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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21 [02:09]
렘브란트와 윤동주의 영성
예장통합 문화법인, 문화목회간담회 '허브' 개최
 
범영수

렘브란트와 윤동주의 작품에서 나타난 영성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열렸다.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 문화법인은 20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문화목회간담회 ‘허브’를 개최했다.     ©뉴스파워 범영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 문화법인(이사장 서정오)20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문화목회간담회 허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미학과 문학 영성으로 삶에 들어오다라는 주제를 통해 렘브란트의 그림과 윤동주의 문학을 통해 나타난 영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 서성록 교수(국립안동대학교 미술학과)     © 뉴스파워 범영수


램브란트의 영성에 대해 강연을 펼친 서성록 교수(국립안동대학교 미술학과)는 화가가 자화상을 그릴 때 자신을 실제보다 멋지게 묘사하거나 꾸미는 것이 보통이지만 렘브란트의 경우 냉혹할 정도로 엄격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 교수는 렘브란트는 자화상을 통해 삶의 희로애락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과오까지 숨김없이 표출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렘브란트가 자기미화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자화상을 그림의 한 장르로 보기보다 영혼의 거울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기의 렘브란트는 자신을 거지와도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서 교수는 여러가지 측면이 있지만 페스트가 횡행하던 시기 삶과 인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과 통찰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렘브란트가 초라하게 자신을 그렸던 이유를 설명했다.

 

고향인 라이덴을 떠나 암스테르담으로 이사한 렘브란트는 그곳에서 배우자인 세스키아라는 여인을 만나 결혼한다.

시장 가문인 세스키아와의 결혼 후 처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렘브란트는 전성기를 맞게 되고 당시의 자화상은 굉장히 자신감에 차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만년의 렘브란트는 번화가에 있는 그의 저택과 소유물이 은행에 차압당하고 슬하의 자녀들을 일찍 잃었다.

또한 그의 명성은 곤두박질 쳐져 쓸쓸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서 교수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임에도 오히려 렘브란트는 평온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했다고 말했다.

당시 렘브란트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표현한 작품에 자신을 그려 넣어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돌아온 탕자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방황하다가 주님의 은혜를 입어 다시 돌아오는 자신을 표현했다.

 

서 교수는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한편의 자서전이라고 표현했다.

청년기의 때 묻지 않은 모습에서부터 욕망으로 물든 장년기의 방황과 타락의 모습, 만년에는 구속을 입은 인간으로서 하늘의 평안을 펼쳐보였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렘브란트는 부유하거나 행복할 때는 물론이고 재산이 차압당하고 아내와 자식들이 하나 둘 자신을 떠나가는 등의 절망적인 순간에 처해 있을 때조차 하나님께서 불쌍한 자신을 도우시고 선한 길로 이끄시리라 확신했다렘브란트는 고통이라는 영토도 하나님께서 관할하시는 지역임을 잊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윤동주의 문학에 나타난 영성에 대한 강연은 권혁일 목사(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편집자)가 맡았다.

 

▲ 권혁일 목사(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편집자)     © 뉴스파워 범영수


권 목사는 기계 장치의 신과 대조되는 항상 부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는 신이자 인간의 고통을 방관하면서 무대 위로 등장하지 않는 신이라는 숨은 신에 대한 개념을 설명하며 윤동주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숨은 신의 시대라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문학관을 민족 문학이라고 말한 권 목사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집단적인 실존이 위태로워진 한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고 독립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된 윤동주의 판결문에 따르면 윤동주가 문학은 반드시 민족의 행복 추구의 견지에 입각해야 하며, 조선 독립을 위해 조선인들의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수단들 중 하나다라고 생각한다고 적시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권 목사는 윤동주는 막대한 고통이 가득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인 독자들의 마음에 민족적 정서를 일으키는 중요한 수단이 바로 시를 읽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뿐만 아니라 윤동주는 자신의 시를 통해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위로와 치유를 얻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권 목사는 <이적><힌 그림자> 등의 시를 통해 윤동주의 영성을 설명했다.

 

윤동주의 연희전문대 1학년 시절 만들어진 <이적>에서는 하나님의 부재가 눈에 띈다.

부르는 이 없이 불리워 온 것은 참말 이적이외다라는 구절에서 권 목사는 왜 부르는 이가 없을까? 그것은 그가 당시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집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님의 부르심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희전문대 졸업 후 일본 유학 당시 쓴 <힌 그림자>는 집착으로부터 초연해진 윤동주의 영적 성숙을 볼 수 있다.

 

권 목사는 윤동주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숨은 신의 시대에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매일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을 관상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시대를 향한 희망 속에서 사람들과 사회의 근본적이며 내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시적, 예언적 영성이 필요로 한다는 점이라며 이것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제자도를 급진적으로 실천하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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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6/20 [18:1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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