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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2.19 [09:03]
중국 항주에서 이스라엘까지!
백강수 변호사(순복음강남교회 장로), 항주 단기선교 간증문
 
백강수
▲ 변호사 백강수장로 사진     ©곽종철

"너희는 온 천하를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예수님의 마지막 부탁 말씀이다. 누구든지 제자라면 선교의 사명이 있다. 순복음강남 중예부는 이번에 세번째 중국선교에 나섰다.

 

중국은 지리적으로 '무슬림 중동 지역선교'에 적합한 지역이다. 또한 중국의 한 소수민족으로 무슬림들이 중국화되어 있어 중동지역 복음화에 최적 지역이요. 

 

그들은 오래전부터 무슬림 중동지역선교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 한때 공산당의 탄압으로 중단되었으나 최근 기독교세 확장과 더불어 재개되고 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서쪽 마게도냐를 선교한 이후 성령께서는 계속 서쪽 국가 방향으로 움직인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선교는 기독교 역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실제 중국은 공산 탄압하에서도 놀랄만큼 부흥 성장했다. 15억 인구에 1억명의 크리스챤이 있다.

 

작년 길림에 이어 올해는 중국 초기 기독교 중심지인 저장성의 주요도시 교회 지도자들과 몇개 교회를 탐방하기로 했다.

 

세번째 중국 단기선교를 가면서 늘 그렇듯이 이번 선교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게 되는 교회 지도자들이 함께 땅끝 선교를 할수 있는 좋은 동역자들이 될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번 초대의 중심은 항저우 위성도시 '임안 시온산교회'의 전풍은 목사이다

 

제주 중국 지도자모임에서 두번 뵈었는데 참 신실한 분으로 느껴졌으며,  이번 단기선교의 안내를 부탁드리자 흔쾌히 수락을 하셨다. 8월3일 부터 있을 예정인 산동성 등 주요 자매교회 방문일정까지 취소하고 시종을 함께 해 주었다.

 

사실 출발 직전까지 기도하지 않을수 없었다. 날씨는 40도에 육박했고 G20으로 항주에는 예배금지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리고 외국인단체는 무조건 검문검색을 한다고 했다.

▲ 수저우 몽은교회 집회 후에 선교팀과 교회지도자와 함께 기념촬영     ©순복음강남교회

첫 일정에는 항주 옛 교회와 최대교회를 탐방하기로 되었는데 당연히 어려울 것 같았고 '임안교회'와 타 지역교회 방문 일정도 보안등을 이유로 전풍은 목사로 부터 답이 오질 않아 소득도 없이 오는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어쨌든 초기 계획이 불투명해지고 정확한 선교지 일정이 없는 채로 상해에 도착하였다.

 

상해까지 오시겠다던 전풍운 목사가 지난번 담석수술로 인해 상해의 지인 전도사가 대신 나왔다. 차량도 30인승 버스에 시원한 음료를 준비하기로 했으나 18인승 미니버스 차량이 나왔다. 짐까지 싣고보니 출발 부터 어수선하다

 

상해옛거리를 둘러보고 첫 방문지인 소주(수저우) '몽은교회'에 저녁무렵에 도착했다.

 

사실 '몽은교회'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서 '어떤 교회일까?' 참! 궁금하였으나 '삼자교회'라고 해서 예배도 어렵겠다고 생각하였다.

 

'몽은교회' 진학구 목사가 우리를 영접하려고 숙소로 오셨다. 첫 인상이 사업가 기질이 강하게 느껴진다. '대단히 적극적인 분'이라서 무조건 저녁식사는 자기교회에서 대접하겠다고 했다.

 

'몽은교회'는 성도5000명으로 약 50개의 가정교회로 나뉘어 있는데 방문지는 본부교회로 각 지역 지도자들만 100여명이 모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진학구 목사는 사전 연락도 없이 우리선교팀에게 찬양 말씀 간증을 부탁했다. 사실 우리 일행중 찬양사역자 중국인 통역목사도 있지만 사전 부탁없이 즉석 제의가 되어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중국교인들과 몇차례 연합예배를 드린적이 있어서 그 들의 예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 . 우리나라의 60년, 70년대 성령운동 교회를 연상하면 된다.

 

교회 안에는 벌써 찬양 열기가 뜨겁다. 그들의 아멘소리는 우리나라의 군사 훈련중인 군인들과 흡사하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치에꺼송찬메이' 찬양으로 이미 성령 충만하다. 함께 부르는 찬송 속에서도 이미 한.중 성도들은 하나가 되기에 충분했다.

 

우리 통역목사가 말씀을 증거할때 그들의 눈망울은 무어라도 빨아들이듯 집중한다.

 

저도 인사말을 통해 우리가 왜? 중국에 왔고, 한.중교회가 함께 기도해야  하는 시대적 역사적 사명을 설명했다 .

 

마지막 땅끝 선교에서 중국의 중요한 역할을 주문하자 그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하였다.

 

우리 찬양사역자가 '어메이징그레이스'로 그들의 영혼을 깨우고 우리 선교팀 전원과 하나가 되었 다. 서로 함께 서서 중국어 찬양을 했다. 우리가 오히려 그들로 부터 큰 도전을 받는다.

 

언제 부터 인가? 한국 교회의 성령 운동은 힘을 잃어 가고 있는 것처럼 조용히 변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들의 뜨거움은 큰 힘이 되었다

 

예배 후에 진학구 목사는 감사의 뜻을 전하며 '쑤저우'는 '강소성'이라서 자유롭게 예배드린다고 했다. 우리는 뜨겁게 열정적인 도착예배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전대도 없이 전도에 나선 제자의 심정이었지만 주님께서 우리 맘을 아시고 첫 날부터 함께 하심을 보여 주셨다.

 

진학구 목사는 다음날도 '쑤저우 졸정원'(중국 4대 정원에 꼽힐 정도로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정원)과 점심장소까지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졸정원' 안내 해설사를 못 구해서 부목사가 비지땀을 흘리며 해설사 역할까지 해주었다. 큰 신세를 지며 우리의 우정은 주님안에서 견고해졌다.

헤어지면서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이제 우리를 초대한 '임안 시온산교회' 전풍은 목사를 항해 출발 하였다. 선교팀 일행은 그 아름다운 '졸정원'에서 너무 많은 땀을 흘려 이미 지쳐 있었다.

 

이제는 그 좁았던 18인승 미니버스도 천국이었다. 인솔자의 미안함도 덜하여 졌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 선교팀과 몽은교회지도자들과다함께 찬양 '이치에꺼송찬메이'     ©곽종철

<항주선교 둘째날>

 

'임안'은 '소주'에서 두시간 거리에 있다.

'임안'은 인구 100만의 '항주') 위성도시로 차와 죽순, 호두 등이 특산물이다.

 

전풍은 목사는 '임안' 지역 시온산교회의 지도자인데 이번에도 예배 일정에 대해 구체적 언질을 주지 않아 궁굼하기 짝이 없다. 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도움되는 일정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이번 선교의 주제찬양가는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하루 살아요' 였다

 

전풍은 목사는 '임안' 지역 17개 지교회 1500명 성도들을 지도하고 있다

 

우선 연락해준 것은 저녁식사를 밖에서 하지 않고 선교팀을 위해 그곳 장로들이 직접 일찍부터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남자들의 요리솜씨가 좋아 남자들이 진정한 요리사라고 한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게되는 광경인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아"

'벗이 먼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4층 짜리 오래된 건물의 가정교회에 들어서자 음식을 준비한 장로들과 맛갈스런 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건강을 위해 과일을 먼저 권한다.

 

오리 닭 야채요리가 상위에 가득하다. 무엇보다 멀리서 온 손님을 대접하는  그들의 정성이 감동이었다.

 

합동예배는 G20으로 금지령이 내려져 생략했다. 그 대신 간담회와 기도와 간증의 시간을 가졌다.

 

저는 인솔자로서 이곳을 방문하게 된 과정을 간증했다.

 

따뜻한 정성으로 마련된 식사로 우린 한 형제가 되었다. 전풍은 목사의 둘째 딸이 백석대학교 재학중이라고 해서 우리가 돌보아 주기로 했다.

 

선교물품 전달 후 전풍은 목사와 형제의 결연을 맺고 앞으로 중국 복음화와 땅끝선교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서로 협조하기로 약속했다.

 

▲ 통리삼자교회에서 온주성삼일교회 임안시온산교회 목회자부부와 기도후에기념 촬영     ©곽종철

<항주선교 셋째날>

 

오늘은 '항주'에서 두시간 거리인 '온주'의 성삼일교회 임백화 목사 부부가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온주'에서 오는 날이다,

 

'온주'는 중국 초기 기독교의 중심이며 '온주' 기독인들은 사업도 잘해 '온주'를 중국 최대의 경제도시, 기독교도시가 되어서 한때는 전 도시인구의 30프로가 예수를 믿었고 '온주' 상인들은 유대 상인만큼 명성이 높았다.

 

성삼일 교회는 성도 3,000명의 '삼자교회'이며 임백화 목사는 부목사 때 우리 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우리를 만나기 위해 2시간 이상을 달려 아침9시 '항주'에 도착했다.

 

'항주'의 한 백화점에서 만나기로 하여 우리팀도 새벽같이 출발했다. '항주'는 예상대로 15만명의 공안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검문검색이 삼엄했다.

얼른 화장실만 갔다가 버스에서 임백화 목사를 만나 함께 투어하며 정담을 나누었다.

 

임백화 목사는 젊은 나이인데도 금년에 

담임목사로 선출되어서 재회의 기쁨이 더욱 컸다.

 

'온주교회'는 세력이 강한만큼 정부의 탄압이 강해 교회 철거와 십자가 철거가 있었고, 일부는 디아스포라가 되어 중국 타지역을 선교하고 있어서 지금은 교회와 성도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한다. 중국정부가 '온주'를 시험케이스로 삼아 타 지역 기독교정책도 변화 될 수 있다고 예견했다.

 

외부교인들이 '온주교회'를 방문하는 일은 기능하나 강단 설교나 간증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임백화 목사는 모처럼 만난 우리를  항주의 외곽 인구40만의 도시 통리로 안내했다 사전 연락도 없이 '삼자교회'라고만 했다.

 

통리에는 '임안' 전풍은 목사 사모의 친구인 신도건영 목사가 '삼자교회'의 담임으로 있어 우릴 영접했다.

 

그도 얼른 보아 빼짱좋은 사업가처럼 느껴진다.

 

통리의 기독교인은 15,000명으로 2개의  '삼자교회'가 있고 신도건영 목사의 '삼자교회'는 한번에 500명이 예배드리는 비교적 큰 교회였다.

 

'통리' 신목사는 삼자교회의 선입견을 깨고 저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선교팀과 온주 임목사와 임안의 전목사부부와 함께 삼자교회 십자가 앞에서 기도의 시간을 갖었다.

 

'통리' 신목사는 우리 선교팀에게  점심 접대를 하였다

 

'통리'는 비교적 교회활동이 자유로운 곳이었다. '통리'는 삼자 교회지만  2년전까지 거리 찬양 전도를 하였는데 최근에는 이를 금지하여 못하고 십자가도 철탑위에 세웠는데 지금은 건물 위쪽에 부착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정부의 교회 통제가 여기서도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통리교회는 선교팀을 두고 전도와 선교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비교적 전도가 자유로운 강서성 지역까지 찾아 전도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처럼 절강성의 대표적 삼자교회 지도자와 가정교회의 지도자와 한자리에 모여 중국교회를 위해 기도한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항주선교 네째날>

 

오늘은 임안교회 외곽의 유원지에 있는 진은혜 형제를 방문하는 날이다.

 

매년 중국 선교지를 기도하게 되는데 사실 이번 선교 여행의 행선지를 처음 제공한 친구는 진은혜 형제이다.

 

진형제 어머니가 전풍은 목사가 지도하는 시온산교회 지교회의 식구이다.

 

진형제는 작년 제주국제대학에 어학공부하러 왔다가 스트레스로 정신발작을 일으켜 학우들과 이웃을 흉기로 위협한 죄로 구속이 되었는데 그때이다. 제가변론을  맡아 보석으로 풀어 중국으로 돌아가게 한 인연이 있다. 

 

그때 진형제 어머니가 3일간 금식하고 아들을 면회하러 제주에 오셨는데 그 믿음이 얼마나 담대하고 표정이 온화한지 오히려 변호인이 감동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주의 종으로 만들기 위해 이름을 은혜로 하였고 유원지 4층 식당 건물은 기도원으로 바치고 싶은데 공산당원인 남편이 반대하여 기도중이라고 했다.

 

진군 어머니는 아들 면회중에도 그렇게 의연할수가 없다. 보통 어머니 같으면 울든지 화내든지 할텐데 저는 그 어머니의 단호하며 평온한 모습을 잊을수 없었다. 점심을 함께 하면서 어머니는 큰 식당을 하니 찾아달라며 초대했고 저는 중국 가면 방문하겠다고 대답했었다.

 

진은혜가 보석으로 나오던 날 제주 모임에 온 전풍은 목사를 다시 만났는데, 그가 진은혜교회 목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 다음 제주 중국지도자 모임에서 또 뵙게 되자 전목사님께 단기 선교 일정을 잡아 달라고 했던 것이다.

 

1,000미터 이상의 미시령같은 고개를 지나자 산의 최정상에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있고 그 호수를 마주보는 자리에 진은혜 형제의 건물이 위치해 있었다.

 

어머니가 음식준비를 하다가 진은혜와 함께 반갑게 뛰어 나왔다.진은혜도 이미 건강을 되찾았고 반듯한 모습을 하며 아버지와의 대화를 영어로 통역했다. 아름다운 재회였다.

 

그리고 이날 자기 건물에는 상해교회에서 학생들의 여름성경캠프가 진행중이고 북경의 미국선교사가 오셔서 말씀과 지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미 어머니의 기도대로 그 식당은 하나님의 처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를 반대했던 공산당원 아버지도 진은혜 구속사건 이후 많이 변화되어 흔쾌히 이를 수락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이다. 어머니의 기도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식사중 우리를 찾아 온 미국선교사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다 

 

요즘 너무 들어본지 오래된 단어이다 "미국선교사!"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이름인가? 밥 먹다가 말고 인사하러온 미국 선교사와 장시간 인사를 나누었다.

 

그와 만남이 진은혜 가정이  예배 처소가 된 이상으로 반가웠다. 이 중국의 산골짜기에서 미국선교사를 만나다니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다.

 

그는 10년 이상 북경에서 교사생활을 하면서 북경교회의 청년들을 지도하며 중국이 '무슬림 중동지역 선교' 사명을 다할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을 통한 무슬림 중동지역 선교!"

 

지난번 길림성 선교때도 새벽별 교회지도자로 부터 '무슬림 중동지역 선교'를 준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번에도 뜻밖의 장소에서 미국선교사를 통해 '무슬림 중동지역 선교'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를 느끼면서 중국 선교의 목표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는 몽골 등지에도 너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그들과 선교전략 즉석 모임을 갖고 함께 찬양하는 시간을 갖었다. 미국선교사와 학생들과 선교팀이 하나가 되어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주를 찬양하며 하나가 되었다.

 

다음 일정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오는데 진형제 집 부근 임안교회 장로가 자기집으로 잠시 초대한다. 산골짜기 집이라 흙바닥 거실 큰 공간이 어두컴컴하다.

 

우리는 간이 의자를 끌어다가 기도시간을 갖었다. 그러고 보니 선교의 마지막 기도시간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기도처소를 만들어 주셨다.

 

우리는 장로가정과 임안교회와 중국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실 이번 선교여행을 출발 할 때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다양한 중국 교회와 그 지도자들을 만나게 하여 중국 복음화와  땅끝 선교의 지경을 넓혀 달라고 하는 출발기도제목을 모두 들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 왔다.

 

어두컴컴한 중국 산골의 장로가정에서 항주선교의 마지막 기도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속 깊이 하나님께 감사의 눈물들을 흘렸다.

 

G20으로 예배통제가 심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갈바를 알지 못하고 출발했었으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항주지역의 여러 교회와 교회지도자들을 만나게 해주시고 '무슬림 중동지역 선교'를 위해서 함께 기도할 수 있게 인도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이번 선교의 계기가 되었던 진은혜 어머니의 기도가 이루어져서 식당이 기도처소가 되고. 진은혜 아버지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뉴스파워 전남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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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6 [22:24]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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