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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4.29 [05:59]
기독교를 핍박한 로마의 황제들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도미티아누스 황제
 
한평우

 

도미티아누스(Domitianus51-96)는 유능한 장군으로 네로가 자살하자 그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의 둘 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로마제국의 열한 번째 황제(81-96)가 되었다. 형 티투스(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장군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로마의 열 번째 황제로 등극함)와는 11살의 나이 차이가 있었다.

▲ 도미티아누스 황제    

 

 

형 티투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음에 비해 도미티아누스는 어릴 때부터 황제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자리에 집착했을 정도로.

 

형은 아버지에 의해 공동 황제가 되어 황제에 대한 수업을 착실하게 받았으나 그는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기에 형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기회는 예기치 않게 일찍 찾아왔다형 티투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형 대신 30살의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가 있었다그는 곧 스코틀랜드를 합병시키려고 당시의 출중한 장군을 보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도나우 강에서 벌어진 다키아(현 루마니아)와의 전투로 많은 병사를 잃어 부득불 그곳 방어를 위해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은 원로원으로부터 리더쉽을 인정받지 못하는 계기가 되었다. 항상 원로원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를 바라고, 더 나아가서 로마 제국이 세계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전투의 승리를 통해 갖게 되기를 열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쩐 이런 강대국의 심리는 현대에도 별 반 다르지 않다 싶다. 중국이 우리나라 사드를 핑계로 나오는 경제적 공격을 통해 대국의 숨겨진 본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특히 원로원과의 관계에서 불편했던 이유는 스스로 종신 재무관의 지위를 취했기 때문이다. 종신 재무관이라 함은 이 시대 세금을 관장하는 국세청 같은 자리인데, 특히 재무관은 돈에 대한 권한과 원로원 의원을 추방할 수 있는 권한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고로 그 권한을 이용하여 살갑게 대하지 않는 원로원 의원들을 추방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을 까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를 싫어하도록 되어 있다. 당시 원로원 위원은 600명가량 되었는데 이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황제에 있어서 성공의 지름길이 되었다. 그런데 도미티아누스황제는 이런 문제를 간과했다.

 

또한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핍박하게 된 원인이 있었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주요,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칭하게 했다

 

인간은 누구나 힘이 주어지게 되면 신이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우게 된다. 이런 본능은 지금도 동일하다, 다만 민주 국가에서는 본능을 자제할 뿐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주요,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당시의 문화는 황제가 선한 삶을 살면 죽어서 신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살아서 신이 되고 싶어 했다.

 

고로 기독교인들은 왕의 지시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그 중에는 친척도 있었다. 누님의 딸인 플라비아 부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던 도미티아누스는 그들을 양자로 입적하여 황제 교육을 받게 했다. 그런데 풀라비아 부부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그 일로 95년에 고발을 당하게 되었다.

 

일반인도 아닌 왕실의 가계에서 기독교 신자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겼다. 고로 황제는 조카의 남편, 클레멘트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였으나 그는 완강하게 거절하였다. 웬만하면 덮고 넘어가려고 하였으나 사람들의 눈도 있었고, 또한 자신의 이성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한 마디만 했다면 아들은 로마의 황제가 될 수 있었고, 자신은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거절했다.

▲ 콜로세움     © 한평우

 

결국 황제의 양자로 입적한 두 아들은 없던 일이 되었고, 조카의 남편 클레멘트(Clement)는 사형을 당했고, 그의 아내 도미틸라(Domitila)는 포로미아(Formia)에서 배로 한 시간거리인 벤토테네(Ventotene)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또한 그 때까지 생존하여 성도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에베소에서 사역한 사도요한은 밧모 섬으로 귀향을 보내고 말았다.

 

그는 후에 부인 도미티아가 배우 파리스와 바람을 폈다는 소문을 듣고 대 노하여 배우를 죽이고 아내는 유형을 보냈다. 그 후 아내를 향한 연민 때문에 아내를 유형지에서 불러들였으나 형식적 부부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던 중 조카 줄리아(형 티투스 황제의 딸)흫 사랑하여 그를 임신시켰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조카 줄리아를 지극이 사랑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아이를 유산하고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런 과정에서 아내 도미티아는 남편을 질투하여 그를 죽이는 일에 적극 가담하게 되었다96년 근위대장 2명과 관리들 몇 명, 그리고 그 중에는 자신이 죽인 사촌 클레멘트의 재산관리인까지 가담하여 남편 도미티아누스 황제를 암살했다.

 

 

그는 죽기 몇 년 전인 93년부터 편집증과 신경과민에 시달려 닥치는 대로 원로원 의원과 관리, 기사, 황실 관리인들을 처형내지는 귀향을 보내는 공포어린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원로원에서는 크게 반겼다. 110년 만에 봉급을 인상해준 군인들은 안타까워했지만.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반긴 원로원 의원들은 재빨리 도미티아누스를 기록 말살 형에 처했다. 기록 말살 형은 네로 황제도 받았는데 황제로서의 모든 업적을 기록에서 없애버리는 형으로 당시의 관습으로는 굉장히 치욕으로 여기는 형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만은 말살할 수 없었는데 그것은 콜로세움을 완공했다는 석판이었다. 콜로세움은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소로 시민들은 원로원의 요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신이 되고자 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 그의 아버지의 고향인 로마 근교 리에티(Rieti)에서는 지금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물이 생산된다. 허리 아픈데 좋다고 가게 주인은 그 물을 적극 추천한다. 그 물을 마시며 그가 건설한 오스티아 간선도로를 거닐며 그를 생각했다. 자신을 신이라고 명명했던 어리석은 황제! 그의 부질없는 꿈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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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3 [11:02]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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