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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1.18 [16:58]
이웃을 향한 ‘변변찮은 삶’의 진실
김유준 목사 (평통기연 운영위원, 은진교회 담임목사, 연세차세대연구소 소장)
 
김유준
▲ 김유준 목사 (평통기연 운영위원, 은진교회 담임목사, 연세차세대연구소 소장)     © 뉴스파워 범영수
옥스퍼드 대학교 영어영문학 교수였던 존 톨킨(John R. R. Tolkien, 1892-1973)은 영화로도 제작된 그의 3부작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을 통해 한국에서도 그의 작품세계가 널리 알려졌다. 톨킨은 기독교 변증가로 유명한 클라이브 루이스(Clive S. Lewis, 1898–1963)가 옥스퍼드 대학교의 문학토론모임(Inklings)의 동료로 있을 때, 무신론자였던 루이스에게 기독교 신앙으로의 도전을 준 인물로도 유명하다. 톨킨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1차 세계대전의 최전선에서 가장 친한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고, 전쟁의 살벌한 현장에서 자신도 열병에 걸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극심한 체험을 하면서 전쟁의 참상과 참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전쟁의 아픔을 안고 톨킨은 루이스와 조언을 주고받으며 10여년에 걸친 방대한 작품,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써내려가던 중, 자신이 생존하는 동안 작품을 제대로 마무리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지쳐있을 때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이웃집의 앙상한 나무를 보면서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되었다. 톨킨은 볼품없는 나무에 간신히 나온 이파리 하나였지만, 그 나무의 온전한 모습과 그 뒤로 넓게 펼쳐진 웅장한 숲과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톨킨은 이러한 아름다운 세상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하는 주인공, 니글을 등장시켜 그의 단편, 『니글의 이파리』(Leaf by Niggle)를 저술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잎이 무성한 나무는 물론 아름다운 세상을 화폭에 그리고자 했던 니글의 원대한 희망과 달리, 시간에 늘 쫓겨 다니던 니글은 이파리 하나만 제대로 그렸을 뿐, 대부분의 시간을 이웃 사람들의 ‘변변찮은’ 필요를 채워주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파리 위에 맺힌 이슬의 빛을 가늠하며 바람에 부드럽게 떨리는 미완성의 작품은 나중에 찾아오는 이도 별로 없는 동네 조그만 박물관에 옮겨진다. 그림을 완성하고자 죽음까지도 완강히 거부했던 니글의 마지막은 단지 이파리 하나만 달랑 그려놨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도 종종 고통스럽고 불의한 현실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자신의 진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자신의 정직하고 선한 의도를 인정해 주지 않을 때, 답답하고 억울해하며 마음이 무너지고, 때로는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작고 평범한’ 니글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원대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바로 천국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천국에서는 오히려 그가 이웃을 향해 베풀었던 ‘변변찮은’ 작은 배려와 섬김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확인하게 된다. 니글이 그리고자 했던 것은 한갓 꿈이나 이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고 천국에서는 진정한 실재였음을 깨닫고, “이것이야말로 선물이구나”라는 탄성을 지르게 된다. 그가 꿈꾸던 세계가 영원한 참된 세계에 실재하는 진실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이처럼 분주하고도 냉혹한 현실에 가려 ‘실재하는 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게 된다. 불의한 현실에서 신음하고 있는 이웃의 고통과 절망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성공만을 위해 치열한 적자생존의 경쟁에 자기 스스로를 내몰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그러하지 않은가. 사회 전반에 만연된 각종 비리와 부정부패, 분단된 민족의 기형적 현실의 아픔에 대해서도 아무런 애통함이나 절박한 심정도 품지 못하고, 통회와 자복의 기도조차 드리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실존이다. 평생 함께 지내던 이웃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유리방황해야하는 수많은 철거민과 난민처럼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걸음을 멈추고 긍휼의 마음으로 돌보고 섬겨야 하는 ‘강도만난’ 이웃들이 즐비하다.

최근 프랑스와 말리에서 일어난 IS 테러와 이에 대한 보복을 정당시하는 서방국가의 시리아 폭격 등 전쟁의 소식은 끊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테러와 전쟁의 공포로 두려움에 떠는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통한 평화의 소식은 더욱 간절하다. 이웃의 아픔과 억울함을 위해 ‘변변찮은’ 삶을 살다가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짊어지신 그분의 삶이야말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참된 구원의 실재이셨고 부활의 참 생명이셨다.    대림절 기간에 영원한 참된 실재에 눈을 떠서 냉혹한 삶의 치열한 현장을 뛰어넘어 진정한 역사적 진실과 진리를 밝혀내며 이웃을 향한 ‘작고 평범한’ 삶을 살아갈 때, 영원한 실재를 누리는 선물과 함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평화의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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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2/08 [13:3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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