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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9.20 [00:05]
북한 핵 개발과 퍼주기 논란
이 만 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장, 평통기연 상임고문)
 
이만열
▲ 이 만 열 장로(전 국사편찬위원장, 평통기연 상임고문)     © 뉴스파워 범영수

며칠 전 평소 가까이 지내는 후배와 대화하는 가운데, 남북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평소 그는 진보적이지 않았고 특별히 보수적 입장을 취하지도 않았는데, 그 날은 평소 그답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 북한에 ‘퍼주기’를 했기 때문에 북한에서 핵을 개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그는 나와의 대화에서 그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일부 목회자들에 대해서 오히려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는데, 그 날은 무의식적인지는 몰라도 그런 말을 내 앞에서 내뱉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면전에서 바로 비판하지는 않았으나,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퍼주기’의 결과가 북한의 핵 개발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상당히 유포되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북한 핵이 어떤 과정을 거쳐 개발되었는지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그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거기에 들어간 재원이 얼마나 되었는지, 그것을 어디에서 조달했는지, ‘퍼주기’라고 떠드는 남북협력기금에 의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내가 아는 한, 정부는 그런 문제에 공식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핵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재래식 무기로 군비경쟁을 한다는 것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데서 나온 결론인 것만은 틀림없다.
 
대칭적 관계의 재래식 무기로서는 앞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항하여 무기를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김일성 때부터 핵에 대한 준비를 쌓아 왔던 것이다. 핵과 재래식 무기는 비대칭적 관계이기 때문에 아무리 성능이 놓은 재래식 무기를 쌓아 놓는다 하더라도 핵 한방이면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인류의 장래를 위해서는 핵을 개발해서도 안되고 개발된 핵은 폐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확고한 신념을 갖지 않는 한 이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나라가 어디에 있겠는가.
 
1953년 7월 27일에 발효하기 시작한 정전협정 규정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각종 무기가 도입되었다. 한국과 미국은 1948년 8월 분단 정권 수립 직후 <과도기의 잠정적 군사 및 안보에 관한 행정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또 정전협정 발표 후 10여일 만인 1953년 8월 8일 가조인한 후 그 해 10월1일에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 이듬해 11월 발효하게 되었다.
 
1953년 7월 27일에 발효한 정전협정에는 한반도에 무기반입을 금하는 다음 조항이 있다. 즉 제 13항에 “조선국경으로부터 증원하는 군사인원을 들여오는 것을 정지한다”와 “조선 국경외로부터 증원하는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의 반입을 정지한다”라고 규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비행기, 각종 대포, 기관총, 탄약 등의 군사장비가 남쪽에 들어왔다. 북한의 핵개발이 휴전협정 이후인 1955년경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은 이런 군비증강과 무관한 것일까.
 
북한의 핵개발은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박정희가 1970년대에 핵개발을 의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게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정전협정 금지규정에도 불구하고 최첨단무기를 반입하던 미군은 1958년 초, 공개적으로 “남한 지역 내 원자무기 반입배치를 밝혔고, 1975년 5월에는 미 국회에서 ‘미국이 남한에 1,000개의 핵무기를 반입했다’고 공개했다.” 그 후 1991년 12월 남북간에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은 남한에는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 이듬해 7월 미국 대통령 부시도 아시아에 배치된 모든 전술핵무기가 완전히 철수했다고 했다. 그러나 “핵무기의 존재를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NCND정책에 따라 그 누구도, 어떤 기관도 남한 지역의 핵무기 반입 및 철수 여부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반도에서 핵무기 제작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어느 쪽일까.
 
북한은 1962년 영변에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은 2MW 소형원자로를 건설했다. 그 뒤 1979년 5MW급 실험용 원자로를 착공, 1986년에 본격 가동했다. 북한은 “1985년 12월 4기의 440MW급 소련형 VVER경수로 원전 도입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소련의 요구조건인 NPT에 가입”했다. 그러나 1992년 IAEA가 회원국 북한에 대한 핵사찰에서 ‘플루토늄 양의 불일치’ 때문에 특별사찰을 요구했지만, 북한은 거부하고 NPT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 폭격까지 고려했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김영삼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이 계획되었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불발되었다. 김정일 정권 등장 이후 제네바 협정을 통해 1995년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 지원을 약속하며 핵폭탄 제조의 길을 막게 되는데, 당시 경수로 건설을 위해 한국 정부는 약 1조원을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도 부시의 등장으로 일방적으로 파기되었다. 북한 핵을 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2003년 북한핵을 막기 위한 6자회담이 열리게 되지만,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0.5kt 급의 핵실험을 시작, 지난 1월 4차 핵실험에 이르게 되었다.
 
북한핵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생존전략과 강대국(미국. 일본)의 북한무시전략의 상극으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거기에다 한반도가 핵이든 뭐든 불안한 상태에 있어야만 이득을 취하는 국내외의 세력이 있는데 이들은 한반도의 핵문제 해결을 원치 않는다. 그런 장단에 춤을 춘 것이 어쩌면 북한이고, 한반도에서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은 그 간 몇 번이나 주어진 핵문제 해결의 기회를 방해했다. 1990년대 대한민국이 북방정책으로 중국․소련과 국교를 틀 때, 북한은 미국․일본과 국교를 터서 상호 교차승인토록 해야 했고,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전진시켜야 했다.
 
그러나 한반도가 분단과 갈등 속에 있어야만 이득을 얻는 세력들은 평화조약 체결은 물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통일을 원치 않는다. 북한의 고립정책은 사실상 자기생존을 위협했고, 생존전략으로 선택한 핵은 아직도 북한인민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몇 차례 유엔의 제재까지 당했지만, 더 고집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일인체제하에서는 북한 인민의 생존을 담보하는 개방정책이 고려되지 않은 법, ‘백두혈통’의 존엄만 고집하는 정책이 주체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핵개발을 진전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민족사 최대의 과제에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명박-박근혜 정권 및 한국 보수교회는 그 동안 ‘북한 퍼주기’가 핵개발을 도왔다고 비난해 왔고, 대북관계의 전면 중단을 당연시했다. 핵실험이 참여정부 때에 이뤄졌기 때문에 그 전의 문민정부․국민의정부 때로부터 본격화된 북한지원이 핵개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주장이 적실성을 갖기 위해서는 2~4차 핵실험, 그 중 하나는 스스로 수소폭탄이라고 주장하는 핵실험이 ‘퍼주기’를 해주지 않은 보수정권 때에 이뤄진 데 대해서 합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 말은 북한의 1차 핵실험이 ‘퍼주기’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퍼주기’를 하지 않은 시기의 2~4차 핵실험이 이뤄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15년간 남북교류협력으로 지불된 돈이 5조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그 ‘퍼주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일수록 한국이 한해 미군에게 퍼주는 금액이 얼마인지는 계산하지 않는다.
 
 “천안함, 연평도 포격 등에 대해 우리의 흥분의 대가는 글로벌 호크, 스탤스 전투기, 공중조기경보기, 각종 미사일 등 우리에게 별로 필요없는 과잉전력을 들여 놓는 결론으로 귀착되었다.” “우리가 한번 흥분할 때, 대개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댓가가 치러”지는데 이로써 “누군가 우리들의 분노를 조장하여 그 댓가로 우리의 주머니가 무섭게 털려 나가고 있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인정하던 않던 북한은 핵을 개발했다. 그런 상황에서 남북이 공존하는 최선의 방안은 무엇일까. 이 땅에서 핵이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결국 한반도를 안정화시켜 화해와 평화를 이룩하는 길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면 비용을 써야 한다. 그것이 다시 ‘북한 퍼주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여기서 화해와 평화를 위한 ‘북한 퍼주기’와 분단 고착화를 위한 병력강화를 대비시킬 수 있다. 한국이 부담하는 미군 주둔비를 ‘북한 퍼주기’와 대비하면서 그것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회의하는 견해도 있다. 이런 견해를 ‘반미주의’로 특정해 보지 않았으면 한다. 매년 현금으로 미군에게 지급하는 비용이 1조원에 가까운데, 미군은 이 돈이 남아서 수천억 이상을 저축해놓고 이자놀이까지 하고 있다. 해마다 미군과 미군 기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기지 사용료, 유류, 통신, 전기 등 면세 특혜가 해마다 3조원에 이른단다. 거기에 미군기지 건설비, 정기적이고 부정기적으로 사건마다 증액되는 무기 구입비는 매년 수조원에 이른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는 이를 잘 지적한다. “이리저리 따지면 해마다 10조원 가까이에 이릅니다. 15년간 5조원 퍼주었다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은 언젠가는 우리가 지불해야할 통일비용이지만 해마다 미군에게 지불되는 비용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소모성 비용에 불과합니다. 북에 대한 퍼주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왜 그에 대해 수십배가 넘는 미군에 대한 퍼주기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이해의 바탕 위에서 공감대를 이뤄가야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미군에 퍼주기를 하는 것이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분단과 대결’을 고수하는 길은 아닌지, 비록 지금은 ‘퍼주기’ 같이 보이는 그 길이 민족사적으로 ‘용서와 화해,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는 것은 될 수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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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5/03 [20:5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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