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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23 [02:02]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한복협 회장), 그레이스선교교회 설교문
 
김명혁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레이스선교교회(2015.11.15)
마11:15, 계2:7   
▲ 김명혁 목사     ©뉴스파워
 
 제가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지난 7년 10개월 동안 전국의 작은 교회들을 매주 방문하며 설교하고 있는데 매년 1번씩 가는 교회들이 제일 많고 두 번씩 가는 교회들도 몇 교회 있는데 서 너 번씩 가는 교회는 그레이스선교교회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에 2번 2009년에 2번 2010년에 3번 2011년에 2번 2012년에 4번 2013년에 4번 2014년에 4번 왔습니다. 2015년 금년에는 세 번째 왔는데 추수감수 주일에 왔습니다. 오늘 추수감사 주일을 맞아 감사의 간증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에게 어릴 때부터 한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베푸신 은혜와 사랑이 너무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는데 오늘은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에게 베푸신 수 많은 은혜와 사랑 가운데서 “들을 귀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의 간증을 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에게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중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라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셨습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13:43).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요5:24).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계2:7,11,17,29, 3:6,13,22).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듣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신다고 지적했습니다. “듣는 것이 수양의 제사보다 나으니”(삼상15:22). 하나님과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 죄인들의 고통 소리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들으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출2:23,24).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마8:10).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는 들으심의 하나님이신데 우리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듣고 그리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들의 신음 소리도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사1:10).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사1:17). 그런데 하나님께서 부족한 죄인에게 어릴 때부터 들을 수 있는 귀를 은혜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려 함이라”(요9:39).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13:16).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나를 보내사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8,19). 예수님께서는 또한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4:20).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1).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행8:14).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행11:1).     

말씀을 “듣는” 것도 귀중하고 “보고 느끼며 받는” 것도 귀중합니다. 베드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간증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행4:20). 사도 바울은 자기가 “물려 받은” 것을 전한다고 말하면서 자기에게서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고 물려주라고 권면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고전15:3).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딤후2:2).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빌4:9). 믿음과 사랑과 소망과 같은 귀중한 영적 유산은 교육이나 프로그램으로 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듣고 보면서 물려 받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도”와 “주일 성수”와 “사랑의 섬김”과 “순교와 천국 소망”과 같은 귀중한 영적 유산은 도서관에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혼자 명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물려 받아야” 생기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물려 받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방지일 목사님께서 강조하시고 또 강조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어릴 때부터 한 평생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느끼며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은혜의 선물로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즉 “소통”하면서 살 수 있는 열린 삶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한 평생을 살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지니며 살게 된 “회개의 기도”와 “주일 성수”와 “사랑의 섬김”과 “순교와 천국 소망”과 같은 귀중한 영적 유산도 예수님으로부터 그리고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듣고 보고 느끼면서 조금씩, 조금씩 물려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가장 힘써야 할 일은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일도 아니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신앙의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귀중한 영적 유산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물려 받아” 고이 간직하고 그리고 우리들의 지 정 의 언 행에 나타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 귀”와 “열린 눈”과 “열린 마음과 몸”을 지니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고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응답하는 “소통”을 지니고 사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부족한 죄인인 제가 귀중한 영적 유산들을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로부터 듣고 보고 느끼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물려 받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간증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저는 목회하시다가 순교하신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으로부터 목회와 순교의 삶과 정신을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끼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지닐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잔소리는 거의 안 하셨습니다. 목회자로써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순교의 길을 걸어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시고 들려주시고 물려주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눈과 귀와 마음과 몸”으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물려 받았습니다.” 일본 통치시대에는 신의주에서 공산 통치시대에는 평양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자주,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서 감옥 생활을 하셨습니다. 저는 믿음의 삶을 살기 위해서 고난과 죽음의 길을 걸어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십자가의 정신과 순교의 정신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저의 몸과 마음에 조금이라도 물려 받을” 수 있었습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끼며 체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지닐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또한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신 어머니로부터 희생적인 사랑의 삶과 정신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눈과 귀와 마음과 몸”을 지닐 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은 말씀을 많이 하신 분은 아니었습니다. 잔소리는 거의 안 하셨습니다. 그러나 순수한 희생적인 사랑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잔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일 성수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누리기 위해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을 때 감옥에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저를 한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고, 저 없이는 못 살겠다고 자주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버지로부터 순수한 믿음의 DNA를 물려 받아 마음과 몸에 지니게 되었고,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어머니로부터 순수한 사랑의 DNA를 물려 받아 마음과 몸에 지니고 한 평생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끼며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일인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지니지 못한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심지어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을 몸에 지니고 살았던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을 바라보면서도 존경과 사랑대신 비판의 마음을 지니고 사는 부정적이고 불행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둘째로, 저는 평양 서문밖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말씀과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보고 느끼며 물려받을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몸”을 지닐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은 저를 사랑으로 가르치면서 “주일 성수”의 신앙과 “새벽기도”의 신앙과 “순교”의 신앙을 저에게 물려주셨는데 저는 그 때부터 한 평생 “주일 성수”를 철저히 했고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고 “순교신앙”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했는데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라고 새벽기도를 했고, 교회 청소를 하라고 하면 교회 청소를 했고, 십일조를 하라고 하면 십일조를 했고, 주일날 물건을 사지 말라고 하면 물건을 사지 않았고, 주일날 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면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병이 들면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했기 때문에 제가 장질부사(장티부스)에 걸려서 심하게 아플 때에도 의사인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주일학교 선생님들을 모셔다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해서 병이 나았습니다. 저는 그 때 평양 제 오 인민학교를 다녔는데 일요일마다 학교에 등교하라고 명령했지만 2년 동안 주일에는 한 번도 학교에 가지 않고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월요일마다 벌을 받았고 때로는 정학을 받았지만 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제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된 것도 주일학교 선생님들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저에게 “들을 수 있는 귀”와 “보고 느끼며 물려받을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얼마나 큰 감사를 드리는지 모릅니다. 그 때부터 “소통”의 DNA가 저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저는 남한 서울에 와서 이모님을 만나게 되었고 이모님 집에서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살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밤마다 남몰래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영락교회에 다니면서 주일 성수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감사와 행복에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공부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면서 목사님들과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았습니다.   

저는 1950년 6.25전쟁 때 대구에 가서 3년 동안 중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그 때 “한국의 무디” 라고 불리던 한국의 대표적인 부흥사이신 이성봉 목사님을 만나 이성봉 목사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와 “보고 느끼며 물려받을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몸”을 지닐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피난 시절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 이성봉 목사님께서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를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하곤 했습니다. 공부는 둘째 셋째였고 신앙생활이 첫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얼마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곤 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면 회개하고,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새벽기도를 하고, 성경을 암송하라고 하면 성경을 암송하고, 철야기도를 하라고 하면 철야기도를 하고, 안수기도를 받으라고 하면 안수기도를 받고, 이성봉 목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했습니다. 금요일 철야기도를 마치고 토요일 새벽 안수기도를 받을 때는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 드리곤 했습니다. 나중에는 저를 알아보시고는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 되는 거지. 고놈 기특하다” 라고 칭찬해 주시면서 기도해주시곤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회개의 메시지는 저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었고, 은혜 사모의 메시지는 저의 삶을 지탱하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사는 3년 동안 새벽기도를 빠진 일은 거의 없었고 주일 성수를 하지 않은 일도 없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대구에 있을 때 한번은 잘비스 목사님께서 부흥회를 인도하시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통역을 하셨는데 잘비스 목사님께서 회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서 회개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중학생에 불과했지만 어른들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가서 사람들 앞에서 회개를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과 같은 귀한 부흥사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사모하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넷째로, 제가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 “한국의 예레미아” 라고 불리던 김치선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던 창동교회와 대창교회를 다니게 되었는데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헐떡거리면서 “들을 수 있는 귀”와 “보고 느끼며 물려받을 수 있는 눈과 마음과 몸”을 지닐 수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한국교회의 회개운동과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 예배는 물론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김치선 목사님께서는 매일 새벽 눈물을 흘리시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는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개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시면서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셨습니다. 그리고 2만 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 남산 어느 숲 속으로 올라가서 30여분 동안 더 성경을 보며 기도하다가 집으로 내려와서 아침 밥을 먹고 서울 고등학교를 30여분 동안 걸어서 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또한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삼각산이든지 관악산이든지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어느 시간에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불렀는데 저는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너무 큰 감동을 받고 감사의 눈물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너무너무 좋아했고 너무너무 잘 들었습니다. 연초 마다 교회에서 3일씩 금식 기도를 하곤 했는데 저는 빠지지 않고 3일씩 금식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짓는데 교인들이 모두 산 아래에서 큰 돌을 열 두 개씩 산 위로 메어 나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귀찮게 생각하고 듣지 않았지만 저는 제 몫으로 큰 돌 열두 개를 나른 다음, 저의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고, 그리고 저의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김치선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날랐습니다. 너무 잘 듣고 너무 잘 순종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듣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느끼며 순종할 수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때 교인들 중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2만 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2만 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들판에서 얼마 후에는 근처에 있는 학교의 교실 서너 개를 빌려서 학생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열심히 전도를 계속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했습니다. 「한양제일 교회」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개척한 초라한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제일 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대학생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의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사모하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다섯째로, 저는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 아주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았고” 특히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순교의 영적 유산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여름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을 사 들고 새벽마다 올라가서 기도하던 남산의 어느 숲 속으로 올라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나병 환자들을 그렇게도 극진하게 사랑하며 섬기신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 나환자 어린이들과 소풍을 가셨는데 어린이들이 가지고 온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자기들의 나병이 전염될 까봐 목사님에게 자기들이 가지고 온 도시락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온 도시락을 억지로 빼앗아 잡수시면서 어린이들과 친하게 지내셨는데 저는 사랑이 넘치는 손양원 목사님을 우러러보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손양원 목사님께서 그렇게도 사랑하던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인 원수 같은 공산당 청년을 증오하지도 저주하지도 않고 불쌍하게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자기 품에 안으시면서 자기의 양 아들로 삼으신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또한 순교를 그렇게도 사모하신 분이셨고 천국을 그렇게도 사모하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남산 숲 속에서 집으로 내려오면서 너무나 깊은 감동과 감격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사랑하고 제일 존경하고 제일 닮고 싶은 저의 신앙의 스승님이 되셨습니다. 저는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데 손양원 목사님으로부터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영적 유산의 부스러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고 모두를 향한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과 희생과 순교의 영적 유산의 부스러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몸에 지니고 사랑하면서 살다가 순교의 길까지 달려가기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으로 달려가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저에게 “읽고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사모하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섯째로, 저는 한경직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고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면서 한경직 목사님을 바라보고 감동을 받으면서 “온유와 겸손” “참회와 눈물”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의 영성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제가 1살 난 애기 때부터 한경직 목사님을 신의주에서 만나게 되었고 한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은 너무나 큰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온유와 겸손”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또한 맨날 우시면서 참회의 기도를 드린 “참회와 눈물”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또한 모두를 불쌍히 여기시고 모두를 품으신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또한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아니 종교와 정치적인 이념을 초월해서 모두와 협력하시면서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신 “화해와 평화”의 목사님이셨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는 결국 물욕과 명예욕을 내어 던진 삶이 깨끗한 “가난과 청빈”의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의 특별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곤 했습니다. 제가 고3때 한 목사님을 찾아가서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하는 것이 좋으냐고 여쭈었을 때 역사를 전공하는 것이 좋다고 말씀해서 제가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 역사와 교회사를 전공하게 되었는데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실 저는 역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역사를 전공하게 된 것은 제가 “듣는 귀와 순종하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는데 특히 “화해와 평화”의 자세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극 보수적 기질을 지니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조금씩 바꾸어져서 모두와 화해하고 모두와 평화를 도모하면서 살게 된 것은 한경직 목사님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년에 몇 번씩 남한산성에 가서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 뵐 때마다 한 목사님께서는 제 손을 붙잡고 “아버지, 아버지” 하시면서 순교하신 저의 아버지를 부르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와 일본에 다녀온 이야기와 중국에 다녀온 이야기들을 들으시고는 언제나 “좋아, 좋아” 라고 말씀하시면서 격려해주시곤 했습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 “눈물과 참회”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의 영성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한경직 목사님과 같은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사모하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일곱째로, 저는 박윤선 목사님과 가까이 지내고 사랑과 가르침을 받으므로 “기도와 말씀” “진실과 겸손” “단순함과 소박함과 따뜻함”의 영성을 아주 조금이라도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기도와 말씀”에 사로잡힌 분이셨습니다. 총신에 계실 때 역삼동 개나리 아파트에 사셨는데 매일 새벽, 택시를 타고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2,3시간씩 기도하시는 모습을 한 6개 월 동안 옆에서 목격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박 목사님을 흉내 내며 두 달 동안 새벽에 총신 뒷산에 올라가서 박 목사님 가까이에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1979년 총신에 학생 소요 사태가 일어났을 때에도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학생들이 이사회에 반기를 들고 일어서서 이사들과 교수들의 자동차를 뒤집어엎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의 책임자이신 박 목사님께서 학생 대표들을 불러서 타이르거나 사태 수습을 협의하는 대신 특별 기도회를 선포하시고는 밤마다 강당에서 기도회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기도회의 효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이 저마다 일어나서 “내가 누구의 자동차를 뒤집어엎었습니다!” 라고 소리를 지르며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목사님께서는 합신에서 교수하실 때도 기도로 일관하셨습니다. 교수 세미나를 주로 기도원에 가서 하시곤 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한 평생 “기도와 말씀”에 사로잡힌 그래서 하나님께 붙잡힌 삶을 사신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설교에는 언제나 가슴과 영혼을 움직이는 성령의 감동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붙잡힌 박윤선 목사님의 삶은 또한 “진실과 겸손” “단순함과 소박함과 따뜻함”의 인격으로 나타났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가식과 꾸밈이 없는 어린 아이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과 미소를 지닌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특별한 믿음과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 보이신 분이셨습니다. 저에게 자주자주 전화를 거시고 질문도 하시고 때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마음 속에 있는 안타까운 생각을 저에게 솔직하게 말씀하시던 분이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께서는 “소통”이 잘 되던 분이셨습니다.     

저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 마지막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찾아 뵙곤 했는데 그때야말로 박목사님께서 기도로 일관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제가 평생 처음으로 신학교와 교회에서 안식년을 얻어 1988년 여름 8개월 동안 미국 휫튼 대학에 가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밤 꿈속에서 박 목사님께서 피를 토하며 쓸어져서 병원으로 옮겨져 가시는 모습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에 전화를 했습니다. 사모님이 박목사님께서 갑자기 쓸어져서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는 “그러면 그렇지” 라고 중얼거리고 그 다음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달려왔습니다. 저는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 박 목사님을 매일 찾아 뵙곤 했는데 그때 박목사님께서는 “산에 가서 기도하다가 죽고 싶다”고 고백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소위 박 목사의 의를 제해 달라”고 호소하시면서 “회개와 참회”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기도와 말씀에 붙잡혀 사신 박윤선 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분을 신앙의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일하게 하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게 하시고 그 분의 특별한 사랑과 가르침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저의 스승 박윤선 목사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과 사랑을 표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와 “사모하면서 물려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정진경 목사님으로부터 “온유와 겸손” “따뜻함과 부드러움” “포용과 격려와 칭찬”의 영성을 생생하게 보고 만지면서 조금씩 물려 받게 되었고,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방지일 목사님으로부터 “순수함과 섬세함과 정확함과 따뜻함과 눈물”의 영성을 생생하게 보고 만지면서 조금씩 보물로 물려 받게 되었는데 시간상 관계로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들을 수 있는 귀”와 “볼 수 있는 눈”과 “느끼면서 물려받아 실천할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지니고 사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물려받아 실천할 수 있는 귀와 눈과 마음과 몸”을 지니고 사는 것보다 귀중하고 고맙고 아름답고 축복된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인 저에게 하나님께서 주님의 말씀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말씀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물려받아 실천할 수 있는 귀와 눈과 마음과 몸”을 지니고 살게 하셨다는 간증적인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소통”의 은혜까지 저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말씀과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듣는” 것이 너무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불우한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유행과 프로그램과 지식과 기술에 대해서는 귀머거리와 소경아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주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십자가적인 삶과 십자가적인 죽음의 영적 유산을 “바라보고 듣고 느끼면서 물려받아 마음과 몸에 지니고 실천하면서”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다가 보람되고 행복하게 죽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고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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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5/11/11 [18:25]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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