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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8.20 [10:03]
예장합동 대전노회, 유럽종교개혁 탐방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등 탐방
 
김현배

 

예장합동 대전노회(노회장 박춘삼 목사)유럽종교개혁 탐방단(추진 위원장 홍용춘 목사)지난달 13일 부터  25일까지 유럽 6개 도시 종교개혁 유적지와 경건주의, 문화 현장 등을 탐방했다.

 

대전노회는 이스라엘, 요르단, 이탈리아 성경 지리 탐방단 35명과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독일 등 유럽종교개혁지 탐방단 64명으로 나뉘어 진행이 됐다.

 

대전노회는 탐방에 앞서 교회사 교수로부터 3차에 걸쳐 종교개혁지 및 성지 관련 강의를 들으며 유럽 종교개혁사를 공부했다.

▲ 런던 존 웨슬리 기념채플 앞에서     ©뉴스파워

 

  다음은 유럽종교개혁지 탐방단의 일정을 정리했다.

 

첫날 213 

대전노회 유럽종교개혁탐방팀 64명은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같은 날 오후 런던 히드로 공항에 잘 도착했다.

 

2일째, 214

▲ 런던박물관 앞 존 웨슬리 회심기념비 앞에서     © 뉴스파워


아침 일찍 출발하여 런던 박물관 위에 올더스게이트 웨슬리 회심 기념비를 찾았다. 회심 체험 후 복음에 불붙은 전도자 웨슬리는 그의 설교를 통해서 영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일으켰던 18세기 영국 부흥의 주역 웨슬리의 복음의 열정에 감동했다. 또한 회심이 신앙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비국교도(언약도) 무덤 건너편 웨슬리 기념 예배당을 찾았다. “온 세계가 나의 교구라는 비전으로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온 세계에 복음을 전했던 작은 거인 웨슬리의 열정에 큰 도전을 받았다. 이어 대영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 빅벤, 타워브리지 등을 둘러본 후 유로스타 기차로 파리에 도착한 후 하루 일정을 다 마쳤다.

▲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뉴스파워 김현배

 

 

▲ 런던 존 웨슬리 기념채플 앞에서     © 뉴스파워

 

3일째, 215

탐방팀은 느와용 칼빈 생가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최초 불어 번역 성경과 기독교 강요 원본과 불란서 성경 번역본을 보았다. “당신(혹은 여러분들)의 종입니다라는 뜻이 담긴 칼빈의 사인과 칼빈의 일평생 삶의 목적이 잘 담겨져 있는 초상화에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돌릴 것을 상징하는 그의 손가락이 강조되어 있었다.

 

또한 개혁자들이 화형당하는 모습과 칼빈의 마지막 유언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그림들을 보았다. 특히 칼빈은 오른쪽의 동역자 손을 잡고 교회는 반드시 성경이 중심되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 파리 몽마르뜨 언덕에서     © 뉴스파워

 

3층에는 특별한 판화 한 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 제목은 성경의 무게이다. 교황이 쓰는 모자, 베드로 열쇠, 도미니카 수도사, 천주교 교황들, 사제들과 사탄이 성경 한권의 그 무게를 이길 수 없다는 이 그림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성경의 능력이 얼마나 큰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어 대성당, 루브르박물관, 상제리제거리, 개선문, 콩코드르광장, 루이 14세다리, 몽마르뜨 언덕, 예수성심성당,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말씀의 사람, 칼빈의 생생한 흔적이 남아있는 현장을 돌아본 하루 일정은 교회 개혁에 무엇이 정말로 필요한가를 생각하게 했다.

 

4일째, 216

 

제네바 바스티용 공원에 있는 종교개혁기념비 앞에 도착했다. 중세 로마 교황청과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하고 어두운 시대에 복음에 사로잡혀 살아있는 진리를 담대히 외쳤던 종교개혁자들인 파렐, 칼빈, 베자, 낙스의 인물상을 보면서 종교개혁자들의 불꽃같은 삶과 메시지와 개혁정신을 다시 회복할 것을 다짐했다.

 

이어 존 칼빈이 25년 목회하였던 성 베드로 교회와 영국 정원, 레만호수, 알프스의 지붕 이턴라켄으로 이동했다.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제네바 아카데미를 시작하여 수많은 주님의 일꾼들을 배출하였던 칼빈의 비전이 탐방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비전이 되어 실천할 갈망했다.

제네바 종교개혁 기념비 앞에서

 

 5일째, 217

대전노회 종교개혁탐방팀 64명은 인터라켄에서 산악열차를 탑승하고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했다.

 

유럽의 최고봉이라 불리우는 융프라우에 도착하여 스핑크스 전망대에 올랐다. 유럽 최대 알레치 빙하와 얼음 동굴을 관람한 후 열차타고 오스트리아 동계올림 개최지 인스부르크로 이동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과 부흥의 결과로 인해 교회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풍성한 열매를 맺은 유럽 땅을 탐방하는 일은 정말 감격이었다.

 

6일째, 218

1964년과 1976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인스부르크는 알프스의 심장이라고 불리운다. 강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도시요, 스키 천국이다. 너무 아름다웠다. 시청사,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안나 기념탑과 노이슈반스타인이라고도 하는백조의 성이 탐방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백조의 성은 독일에서 관광지로서는 제일 유명한 곳이다. 탐방팀은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가 태어난 음악의 도시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찬사를 받는다는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또 감동이었다.

▲ 모짜르트 생가     © 뉴스파워

 

 

도레미송을 불렀던 미라벨 궁전과 정원, 모차르트 생가, 모차르트 광장, 호헨짤츠부르크성, 레지던츠 광장, 구시가지 등을 둘러보았다. 특별히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태어난 진한 노란색 건물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세반스찬 바흐나 헨델, 하이든이 하나님의 영광을위해 음악을 했던 모습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사회 부적응, 여성들과의 정욕적인 삶으로 인해 그의 삶과 음악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잘 나타나지 않았던 모습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7일째, 219

종교개혁탐방팀들은 조식 후 일찍 과거의 화려한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비엔나로 출발했다.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체르니 등 18-19세기 유명 음악가들이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음악가의 성지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인 비엔나에서 쇤브룬 궁전과 정원,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제들이 거주하던 호프부르크 왕궁과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사원 슈테판 성당, 케른트너 거리, 네오고딕 양식의 시청사, 국립오페라 극장, 국회의사당 등을 탐방했다. 루터는 찬양 곳에 마귀가 역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음악의 도시 비엔나 여행은 정말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8일째, 220

비엔나에서 출발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속 마을 체스키크롬로프를 향해 출발했다. 체스키크롬로프성과 망토다리, 구시가지등을 둘러보고 종교개혁의 새벽별 체코의 얀 후스의 사상을 따르는 후예들, 후스파의 본부가 있는 타보르에 도착했다.

 

로마가톨릭에 군사적으로 대응하던 중심지 타보르에 지슈카 광장과 후스운동 박물관, 카테콤베, 후스 광장을 둘러보았다.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던 후스와 후스파들의 신앙이 흘러 넘친 타보르 땅을 밟은 소감은 정말 감동이었다. 이어 백탑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프라하를 향해 출발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8일째 여행을 잘 마쳤다.

 

9일째, 221

▲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 동상.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 세워져 있다.     © 뉴스파워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핀 프라하를 순례한 탐방팀은 중세시대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프라하성과 비투스대성당, 황금소로, 카를교, 구시청사, 후스파의 거점 틴교회, 천문시계, 얀후스 동상, 바츨라프 광장, 후스가 목회하였던 베들레헴교회, 불타바강 등을 순례하였다. 구시청사 땅 바닥에는 가톨릭에 저항했던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의 목을 쳐서 잔인하게 처형당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또한 얀 후스는 교황권을 부인하고 오직 성경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다가 로마 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 받고 141576일에 화형 당했다. 그의 동상에는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행하라는 그의 명언이 새겨져 있다.

▲ 종교개혁의 원조이자 체코의 종교개혁자 얀 후스가 목회했던 베들레헴교회에서     © 뉴스파워

 

 후스는 유럽종교개혁의 불씨이며 새벽별이다. 중세시대 종교개혁을 외치다가 가톨릭과 황제 권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탄압당한 개신교들의 개혁정신이 곳곳에 남아 있는 프라하 땅은 잊을 수 없었다. 대전노회와 한국교회에 후스와 같은 종교개혁의 신앙이 회복될 수는 없을까 하며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다.

▲ 체코 성비트성당 앞에서     © 뉴스파워

 

 

10일째, 222

프라하를 출발하여 엘베강의 베네치아라고 불리우는 드레스덴에 도착했다.

▲ 유럽의 명문 드레스덴 젬퍼 오페라하우스     © 뉴스파워

 

 에술과 바로크양식의 도시 드레스덴은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아름다웠다. 츠빙거 궁전과 젬퍼오페라 하우스, 드레스덴성, 군주의 행렬과 성모교회라고 불리우는 프라우엔 교회를 탐방했다. 밝은 색의 아름다운 돔이 인상적인 프라우엔 교회는 종교개혁 당시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을 받아 들였다. 현재도 개신교회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교회 앞에 루터의 동상이 있다.

 

루터는 성경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특별히 드레스덴은 교회사적으로는 경건주의를 리드했던 진젤도르프의 고향이며, 경건주의 거장들인 슈페너와 프랑케 두 사람이 만난 곳이기도 하다.

▲ 비텐베르그 성 교회     © 뉴스파워

 

이후 전 유럽을 흔들며 개신교를 탄생시킨 루터의 종교개혁의 진원지가 된 비텐베르크에 도착했다. 먼저 15171031일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인 비텐베르크성교회를 찾았다. 교회의 문 위 아치 중앙에 십자가의 예수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루터와 오른쪽에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들고 있는 멜란히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회 안에는 루터 무덤과 멜란히톤 무덤이 있었다.

 

탐방팀은 모두 모여 루터 종교개혁의 찬송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가 되시니를 다함께 찬양한 후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이어 마르크트 광장에 있는 루터 동상, 멜란히톤 동상, 시 교회, 로이코리아, 옛 비텐베르크대학 건물, 필립 멜란히톤 의 집 외관, 루카스 크라나흐의 집, 외관 종교개혁 박물관(루터 하우스), 교황칙서를 불태웠던 현장에 심어놓은 루터 참나무 등을 돌아보았다.

▲ 비텐베르크 성교회에서 내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하는 대전노회     ©뉴스파워 김현배

 

 

11일째, 223

루터가 태어나고 숨을 거둔 아이스레벤에 도착했다. 루터가 유아세례를 받았던 성 베드로- 바울교회과 마켓 광장에 세워진 루터 동상, 루터가 임종을 앞두고, 2주전 마지막으로 4편의 설교를 했던 성 안드레아 교회를 둘러보았다.

 

▲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에르푸르트 성 마리엔 돔 성당     ©뉴스파워

 

또한 1546218, 파란만장한 삶을 마치고 주님의 품에 안기었던 루터의 사가를 순례하였다. 특별히 루터가 임종했던 방에는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와 그의 동역자들인 멜란히톤, 프리드리히 선제후, 필립, 요나스, 루터 부모님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루터가 세계를 바꾸었지만, 루터를 바꾼 사람들은 그들이었다.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된 동역자들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깨닫게 되었다.

 

탐방팀들은 에르푸르트 근교 스토테른하임에서 루터가 벼락 사건으로 인해 수도사가 되겠다고 서원했던 장소를 지나가면서 곧 2 주후 입문했던 어거스틴 수도원과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았던 성 마리엔 돔 성당, 바흐의 생가 외관을 둘러봤다.

▲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10개월간 숨어 살면서 헬라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방     © 뉴스파워

 

 이어 보름스 제국의회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루터가 10개월간 숨어 살았던 바르트부르크 성을 찾았다. 이곳에 피신한 루터는 헬라어 신약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그 이후 루터의 성경 번역은 국가적으로나 영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11일째, 224

벌써 유럽종교개혁 마지막 날이 되었다탐방팀은 루터가 재판을 받았던 보름스로 향했다.

▲ 루터가 보름스 제국의회에 출두한 장소 앞에서     ©뉴스파워김현배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루터는 황제 앞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그의 마지막 말이 유명하다. "여기 제가 서 있습니다." 하일스호프공원에는 루터가 출두한 지점에 새겨진 기념 표지석이 있다. 그 앞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했다. HIER STAND VOR KAISER UND REICH MARTIN LUTHER 1521 (1521, 마르틴 루터가 여기 황제와 제국 앞에 서 있다).

 

그리고 루터와 종교개혁가들의 기념동상을 찾았다. 이 종교개혁 기념비에는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거나 도움을 준 인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 페트뤼스 발데스, 필립 멜란히톤. 지혜공 프리드리히, 그리고 보름스 제국의회, 루터의 결혼장면, 95개조 반박문, 성경번역 등이 있었다.

▲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라본 전경     © 뉴스파워

  

그리고 오래된 역사와 철학자의 도시인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확산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루터와 어거스틴 수도회 사람이 논쟁했던 곳이다. 1518년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기념하여 대학 건물 앞에 표지석이 있다. 또한 성령교회를 중심으로 1563년 하이델베르크 신앙고백문이 작성되었던 곳으로서 현재까지 장로교에 그 영향을 주고 있다.

 

▲ 1518년 루터와 어거스틴 사람의 하이델베르크 논쟁을 기념하여 대학 건물 앞 표지석이 1983년 설치됐다.     © 뉴스파워

 

또한 23일동안 루터 주요 유적지를 함께 동행한 김현배 선교사(베를린비전교회, GMS 독일선교사)유럽교회 부흥의 원인은 회심, 기도, 말씀, 개혁주의 신학, 복음주의 설교자, 거룩, 성령 사모함,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사모함등이며, 유럽교회 쇠퇴원인은 성경권위가 무너짐, 자유주의 신학, 18세기 이후 이성주의와 계몽주의, 찰스 다윈의 진화론 등의 영향을 받음, 개혁신학과 복음주의 신학 추락, 기도하지 않음, 성경 읽지 않음, 주일성수 무너짐, 성령을 사모하지 않음, 첫사랑을 잃음등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유럽이 선교지가 되어 버렸다고 언급한 김현배 선교사는 오늘 우리들은 부흥이 없는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 루터 종교개혁의 신앙을 다시 회복하여 루터처럼 불꽃처럼 설교하고, 다시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할 것을 해답으로 제시했다.

 

 

글 정리 : 김현배 선교사 (베를린비전교회뉴스파워 유럽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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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01 [17:29]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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