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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19 [09:09]
가을 숲을 거닐다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목양칼럼
 
소강석

 

 

▲ 가을 단풍으로 물든 숲길     ©뉴스파워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시골길이나 숲길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주도를 가더라도 화려한 도심 속보다는 항상 교래리 휴양림이나 절물 휴양림같은 곳을 걷고 다닙니다. 그러면 그렇게 무거웠던 어깨도 가벼워지고 복잡하고 멍했던 머리가 정수리까지 시원한 것을 느낍니다. 가을이 되면 가을 숲 을 더 걷고 싶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 분명합니다. 가을 숲길을 걸으면 사색에 빠지고 우수에 젖기 때문이지요. 부정적인 우수가 아니라 나 홀로 고독을 좋아하고 깊은 사색에 잠기는 우수 말입니다. 그래서 목요일 오후에는 잠깐 남산에 올라가서 가을 숲 여행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생각보다 일찍 행사가 끝나서 저녁식사 때까지 한 시간 정도 짬이 났습니다. 당장 남산을 오르기로 했습니다. 남산은 하나님께서 서울시민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인 것 같습니다. 짧은 코스이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저는 다시 목가적인 소년이 되고 전원적인 컨트리 보이가 되었습니다. 남산에도 있을 것은 다 있네요. 소나무, 참나무, 떡갈나무, 도토리나무를 비롯해서 올라가다 보면 억새풀들이 붉은 고개를 치켜 올리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핑크빛 수염으로 변해가겠지요. 그리고 사이사이에 하얀 들국화가 피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제가 찾아왔다고 반갑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런 도심의 숲을 거닐고 산행을 한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축복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뒷산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아직 뒷산은 단풍이 덜 물들었는데 남산은 단풍이 많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뭇잎으로서 최고의 아름다움의 절정을 향해서 마치 심장을 불태우는 것처럼 고운 모습으로 꾸며가고 있습니다. 아니, 벌써 낙엽이 되어 밟히는 잎새들도 있습니다. 그 낙엽들을 할 수 있으면 안 밟으려고 피해갑니다. 자기 동료들보다 먼저 떨어진 나뭇잎새이지만 그들은 가장 용기있는 나뭇잎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불타올랐고 가장 먼저 미련없이 떨어졌던 그들이 참 숭고하기까지 보였습니다. 안도현의 시를 패러디 하지 않더라도, ‘떨어진 낙엽 함부로 밟지 마라, 누가 이처럼 한 번이라도 붉게 타 본 적이 있었는가, 누가 이처럼 자신의 심장을 불태워 본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순간 제가 얼마 전에 브리스아 수련회 때 설악에서 썼던 낙엽이라는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은 추할지 모르지만 떠날 땐 / 가장 화려한 모습이었음을 아시나요 / 이별 전까지는 / 죽도록 사랑을 불태웠음도요 / 지금도 그 타는 정열의 심장의 여운이 / 아주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 바람이 나를 부르러 오던 날 /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떠나 왔지만 / 이별 후에도 / 당신을 위한 제단 위에 / 아직 살아있는 그 정열의 심장을 / 아낌없는 제물로 바치려합니다 / 나의 마지막 고백을 기억하시나요 / 당신이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고요.”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벌써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에 오니까 또 하얀 들국화가 저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당분간 이 들국화는 시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초라하게 피지도 않고 정상 바위 언저리 사이사이에서 마치 남산의 훈장이나 되는 듯이 굳은 기개를 자랑하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들국화에 코를 대어보니 향기는 참으로 그윽하였습니다. 마치 시집가기 전, 누님의 향기와 같았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보고자 했지만 짬나는 시간이 한 시간 밖에 안되 어서 바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저의 서정적인 사색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인간사의 약속도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내려오면서 보니까 하얀 국화 대신 노란 국화들이 만발하였습니다. 낙엽 생각을 하느라 보지 못했던 주변의 들국화가 바람에 흔들리며 노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나무를 떠나듯이 저도 남산의 숲을 떠나고 있습니다. 모든 삶에는 떠날 때가 있는 법이죠. 그러나 나뭇가지를 떠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떠나는 것처럼 저도 남산의 숲을 사랑하는 맘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 새에덴교회에도 많은 사람이 오고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그들 가운데 는 교회나 저의 스타일이 안 맞아서 떠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저 때문에 상처 받고 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상처 받은 그들에게 삼가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떠날 일이 있더라도 사랑하며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치 단풍잎이 사랑 한다고 속삭이며 이별의 키스를 하고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저도 언젠가 떠날 때가 있으면 그런 마음으로 떠날 것입니다. 천상병의 시처럼, 언젠가 이 땅을 떠날 때에도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이었다고 말하며 말이죠. 올 가을에는 가을 숲을 더 많이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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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4 [12:3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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