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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19 [03:0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눅 16:1∼13)
 
박성민


얼른 제목만 봐도 과연 이 말씀이 우리 믿는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 의아해 할 수 있다. 사실 비유를 얘기할 때 가장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는 비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옳지 않은 청지기’(8절)다.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살펴보자.

1절을 보면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자’였으며, 그로 인해 해고 당할 시점에서(2절) 그는 소작인들의 빚을 탕감해줌으로써, 자신이 쫓겨난 후에도 자신을 반겨줄 사람을 만들겠다는(3∼7절) ‘꾀’를 쓰는 어찌보면 ‘괘씸한’자로 나타난다. 현대 상황에 비추어 보면 직무 태만과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해고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장부 조작을 통해 거래처의 부채를 감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살 길’을 마련하는 ‘못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회사의 입장에서, 특별히 경영자의 입장에서 이런 사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부분은 당장 경찰서로 넘길 것이다.

만약 오늘 본문에서도 이 사람을 8절의 표현대로 ‘옳지 않은 자’로 결론을 맺었으면, 이 비유는 하나의 윤리적 교훈으로 생각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서는 안된다.’라고 동의하며 쉽게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자네, 일을 잘했네. 진정으로 지혜로운 일을 했구만.”이라고 8절에서 이 청지기를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통념을 뒤집는’ 비유의 특성이다.

이렇게 독자(또는 청중)의 기대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방법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Ⅰ. 해석의 기조가 되는 두 가지의 중요한 관찰

첫째, 이 비유가 누구에게 주어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절에 그 해답이 있다. 또한 이 비유의 누가복음 내에서의 위치를 생각하여 본다면, 이 비유는 누가복음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9:51∼19:27)이라는 커다란 부분 속에 속한다. 다시 말해 이 비유는 제자의 삶과 관련해서 주어졌다는 점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에 뒤이어 나오는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라는 말씀은 ‘우리가 재물로 구원과 축복을 얻을 수 있으며 살 수도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만 사용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진 재물-천국에 가지고 가지 못하는 이것 때문에 여기서는 ‘불의의 재물’ (inv번역에서는 worldly wealth이라 불려진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비유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영원하지 못한 세상 재물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열매를 맺게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둘째,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 의도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지혜’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다. 다시 말해 위의 청지기는 ‘정직하지는 않았지만 지혜로운 자’였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요지인 것이다. 결국 ‘부정직’이라는 면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각을 가진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고정 관념을 뒤집어 엎는 충격요법을 통하여 ‘지혜로운’ 삶에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하고 계신다.

Ⅱ. 이 비유를 통해 얻는 교훈

이 비유에서 얻는 첫째 교훈은, 세상에 속한 자원들을 우리가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진리 중에 진리이다. 그 사이에 잠깐 우리의 손에 주어지는 ‘불의의 재물’이 주위의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져 사용되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불의의 재물’을 우리의 영원한 소유로 바뀌게 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둘째,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혜롭게 사용할 때 더욱 큰 것을 우리에게 맡겨주신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0절을 보면 세상의 재물을 ‘작은 것’이라 말씀하고 계시며, 그 대조의 개념으로 ‘큰 것’을 말씀하신다.

지난 호에서도 강조했듯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 개념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즉, 우리에게 맡겨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작은 것에 충성할 때 더욱 더 커다란 깨달음과 은혜를 주시며 사역 또한 맡겨주시고 관리하게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셋째, 교훈은 우리의 참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데 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이 바로 우리를 주관하는 주인이 된다. 만약 물질적 풍요를 위해 그리고 물질적 안정을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궁극적으로 물질이 우리의 “참 주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부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 올바른 관점이 바로 지혜로운 부의 사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Ⅲ. 비유의 교훈과 우리의 현실
자본주의의 궁극적 실은 ‘자본’이다. 매우 빠른 속도로 온 세상이 그 이념에 점령되어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이념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공생 철학이 있다면 바로 ‘물질주의’며 그 친구라 할 수 있는 것은 ‘개인주의’이다. 이러한 철학들은 특별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고삐가 풀린 망아지처럼 더욱 더 기승을 부릴 수 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 속의 비유를 통해서 도전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아야 한다. “오늘 나는 누구를, 또는 무엇을 섬기며 살 것인가?” 그리고 나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각자 선택하고 일단 선택을 했으면 그 선택을 좇아 일관성을 가지고 살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그 선택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진정한 것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동시에 ‘인간은 결국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라는 진리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했다면, 우리의 남은 여생 동안 일을 하거나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돈을 벌 때나, 하나님을 ‘섬길 때’에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우리 삶의 진정한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맡기셔서 관리하라고 주신 이 세상에 속한 자원들을 내가 어떻게 사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늘 던지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을 통해 결단을 내리고 그 결단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 모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의미를 진정으로 발견하게 되며, 그 축복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찬 받는 자들’이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영원한 소유을 생각하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자들’이 더욱 더 필요한 때다.

 
 
박성민 박사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금속공학박사를, 미국 트리니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c.c.c.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리더십 제대로 오르기]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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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4/23 [17:0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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