘, 그 옛날 내가 어떻게 저런 아이들을 좋아했을까, 그 당시엔 그렇게 예뻐 보였는데...’ 강의를 마치고 계단으로 올라오는 중 대형거울 앞에 비춰진 저의 모습이 그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도 고등학교 2, 3학년의 마음인데 얼굴과 옷차림을 보니까 분명 50대 중반을 넘은 모습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문득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당장 전화를 했지만 저녁이 되어서야 통화가 돼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다행히도 집사람이 이렇게 위로 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동안 많은 일을 이루었잖아요.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요.”

저는 군산영광여고에서 고등학교 시절 아련한 추억 속의 저를 더 깊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 그러면서 어쩐지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그 여학교가 고맙게 생각이 되었고 그때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여학생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그 여학교에도 적지만 1천만 원을 드리고 왔습니다. 분명 추억 속에 묻혀있던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고 그런 여학생들을 통해서라도 교회를 다니고 오늘의 목사가 되게 하신 하나님을 목 놓아 외쳐 부르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빛바랜 추억의 앨범 속에 비쳐진 저의 모습에서 이젠 앞으로 더 번성해 갈 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의 모습을 투영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생태계를 지키며 공교회 플랜터로 쓰임 받을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때 제 눈에는 사랑하는 새에덴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이 어른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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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1 [09:5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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