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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5 [11:14]
“이스라엘 선교, 복음화에 초점 맞춰야"
김홍근 선교사(유대인 사역) 파워인터뷰-"'이스라엘 회복운동' 부작용 크다"
 
김철영

 

1991년부터 이스라엘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는 김홍근 선교사는 한국 교회가 이스라엘 회복이 아닌 이스라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춘 사역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에 유대인 교회를 개척해 사역했던 김 선교사는 1년 반 전부터는 독일 베를린으로 사역지를 옮겨 유대인 사역을 하고 있다.

▲ 유대인 사역을 하고 있는 김홍근 선교사     ©뉴스파워

 

김 선교사는 “‘이스라엘 회복이란 명목 하에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많은 미국과 한국 교회들이 이스라엘 현지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과 연결이 되기 시작하면서 메시아닉 유대인의 복음화를 위한 열정은 점차 자신들의 사역의 홍보용으로 전락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게 함으로써 외국의 교회들로 부터 엄청난 재정들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돈 맛을 들인 현지인 사역자 들은 점차 자신의 민족의 복음화 보다는 교회 성장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미국에서 들어오는 교회 목회자들의 영향이 너무나 컸고, 뒤이어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이스라엘 회복운동에 뛰어들어 들며 엄청난 재정 들을 뿌리며 이스라엘 교회와 연결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한 각 지역에서 진행이 되는 전도는 외국인 단기 선교 참여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으며. 현지 언어가 부족하고 현지 문화에 적응이 어려운 한인들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 운동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기도의 집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워지기 시작했다.”“(그 결과)이스라엘 내 현지 교회 내의 성도들은 전도를 멈추었고, 헌금도 외국의 재정 지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김 선교사는 “199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회 담임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며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태웠던 열정은 이제 외국 교회의 후원 연결과 교회 성장에 열정을 태우기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그 결과 이제는 무슨 사역을 하던지 당연히 한국, 미국, 또는 독일의 후원자들의 헌금을 기대하고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해외에서 수백만 달러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역자들은 무능하게 취급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이러한 상황에서 사역 경험이 적고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차세대 리더들이 1세대의 자리를 뒤 잇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지고 있고, 1세대 리더들 또한 자신들의 위치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따라서 현재 이스라엘 교회는 차세대 리더들은 전혀 준비 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민족 의 복음화에 대한 전략도 전무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한인 선교사들은 이스라엘 선교 전략에 대한 연구도 사실 전무한 상태이며, 한국 교회의 이스라엘 선교 전략도 전무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은 시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교회들은 서서히 성장해 나가고 있다. 이제는 수적인 성장 보다는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며 차세대 리더들과 1세대 리더들의 교체를 위한 준비도 필요한 상황이며, 선교사들도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민족을 복음화 하기 위한 90년대 초의 열정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선교사는 특히 한국의 교회들의 이스라엘 선교는 이스라엘 회복보다는 이스라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다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독일 하노버에서 전도하는 김홍근 선교사(우)     ©뉴스파워

 

이스라엘의 기독교 상황은 어떤가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지요?

 

현재 이스라엘에는 약 8백 칠 십만 명의 인구가 있으며 이중 65십만 명이 유대인이고 백 팔십만 명의 이스라엘 아랍이 있고 그 외의 인구가 약 39만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이중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인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전체 유대인 인구의 0.4-0.5% 정도 되는 것으로 대충 파악되고 있습니다. 아랍 사람들을 포함한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들은 약 2.2% 정도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교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일단 용어 정리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라는 용어는 구교 신교를 모두 포함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기독교(Christianity)와 개신교(Protestantism) 용어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둘 다 똑같이 지난 2천 년 간 유대인들을 예수 살인자라는 딱지를 유대인들에게 붙여 박해하던 무리들이니까요.

 

실제로 아직도 구교 신교 성도들 사이에는 많은 반 유대주의자들이 있으며, 유대인들은 크리스천들의 적이고 암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또한 한국 기독교 성도들에게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을 기독교인으로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기독교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매국노한국인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반드시 메시아닉 유대인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들은 또한 신학적으로도 루터교와 칼빈주의에 근거한 개신교(Protestantism)를 백퍼센트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식으로 완전한 기독교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은 교회가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다는 대체 신학이라던가 성경에 존재하지 않는 부활절, 성탄절은 받아들이지 않고 유대 전통 절기를 지키는 등 그 들 나름대로의 예수님의 신성과 구원론에 입각한 신학을 가지고 있기에 그냥 메시아닉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타당하다고 생각이 되며, 이들의 교회도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 (congregation, not ‘church’)”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라고 부르는 가장 큰 이유인 구교와 신학적인 구분을 위한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성장은 아직 폭발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느리지만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 개척이 일어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거 1991년에 20여개의 교회였던 것이 현재 공식적으로는 약 150여개 비공식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교회 개척 그룹들 까지 포함하면 약 300개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유대인들의 수는 절대로 정확한 통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고 교회도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데 이는 자신들이 발각 될 경우 정통 종교 유대인들의 테러를 당할 위험성이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성장은 사실 1990년대부터 시작 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메시 아닉 유대인 교회 목사님의 인터뷰에 따르면 1970년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내에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200 여명에 불과했고, 제가 선교사가 이스라엘에 들어간 1991년만 하더라도 메시아닉 유대인들은 2천 여 명이었습니다.

 

교회도 1980년 이전만 하더라도 예루살렘에 세 개, 텔아비브 두개, 하이파 두개 티베리아 한 개 정도 뿐이었 습니다. 1992년에는 전국에 약 20여개의 교회가 있었고 1995년 이후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성장속도는 좀 더 가파른 곡선으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1991년 초 부터 시작된 전도 운동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991년까지 개별적으로 진행되어 오전 전도는 1991년 이스라엘 유대인 교회협의회 산하 National Evangelism Committee (NEC, 국가복음주의위원회)가 발족이 되면서 이스라엘 내의 전도는 자체적 총체적 운동으로 NEC에 의해 조직되기 시작하고 모든 전도 행사에 현지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스라엘 전역에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페스티발마다 쫒아 다니며 거리에서 자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민족의 복음화의 열정을 불태우며 23, 34일을 거리와 공원에서 지새우며 전도를 진행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들의 민족의 복음화의 열정으로 힘든 줄 모르고 전도를 지속했습니다.

 

그 결과 더 많은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주님께 돌아왔고, 2004년에는 단 이틀 만에 37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내에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은 지속적으로 곳곳에 세워나갔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회복이란 명목 하에 수많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교회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미국과 한국 교회들이 이스라엘 현지 메시아닉 유대인 교회들과 연결이 되기 시작하면서 메시아닉 유대인의 복음화를 위한 열정은 점차 자신들의 사역의 홍보용으로 전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외국의 교회들로 부터 엄청난 재정들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돈 맛을 들인 현지인 사역자 들은 점차 자신의 민족의 복음화 보다는 교회 성장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교회 목회자들의 영향이 너무나 컸고, 뒤이어 한국의 대형 교회들이 이스라엘 회복운동에 뛰어들어 들며 엄청난 재정 들을 뿌리며 이스라엘 교회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진행이 되는 전도는 외국인 단기 선교 참여자들로 채워지기 시작했으며. 현지 언어가 부족하고 현지 문화에 적응이 어려운 한인들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중보기도 운동이라는 명목 하에 수많은 기도의 집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내 현지 교회 내의 성도들은 전도를 멈추었고, 헌금도 외국의 재정 지원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초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교회 담임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직업을 가지고 사역을 진행하며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태웠던 열정은 이제 외국 교회의 후원 연결과 교회 성장에 열정을 태우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이제는 무슨 사역을 하던지 당연히 한국, 미국, 또는 독일의 후원자들의 헌금을 기대하고 사역을 진행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고, 해외에서 수백만 달러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사역자들은 무능하게 취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역 경험이 적고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차세대 리더들이 1세대의 자리를 뒤 잇는 것은 불가능하게 여겨지고 있고, 1세대 리더들 또한 자신들의 위치를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습니다.

 

따라서 현재 이스라엘 교회는 차세대 리더들은 전혀 준비 되지 못하고 있고, 자신들의 민족 의 복음화에 대한 전략도 전무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한인 선교사들은 이스라엘 선교 전략에 대한 연구도 사실 전무한 상태이며, 한국 교회의 이스라엘 선교 전략도 전무한 상태라고 보는 것이 옳은 시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교회들은 서서히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수적인 성장 보다는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며 차세대 리더들과 1세대 리더들의 교체를 위한 준비도 필요한 상황이며, 선교사들도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민족을 복음화 하기 위한 90년대 초의 열정을 회복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의 교회들의 이스라엘 선교는 이스라엘 회복보다는 이스라엘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다 효과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그들이 예수를 믿는데 가장 큰 장벽은 무엇인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지난 2 천 년 간 유대인들은 서방 기독교 국가들에 의하여 예수 살인자라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수많은 박해를 당했고 죽음을 당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스페인과 포르투칼에서의 박해와 대학살,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에 의한 6백만 명 대학살은 전부 예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유대인들은 세상의 모든 귀신들과 우상들은 다 믿을 수 있어도 절대로 예수만은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부터, 이러한 생각은 청소년 세대부터 점점 희석되기 시작하고, 20세기 때 보다 훨씬 자유롭게 복음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또 많은 젊은이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비근한 예로, 저희들이 베를린에서 진행하는 ‘Eat n Talk’ 모임에는 매 번 20 여명의 세속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들은 매번 모임마다 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만 그렇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아직 주님을 접하지 않았지만 1년 째 이 모임을 참석하는 사람들이 절 반 이상입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정통 유대인들은 아직 예수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 감정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스라엘에 있는 많은 메시아닉 유대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를 진행해나가고 있기도 합니다. 한 예로, 저의 동료 목사님의 아들인 아미르가 정통 유대인이 설치한 폭탄 선물박스에 의해 거의 죽음을 당할 뻔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유대인 귀환운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 역사와 흐름은 어떤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갈등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유대인들은 사실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존재는 세상이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성경 땜에 유대인 들은 또한 인류의 적으로 간주되기 시작하습니다. 초대 교회 교부였던 저스턴 마터와 아레니우스의 가르침 때문이지요. 저스틴 마터는 최초로 유대인을 기독교인의 적으로 간주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신학을 바탕으로 토 마스 아퀴나스, 성 어거스틴, 루터, 칼빈 등이 유대인들을 배척하고 대체 신학을 통하여 교회가 영적 장자 이스라엘 이 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신학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대체신학을 바탕으로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예수 살인자라는 죄명으로 박해를 받기 시작하고, 그 박해를 피해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거처를 찾아 떠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은 중국, 미국, 남미 등 온 세계에 퍼져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운동은 지난 2천 년 간 멈추어지지 않았고, 1881년 초 러시아 황제가 알렉산더 2세가 암 살 당하자 그것이 유대인 소행이라는 헛소문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자 1881년부터 2년간 수많은 러시아 출신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귀국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시온 땅으로 피난 온 그들은 말라리아와 기아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됩니다.

 

그러자 프랑스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사제를 털어 공식적으로 제 1차 유대인 이민자들을 모집하여 농기술을 가르치고, 오스만 터어키로부터 이스라엘의 해변안 땅을 현재 아쉬돗부터 하이파 아래 지역인 블레셋 평야와 샤론 평야, 그리고 이스라엘 평야 지역, 그리고 갈릴리 서편 지역을 사들이게 됩니다.

 

그리고 1차 이민자들을 이스라엘에 보내어 갈릴리 주변에 드가냐 기부츠, 텔아비브 주변 기부의 가루요 등 많은 기부츠들을 세워 이스라엘 땅의 개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때 부터 시작하여 234차 알리야 운동이 일어나 마침내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1948까지 지속이 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나서도 Jewish Agency를 통하여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귀환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유대인들의 귀환 이유의 대부분은 반 유대주의의 박해를 피해 귀국하기도 하고 또한 시오니즘의 영향으로 귀국을 하기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은 반 유대주의를 사용하셔서 수 많은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오게 만드셨다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의 재건이 1948년 가능 했던 것도 아이러니컬하게도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의 핏 값으로 가능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 세상이 이해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사실 이들 알리야 운동과 는 사실 큰 상관이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는 유대인들이 2천 년 간이나 이스라엘을 떠나 살다가 갑자기 팔레스타인 땅으로 찾아와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 쫒고 팔레스타인을 정복 하여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정말 그냥 이야기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전혀 무시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야곱에게 주셨고, 그리고 이 땅에 진정 주권적 나라를 세웠던 민족은 유대인 밖에 없습니다. 바로 다윗의 왕국, 마카비 왕국, 그리고 현대 이스라엘 공화국입니다. 그 외에는 이스라엘을 점령 하여 자신들의 속국으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이집트, 바벨론, 앗수르, 페르시아, 터어키, 영국 등.

 

더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땅에서 유대인 민족의 존제가 지난 2천 년간 단 한번도 끊어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조: https://en.wikipedia.org/wiki/Aliyah#1200.E2.80.931882).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땅이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존제를 말살하려고 했던 로마인들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고, 나중에 이스라엘의 존제를 부정했던 영국에 의해 그려진 이스라엘 지도에 지명을 팔레스타인으로 명명되며 팔레스타인이 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리던 나라가 인류 역사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무슨 소리? 구약에 블레셋이 있었지 않았어요?” 그러나 블레셋과 팔레스타인을 동일시하는 것은 완전한 역사적 무지의 결과입니다.

 

블레셋 (Philistine)은 아랍 민족이 아니라 그리스 민족입니다. Sea People이라고 불리던 민족으로서 호머의 서사 시 일리노이즈 오딧세이에도 나오는 그리스와 마세도니아 사람들과 동족인 것입니다.

 

그러면 팔레스타인 민족은 누구일까 요? 16세기 초 오스만 터어키가 이스라엘 땅을 지배하게 되면서 슐탄 슐레이만은 민족 혼합 정책을 쓰게 됩니다. 민족들을 뒤섞음으로서 터어키 제국에 대적할 민족들을 뿌리 뽑는 정책이었지요.

 

그래서 오스만 터어키에 의해 점령당한 수많은 카프카스, 아르메니안, 아라비안, 수단, 코카시언 등의 민족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강제 이주되어 들어옵니다. 이들이 정착하면서 유대인 원주민들 사이에 섞여 살게 되기 시작하고 나중에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명명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원뿌리가 어느 민족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뿌리를 모르다보니,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블레셋의 후예라고 주장하기 시작하고, 자신들이 유대인들 보다 먼저 이스라엘 땅에 거주하기 시작하다고 거짓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셋과 팔레스타인은 역사적으로 인종적으로 전혀 아무런 연관이 없는 민족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사실 영국에 의해 조장된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영국이 지배하던 식민지 나라 중 오늘날 까지 갈등이 지속 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그렇고 수단이 그러합니다. 영국이 지배하던 이스라엘과 중동이 또한 그러합니다.

 

프러시아와 터어키 연합과 1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영국 프랑스 연합군은 터어키를 분쇄할 해법을 찾던 중, 하산 후세인이라는 아랍 리더를 만나 영국과 협력하여 중동 땅에서 터어키를 축출하는데 협력을 하면 아랍 제국을 건설하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이와 함께 전쟁 비용이 필요 했던 영국은 세계적인 은행가 로스차일드에게 전쟁 비용을 대어 주면 고토 이스라엘 땅을 유대인의 국가로 회복 시켜 주겠다고 약속하고 발포어 선언을 선포합니다. 이 발포어 선언을 들은 하산 후세인은 영국에 통일 아랍제국을 세워 주겠다는 약속을 어겼다고 반발합니다.

 

그러나 영국은 태연히 그 아랍제국에 이스라엘 땅이 포함되어 있다고 약속한 적은 없다고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세계1차대전이 끝나고 영국 프랑스 연합군이 승리를 하자, “백지 선언을 통하여 발포어 선언을 파기하고 이스라엘 땅은 영국 통치로 넘어 가고, 나머지 중동 국가들은 프랑스령이 되거나 영국 식민지로 되었다가 좀 더 작은 국가로 쪼개어 독립을 시켜 버립니다. 영국에 대항할 만한 통일 아랍 국가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긴 것이지요.

 

이에 중동에는 절대 공존할 수 없는 두 민족이 공존하게 되니 두 민족 간에 갈등은 첨예하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1929824일 헤브론에서 68명의 유대인들이 아랍 사람들에 의해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대인들은 아랍에 대항하여 싸우게 되고 마침내 1936년 아랍의 봉기가 일어나 본격적인 중동 갈등이 시작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현존하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의 시작인 것입니다.

 

뉴스 미디어는 대부분 친 아랍, 친 이슬람의 성향으로 팔레스타인 편을 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적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땅이었고, 현재도,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가 존재해 본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928절에 하나님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이방 땅에 남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귀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적 간섭에 의해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진행될 것입니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들의 귀환이 일부 기독교인들이 진행하는 귀환 운동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고토로의 귀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유대주의등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셔서 유대인들의 귀환 의지, 또는 기독교인들의 귀환 운동과는 상관없이 유대 인들의 고토로의 귀환은 진행되게 하실 것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진정해야 할 일은 그들이 고토로 돌아가기 전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 메시아닉교회 예배에서 설교하는 김홍근 선교사     ©뉴스파워

 

바람직한 이스라엘, 유대인 선교의 전략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선교와 전도의 개념 차이는 바로 전략입니다.

 

선교는 한 선교사가 한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인생을 걸 때, 자신의 섬김이 20년 후, 50년 후, 또는 100년 후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곳인지에 대한 그림 (비전)을 가지고 복음 확장 사 역을 하는 것이 선교이며, 전도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그날그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전도라고 할 것입니다.

 

전도에는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치 않습니다. 단기적인 복음 전파가 필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선교를 할 때는, 먼저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의 개념을 이해하고 이 개념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 복음적 변혁(Transformation)을 위한 2050100년 사역의 로드맵(ministry Roadmap)을 먼저 만들어 사역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 장기적 사역 로드맵을 만드는 일을 선교학적 선교 전략 연구라고 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스라엘 의 선교라는 것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선교는 현지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없는, 그렇지만 선교사는 해 줄 수 있는 장기적인 사역의 비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까지 한국인 선교사들은 이스라엘 유대인 사역을 할 때 근시적인 선교를 해왔습니다. 전도를 하고, 현지인 교회 사역을 돕고 컨퍼런스를 하여 유대인 목회자들을 한국 교회에 알리고, “이스라엘 회복운동을 활성화 하는 등의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 대부분 왜 자신들이 하는 사역이 왜 필요한지 그 사역이 앞으로 2050, 100년 뒤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올지에 대해서는 선교학적 선교 전략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는 상황입니다.

 

21세기 이스라엘 선교는 이제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첫째로 장기적인 선교 로드 맵이 먼저 완성 되어야 합니다. 그 로드맵을 통하여 한 선교사, 또는 한 현지인 사역자가 사역을 하다 중단하게 되어도 그 다음 사 역자가 동일한 로드맵으로 50년 이상 진행할 수 있는 선교 전략적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두 번 째로 이를 위해 또한 이스라엘 선교학이 완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30년간 한국 교회들의 이스라엘 선교는 너무나 무목적이었고 무전략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나 많은 재정적 인력적 낭비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이러한 실수의 쳇바퀴를 돌리는 일은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21세기에는 이스라엘 선교를 해야 할까요?

 

첫째로 이스라엘이 가장 필요한 그러나 이스라엘이 할 수 없는 것 중 한국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선교 역사를 나누어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스스로 자립하고 스스로 복음화의 열정을 다시 불태우도록 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경제적으로도 부강합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고, 스스로 교회가 생존할 수 있고, 스스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메시아닉 유대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빼앗는 짖은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돈으로 그들을 무능하게 만드는 것도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어떠한 혹독한 환경에서도 스스로 생존하고 성장하는 방법들을 배우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시화운동본부의 모토인 전 복음을 전 시민에게구호는 이스라엘의 메시아닉 유대인들에게 스스로 전도를 권면하는 좋은 동기 부여의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 합니다.

 

두 번 째로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가 기도의 집들을 우후죽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체들을 데리고 가서 전도 하는 일도 아닙니다.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이스라엘의 현지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가장 이스라엘이 시급한 것은 차세대 리더들을 양성하는 것입니다.

 

특히 자립을 할 수 있는 Bi-vocational pastors(이중 직업을 가진 목회자들)들을 길러 내는 것이 이스라엘의 복음화를 위한 장기 전략 중 하나일 것입니다.

 

세 번 째로 이사야 6010절에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의 성을 재건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스라엘 메시아닉 유대 인들이 전 세계로부터 고립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자립하여 생존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것입니다. 무조건 유대인 리더들을 불러 헌금을 안겨 주는 행위는 이제 멈추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디아스포라 유대인 전도도 한 가지의 유대인 선교 전략입니다. 미국에만 하더라도 6백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고, 이스라엘 출신 유대인만 하더라도 백 만명 이상이 미국에 있습니다. 베를린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 만 명 이상 거주하고 있고 일 년에 십만명 이상이 방문을 합니다. 한국 선교사들의 이스라엘 장기 체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베를린 이스라엘인 사역은 유대 선교사들에게 최고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목숨 건 주님의 사랑으로 제자화를 하는 철저한 제자(급진적인 제자, Radical Disciple)를 양성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훈련과 함께 삶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또는 유대인 선교사역에 있어서 유념에 둬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스스로 할 일을 뺐지 말자.”

 

선교는 백년대계이다. 나는 그 사역의 결과를 보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그 사역을 완성시키시도록 사역을 진행해야 하며, 반드시 그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변혁(Transformation)을 가져올 것을 확신하고 사역하자.”

 

이스라엘이 가장 필요한,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없는, 그러나 선교사가 해 줄 수 있는 사역, 그리고 그 사역이 이스라엘의 복음화의 로드맵이 될 수 있는 사역은 무엇인가?”

 

나의 사역을 통하여 이스라엘 교회가 오염(spoil)되지는 않을까?”

 

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나?”(Why am I doing what I am doing?)

 

등을 염두에 두었으면 합니다.

▲ 김홍근 선교사     ©뉴스파워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관계는 어떤가요?

 

이슬람과 유대교 관계는 정말 오묘 합니다.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 움마야드 왕조가 중동을 점령했을 때, 이슬람은 난관에 봉착을 합니다. 초기 이슬람 전사들은 사실 사막의 하이에나와 다름없는 일자무식의 도적 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광활한 땅을 점령한 후, 이슬람 왕국은 통치의 어려움을 겪게 되고 통일된 이슬람 경전이 없어 이슬람식 통치에 일관성을 가질 수가 없는 상황이 수 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칼리프 움마야드는 유대인 들 가운데 랍비 유대교를 배척하는 카라잇 유대교인 랍비를 불러 이슬람의 경전을 완성하고 신학을 완성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이슬람 신학과 카라잇 유대교는 많은 부분을 공유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차 이슬람은 자신들의 석학들을 배출해 냄으로써 나름의 방면으로 발전하게 되며 카라인 유대교는 점점 쇠퇴하여 랍비 유대교 에 거의 묻히다 시피하게 됩니다. 물론 현재까지 가늘게나마 명맥은 유지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계로 이스라엘 내 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두 종교 간의 대화는 사실 종교학 관점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는 이슬람은 타종교와 이교도들을 죽음을 당할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언제나 적대적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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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10 [11: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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