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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0.20 [21:05]
"그 모멸이 바로 너의 자랑이야!"
성경묵상집 『왕의 식탁에서』펴낸 헝가리 집시사역 신성학 선교사 인터뷰
 
김철영

  지난 2000년부터 거리전도 찬양집회 사역과 노숙인 사역을 시작으로 2002년 떠떠반여집시마을을 시작으로 집시사역과 함께 교회 사역을 하고 있는 신성학 목사가 성경묵상집 『왕의 식탁에서』를 펴냈다. 

 

▲ 헝가리 신성학 선교사     © 뉴스파워

신 목사는 현재 현지인 선교사역뿐 아니라 한인은혜교회공동체사역도 하고 있다. 또한 한인성도들과 함께 부다페스트에 두 번째로 개척한 현지인 케젤렘교회, 노숙인 들을 위한 오병이어교회, 떠떠반여집시교회, 유럽집시비전센터, 허또시 공립학교, 어보니교회, 레미니쉬그 교회, 노숙인 섬김사역을 하고 있다.

 

신 목사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공산국가에서 민주국가로 개방되어 많은 변화가 일어나 점점 서유럽국가들처럼 변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헝가리도 기타 유럽의 나라들럼 기독교 문화만 있지 그 역사만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가톨릭교회 뿐 아니라 개혁교회도 그 역사가 가진 연수만큼 화석화 된 심각성을 전도사역을 하면서 많이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모든 이들에게 유일의 소망이요 능력임을 체험해가고 있다.”며 “유럽 땅에서 믿는 사람들의 수가 더해져 가는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집시들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신 목사는 “집시는 노숙인과는 다릅니다. 노숙인은 헝가리가 개방화되면서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지방에서 도시로 와서 직장을 얻지 못하거나 가정적 파탄에 의하여 거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그러나 집시는 유럽인들과는 다른 민족이다. 다만 그 역사가 오래되어 이미 자국민화 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쓴 집시에 대한 글 두편을 소개했다.

 

“흔히들 집시 하면 이상한 옷차림을 하고서 시끄러운 음악이나 하며 유랑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해이다.

 

현재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는 집시들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집에 들어가 살면서 마을을 이루며 산다.

 

떠떠반여의 경우 오래전에는 광산이 있던 곳이었는데 폐광되면서 갈 곳을 잃은 집시들이 아예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것이다. 삶이 어렵고 고단하다. 집시들은 설령 대학을 졸업해도 반듯한 직장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집시인들은 도둑질을 잘한다. 거짓말쟁이다. 사기를 잘 친다. 조심해라! 교도소의 재소자 중 90%가 집시인 것을 몰라?” 이러한 사회적 인식 탓에 실력이 있다고 해도 직장 얻기가 힘들다. 그들 중 일부 아이들은 십대 후반만 되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신발수선공, 굴뚝청소부, 광대 등 사람들이 가장 천하게 여기는 일들이 그들의 몫이었고 그들의 유일한 꿈은 부잣집의 종살이였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먹고사는 일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배고픔의 역사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붙여진 별명도 다양하다. 유럽의 부랑아, 유럽의 마녀, 집단떠돌이, 거지족 등. 좋은 별명이 하나도 없다. 그러기에 이들에게도 새 소망과 비전의 삶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길로 통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집시들의 삶을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광야의 억샌 들풀 같고 사막의 모래알 같은 그들의 삶의 역사가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랑자 부랑자의 신세에서 이제는 후미진 곳이지만 정착하며 살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집시들은 대부분 가족들이 군락을 이루며 산다. 친척의 친척까지 자손의 자손이 한 마을에 더불어 살고 있다. 집시들은 적게는 2-3명의 자녀를 낳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7-8명 혹은 그 이상의 자녀를 낳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부모가 늦게 낳은 자녀와 일찍 결혼한 자녀가 낳은 손자 손녀가 또래의 아이로 같이 놀고 싸우며 자라난다. 시집간 딸은 윗동네에, 장가간 아들은 아랫동네에 나누어 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서로 왔다갔다 한다.

 

이들에게 예배에 참석하라고 하면 집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 말씀도 듣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찬양도 부르고 싶은데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도둑이 들까봐 예배에 오지 못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집을 털고 아들이 누이의 집을 털고 친척이 친척집을 터는 꼴이니 남의 집은 말할 것도 없다. 틈만 나면, 눈에 드는 것만 있다면 끌고 가 버린다. 끌고 가서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것으로 자기 소유가 되는 것이다. “예배! 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이 말이 그들의 입에 배어 있다. 한마디로 불신이 판치는 검정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집시들은 자신의 자녀들을 먹이기 위해 훔친 것은 도둑질로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지갑털이를 당한 사람이 자신의 지갑을 훔친 사람을 찾아도 되돌려 받을 수 없다. 지갑 안에 중요한 카드가 있어 되돌려 받으려면 오히려 그들이 요구하는 돈을 주고서 돌려받아야 한다. 별난 세상에 또 이런 별난 세상이 있으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요지경의 세상이다. 도둑질과 불신이 쳇바퀴 돌듯이 돌고 돈다. 그래서 조금도 경계의 눈초리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목회자에게는 세 가지의 목회 길이 있었다. 첫 번째 길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요, 두 번째 길은 병원이나 학교 혹은 군에서 사역하는 기관목회요, 그리고 세 번째 길은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세 길을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느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까?” 마음속에 헝가리가 그려졌다. 그리고 오래전 그곳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199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오페라를 공부하기 위하여 유학하던 중 헝가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헝가리는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체제를 전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비엔나 국경을 넘어 헝가리로 들어서니 당장 도로부터 차이가 났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아주 잘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구불구불한 국도를 이용하여 다녔다. 꼭 우리나라 시골 길을 가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하여 보니 예상 밖으로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웠으며 오래된 건물들은 수리를 하지 못해 굉장히 낡아 있었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건물들도 많았다. 거리를 지나거나 버스에 있는 사람들도 웃음기가 전혀 없이 삭막한 무표정들이었다. 한마디로 회색 사람들이 사는 회색 도시였다. 그때 나는 ‘뭐 이런 나라가 있나? 삭막하구나. 참 어둡구나’라고 느꼈다.

 

그 회색 도시의 나라 헝가리가 내 마음에 자리 잡으면서, 그곳에서의 선교사역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말씀의 확신을 구하면서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말씀하여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십시오.” 그러던 중 한 성경 말씀이 내 가슴에 불같이 던져졌다. 그 말씀은 신비하게도 잠시도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삿 18:6-10.

 

그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회색 도시, 회색 사람들이 가득한 곳을 향하여 광명과 생명의 소식, 기쁨과 소망의 소식을 전하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 그곳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환하게 변화시켜 가라고 말씀하시는구나. 이렇게 깨달으며 나는 이 말씀을 “아멘”으로 받았다.

 

그 후 선교사 훈련을 받고, 하나님께서 친히 파송하시는 회색 도시 헝가리로 생명과 빛과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송되어 오늘까지 복음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언처럼 던져주신 말씀이 차근히 열매 맺는 것을 보고 있다.“

▲ 헝가리 선교사 신성학 목사가 펴낸 성경묵상집『왕의 식탁에서』     ©뉴스파워

 

 

신 목사는 “복음 역사가 이미 오래된 이곳에서의 복음 전도자로서 겪는 어려움은 다양하다. 당연히 여러 가지 핍박이 있다. 때로는 칼로 위협을 당하고, 전도 장비를 탈취당하며, 온갖 욕설을 듣거나 조롱 등을 듣는 것은 다반사”라고 말했다.

 

한번은 찬양을 부르다가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직 서투른 헝가리 말이었지만 ‘그리스도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당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복음을 전하는데 갑자기 키가 1m90이상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는 상. 하의 모두 검정색옷을 입은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살기어린 눈으로 신 목사를 쳐다보면서 “나는 카톨릭 신자인데 당신은 뭐냐? 개신교 목사냐? 왜 이곳에서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냐! 예수 전하려면 너희 나라에 가서나 전해!” 하며 다짜고짜 나의 멱을 쥐어 잡고는 칠 기세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상황이 험악해진 그때, 함께 있던 그의 동료가 다가와 ‘그만하라’ 하며 그 청년을 말렸다. 그러면서 그 청년은 “이곳에서 두 번 다시 시끄럽게 하지 마!” 하며 씩씩거리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멍해 있던 신 목사는 돌아가는 그 청년을 보며 “야! 예수님은 그래도 너를 사랑 하신다”고 외쳤다고 말했다.

 

신 목사는 그 사건으로 인한 모멸감으로 잡을 뒤척이다가 “너는 내가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 받았던 수모와 고통을 아느냐? 나는 너를 위해 나의 생명도 주었느니라. 그런데 너는 겨우 그 일 당했다고 그렇게 분내고 있느냐? 그것은 분낼 일이 아니라 자랑 할 일이야! 그 모멸이 바로 너의 자랑이야!”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래 이것은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 아니야. 예수님을 따랐던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불에 타 죽고, 돌에 맞아 죽고, 창에 찔려죽고, 핍박당하고, 환난 당한 그 순교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 예수 믿으면 흔히 당하는 일이지!’라고 선진들의 믿음의 사역을 생각하면서 다시 집시사역을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신 목사는 “한 사람 한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나고 교회의 일군이 되어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보람되고 감격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라며 “어제 주일에는 한인은혜교회 성도들과 함께 현지인케젤렘(은혜) 교회 네 명의 성도에게 집사로 기름을 붓고 안수하여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는 거룩한 예식을 행했다. 거리전도찬양사역이나 집시사역 그리고 노숙인 사역, 학교사역 등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 사람들을 세워 가신다.”고 밝혔다.

 

신 목사는 기독교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오스트리아 빈 유학 후 총회신학교 종교음악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세계 최초로 집시를 위한 신앙과 교육의 장인 ‘유럽집시비전센터’를 개관하는 등 열정적인 사역을 펼쳐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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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16 [12:2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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