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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8 [00:14]
하나님께서 숨겨둔 사람 칠천인(1)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1320-1384)
 
한평우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사람을 다루신다.

 

그 다루시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구속의 진리를 깨닫고 구원받도록 하는 일이다. 그 거룩하신 일은 지금도 계속 된다. 세상 곳곳에 숨겨 놓으신 거룩한 백성, 칠 천인들을 통해서 말이다. 고로 하나님의 진리를 대적하고 말살하려는 책동이 세상 곳곳에서 불같이 일어나지만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존 위클리프가 태어난 13세기 구라파는 영적 캄캄함이 가득했다. 진리를 왜곡한 교황들은 하나같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골똘했고, 그 아래 사람들도 세상권력의 달콤한 맛에 길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구라파의 기독교인들은 이름뿐이었다. 참된 회개나 값없이 주시는 은혜나 칭의를 알지 못했고 그저 교회 전통에 따라 가는 것으로 자족했다. 성직자들은 교황청에서 지시하는 것만 가르쳤고, 더 나아가서 무지한 사람들에게 구실만 있으면 세금을 부과하는 일에만 골똘했다. 그런 돈들은 교황청을 화려하게 꾸민다거나 성직자들의 사치스러운 용도로 쓰였다.

▲ 원장 한평우 목사     ©뉴스파워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범상한 사람을 보내주셨으니 그가 바로 1320년 잉글랜드 요크셔에서 출생한 위클리프였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문에 대한 큰 관심 때문에 신학과 철학에 대한 공부를 지속했다. 그리고 동 대학의 학장이 되었고, 철학을 강의하던 중 1366년 왕실의 전속 신부가 되었다. 그는 지성인으로 성직자의 길에서 교회의 영적 지식에 상반되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내부로부터 들려오는 강한 양심의 강한 소리를 듣게 되었다
. 당시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용기가 없거나, 또는 누리는 현실의 안락함을 포기할 수 없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당시 교황청은 둘로 갈라져 서로가 참 교황이라고 싸우던 시절이었다.
.

67년 동안 아비뇽(1309-1377)으로 이전했던 교황청은 드디어 로마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동안 권세를 누렸던 불란서 추기경들을 로마로 이전한 교황이 숙청을 단행하지 아비뇽으로 탈출하여 자체적으로 교황을 또 뽑았다.


이 때문에 전 유럽 국가들은 편리한대로 줄을 섰다
. 당시 잉글랜드는 당연히 아비뇽의 교황을 거절하고 로마의 교황인 우르바노(Urbanus1378-1389)6세를 지지했다.


과거 백년전쟁 중에 항상 불란서 편을 드는 교황에 대해 크게 분노하였기 때문이다
. 이런 정치적 모습을 보면서 위클리프는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게 되었다. 두 교황의 치열한 싸움을 보면서 이게 과연 하나님의 교회인가? 라는 실망감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로 결단했는데 거룩함을 도모해야 할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은 저자거리의 패거리와 다를 게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성서였다.

성도의 삶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성서는 과연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성서의 기준을 지켜 살아가고 있는가?


과연 전통적으로 세계의 모든 가톨릭 교인들을 이끌고 있는 바티칸의 수장은 성서대로 하고 있는가
?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그는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때 얻은 결론은 바티칸에서 주장하는 많은 부분이 비 성경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어거스틴의 선택과 유기를 믿었는데, 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윤리적 삶을 통해서라고 믿었다. 즉 교황들이 사도들과는 정 반대인 방탕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사도들의 계승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저들이야 말로 루시퍼의 저주받은 팔에 안긴
, 유기 자요, 그들의 앉아있는 자리는 적그리스도의 권자라고 결론지었다. 고로 그런 자들이 집례 하는 성찬은 효력이 없다고 까지 주장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도의 규범이 되는 성서를 읽도록 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일은 그 당시 바티칸 당국을 도전하는 두려운 일이었다.


당시는 자국에로 성경을 번역하지 못하게 했다
. 고로 성경은 오직 라틴어로만 되어있었고, 설교도 라틴어로만 해야 했다. 이런 일은 가톨릭을 수용한 전 구라파에서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결코 예외는 없었다.

참고로 자국에로 성경을 번역하도록 허락한 것은 1963년에 시행되었으니 무려 6백 년 전이었으니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를 추측할 수 있다.

 

성경을 허락 없이 번역하다가 발각되면 화형에 처해지는 시대이었다. 고로 존 위클리프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려 백 몇 십 년 전에 리용의 왈도(Waldo)가 수사를 고용하여 4복음서를 불어로 번역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존 위클리프가 자국어인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려고 한 일은 앞으로 일어날 개혁자들에게 큰 용기와 도전을 주는 행동이었고, 더 나아가서 어둠에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는 일이었다.


그의 용기는
150년 후에 말틴 루터로 하여금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데 큰 도전을 주게 되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번역하는 한편 금기였던 바티칸의 잘못을 선포했다. 교황의 영적 특권에 대해서 질타했고 교황의 주장은 성서에 비추어 볼 때 잘못되었다고 선언했다. 교황 자신도 보통 사람의 구원과 다를 바 없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결정된다고 했다. 결코 교황이 신앙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진리의 표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리를 따르는 일에는 언제나 고난이 동반한다.

그는 가톨릭의 화체설도 비판했는데 그 일은 이제껏 그를 지지하던 잉글랜드의 귀족들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옥스퍼드 학자들은 그를 이단으로 선고했고 런던에서 열린 지역공의회에서도 같은 입장이었기에 그는 궁정에서 나와야 했다. 고로 그는 생활고로 왕실에서 하사한 저택을 팔아야 할 정도였다. 죽을 각오 없이는 예나 지금이나 진리를 좇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각오로 주를 쫓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신다.

그는 진리를 깨닫게 된 이후 비 진리에 대한 질타를 멈추지 않았다.

1384,12,31, 64세가 되던 해 예배를 드리던 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바티칸의 가시 같은 존재였으나 정치적 역학 때문에 자연사할 수 있었다.

그가 죽은 후 1415, 독일의 콘스탄츠 공의회에서는 그를 이단으로 선언했다그의 서적은 불태우도록 했고, 그의 무덤까지 파헤치도록 했다. 당시 마르티노(Martino1369-1431)는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출된 로마 출신 교황이었다. 그런데 그는 위클리프가 죽은 지 44년이 지난 1428년에 그에 대한 형을 집행하도록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죽은 지 44년이 지난 위클리프의 묘지는 파헤쳐 졌고, 그의 시체는 부관참시를 당한 후에 화장하여 뼈 가루는 스위프트 강에 쏟아 부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살아서 우리를 도전한다.

 

토마스 풀러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위클리프의 뼈를 태워 시내의 급류에 던졌다. 그 시냇물은 아본 강으로, 아본 강은 그것을 세브른 강으로, 세브른 강은 그것을 좁은 바다로, 좁은 바다는 다시 큰 대양으로 흘러가게 했다. 그래서 그의 신앙 사상은 이제 전 세계로 퍼지게 했다. 위클리프야 말로 당시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7천이이었다."

그 한 사람으로 구라파가 진리로 돌아서게 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숨겨 놓으신 칠천 인을 찾으신다.

당신은 그 칠천임을 깨닫고 일어서야 한다.

진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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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27 [08:31]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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