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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2 [05:14]
성령 사역자이신 나사렛 예수(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설립원장)
 
김영한
 (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성령 사역자이신 나사렛 예수(I)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상임대표/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설립원장)
▲ 김영한 박사     ©김준수
 
머리말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각 성과 촌을 다니시며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영과 마음과 몸, 전인을 치유하셨다. 이러한 나사렛 예수는 성령 사역자이셨다. 그 후 베드로, 빌립, 스데반 등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모범을 따라 성령 사역자들이 되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역사적 예수는 원형 성령 사역자이시다. 나사렛 예수는 이런 의미에서 유일한 성령 사역자시요 그 이후에 제자들과 교회사에 나타난 4세기의 교부 어거스틴, 이집트 수사(修士) 안토니우스를 비롯하여 중세의 버나드, 종교개혁의 루터와 칼빈, 18세기의 조나단 웨드워즈, 휫필드, 존 웨슬리 19세기의 찰스 피니, 20세기의 로이드 존스 등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태까지 정통신학은 예수의 성육신과 신성을 강조하여왔고 기독론 중심의 신학을 전개하여왔다. 이는 정통기독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러면서도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는 강조하면서도 성령과의 관계는 전제하면서도 부각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어왔다.    

필자는 이 글에서 역사적 예수가 지니신 독특한 측면, 그동안 필자가 놓쳤던 부분, 말하자면, 그가 하나님 아들이요 성육신 가운데서도 신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충만하신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역사적 예수 이해에 있어서 그의 메시야적 사역이 지니고 있는 감추어져 있는 성령의 사역을 자유주의 신학과 심지어는 복음주의 신학이 간과하는 것을 보충하는 글이기도 하다.    

I.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충만하신 예수
1. 성령으로 잉태된 나사렛 예수  

성령은 성자인 나사렛 예수의 성육신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 1:34-35). 여기 사용된 “덮으신다”(έπισκιάζω)는 용어는 변화산 사건(눅 9:34)에 대한 묘사에서도 다시 사용되고 있는데 광야에서 낮에는 광야의 살인적으로 작영하는 태양열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고 인도했던 하나님의 구름을 연상시킨다. 구름이란 가시적으로 나타난 “신비로운 하나님의 임재”(the mysterious presence of God)를 나타낸다. 이러한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마리아는 믿음으로 대답한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눅 1:37-38). 마리아는 ”말씀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대답한다.    

예수의 잉태는 인간의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인한 생물학적 방식이 아니라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시듯이 성령의 권능으로 태초의 말씀이 마리아의 자궁에 들어가 아기 예수로 잉태된 것이다. 이러한 성령으로 인한 그의 출생은 예수의 신성과 죄 없는 존재를 보장할 수 있게 한다. 세례자 요한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서 아내 엘리사벳의 태에서 태어나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으나(눅 1:13, 15)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약혼한 신랑 요셉과의 동침없이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잉태되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15).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자연적인 과정이었으나 나사렛 예수의 출생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초자연적 과정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잉태가 초자연적이고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2. 성령의 기름부음 받아 성령과 말씀으로 충만한 메시아로서의 예수    

1) 독생하신 하나님 아들 예수  

예수께서 성령 사역자가 되신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받을 시에 성령의 충만을 받은 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요 또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성령의 권능 사역을 하셨다. 사도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예수는 태초의 말씀으로서 “성육신 하신 말씀”(das Fleisch gewordene Wort)이었다. 요한은 다음같이 증언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성육신하신 말씀인 예수에 관하여 다음같이 해설하고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요일 1:1-2).    

예수가 말씀으로 충만하신 것을 드러내주는 장면은 복음서에서 그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받으실 때에 마귀가 예수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하라”고 시험했을 때, 예수는 신명기 말씀(신 8:3b)을 인용하여 물리치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b).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고 시험했을 때 예수는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마 4:7)고 물리치신다. 마귀가 예수를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시험한다. 이에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 4:10b)고 물리치신다. 이는 예수께서 어린 시절부터 회당에 들어가 구약의 토라(Torah)를 열심히 읽으시면서 말씀으로 충만하신 것을 나타내준다.   

2) 성령의 기름부으신 공적 사역   

갈릴리의 나사렛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의 글(사 35: 4-6)을 펴 읽으시면서 예수는 자신의 메시아적 공적 사역을 선언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예수는 자신이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시면서 자신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메시아 사역을 하시는 것을 가리키신 것이다. 예수의 메시아 사역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역이다.    

예수는 산상설교를 통하여 모세의 율법의 정신이란 사랑이라는 것을 해석하시면서 하나님 나라가 그의 인격 안에 이미 도래했고, 천국이 가난한 자의 마음 속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4:17).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눅 11:20).   

그의 산상설교는 마태복음 5장-7장에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공관복음과 4복음서에는 그의 말씀(가르침)들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의 설교와 말씀에 대하여 청중들은 놀랐다. 그의 설교는 권세있는 자의 설교로서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다음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마 7:28-29).    

세례자 요한이 옥에 갇혀서 예수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를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2-3)라는 메시아 질문에 대하여 예수는 성령의 권능에 의해서 수행되는 그의 메시아 사역을 통하여 간접 대답을 하신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소경이 보고, 앉은 뱅이가 걷고, 나병환자가 치유되며, 청각 장애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은 성령의 치유능력에 의하여 가능한 것이다. 예수는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성령사역을 행하신 것이다.    

II. 성령 사역으로서의 메시아 사역
1. 성령 사역자로서의 예수는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었다. 

1) 하나님의 본체인 나사렛 예수

나사렛 예수는 지극히 낮은 신분으로 초라한 나사렛 시골에서 성장하셨다. 그리하여 그는 당시 유대교 종교지배층으로부터 초라한 지역의 출신으로 무시를 당했다. 그러나 그는 영적 원천은 하나님의 본체셨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구속을 위하여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인간이 되셨다. 초대교회 그리스도 찬가는 이러한 예수의 모습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 2:6). “하나님의 본체”(μορφῇ θεοu/)란 하나님의 형상(form)으로서 보이지 않는 성부의 보이는 모습이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동질적 존재를 나타낸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는 제자 빌립에게 그가 행하시는 사역(병고침과 축사와 이적과 기사)을 인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이심을 말씀하신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 14:10-11). 예수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 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 체험은 그의 인격 안에서 주어졌으며, 그 안에서 신적 본질의 충만함이 드러나 있다고 가르치신다. 앞서 주의 가시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질문하는 제자 도마에게 예수는 이와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7). 

2) 와그너의 신성유보설은 비성경적이다.

신사도 운동가 와그너(Peter Wagner)의 신성 유보설은 성경적이 아니다.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사용하신 유일한 본성은 바로 예수의 인성이다.”(Peter Wagner, 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 Regal Books(Ventura, Cal., USA, 1988), 정윤교 역, 『제3의 바람』, 나눔터, 1993, 124.) 와그너는 예수가 지상적 삶에서는 신성을 내려놓고 인성만을 사용했는데 이 인성은 성령의 권능에 의하여 초자연적 능력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주장은 성자의 케노시스(kenosis)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와그너는 성령 충만을 강조하기 위하여 신성을 대체하는 것이 성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이는 신사도 운동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편견일뿐이다.(김영한, 『영적 분별』.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본 성령과 사탄에 의한 영적 현상의 공통점과 차이점, (용인: 킹덤북스, 2014), 500-504.) 지상적 삶에서도 예수는 신성을 유지하셨다. 예수가 신성을 유지하였다는 증거 중에 하나가 그가 하나님을 “아바”(abba)라고 부르신 것이다. “아바”(abba)라는 호칭은 구약의 모세나 선지자도 부리지 못한 것이묘, 당시 신약시대 대제사장도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라는 메시아적 자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예수는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지신 신인으로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이다. 성령은 공생애 동안 예수의 모든 능력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아적 사역을 감당하는 성령의 사역자가 되신 것이다. 

2. 겸손한 복음 전파자요 치료자로서의 성령 사역자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다. 이 복음 증거를 하시는 가운데 예수는 자신에게 오는 모든 병자들의 모든 질병을 다 치유하셨다. 예수의 사역가운데 38.5%가 치유사역과 관련되어 있다. “치유와 기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나타내시는 특별한 순간이다.”(Ralph W. Neighbour, Jr., Where Do We Go from Here? 2nd ed.(Houston, TX: Touch Publication, 2000), 164-5) 예수의 치유와 기적은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를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는 질병에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며, 외면적으로는 하나님 나라 도래라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징표를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예수는 병든 자들을 고치신 것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 9:36). 많은 사람들을 고쳤었으나 예수는 교만하거나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셨다. 예수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셨다.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셨다. 심지어 더러운 귀신들까지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 고백하는 것을 금지하셨다.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예수께서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많이 경고하시니라”(막 3:11-12). 마태는 이사야에 의해 선포된 야웨의 종 노래(사 42:1-4), 온유하면서도 권능의 종의 실현이 예수의 인격 안에서 이루어짐을 말하고 있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2:18-21). 마태는 예수를 떠들썩하게 크게 나팔부는 권능 치유자가 아니라 평온함과 인내심 가운데 상하고 끄져가는 자의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시는 성령 권능의 사역자로 그리고 있다.(Enrico Galbiati, The Gospel of Jesus, 1992, 나채운 역, 성지에서 보는 예수 사역의 발자취, 서울: 성지출판사, 1994, 117.)  

3. 하나님의 성령의 공급을 무한정으로 받으셨다.    

성령 사역자로서 예수는 인성 자체로부터 영적 능력이 나오지 않고 그의 신성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끊임없은 교통 속에서 조용한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았다. 예수의 인성은 그의 신성과의 불가분적인 소통 가운데 있었으며 그의 신성은 끊임없이 성부와의 인격적 관계에 의하여 성령의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한적한 것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수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 기도하시며 시험을 받으셨다(마 4:1).    

예수는 공적 사역을 위하여 요단강에 나아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세례라는 공적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고 성령이 충만한 강림으로 인간 예수에게 사역자로서의 권능을 부여하신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1-22). 

예수께서 광야 시험을 이기시고 나사렛에서 메시아 사역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실 때 회당에서이사야 선지의 글을 읽으면서 주의 성령이 자신에게 임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밤에 자기를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중생의 도리를 가르치시면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공급받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예수는 성령의 권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셨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이상의 복음서 증거를 보면 인간 예수는 비록 온전한 신성을 지녔으나 인성적으로는 육신적 제한과 언약함 속에 있었기 때문에 성부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 속에서 성령의 권능으로 항상 채우심을 받아야 하셨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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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2/25 [13:0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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