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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5.28 [03:57]
섬기는 자로서의 나사렛 예수(I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김영한

 

▲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대표/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뉴스파워 윤지숙 기자

<역사적 예수 시리즈>

섬기는 자로서의 나사렛 예수(I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IV. 타인을 위한 존재로서의 나사렛 예수

 

예수는 이웃 사랑의 구체적인 예로서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 Le Bon Samaritain)의 비유(10: 30-37)를 가르치신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다. 마침 한 제 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한 레위인도 피하여 지나갔다.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이 여행 중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주막 주인에게 숙비를 지불하고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숙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 갚으리라고 하였다. 예수는 이 세 사람 중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아니고 자비를 베푼 자(10:37a)라는 사실을 가르쳤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제사장은 예배를 인도하고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는 자(40:12-15; 18:1-7; 대상 24:1-19)였다. 그는 율법 해석과 성전 예배의 중심이 되는 유대 사회에서 지도층의 인물이었다. 레위인은 성소의 다른 일들을 맡아서 했다. 이들은 성전에서 특별히 음악가, 문지기, 성전 곳간 지기로 봉사하였고 여기다 종교적인 교육을 맡아 봉사했다(대상 25-26). 제사장과 레위인은 성전 제사과 율법 교육이 중심이 되는 유대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강도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를 길가에 그냥 버리고 지나친 것은 율법의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전혀 생각치도 않은 사람이었다. 사마리아는 앗수르가 북왕국을 정복한 후에 지금까지 수도였던 사마리아의 이름을 따라 옛 왕국 땅에 세운 지방 영토였다(왕하 17:24). 그때부터 이 지역 사마리아에 살았던 혼합주민들을 가리켜 사마리아인이라고 한다. 혼합주민들은 수리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앗수르에 굴복하여 이주해 온 종족들과 북왕국 땅에 남아 있던 주민들과 결혼함으로써 생겨났던 자들이다(왕하 17:24-41).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유다 사람들은 이 혼합주민들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을 때도 이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했다(4:2-3; 2:114). 사마리아 주민들은 주전 3세기 경에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들은 모세오경만 성경으로 인정하고 또 시온산이 아닌 그리심산을 신명기 12장에서 요구하는 한 군데 예배 장소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이단자로 여겼다. 이러한 유대사회에서 이단자로 여겨진 사마리아인이 정통이라고 자부하던 제사장과 레위인과는 달리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된 것이다.

 

이 비유가 은연 중 말하는 바는 예수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가문의 출신이 아니었고 그의 법적 아버지는 목수였다. 그는 변두리 지역 갈릴리의 작은 농촌 나사렛 출신으로 예루살렘의 제사장이나 레위인 가문으로부터 배척을 받았다. 예수는 당시 종교적 상류계층들이 도외시한 사회적 소외자들 세리들, 어부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 걸인들에게 공명과 연민으로 다가갔고 각종 난치병자들과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과 정신이상자들을 고쳐주고, 친구로 삼았고 이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예수는 이들을 섬기는 자가 되셨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당시 유대사회에서 이방인으로서 강도 만난 사람들의 진정한 이웃이 된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예수는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타자를 위한 존재(das Sein für andere)였다.

 

V. 예수가 섬긴 자들

1) 허기(虛飢)진 자들: 5천명과 4천명을 먹이심

 

사복음서(14:13-21, 6:30-44, 9:10-17, 6:1-15)에는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외진 광야에서 설교를 끝내시고 허기진 5천명을 한 어린이가 가져온(6:9)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인 기적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15:32-39; 8:1-10)에는 4천명을 떡 7개와 물고기 2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설교가 끝났는데 날이 저물어가고 거기는 빈들이라 먹을 것이 없고 마을과 촌으로 가기에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제자들은 대답한다: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이니이다”(9:12).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이에 제자들은 대답한다: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9:13). 그 곳은 빈들이었고 남자가 한 오천 명 되었다.” 예수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신다”(9:16). 예수께서 축사(祝辭)하시자 떡 5조각과 물고기 2마리는 5천명이 먹을 수 있을만큼 부풀어진다. 축사하신 그분이 바로 태초의 창조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이런 부풀어지는 생성의 기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가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자신의 초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빈들에서 허기(虛飢)진 상태로 그냥 돌려보내면 도중에서 쓰러질 사람들이 생길 것을 염려한 그분의 긍휼과 사랑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기적의 사건에는 역사적 예수의 원천, 즉 신성이 암시되어 있다.

 

2) 각종 병자를 고치심

 

예수의 인격 안에서 그리고 그의 하나님 나라 복음 선포와 더불어 하나님 나라는 왔고 그리고 가까이 오고 있다. 예수님은 그의 메시아적 사역 - 복음 선포와 가르침과 치유사역 - 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가시화 하셨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11:5; 4:18).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9:35).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4:23-24). 예수는 벳새다에서 소경의 눈에 안수하시어 그의 눈을 고치신다(8:23-25). 여리고 주변에서 소경 거지 바디메오를 고치신다(10:52). 예수께서 5천명과 4천명의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6:34). 마태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9:35-36). 예수께서 그에게 나아온 무리들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신 것은 대중 앞에 초자연적 마술을 보여주고자 함이 아니라 단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여 기진함을 보시고 이들을 불쌍히 여기신 긍휼과 공감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보이지 않는 사랑의 하나님의 성육신이었다.

 

3)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심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자(1:23)가 처음으로 예수를 알아본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1:24). 귀신은 영적 존재라 예수가 귀신의 세력을 멸하기 위하여 오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오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한 곳이라고 증언하고 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예수가 거라사에 갔을 때 귀신 들린 자가 예수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8:26-28). 예수는 군대 귀신을 쫓아내신다. 귀신은 청한다: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5:12).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귀신 들린 자에게서 나와서 2천 마리가 되는 돼지 떼에 들어가, 돼지 떼들이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한다(5:13). 예수는 군대귀신 들린 거라사인을 고치시고 정상인이 된 그를 가족에게 돌려보내셨다.

 

예수는 일곱 귀신에 사로 잡힌 막달라 출신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을 쫓아 내셨다.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8:1-2).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에서 놓임을 받은 후에 예수의 신실한 여성 제자가 되었다.

 

4. 내면의 문제를 가진 자들을 상담하심

1) 니고데모와 상담

 

예수는 사람의 눈을 피하여 밤에 그를 찾아와 신앙의 문제를 의논했던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거듭난다”(γεννηθh, receive birth)는 말이 생소(生疎)하여 모태에 다시 들어가 나야 하는가 질문하는 니고데모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γεννηθh, έξ δατος καΠνεύματος, be born of water and Spirit)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3: 5-7). 중생의 비밀을 가르쳐주신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중생하는 도리(道理)였다. 중생이란 성령을 통한 회개의 씻음과 새 생명 부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날 밤 니고데모는 기독교의 중생(重生)의 도리를 알고 체험하는 자가 되었다.

 

2) 사마리아 여인과 상담

 

예수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사마리아 땅을 멸시하고 피했다. 누가에 의하면 관행과 달리 예수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 한 가운데를 거쳐가시면서 사마리아인들과 만나는 것을 피하지 아니하였다(9:51-52, 10:1; 19:1; 10:29-37; 4: 1-42). 예수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를 지나가게 되었다.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오는데 예수께서 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청하였다.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고 남성이 여성에게 말을 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이 대답한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4:9).

 

예수는 그의 영적 감수력으로 이 여인이 내면의 문제로 고민(苦悶)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시고 이 여인에게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말씀을 하신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그러한 물을 달라고 대답하는 여인에게 예수는 이르신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4:16). 여인이 대답한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4:17a). 예수께서 대답하신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4:17b-18). 여인은 말한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4:19-20).

 

예수는 여인에게 메시아가 오면 이루어질 신앙적 진리를 가르치신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1-24). 여인이 대답한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4:25). 예수는 이 여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4:26).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어 왔으나 이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드러내신 것은 특이하다. 그 이유는 이 여인에게는 그녀를 새로운 삶으로 인도해줄 메시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은 메시아를 받아들이고 새 사람이 된다.

 

3) 간음하여 현장에서 잡힌 여성과 상담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기도하시고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한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8:4-5). 이들은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얻기 위하여 예수를 시험하고자 함이라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b)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신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8:9).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신다: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8:10). 여인이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8:11a). 예수께서 이르신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8:11b).

 

예수는 율법의 집행으로 여인을 정죄하기 보다는 여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시면서 그녀의 죄를 용서하시면서 그녀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신다. 예수는 여인을 돌려 보내면서 말씀하신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예수는 간음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셨으나 용서와 참회의 기회를 이 여인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가 중요시 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회개와 새 출발이다. 회개와 새 출발을 위하여 예수는 용서라는 사랑을 베푸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용서와 사랑은 이 여인을 감동시켰을 것이다. 분명히 이 여인은 용서의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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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03 [16:2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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