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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23 [04:05]
<직장선교 메시지>우리 직장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자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윤장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

 

본문 : 롬4:17~24

 

모든 창조물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창조됩니다. 창조할 때부터 창조 목적을 가지고 창조됩니다. 마이크는 소리를 증폭해서 많은 사람들이 듣도록 하는데 그 창조목적이 있습니다. 하찮은 이 마이크도 이런 창조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창조 목적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의미한 인생이나 우연의 산물이 없습니다. 목적 없이 태어난 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려 살아야 할 존재입니다. 다른 힘에 이끌려서 살아선 안됩니다. 세상 힘에 이끌려 살아선 안됩니다. 이 마이크는 마이크의 창조 목적을 알 때 비로소 이 마이크에 의미가 부여됩니다. 이 마이크를 망치로 사용될 때 미 마이크의 의미는 상실되고, 파괴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우리의 인생에 비로소 삶의 의미가 부여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삶이 단순해 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삶의 초점이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삶의 동기가 유발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알 때 영생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모르면 인생의 의미를 모른채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져 방황하게 되고, 인생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고, 초점이 없으며, 삶의 의미와 동기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영생을 준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 : 창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죄악으로 인하여 세상 모든 인생을 물로 심판할 때, 유일하게 남아 제2의 아담이라고 할 수 있는 노아 : 창9:1,2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 창12:1,2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구약을 지나 신약시대 예수님 : 마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들의 공통점은 정복하라 입니다. 땅끝까지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문화명령과 지상명령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땅끝까지 정복하라는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개인적으로 가끔 회의가 드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이것이 과연 가능한 명령인가? 하는 것이다. 이 땅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는 세상, 늘어나는 술집과 음란한 세상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가능한 명령인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기 모인 소수가, 아니 여러분 혼자가 여러분의 직장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땅끝까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 하다가 어려움이 닥치고, 어떤 불가능한 일이 보이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도리어 위험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맡긴 것을 도로 가져오고 싶은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므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의 믿음을 결코 따라 갈 수 없는 믿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처음부터 그런 믿음의 소유자이었습니까? 그가 정말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습니까? 같이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1.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그의 행동을 살펴 봅시다.

 

12장에서 그는 그의 나이 75세에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리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10절에 그 땅에 기근으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한 애굽으로 내려가서 기근을 해결하고 대신 사라를 누이라고 속이고 목숨을 부지하려 합니다. 즉 사라를 희생시키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경제적 위기에 자신의 생각과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그 어디서도 하나님을 찾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리라고 염두에 두지도 않습니다. 사라를 희생시키려는 비굴하고 비겁한 모습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애에 주권적이고, 일방적으로 개입하셔서 아브라함을 구원하십니다. 이 일로 인해 아브라함은 바로에게도 창피를 당합니다. 그의 거짓말과 그의 비겁한 행동이 들통납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은 죽을 때까지 사라의 원성과 바가지를 들으며 족장의 권위도 무너진채 살아갔을 지도 모릅니다. 약속 받은 믿음의 조상의 모습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수시로 예배드리는 삶을 삽니다. 철저하게 주일예배, 수요예배, 가정예배 등 예배드리는 삶을 삽니다.

 

그러나 갑작스런 실직의 위기가 왔을 때 가족을 부양하고 보호할 능력이 없어질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하나님께 들이대며 문제를 해결 하려고 하지는 않을까요. 하나님 찾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이 도와주시리라고 염두에 두지도 않고 비굴하고 비겁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요. 만약 그런다면 아브라함이 바로에게 창피를 당하듯이 우리는 불신자에게 창피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또 현재 실직의 상황은 아니더라도 실직 위기가 오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생각대로 성경공부와 기도를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까.

 

청년들의 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이 시기에 직장을 갖기 위해 자기의 계획대로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승진이나 사회적 지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자기의 지혜대로 전도하고 양육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는 않습니까.

 

우선 먹고 사는 것이 해결돼야 사역도 할 수 있지 않느냐며 지상명령 성취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까.

 

2년전 우리가 bccc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직장에서 승진을 못해도 사회에서 매장을 당해도 주님의 지상명령 성취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다니엘이 30일간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경배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한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30일간 기도하는 것을 보류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난 열린 창에서 (숨어서 한 것이 아니라 창문을 열어놓고) 전에 행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원망의 기도를 드린 것이 아니다) (단6:10). 그는 사회적 매장, 경제적 매장, 정치적 매장 아니 사자 굴에 던져 생명을 잃어 버리는 결과가 오는 것을 무릎쓰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구차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니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5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아브라함이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내 집에서 길리운 자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약속을 상기시킵니다.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 같이 셀 수 없을 정도가 되리라’. 이 때 아브라함의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이 이를 의로 여기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약속의 증거를 요구합니다. 하나님에게 증거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증거가 필요 없으신 분이시지만, 제물로 드릴 짐승의 중간을 쪼개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약속하십니다. 즉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이 짐승처럼 가운데를 쪼개겠다는 의미입니다. 결혼식 때 우리는 회중 가운데로 행진하면서 서약을 합니다. 이 서약의 의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결혼식의 서약을 목숨을 걸고 지키겠다는 의미입니다.

 

16장에서는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한지 10년후(그의 나이 85세)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불신앙의 모습을 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7장에서는 이스마엘을 나은지 14년후 즉 아브라함이 99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열국의 아비, 많은 무리의 아비)로 고치고, 사라의 이름도 사래에서 사라(여주, 여왕, 왕비, 열국의 어미)로 고치고, 다시금 자녀에 대한 약속을 주십니다. 사실 이 때 아브라함과 사라는 기가 막혔겠죠.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나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이스마엘이나 잘되길 바라나이다 하면서 속으로 웃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자기의 계획이나 잘되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마엘이라도 낳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네. 참 다행이다. 하나님의 수고를 덜어드렸구나’ 그러나 하나님은 자녀에 대한 약속을 다시 확인시키시면서 이삭이라는 이름까지 줍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웃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주권으로 이루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불신앙의 웃음을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웃음으로 바꾸십니다.

 

18장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 많고 사라의 경수는 끊어진 상황에서 사라가 속으로 웃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14절에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십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보기가 힘든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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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적용해 봅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그의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짐승제물의 중간을 쪼개어, 다시말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면서 세계복음화를 약속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생명을 걸고 약속해도 꼭 지키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이야 어떻겠습니까. bccc의 사역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이고 철학이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와서 거하는 모임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와서 동참하면 같은 은혜를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비록 초창기 창설 멤버라 해도, 또 과거에 큰 사역과 열매가 있었더라도 현재 대가를 치르지 않고 헌신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커 보인다면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나이 늙고 경수가 끊겼다고 불가능하다고 포기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시지 않을 것이고 아니 사용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기를 원하십니다. bccc 초창기 멤버로서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고 후배들이 물어본다면 대답할 말을 만듭시다. 열매로 우리의 믿음을 보입시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합시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에 부디 사용해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합시다.

 

2.

이상을 보면 아브라함은 완벽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롬4장에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결점이 없는 것으로 기록했나. 4: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의로 여기셨다’는 단어는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내는 신적 수동태. 즉 하나님의 행동하심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행동으로 아브라함이 의가 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역사하심으로 평가됩니다. 4;11,12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여기에서 의의 원천은 하나님의 행동에 있습니다.

 

3.

그러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무엇인가.

창22장에 나옵니다. 아브라함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반응입니다. 예전이라면 그는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약속의 자녀라고 늦게 주시고, 그를 통하여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고, 제물로 바치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그러나 그는 의연하게 전혀 의심치 않고 그의 아들 이삭을 바칩니다. 이 사건에 대해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11:17~19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4: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그는 아들 이삭을 부활시켜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의 남은 인생에서 그는 부활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요사이는 부활을 보고도 믿지 않는 세상인데 그 당시 부활이 무엇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아브라함이 부활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는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생애속에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는 믿음의 모습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의 신앙을 빚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의 모든 연약함과 죄악을 덮어버릴 만큼의 인격이 생겨났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러 줄만한 그렇게 평가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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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약속은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가족복음화

아브라함과 사라는 25년만에 아들을 얻는 기도응답을 받았습니다. 저도 가족복음화에 대한 26년 기도응답을 최근에 받았습니다. 마지막 임종시 너무나 평안한 모습으로 천국의 기쁨을 소유한 채 돌아가신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약속은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녀의 교육과 미래

남들은 한달에 수백만원씩 과목당 과외선생을 붙여서 교육시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렇게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자녀의 미래는 보장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나 진정한 자녀교육은 무엇인가? iq 보다 eq가 높은 자녀를 교육시켜야. 위기 관리 능력, 인간관계 능력 … 조그마한 어려움이 오면 포기한다면 그가 아무리 학벌이 높은들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진정한 자녀교육은 신앙으로 무장시키는 것입니다.

 

약속은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안정되고 보장된 노후.국민연금이나 생명보험.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노후를 약속할 수 있겠습니까. 경제적 안정이 진정 안정되고 보장된 노후는 아닙니다.

 

약속은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제적 문제, 안정된 직장, 사회적 지위 확보.

저희 회사 뿐만 아니라 많은 회사들이 상시 구조조정 속에서 언제 실직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2사람중에 한 사람은 구조조정의 불안가운데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대기업에서 그 비율이 더욱 높았다고 합니다. 한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버는데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 자동차를 차압 당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법을 다루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 그래서 사회적 지위가 올라간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난 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채워 주지 않으신 것이 없습니다. 내일 당장 회사가 공중분해 되어 실직된다고 해도 그런 위기는 저에게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기뻐할 것입니다. 무소유의 기쁨, 그러나 모든 것을 소유한 기쁨을 누려봅시다.

 

약속은 있으나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입니까 ? bccc 사역의 미래

연변 과기대 – 12년전 돈 한푼 없이 허허벌판에 시작한 사역입니다.

이제 평양 과기대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에서 2%의 구성원이 그 사회를 변화시킵니다. 모택동이 중국을 공산화 할 때 2%도 안되는 공산당이 10억 중국을 공산화 했습니다. 우리나라 2500만의 직장인 중 2%인 50만이 복음의 충성된 사람이 된다면 우리의 직장은 완전히 복음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 bccc는 그 중 십일조인 5만을 목표로 삼자고 했습니다. 이제 100명 모이면서 5만의 모임을 꿈꾸다니,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2년전엔 10명이 1인당 5천명 책임지자고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오늘 100명이 모였습니다. 1인당 500명만 책임지면 됩니다. 무에서 유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이 크게 보일 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에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13:58 예수님은 믿지 않음을 인하여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큰 나무를 만듭시다. 13:31,32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지금은 겨자씨처럼 작아 보이지만 큰 나무가 되어 많은 사람이 와서 거하는 모임이 되게 합시다. 자기 직장에서 열매를 맺읍시다. 그 후에 모임으로 연결합시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제자화순모임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basic life가 점검되고, 정기적인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우리도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믿고 행동해야겠습니다. 인간의 한계점에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구원을 얻는 지혜, 믿음으로 하는 사랑, 죄용서의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4:23~24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실수투성이고 약속과 믿음을 잃어버린 것같이 보이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내신 하나님. 그가 우리를 믿음의 조상으로 빚어낼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위대한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bccc에서, 우리의 직장에서 믿음의 조상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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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4/06 [17:4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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