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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2.20 [18:05]
신앙의 스승들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 회장) 광주 수정교회(2016.12.11) 설교문
 
김명혁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신앙의 스승님들과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광주 수정교회(2016.12.11)

고전15:10, 딤후3:14,15

 

제가 20081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 한 다음 지난 811개월 동안 주일마다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면서 설교를 하고 있는데 오늘 광주에 있는 별로 작지 않은 교회인 수정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오늘 주일 두 번 내일 월요일 두 번 네 번이나 설교를 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승율 목사님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냐고 묻곤 하는데 나승율 목사님이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를 가지고 네 번 설교를 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신앙의 스승님들과 듣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간증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지난 10여 년 이상 거의 매일 수십 번씩 중얼거리는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저의 모든 죄악을 사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이리로 보나 저리로 보나 모든 것이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저는 오늘 아침 이 자리에 설수 없는 부족한 죄인인데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여기 서서 설교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면서 자기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고백하며 또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또 고백했습니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4,15).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너무 많은데 그 중의 하나가 신앙의 스승님들과 듣는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믿음의 길로 사랑의 길로 섬김의 길로 가도록 가르쳐주신 신앙의 스승님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족한 저를 믿음의 길로 사랑의 길로 섬김의 길로 가도록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신 신앙의 스승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부모님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셨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으로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지만 순교하신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과 평양 서문밖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을 비롯해서 월남 후 이성봉 목사님, 김치선 목사님, 한경직 목사님, 박윤선 목사님, 정진경 목사님 등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저에게 물려주신 믿음과 사랑의 가르침과 유산들 때문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길선주 목사님, 이기풍 목사님, 최봉석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장기려 박사님 등 한국교회의 신앙의 선배님들께서 저에게 물려주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유산들 때문에 오늘의 제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목회하셨고 그 다음에는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목회하시다가 1950623일경 평양 사동탄광에서 45세에 순교하신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하나님과 교회를 충성스럽게 섬겼고 나라와 민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삶을 한 평생 사셨는데 아버지는 어린 저에게 신앙적이고 인격적인 깊은 감화를 주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충성하시면서 순교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이와 같은 순교자 목사님을 저의 아버지와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의 어머니는 아마 세상에서 저를 가장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하시던 분이었는데 나중에는 맏아들인 저를 남쪽으로 떠나 보내는 너무나 큰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사랑과 희생의 여인을 저의 어머니와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 다음 제가 평양 제 오 인민학교 4학년과 5학년에 다닐 때,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저를 가르쳐 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저에게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을 가르쳐 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은 이인복 선생님과 명선성 선생님과 최병목 선생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저에게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말씀을 그대로 다 받아 드리는 들을 귀를 은혜와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말씀을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을 귀를 저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면 주일 날 학교에 가지 않고 교회에 와서 종일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월요일 마다 학교에 가서 벌을 받으면서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몸이 피곤해도 어릴 때부터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교회 청소를 하라고 하면 교회에 와서 유리창을 닦으면서 청소를 했습니다.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십일조를 꼭 하곤 했습니다. 주일날 물건을 사지 말라고 하면 물건을 사지 않았습니다. 병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에 제가 장질부사(장티부스)에 걸려서 심하게 아플 때에도 의사인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모셔다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와서 기도해 주셔서 병이 나았습니다. 주일학교 오후 예배 때 누구든지 일어나서 기도하라고 하면 제가 먼저 일어나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제가 한평생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새벽기도를 힘쓰고 순교적 신앙을 흠모하게 된 것은 주일학교 때 저를 가르쳐 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된 것도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너무너무 좋아하며 존경했고 선생님들의 말씀을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어린 시절에 귀한 선생님들을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그리고 들을 귀를 선물로 주신 은혜를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얼마나 큰 감사를 드리는지 모릅니다. “순교하신아버지를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사랑의어머니를 저의 사랑의 스승님으로, 그리고 주일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을 가르쳐 주신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귀한 부흥사이신 이성봉 목사님을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셨습니다. 제가 6.25 피난 시절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한국교회의 무디라고 불리던 부흥사 이성봉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대구에서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곤 했는데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 때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곤 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의 설교를 빨아 먹듯이 온 몸으로 받아드리곤 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를 받곤 했는지 모릅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새벽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라고 하면 철야기도를 하고, 성경을 암송하라고 하면 성경을 암송하고,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면 안수기도를 받고, 전도를 하라고 하면 전도를 하고, 이성봉 목사님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마음들을 귀를 저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금요일 밤 철야기도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 안수기도를 받을 때는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시고는 고놈 기특하다라고 칭찬해 주시면서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지도 않으시고 좋은 목사님이 되기 위해서 기도해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오랜 시절이 지난 지금 부족한 제가 목사가 된 것이 이성봉 목사님의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천로역정 이야기가 너무너무 재미가 있었고 은혜로웠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메시지는 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이성봉 목사님의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메시지는 저의 삶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 저는 새벽기도에 빠지는 일이 거의 없었고 주일성수를 철저히 하면서 어른예배에도 빠지지 않았는데 예배 드릴 때는 언제나 앞 자리에 앉곤 했습니다. 대구에 있을 때 한번은 잘비스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고 한경직 목사님이 통역을 하셨는데 잘비스 목사님이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어른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한 부흥사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순수한 신앙과 성령의 은혜를 전해주신 이성봉 목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과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회개와 눈물의 목회자이신 김치선 목사님을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셨습니다. 제가 서울로 올라왔을 때 누군가의 인도로 창동교회(후에 대창교회)를 다니게 되었고 창동교회와 대창교회를 담임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야라고 불리던 눈물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국교회의 회개운동과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김치선 목사님이 인도하시는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았고 새벽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는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찬송을 부르시면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셨고, 그리고 28천 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동안 성경을 보고 기도를 하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아침 밥을 먹고 서울 고등학교를 30분 동안 걸어서 다니곤 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삼각산이든지 관악산이든지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연초 마다 교회에서 3일씩 금식 기도를 하곤 했는데 물론 저도 3일씩 금식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짓는데 교인들이 모두 산 아래에서 큰 돌을 열 두 개씩 산 위로 메어 나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귀찮게 생각하고 듣지 않았지만 저는 제 몫으로 큰 돌 열두 개를 나른 다음, 저의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고, 그리고 저의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김치선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날랐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순종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때 교인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2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2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양공고를 다니던 안흥규 라는 학생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함께 전도하고 함께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어서 주일날 들판에서 예배 드리기가 불편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학교의 교실 서너 개를 빌려서 학생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3때는 공부에 미치곤 했는데 저는 전도와 목회에 미쳤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열심히 전도와 목회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한양 제일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작한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 제일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대학생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다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의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모하는 마음과 들을 귀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저와 같이 사역하던 안흥규 학생은 나중에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할 때 함께 사역을 했고 강변교회의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만 남의 인연은 참으로 귀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주기철 목사님과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 등 수 많은 귀중한 분들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사각오의 순교적 신앙과 비단결 같이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을 지니고 모두를 감동시키신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스승님이셨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용서를 넘어선 사랑의 원자탄으로 모두를 사랑하며 세상을 녹이신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스승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온유와 겸손과 긍휼과 사랑을 지니고 모두를 품으면서 주님과 교회를 섬기신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스승님이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오직 기도와 오직 말씀에 붙잡혀서 소년처럼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주님과 교회와 신학교를 섬기신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스승님이셨습니다. 정진경 목사님은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따뜻함을 지니고 주님과 교회를 섬기신 너무나 귀중한 신앙의 스승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박윤선 목사님과 정진경 목사님은 부족한 저를 너무 좋아하시고 너무 사랑하시면서 저를 가르쳐주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목사님들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런 귀중한 분들에 대한 간증의 말씀을 다 드릴 시간이 없기 때문에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만 간단하게 하려고 합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고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책을 통해서 만나 뵈었고 가르침을 받았는데 손양원 목사님이야말로 제가 닮고 싶은 존경하는 신앙의 스승님들 중의 한 분이되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간단하게 합니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어느 여름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사 들고 제가 새벽 기도 후 거의 매일 올라가서 성경보고 기도하던 남산 숲 속 어느 나무아래에 가서 하루 종일 저녁이 될 때까지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나병 환자들을 그렇게도 극진하게 사랑하며 섬긴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기가 사랑하던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 같은 공산당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고 그를 양자로 삼기까지 사랑한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순교와 천국을 그렇게도 사모하신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본 받고 싶은 신앙의 스승님이 되셨습니다. 저는 사랑의 원자탄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을, 특히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순교의 영적 유산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인데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스승님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부스러기를 조금씩 아주 조금이라도 이어받기를 간절히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예일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 받은 에드워드 흄 헬로우십 상금의 대부분을 총신에 보내면서 손양원 목사님 기념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60주년을 기념하던 2010, 순교 60주년 기념 예배를 전국의 일곱 곳에서 드렸는데 그 준비와 심부름을 거의 제가 맡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본래 반일, 반북, 반모슬렘의 입장을 지녔던 배타적인 사람이었는데 차츰 일본과 북한과 모슬렘 형제들에 대한 포용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9년 전인 20071022일 저녁 갑자기 신앙의 스승님들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그 글이 20071215일 개혁신보에 실렸는데 그 글의 일부를 읽어드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철원이를 비롯해서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중에 몇 사람들의 이름만 적어본다. 우선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가식과 꾸밈이 없는 분이었다.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미소를 지닌 분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나에게 자주 말씀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은 무엇보다 기도와 말씀과 하나님께 사로잡혀서 사신 분이었다. 나는 박윤선 목사님이 세상에 계시던 마지막 한 주간 목사님을 매일 찾아 뵈면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는데 나는 지금 박윤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약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고 착하신 분이었다. 모두를 품고 모두를 아우르는 마음이 넓으신 분이었다. 한경직 목사님은 또한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내가 한 살 때부터 한경직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는데 내가 홀로 월남한 후 한목사님은 언제나 나의 손을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하시며 나의 아버지를 부르시곤 했다. 양극화가 극심한 이 시대에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 존경 받는 지도자가 많지 않은 이 때 나는 한경직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나에게 깊은 신앙적인 감화를 끼치신 분이다. 선지자 예레미아처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하셨고 새벽마다 성령이여 강림하사찬송을 부르면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시던 분이었다. 그분의 간절한 회개와 은혜 사모가 어느덧 나의 회개와 은혜 사모로 바뀌어지곤 했다. 그리고 나를 아들처럼 사랑과 격려로 대하시곤 했다. 영적으로 혼란하고 불순한 이 시대에 나는 순수하게 기도하며 간절하게 부흥을 사모하시던 김치선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그분은 내가 중학생 시절, 내가 홀로 월남하여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시절, 나의 감성과 지성과 의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었다. 나는 이성봉 목사님이 인도하던 부흥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그분이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헐떡거리며 받아먹곤 했다. 그 당시 나는 그분이 하라는 대로 모든 것을 했다. 부흥회 마지막 날 새벽마다 안수기도를 받으며 좋은 목사가 되기를 소원하곤 했다. 이목사님은 나를 알아보시며 칭찬하시곤 했는데 나는 지금 이성봉 목사님이 보고 싶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이중표 목사님은 세상에 대한 애착을 벗어버린 순수하고 착한 분이었다. 나와 이중표 목사님은 사랑과 정을 나누던 사이였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던 사이였다. ‘나에게 님으로 만나주신 목사님께 눈물겹도록 고마운 생각이 든다라고 글을 써서 나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나는 이중표 목사님과 마음과 생각을 모아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회개 기도 모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순수함과 착함이 점점 사라져가는 이 때 나는 이중표 목사님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진다.”(2007.10.22. 저녁)

 

제가 이 글을 쓸 때는 정진경 목사님께서 살아계실 때여서 정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쓴지 2년 후인 200993일 정진경 목사님께서 아침에 병원에 가셨다가 그날 밤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고 싶은 정진경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좀 길게 추가합니다.

나는 지금 정진경 목사님이 보고 싶어진다. 1980년 전후부터 정진경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알게 되었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30여 년 동안 친밀하게 사귀면서 정 목사님의 사랑과 지도를 받게 되었다. 나는 정진경 목사님과 세계 여러 곳을 함께 다니곤 했는데 정 목사님은 함께 다니기에 너무 편한 분이었고 소박하시고 따뜻하신 분이었다. 정진경 목사님은 무엇을 강하게 주장하시는 분도 강요하시는 분도 아니었다.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하시는 편안한 분이셨다. 정진경 목사님은 하나님과 한국교회와 아시아 교회와 세계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이었고 연합과 협력을 도모하신 분이었고 바른 신앙을 펴 나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신 분이었다. 정진경 목사님은 아시아 교회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분이시기도 했다. 정진경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시는데 아낌이 없으셨다. 1999년 설날인 화요일 저녁에 KBS 방송이 "내가 존경하는 이 사람" 이란 생방송 프로를 진행한 일이 있었는데 그 프로를 진행하는 동안 정진경 목사님이 나를 존경하는 이 사람"으로 지목하시면서 나를 지나치게 칭찬하시고 지나치게 격려하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목사님은 나의 진정한 스승이시고 형님이시고 아버님이셨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정진경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의 인격과 영성과 사명과 실천과 영광의 흔적을 몸에 지니고 사시면서 예수님의 흔적과 모습을 순수하게 나타내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정 목사님께서는 온유와 겸손과 포용과 격려와 칭찬의 삶이 무엇인지를 친히 삶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갈등과 분노와 분열이 가득한 한국교회에 포용과 연합과 일치가 무엇인지를 삶과 사역으로 보여주시고 가셨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성경적인 복음주의 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저희들 곁을 너무 갑자기 떠나셔서 저희들은 너무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은 우리들 곁을 너무 빨리 떠나셔서 너무 슬프고 공허하고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는 하실 일을 다 하시고 많이 앓지 않으시고 평안하게 하늘 집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조만간 천국에서 사랑하는 정 목사님을 반갑게 만나 뵙기를 바리며, 천국을 준비하는 참회와 온유와 겸손과 사랑과 봉사와 연합과 일치와 평화의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신앙의 스승님들과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저에 대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수 많은 귀중한 분들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모하는 마음과 들을 귀순종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듣을 귀가 얼마나 귀중한지 모릅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편지하시면서 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 것이 들을 귀를 가진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2:7). 저는 이 시간 사도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 시간 사도 바울처럼 말 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라고 고백합니다. 저의 실수와 허물과 부족함과 죄를 오히려 거름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저에게 신앙의 스승님들과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감사 드리며 찬양합니다. 저의 슬픔과 아픔을 오히려 자양분으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은혜도 찬양합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광주 수정교회 위에 나승율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위로와 축복이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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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10 [10:03]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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