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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8 [00:14]
감사의 사람 사도 바울을 생각한다
오정호 목사(한복협 부회장, 대전 새로남교회 담임)
 
오정호
▲ 오정호 목사     ©뉴스파워

 

들어가는 말

자주 입에 올리지만 실천이 쉽지 않은 것이 감사의 영역인 것 같다. 감사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교양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예외 없이 긍정한다. 하물며 우리 신앙인이랴.

지난해 우리나라에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는 미국 CNN방송 인터뷰에서 그가 망명한 이유에 대하여 두 아들에게 나 같은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망명 결심을 얘기했을 때 두 아들이 굉장히 기뻐했고 자유를 얻게 된 것을 감사히 여겼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태공사의 가족들이 그렇게도 갈구했던 신앙적 정치적 사회경제적 자유를 이미 우리는 누리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감사지수는 어떠한 형편인가?

 

신약에 나타난 감사

최원준 박사의 논문에 따르면 감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유카리스티아이며, 신약에서는 바울서신에서만 15회 나온다. 동사 유카리스테오는 신약 전체에 38회 사용되고 있다. ‘유로게오역시 감사하다라는 뜻이 있는데, 식사하기 전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기도를 말하며, 신약에서는 총41회 사용되고 있다. 개역개정판 성경에서 유로게오축사하다’,축복하다등으로 번역된다. ‘안쏘모로게오마이는 누가복음 2:38에 서만 사용되고 있다. 보통 은혜로 번역되는 헬라어 카리스엑코 카린의 형식으로 사용되어 감사하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바울 서신에 나타난 감사

신약성경에는 바울 서신에 감사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한다. 감사표현의 70% 정도가 바울 서신에 집중되어 있다.(개역개정으로 판단할 때, 감사 표현은 신약 전체에 65(63구절) 등장하는데 바울 서신에 48(46구절), 그 나머지에 17(복음서에 11, 사도행전에 2, 히브리서에 1, 요한계시록에 3) 등장한다. 신약성경은 모두 260장인데, 복음서가 89, 바울 서신이 87, 기타 책이 84장으로 집계된다. 물론 각 장의 절수가 고려돼야 하지만, 대략 잡아 바울 서신이 약1/3 정도 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진섭 교수/그말씀/201411월 두란노)

 

앞의 진술된 내용으로 보건데 사도 바울은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감사의 체질인 것이 틀림없다.

그는 마치 시인의 시가 읽는 이들의 감정 이입으로 말미암아 시다워질 수 있듯 사도 바울의 삶을 한편의 시라고 할 때 고조된 감사로 감정이입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면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가졌으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살전3:9)

 

사도 바울은 마치 투수가 공을 던졌을 때 타석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공이 오기를 기다리던 타자가 찬스를 결코 놓치지 않고 힘차게 쳐내는 것처럼 그는 감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표현하는 감사자였다. 물론 그가 주님의 은혜와 사람들의 관계 그리고 환경을 매의 눈을 가지고 살폈음은 틀림이 없을 것이다. 매는 상공 1Km에서 땅에 기어가는 들쥐를 알아낼 정도라고 한다. 동일한 환경이 주어지더라도 사도 바울처럼 감사에 대한 남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은 평범함을 감사의 비범함으로 바꾸는 능력이 있음을 안다. 아니 그가 본질적으로, 원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감사로 표현해야 할 그 시점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나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 생명의 주님을 만나고 난 이후 상대적으로 그 자신의 죄성과 초라함 그리고 외식에 대하여 처절하게 탄식하였다. 자기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고 규정하였다. 골짜기가 깊으면 정상이 높듯이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세워진 자기 모습 앞에서 때로는 감격하며, 때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때로는 경이로움을 담아 외친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1:12-16)

 

제대로 생명의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사도 바울처럼 외치게 되리라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을 평생 느끼며 산 사람이다. 그 사랑이 그의 삶의 의미를 가져다 주었고 그의 삶의 목적을 변환 시켰으며 그의 기쁨의 원천을 새롭게 하였다. 같은 복음을 받았으나 마치 변질된 것처럼 자기중심으로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을 하였던 고린도 교인들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강력한 톤으로 도전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후 5:14-16)

 

이렇듯 새로운 삶과 태도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접하고도 변화를 유보한다면 그 사람은 보나마나 화인 맞은 양심의 소유자이리라.

올바른 예배자가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올바른 예배자로 신분의 변화를 자각하도록 하는 것은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의 감격적인 조우함에서 비롯하리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6:14)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그로 말미암은 해방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에는 해방 받은 자의 감사와 감격, 그리고 기쁨과 환희가 폭포수처럼 내려 부어져 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1-2)

 

우리조국이 일제에 의하여 주권을 박탈당한 채 회한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상록수의 작가 심훈은 조국이 독립하는 날 자신은 자기 몸의 가죽을 벗겨 북을 제작하여 눈물로 쳐서 광복의 감격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정치적 독립이 이정도의 감격을 동반하는 것이라면 영원히 멸망 받아 죽을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입고 영원한 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어떤 수준으로 표현해야 할까? 아마도 사도 바울에게 구원의 은총을 받은 자의 심정을 피력해 달라고 요청하면 그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다는 표현을 하였으리라.

 

사도 바울은 감사의 체질이었다

바울 서신 중에 특이하게 나타나는 형식이 바로 감사형식(thanksgiving formula)’이라 불리는 것이다. 알려진대로 13개 바울서신중 11개 서신에서 이런 감사형식이 등장한다.(갈라디아서와 디도서에는 예외적으로 감사표현이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는다. 신학자들은 이 두 서신의 배경에 무게를 둔다. 갈라디아서는 거짓복음을 따르는 자들 때문에 디도서에는 목회적 사역을 전하는데 집중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마디로 감사체질이 아니고서야 이렇듯 압도적으로 감사를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곧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감사는 삶이었고 그의 삶은 감사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문이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감사로 일관하였다. 그러나 그 곳에서 감사가 멈추지 않는다. 그가 생명을 드려 개척한 여러 교회 교우들의 형편을 듣고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람을 향한 사랑의 표현이 될 때 그는 감격하였다. 그 예로 설립된지 얼마 되지 않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할 때 그는 벅찬 마음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2-3)

 

특히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의 반듯한 신앙생활을 염두에 두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감사함을 표하였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살전 2:13)

 

또한 그가 감사함으로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것처럼 핍박중에 있는 데살로니가교회 교우들 역시 기도가 삶에 녹아져 그것이 모든 핍박을 이겨내고 딛고 일어서는 성도의 동력이 되기를 기대하였다. 원수에 대한 증오심이 불길처럼 일어나는 것을 막아내고 복음적인 삶의 영적 선순환을 추구하도록 하였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사도 바울은 박해가운데서도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는 성도들에 대하여 그의 감사를 표하였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살후 1:3)

 

한 마디로 표현하면 복음의 실체와 영광을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자기 정체성 확신의 토대로 삼음에 대하여 이 역시 감사의 제목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살후 2:13)

 

개인에 대한 감사

사도 바울은 우주적인 감사에 대하여 민감하였을 뿐 아니라 동시에 개인에 대한 감사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빌레몬 때문에 드리는 감사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 형식으로 표현되었지만 그 기저에는 빌레몬의 믿음과 행함이 놓여 있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1:4-7)

 

굳이 심리학적인 이론을 차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경험한대로 상대에 대한 인정과 칭찬과 감사는 경계심을 해제하고 적의를 풀게 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게 하는 힘이 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웅대한 구원 계획을 선포하는 말씀이다. 인간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인간의 죄성을 치열하게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나 로마서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전에 사도 바울은 16장에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거명한다. 곧 그의 삶을 복되게 하고 눈물을 함께 나눈 동역자 들이다. 예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우리도 알건데 신앙은 윤리로 반드시 표현된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간관계로 반영된다. 우리 시대의 아픔은 신앙을 빙자하여 사람들을 매몰차게 대하는 것이다. 진리를 빙자하여 편당을 짓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교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다. 인간관계의 따뜻함이 사라진 복음은 참된 복음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과 가장 신앙적인 것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라 힘께 나아가는 개념인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희미한 등불 아래에서 로마서 16장을 대필자인 더디오에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불러준 사도바울을 상상 할 수 있다. 아마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떠올려 입술로 표현할 때 그의 마음은 한없는 감사로 가득 채워졌을 것이다.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서 산전수전 함께 겪어낸 피붙이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그들의 관계 아닌가.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16:3-5)

 

감사의 두드러진 내용

사도 바울의 감사를 분석하면 수신자들의 믿음의 성숙, 믿음의 견고함과 믿음의 확산, 하나님께서 베푸신 위로하심, 이웃사랑, 천국에 대한 소망, 성도다운 삶의 태도가 주를 이룬다. 곧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신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성장과 성숙 곧 열매 맺음이다.

이 모든 감사의 제목은 사도 바울의 삶에도 이미 경험된 것이다. 그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도착한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 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유한 이후 주인들의 핍박으로 감옥에 투옥이 된다. 바울과 신라는 깊은 옥에 던져지고 그 발은 차꼬에 채워졌다. 그러나 신음소리로 가득 차야할 감옥이 찬송 소리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16:25-26)

 

그 후에 간수와 그 가족의 회심 사건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찬송곧 감사로 표현된 하나님을 높이는 행위는 새로운 기적의 문을 여는 단초가 되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삶 가운데서 이미 감사와 찬송의 신비를 남다르게 경험했기에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감사의 사람으로 드려지기를 원하였다.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는 법이다.
 

성도의 품격은 감사로 세워진다

김진영 교수가 쓴 격의 시대(영인미디어 2017)’에는 양의 시대, 질의 시대, 격의 시대로 시대 구분과 그 기준을 소개 한다.

()의 시대

()의 시대

()의 시대

Visible(수량)

Visible(시각)

Invisible(안목)

제품

상품

명품

특장

기술

감성

Me too

NO.1(Fast Follower)

Only 1(First Mover)

Other-directed

Standardization

Personalization

 

성도의 진정한 격은 무엇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태도이며 그 태도는 반드시 감사로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도 예의범절 매너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학식의 유무, 소유의 많고 적음, 외모의 어떠함에 따라 신앙인으로서의 품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감사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명품 성도는 감사의 열매를 많이 맺는 성도이다. 사도 바울이 보여준 원리에 따르면 예외가 없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될 자질로 넘치는 감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로새서 2:6-7)

 

신약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은 감사가 필수 영양소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5-17)

 

진정한 명품 인생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자

감사의 계절이 오면 으레 접하는 내용이 누가복음 1711-19에 나타나는 예수님께서 고쳐 주신 열명의 나환자이야기이다. 이 실화의 교훈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함을 받는다.(치유자 예수)

열 명 모두 나음을 받았지만 치유함을 받은데 대한 진정한 감사는 오직 한 사람만 드렸다. 그만큼 감사는 희소하며 그는 유대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 이었다. 출생이 부정할 뿐 아니라 부정한 병인 나병까지 앓고 있었다. 그런데 감사로 발걸음을 옮긴 그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을 기뻐하신다.

 

예나 지금이나!

목회자나 교우나!

먼저 믿은 이나 나중 믿은 이나!

부모나 자녀나!

 

감사를 상실하면 실체적 이방인이며, 감사를 올려 드리면 실체적 하나님의 자녀이다!

목회자로서, 설교자로서, 교육자로서 소문나기보다 진정 감사자로 소문나기를 갈망하고 있는가 스스로 질문해 본다.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6-17)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귀한 일이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7:18)

 

평생 감사자로 살게 하소서!

감사는 한 때 유행이 아니다. 수년전에 한 기독교 출판사에서 감사에 관한 책을 한국교회에 소개하였다. 제목이 평생감사였다. 그 내용 가운데서 인생을 감사로 물들여라권면 하였다. 시편에 시인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말라고 스스로 다짐하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편 103:2)

 

감사의 계절이 돌아왔기 때문에 감사하는 자가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사계절을 감사의 계절로 바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천국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성경이 소개하는 천국의 모습은 감사로 충만한 나라이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7:11-12)

 

교회와 성도는 천국의 가치와 모습을 이 자리(Here)에서 지금(Now) 나타내는 공동체와 개인으로 서야 한다. 평생감사자로 살게 하소서!

주님께 올려 드리는 오정호의 감사와 찬송제목

 

올 해 2017년 봄 목회자로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며 새벽 시간에 평소 지니고 다니던 수첩에 은혜 주시는 대로 써 내려간 감사의 제목입니다. 낯선 땅 남미에서 외부에 알린다는 마음 없이 써 내려간 내용을 금번 한복협에서 감사를 주제로 발표하는 기회가 주어져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첨부해 봅니다. 이 마음이 주님 앞에 설 때 까지 한결 같기를 소원해 봅니다.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또한 주님 앞에서 영원한 한 마리의 어린 양으로서.”(필자의 변)

 

<성경> 시편 116: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며 살도록 한이 없는 은혜(無限恩寵)를 종에게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감사(無限感謝) 를 올려드립니다. 이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찬송가 가사처럼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고백하게 됩니다.

 

2. 구속주 예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희생을 깨달아 믿게 하시고, 감사의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하시니 사람의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구원의 은총에 만만감사(滿滿感謝)드립니다.

 

3. 허물과 죄와 연약함 그리고 결점 투성이인 죄인을 부르시고, 하나님 아버지와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주와 주님으로 고백하도록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한결같이 인도하신 성령님의 높고도 깊은 뜻과 인도하심에 모든 존귀와 영광과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복음 안에서 새 생명의 능력과 자비하심과 도우심을 세상 끝날까지 기억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종이 되게 하소서!

 

4.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 가운데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받게 하시고, 성경과 교회, 그리고 신앙생활과 성경적인 가치를 교육받고, 훈련받고, 마음에 새길 수 있는 부모님과 형제들과 신앙의 스승들과 동료를 허락하심을 생각할 때 마다 감사와 찬송이 감격 가운데 터져 나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5. 사랑하는 아내와 한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두 아들을 선물로 주시고, 또한 며느리를 맞이하게 하셔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기적 같은 사랑을 온 삶으로 경험하고,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가족이 없었다면, 저는 목회자로 쓰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6. 청년의 때에 주님의 강권하시는 사랑과 은혜에 이끌려 신학도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고, 세우는 목사의 존귀한 직분을 허락하심을 온 맘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지식이 부족하고, 인격이 비천하고, 지혜가 천박하고, 의지가 한결같지 않은 종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늘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극진하신 그 사랑이 종의 소망의 원천이 됩니다.

 

7. 내 조국 자유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신앙의 자유, 정치의 자유, 언론, 출판, 집회, 결사, 거주이전, 직업의 자유를 향유하며 살도록 종을 섭리적으로 인도하신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국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애국지사와 애국선열을 세워주시고 조국을 위하여 땀과 눈물과 피를 쏟아 주신 사실은 종의 삶에 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8. 내 생명, 내 사랑, 내 기쁨, 내 자긍, 내 존재의 이유가 되는 주님께서 피로 값 주시고 사신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인 새로남교회의 봉사자와 목사로 부르시고, 이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목양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소리 높여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총신대학과 신학대학원과 일반대학원 그리고 유학의 축복된 기회를 주셔서 Fuller 신학교에서 신학의 균형을 잡게 하시고, 부산 가야제일교회에서 유년기를, 서울 내수동교회에서 청년의 시기와 사역의 첫 출발을 하게 하시고, 사랑의교회에서 평신도를 깨워 주님의 제자로 세우는 사역의 성경적 원리와 실제 목회를 몸에 배게 하신 주님의 목회 훈련에 감사드립니다.

귀한 목회의 스승들과 멘토와 동역자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목회는 주님의 복주심과 섭리적인 만남으로 이루어지기에 소중한 평신도 지도자들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평생을 드려 목양의 실천자로 달려가는 부교역자들과의 동역의 은혜와 주님사랑, 성도사랑, 사명사랑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섬기는 직원들과의 만남을 인하여 주님의 이름을 송축합니다.

특히 사분오열되어 갈등하던 새로남교회 부임초기에 부족한 종을 불쌍히 여겨주셔서 목회현장에서 화목과 평강의 은혜를 회복시켜 주심은 전적인 주님의 도우심임을 고백합니다. 오늘의 화목함은 주님의 강권적인 개입의 열매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9. 다음세대를 향한 믿음의 세대계승을 위하여 새로남 주일학교와 대학 청년부를 설립하게 하시고 오늘까지 은혜의 손길로 붙드시고 인도하신 주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헌신을 아끼지 않는 신실한 교사들과 기도의 후원자로서 합심협력하는 학부형들로 인하여 주님의 높고도 깊은 뜻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가정, 교회와 함께 하여 실생활 신앙교육의 산실이 된 새로남기독학교와 교직원들과 모든 후원의 손길을 감사드립니다.

 

10. 오늘까지 종에게 육신의 건강과 건전한 상식과 정신의 활동을 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목회에 지장을 받지 않도록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1. 새로남교회가 소속된 서대전노회와 총회의 선후배 목회자와 동료들께 감사합니다.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와 제자훈련 목회철학을 공유한 CAL-NET과 새로남교회 출신 목회자협의회와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동역자들과 교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이끄시고 만남의 은혜를 선물로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함께 함이 감사와 축복임을 세월이 흘러갈수록 실감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12. 오직 주님의 은혜와 그 은혜에 기인한 만남과 교육과 훈련과 내적인 성숙과 교제의 확대와 인간의 죄성의 심각함을 가슴깊이 깨달아 알게 하신 내 영혼의 목자, 하늘 아버지, 인생의 유일한 소망이신 聖三位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님! 저의 생애는 오직 주님의 손에 있사오니, 종을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까지 후대하신 것처럼, 저의 남은 생애에도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동행해 주시기를 바라며, 오직 주님께만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71:17-18)

 

할렐루야 아멘

Soli Deo Gloria!

 

*주후 2017524일 새벽

종을 지금까지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와 그 거룩한 섭리를 가슴에 새기며 지난 세월 종의 삶의 유일한 주권자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심판주이시며, 모든 은혜의 원천이 되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감사드리며 어린양이 목자장 되신 주님께 부족한 글로써 마음을 올려드리다.

*이 글은 지난 10일 신촌성결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월례 기도회에서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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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1 [12:3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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