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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8.18 [08:02]
네 명의 교황 배출한 마을 아나니(Anagni)
로마에서 풀어놓는 한평우 목사의 교회사 이야기
 
한평우

 

▲ 아나니의 교회     © 한평우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다.

 

여기저기 산재한 이태리의 수많은 마을들은 언제인지 모르나 누군가가 그 지역으로 가서 먼저 터를 잡음으로 시작된 공동체이지 싶다.

 

그런데 지상의 수많은 마을들의 중요성은 그 곳에서 어떤 위인이 태어 낳느냐로 구분한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가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분을 만났는데 그는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응대했다. 당시 나사렛은 몇 십 가구가 불과한 작은 산동네로 뛰어난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고 앞으로 태어나기 어려운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밀라노에 사는 아들 가족이 방문하여 며칠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중세 도시로 잘 보존되어있는 아나니를 가고 싶다고 하여 이참에 잘됐다 싶었다.

 

아나니는 로마에서 약 70Km로 떨어진 곳이다. 나폴리고속도로에서 휘우지(Fiuggi) 톨게이트로 나가서 아나니의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면 산위에 있는 아담한 동네를 만나게 되는 데 그 동네가 바로 아나니(Anagni). 현재 인구는 약 21천 명 정도 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니 기원전 3세기에 시작된 오래된 도시다. 오래된 마을이라서 그런지 이 곳은 중세에 교황이 4사람이나 태어난 곳이다. 마을의 크기에 비해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다. 당시 교황은 전 구라파에 막강한 힘을 구사했던 왕 중 왕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네 사람의 교황은

- 이노센트 3(Innocent , 1198-1216)

- 알렉산더 4(Alexander ,1254-1261)

- 그레고리 9(Gregorius ,1227-1241)

- 보니파시오 8(Bonifacius , 1294-1303)

▲ 아나니의 교회의 교황 형상     © 뉴스파워

 

 

크지 않은 마을에서 교황이 4사람이나 태어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교황들의 전기를 보면 이 마을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무척 더웠던 여름철에는 교황들은 좀 더 시원한 곳을 찾아가곤 해야 했다. 이 마을은 산등성이에 형성 되었기에 로마 보다는 좀 더 시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네 교황들이 다스리던 때는 십자군 전쟁이 있었고, 안 밖으로 수도원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불란서에는 왈도 파의 출현이 있었고, 거기에 알 비파, 또한 아시시의 프랜시스의 수도원, 그리고 불란서의 클레르보 베르나르도에 의한 시토수도회 등등.

 

어쩌면 영적으로 저 깊은 곳에서 뜨거운 진리의 용암이 펄펄 끓고 있는 시기라고나 할까?

 

당시의 사람들은 전혀 눈치 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이끌어 가신다. 인생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마을, 그런 중에 12세기에서 13세기에 4명의 교황을 배출한 마을이 과거의 유물들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광장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갔더니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다. 6세기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오리지널 벽의 한편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는데 거친 민낯은 역사의 케케 한 냄새를 뿜어내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아나니. 그 역사란 것이 사람들의 삶의 단편을 차곡차곡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가치 있는 것이든 가치 없는 것이든 말이다. 그 교황 중에 보니파시오는 불란서의 필립 왕과 주교 서임 권과 또한 성직자 과세에 대하여 대항했다. 이런 것은 왕이 성직자들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이고, 또한 돈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에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 피신한 보니파시오(Bonifacius) 교황을 체포하기 위해 쫓아 온 알비파 기욤 드 노가래 가 있다. 그는 알비파인 할아버지가 화형 당했기에 교황에 대한 존중심이 없었다. 공의회에서 교황을 기소하기 위해 필립프 4세는 1,600명의 군대를 노가래에게 주어 필요하다면 무력을 써서라도 교황을 붙잡아서 불란서로 데려 오라고 명했다.

 

보시파시오는 아나니에 있는 자신의 궁에서 빌리프 4세를 파문하는 칙령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다. 교황은 군사들에게 체포당했으나 아나니 사람들이 용감하게 교황을 비호하자 군대는 물러나고 말았다. 고집대로 했다가는 대량 학살이 불가피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보시파시오는 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고 1303년 세상을 떠났다.

 

단테는 신곡에서 보니파시오를 용광로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제8지옥에 집어넣었다. 그는 자신의 동상을 수없이 건조했고, 동성애적 혐의에 대해서 손을 맞잡고 문지른 정도로 잘못이 없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그는 역사상 최초로 1300년 성년을 선포한 교황이다.

 

고해성사를 하고 베드로 성당이나 라테란 성당을 방문하는 자들에게 용서를 베푼다는 소식을 듣고 약 20만 명의 순례 객들로 로마는 넘쳐나게 되었다. 당시, 용서 받기 위해 신자들이 낸 봉헌금은 갈퀴로 긁어모아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때 순례 객중에는 시인 단테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이때의 순례 객들의 모습을 신곡에 그렸고 교황을 지옥에 떨어진 자로 묘사했다. 그는 9년 동안 교황의 자리를 지켰다.

 

이곳에는 그의 뮤지엄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가 다녔던 그 길을 그가 떠난 지 7백년도 더 된 지금 나는 걷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나에게 뭐라고 충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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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19 [19:38]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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