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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19 [10:09]
프랑크 왕국 설립자 클로비스 1세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프랑크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 1(Clovis,1 481-511).

▲ 프랑크 왕국 설립자 클로비스 1세     ©뉴스파워

 

이태리의 한 귀퉁이에서 시작된 로마가 무려 천년동안이나 거대한 제국을 통치했다. 그런데 5세기에 유럽 북동부 지역에 있던 게르만 족이 훈족에 밀려 일어난 민족의 대 이동은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였다. 그리고 찬란했던 로마제국의 수명도 476년에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종언을 구해야 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로마를 위해 싸우도록 고용된 즉, 게르만의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찬란했던 문명국가 서 로마가 멸망당했다는 사실이다.

 

서 로마가 멸망하자 사나운 게르만 족들이 사방에서 활개를 치게 되었다.

그 때 갈리아 지역을 점령한 프랑크 족이 있었다. 한 때 서로마 제국의 용병 대장이기도 했던 부왕 힐데리히 1세는 튀링겐 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튀링겐의 공주이자 왕비인 바신느를 사로잡았고 그녀를 아내와 삼았다.

그 사이에서 클로비스1(Clovis1)가 태어났다.

 

그의 부계로는 트로이의 폴리도로스와 헬레노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그의 고조할머니 프로트문다는 유대인으로 메로빙거 왕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라는 신비스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클로비스의 가문이었던 메로빙거 왕실은 스스로를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 중에 힐데리히 1세의 독자였던 클로비스1세는 16세에 아버지를 이어 살리족을 이끌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 전투에 참여했고 강인함을 타고 난 위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프랑크 족의 한 지파인 살리 프랑크의 수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어려서부터 용맹함을 보였던 그는 드디어 갈리아 북부 지방을 정복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세력을 확대하여 다른 군주들을 차츰차츰 제거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처럼 여기저기 수많은 소위 영웅들이 활거 하던 시절이었다. 그는 쾰른을 접수했고, 주변의 나라들을 힘으로 또는 계략으로 차례차례 정복해 나갔다. 무력으로, 또는 모략으로.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군주는 온화하고 여우처럼 교활하고 또 사자처럼 무서워야 한다. 선량한 군주는 정복당하기 쉬우므로 국민을 불행에 빠뜨린다. 권력을 획득하고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군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무슨 못된 짓을 해도 좋다. 아니 그래야 한다. 또 군주국을 정복하게 되면 그것을 지배하고 있던 혈족 전원을 사형에 처해라. 남겨두어 봐야 반항하거나 반란을 꾀하기 때문이다.

 

이에 부합하는 자가 바로 클로비스 1세였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변을 야금야금 정복해 나갔다. 그리고 때로는 아주 잔인하게 상대하기도 했다.

 

갈리아의 로마인 왕국을 정복하던 중 부하들이 어느 교회에서 화려한 꽃병 하나를 강탈했는데 주교는 클로비스에게 편지를 보내 꽃병을 돌려달라고 했다.

클로비스 1세는 승전 후 전리품을 분배할 때 부하 장군들에게 정해진 몫 외에 꽃병도 달라고 요구했다. 이 때 프랑크 족 어느 장군이 클로비스의 지시에 불복하여 도끼로 꽃병을 깨뜨려버렸다.

클로비스는 하는 수 없이 깨진 꽃병을 주교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그 후 1년 뒤 군사 회의 중 자신에게 불복한 장군을 알아보고 불시에 장비 검열을 했고, 그 장군에게 무기를 제대로 손질하지 않았다고 호되게 책망하며 그의 도끼를 땅에 던져버렸다. 장군이 도끼를 집으려고 허리를 굽히자, 클로비스는 자신의 도끼로 그의 머리를 쪼개 버렸다. 그리고 너는 꽃병을 이렇게 다루었다고 말했다.

이런 행동을 보고 모든 부하들은 간담이 서늘하는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부하들은 클로비스의 말에 절대 복종하게 되었다.

 

클로비스1세는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프랑크 왕국은 영토적으로 구라파의 중심을 아우르는 지역이었다. 또한 그의 중요한 업적은 그가 기독교 정통 신앙으로 개종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대부분의 게르만의 군인들은 아리우스의 신앙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클로비스는 기독교 정통 신앙을 지녔다.

 

그의 아내 클로틸다(Clothilda)는 독실한 기독교 교도이었기에 일찍부터 왕인 남편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소개했다. 그리고 개종하기를 권하였으나 클로비스는 거절했다. 이유는 자신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이 이교도 신앙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맏아들이 세례 받는 것을 허락했다.

그런데 아기는 세례 복을 벗지도 못한 채 죽고 말았다. 클로비스는 세례에 그 원인을 두었으나 클로틸다는 아기의 영혼을 곧장 데려가사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신 것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또 아들이 태어났는데 세례를 받은 후 병이 들었다. 클로틸다는 간절히 기도했고 아이는 병에서 일어났다.

 

이일이 있고 얼마 후에 클로비스는 라인 강 중류에 거주하는 알라만족(Alamani)을 토벌하러 나섰다가 전멸당할 위기를 맞이했다. 그때 그는 이런 기도를 드렸다.

 

예수 그리스도시여, 클로틸다는 당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당신은 당신께 소망을 두는 자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 제게 승리를 주소서, 그러면 제가 세례를 받겠나이다. 제가 섬기던 신들에게 기도하여 보았지만 그들은 저를 버렸습니다. 구하오니 저를 구해 주소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웬일인지 적들은 대열을 이탈하였고 뿔뿔이 도망하는 것이 아닌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하여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너무나도 싱거운 승리였다. 이 놀라운 승리에 대하여 그는 아내 클로틸다에게 말해주었다. 클로틸다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위해 간절하게 기도했을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결정적 사건들이 종종 나타났다. AD312, 콘스탄틴이 막센티우스와 폰테 밀비오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도무지 승산이 없었다. 자신의 휘하에는 5만여 명의 군사가 있었고, 상대는 18만이나 되는 군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전투에서 패한 다는 것은 곧 자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멸망을 의미하는 심각한 것이었다.

그는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을 것이다. 도무지 승산이 없는 전투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고 전해진다. 꿈인지 환상인지 모르는데 하늘에서 깃발이 보였다. 그 깃발은 크리스투스라는 헬라어 첫 자와 둘 째자(ΧΡ)”로 구성되었다. 그러면서 음성이 들렸다.

 

이 기를 가지고 싸우라!” 그대로 순종했다. 그런데 치열한 전투를 예상했는데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잘 싸우던 막센티우스의 군대는 갑자기 폰테 밀비오 다리를 건너가서 방어를 하라는 명을 받아 급히 좁은 다리를 건너가기 시작했다. 그 많은 무리가 한꺼번에 건너가느라 아수라장을 이루었고, 다리 난간이 밀리는 사람들에 의해 힘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수많은 군인들이 강물로 떨어져버리는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강으로 떨어진 군사 중에 황제 막센티우스도 있었다. 기이하기만 한 전쟁의 승리를 경험하고 그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설명 될 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믿고, 드디어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여 기독교의 자유를 공포했다. 그리고 그는 평생을 기독교를 돕고 옹호하는 자로 살았다.

 

역시 클로비스 1세에게 나타난 놀라운 역사는 그가 세운 프랑크 국가를 기독교 국가가 되게 하였고, 160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기독교 국가가 되도록 터전을 닦았다클로비스는 승리의 감격으로 30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즉 랭스의 주교 레미기우스(Remigius)를 통해서였다. 그리고 기독교 교도가 되었다.

이 일은 추후 구라파의 왕들이 너도 나도 기독교를 따르는 모델이 되었다.

 

아리우스파를 신봉하는 게르만 족을 이긴 공로는 바티칸의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되었고 대외적으로 클로비스와 프랑크 왕국의 위상을 높였다.

동 로마 제국도 프랑크 왕국에 대해서 기독교의 보호자로 칭송하고 그에게 로마의 특권 계급의 지위와 콘술의 칭호를 부여했다.

그는 메로빙거(Merovingian-힐데리히의 아버지 메로베크의 이름에서 유래함)왕국을 세웠다. 그는 두 가지 의미 있는 일을 했는데, 1) 오를레앙에 종교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32명의 주교가 참석하여 교회법을 결정했는데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2) 그의 권위를 인정한 잘리어 프랑크족의 법률인 살리카 법전을 공포하였다.

그는 511년 파리에서 45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기독교식으로 매장된 그의 무덤은 아직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지도자가 어떤 계기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때, 그는 놀라운 일을 이루게 됨을 우리는 클로비스 1세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성도인 당신은 어떤 일을 지금 도모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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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5 [16:3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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