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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21 [02:09]
천재는 특별하신 하나님의 요구가 있다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미켈란젤로
 
한평우

 

역사적으로 아주 탁월했던 사람들을 천재라고 칭하며 사람들은 그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천재란 어떤 사람일까?

▲ 미켈란젤로 흉상     © 뉴스파워

어느 음악가는 말하기를 천재란 보통 사람이 느낄 수 없고, 깨달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고 보는 사람이라고 한다.

 

유투브를 볼 때마다 감동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제 겨우 9살의 네델란드 소녀가 푸치니(Puccini)의 오페라 잔니스키키의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Oh mio babbino caro)를 불러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다. 심사위원들은 기적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겨우 9살된 아이가 어른의 감성을 가지고 고음과 기교를 요하는 아리아를 그리 잘 부를 수 있느냐고 감탄했다. 이런 것이 곧 천재의 재능이 아닌가 한다.

 

그런 정도를 깨달으려면 보통은 2-30대가 되어야 하는데 십대에 깨닫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사람들은 환호하며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런 의미에서 미켈란젤로(Michelangelo1475-1564)는 조각과 회화, 그리고 건축, 또 시인의 범주까지 넘나드는 천재다. 그는 89(1564,2,18)로 죽는 순간까지 수많은 걸작을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카프레세(Caprese)에서 루도비코 부오나르티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을의 말단 관리였다. 특히 카프레세는 피렌체의 동쪽, 100Km 떨어진 깊은 산속 작은 마을로 로마를 관통하는 테베레 강의 발원지이다.

 

이 마을의 뒤편에는 성 프랜시스가 기도하던 베르나(S,Verna) 산이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성 프랜시스가 이곳을 방문하여 너무 아름다운 곳임을 깨닫고 작은 하나님의 계곡(La piccola valle di Dio)이라 칭했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영세를 받았고 석 달 만에 피렌체로 이주하였다. 어머니 프란체스카(Francesca)1481, 미켈란젤로가 여섯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세티카노의 유모에 맡겨졌고 유모의 남편이 석공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대리석을 가까이 했고 끌과 망치가 그의 장난감이었다.

 

1490년 아버지는 피렌체의 로렌초 대공에게 아들의 양육권을 넘겨주었다. 메디치가의 대공 로렌초는 예술가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후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15세에 메디치 궁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박식한 인문주의자 안젤로 폴리지아노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어릴 때 어머니를 사별하였기에 그의 작품에는 항상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슬픔이 묻어 있다. 바티칸 입구 오른편에 있는 그의 첫 작품 피에타(Pieta)는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이다. 마리아의 얼굴은 슬픔이 어려 있는 모습인데,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의 형상일 수 있다.

▲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집     © 뉴스파워

 

그는 평생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작품 활동을 했다. 정면을 보지 않고 약간 비켜있는 여인상, 또는 고개를 조금숙인 여인상이야 말로 미켈란젤로의 어머니에 대한 영원한 구원의 표상일 수 있다.그럼에 비해 웃음기를 살짝 비치고 있는 모나리자의 형상은 레오나르도다빈치의 어머니와의 행복의 반영일 수 있겠다 싶다.

 

23살에 피에타를 성공적으로 제작한 그는 1501, 그가 26살에 그 유명한 다윗 상을 제작했다. 건장한 다윗상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근육처럼 조각되었다. 그런 근육을 표현하기 위해 주교의 허락을 받아 묘지에서 시체를 해부함으로 인체의 비밀을 터득해야 했다. 그는 이 작품들로 벌써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다. 당시 자신 보다 23살 연상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필적할 만한.

  

그는 조각의 독특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보통사람은 돌을 쪼아 원하는 상을 만드는 것으로 인식한 반면, 그는 이미 돌 안에는 상이 준비되어 있기에 그 부산물을 떼어내어 원래의 상을 들어내는 것을 조각가의 사명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돌의 산지인 카라라에 가서 돌을 고르느라 수개월씩을 보내야 했다. 이런 일을 교황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그를 불러 자신의 영묘 제작을 의뢰했다. 당시 최고의 권력자 교황의 부름을 받는 다는 것은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야심차게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정작 교황의 관심은 다른데 있었다. 그 이유는 교황은 브라만테에게 바티칸을 건축하도록 의뢰하였고 영묘를 바티칸 안에 두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방     © 뉴스파워

 

미켈란젤로는 교황이 자신에게 맡겨준 영묘제작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일이 브라만테의 농간에 의한 것으로 오해했다. 그래서 짐을 싸가지고 피렌체로 돌아와 버렸다. 그러나 교황은 피렌체 당국에 미켈란젤로를 보내지 않으면 피렌체를 공격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대사의 중재로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교황은 돌아온 그에게 시스티나 천장화를 맡겼다.

 

미켈란젤로는 한사코 그 일을 맡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새롭게 부상한 화가 라파엘에게 맡기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의도 했지만 교황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조각가였기에 대형 프레스코 화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더욱 난감해했다. 한번 실패하면 끝장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프레스코 화는 회반죽이 마르기 전에 그려야 하는데, 빠르고 정확하게 그려야 하고, 잘못 그리게 되면 전부를 부셔 뜨려야 하는 고달픈 작업이었다.그는 생각하기를 브라만테가 자신의 작업을 실패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교황을 꾀여 이런 어려운 일을 맡도록 유도하였다고 믿었다.

 

미켈란젤로는 거부할 수 없다는 현실 앞에서 이를 갈며 라이벌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일념으로 1508-1512동안을 오기로 매달려 방대한 천정화를 완성하였다. 당대의 화가들조차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걸작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후 후임 교황 바울 3세에게 불려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도록 의뢰 받았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아담을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으로 생각했다. 아담이 죄에 오염되지 않았을 때의 형상, 그것은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항상 나체를 고집했다.

 

그는 최후의 심판에서 지옥의 장면 중에, 지옥의 왕 미노스를 거대한 뱀이 칭칭 감고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그런데 미노스의 얼굴을 교황의 의전관 체세나로 그렸다. 그 이유는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중에 교황이 의전관 체세나를 대동하고 그림의 진도를 보려고 방문했는데 모든 인물들을 벌거벗은 모습으로 그린 것을 보고 불쾌하게 여겨 혹평 했기 때문이다.

 

그림들이 불경하여 목욕탕에나 어울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크게 분노하여 지옥의 왕 미노스의 얼굴을 의전관 체세나의 얼굴로 대체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체세나는 얼굴그림을 바꾸어 주도록 교황에게 간청했다. 그 때 교황은 이런 유명한 얘기를 했다.

 

자네를 연옥에 넣었으면 내가 부탁해서 구원해 주겠다만 이미 지옥에 있는 이상 어떻게 옮길 수 있겠는가!”

 

웅장한 바티칸의 건축에는 천문학적 재정이 소요되었기에 속죄권이 판매되어야 했고 독일에서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당시 말틴 루터는 구원의 문제로 갈등하다가 1,500, 로마를 방문했다. 두 사람이 만났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최후의 만찬 하단에는 두건을 쓰고 겁에 질려있는 수도사의 얼굴이 만년의 루터를 닮았다고 한다.

 

또한 마가가 껍질을 벗겨 순교 당하는 그림을 그려 넣었는데 그 벗긴 껍질의 얼굴을 자신의 모습으로 그렸다. 그렇다면 자신의 영적 연약함을 통절하게 느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그림의 낙성식 때 벽화를 본 바오로3세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심판의 날에 죄의 죄를 묻지 마소서 라고 기도드렸다고 한다.

 

당시 미켈란젤로는 가장 유명한 인사가 되어있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최고의 권력자들이 손을 내밀었고 그에게 작품을 맡기려고 안달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상에서 존경을 받게 되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미켈란젤로가 유명세를 타자 그는 지휘 고하를 막론하고 함부로 대했다고 한다. 그가 77세가 되었을 때 어떤 이탈리아 사람이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이라고 하는 편지를 썼다고 수령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답장을 보내도록 했다.

조각가 미켈란젤로 앞이라고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전하시오.

 

나는 미켈란젤로 부오나르티로 통하고 있으니까.”

나는 공방을 경영하고 있는 화가나 조가가인 적은 한 번도 없었소.

내가 교황들에게 봉사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강압에 의한 것이었소.

 

그는 만년에 브라만테가 미완성으로 남겨 놓은 베드로 성당의 둥근 지붕을 씌우는 공사를 맡았다. 이 거창한 작업에 대한 공사비를 받지 않았다. 세계의 총 본산인 대 성당을 위한 일을 세속적인 이윤으로 더럽혀서는 안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연옥에서 구원 받도록 속죄권을 요구하였다.

 

돔은 직경이 42m로 판테온 보다 1.3m가 작지만 높이는 무려 132.5m나 된다. 주변 길이가 71m나 되는 네 개의 각주에 의해 떠 받쳐지고 있다.

 

이것은 건축학적으로도 아주 놀라운 일이다.

 

사람의 길은 자신도 알 수 없다. 그는 조각가의 길을 가기 원했으나 화가의 길을 가야 했고 또한 건축가의 길까지, 더 나아가 시인의 자리까지 섭렵하여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대단한 재능을 허락하셨다는 의미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일생을 밀려다녔지만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은 공간과 시대를 뛰어넘어 온 인류에게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내려주시는 천재라는 은사, 그 은사야 말로 하나님께 봉사하고 인류를 섬기라고 주시는 재능이지 싶다.

 

인생은 결국 재능이 있는 자나 없는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데 그 분께 보고 드릴게 많은 사람이 잘 산 인생이 아닐까 싶다.

 

그는 장수하여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아쉽다, 이제야 조각의 기본을 알 것 같은데.”

 

어느 은퇴하는 목사님이 비슷한 말을 했다. “이제야 성경이 보이는 데.”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무엇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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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4 [08:00]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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