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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07.18 [10:03]
"옥한흠 목사는 실천적 개혁주의자"
ACTS 박응규 교수, 옥 목사의 '선교적 교회론과 제자훈련 목회' 발표
 
김준수
박응규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는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의 선교적 교회론과 제자훈련목회’라는 논문에서 “은보 옥한흠 목사는 1938년에 이 땅에 태어나서 72년간의 삶을 살아간 한국교회를 깨운 목회자”라고 평가했다.
▲ 2007년 평양대부흥 100주년기념대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고 옥한흠 목사     ©뉴스 파워 소병기
박 교수는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학회지 2013년 판 <성경과 신학>(발행인 성주진)에 기고한 논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옥한흠 목사의 신앙배경과 회심을 설명하면서 “1938년 일제강점기의 끝자락에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난 옥한흠은 민족적 수난기에 개인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성장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소년 옥한흠이 ‘예수님의 첫 사랑에 취해 있을 때’ 그를 가장 슬프게 한 사람은 고향 교회의 한 장로였다. 옥한흠은 그 장로는 ‘공적으로는 선한 목자처럼 행동하고 사적으로는 매정한 삯꾼처럼 행동하는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면서 “이때부터 ‘참된 성도라면 어떤 모습일까? 좋은 교회라면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라는 질문들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고 말했다.

그는 “1968년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옥한흠은 총회신학교(현재의 총신대신대원)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옥한흠은 그곳에서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게 됐다.”면서 “총신시절의 옥한흠은 지향한 바를 위해 정진하면서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뜻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과의 교제와 동역의 장을 만들어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총신에서 옥한흠은 박형룡과 박윤선으로 이어지는 보수적인 정통신학을 배워가면서도, 간하배와 김의환과 같은 신진 학자들을 통해 새로운 신학사조에도 관심을 가지며 신학수업에 임했다.”면서 “신학교 재학시절은 옥한흠에게 학문적 열정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그의 잠재력을 계발하는 기간이었으며,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 성실하고도 지속적으로 끝내고야 마는 그의 집중력이 남다른 진가를 발휘한 시기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옥한흠의 신학적 입장은 총신에서의 교수들의 가르침과 자신의 치열한 신학연구를 통해 영미 개혁신앙의 다양한 특성들이 그의 사상 속에서 하나의 종합을 이루어갔다고 볼 수 있다.”면서 “청교도 신학과 구프린스톤 및 웨스트민스터 신학, 그리고 화란개혁신학이 그의 학문적 엄밀성과 목회적 적용성을 겸비한 신학적 비전 안에서 통합되고 있었다. 그리고 칼빈 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의 길지 않은 유학생활을 통해서 보다 강화되고 더욱 건실하게 형성되어 갔다.”고 분석했다.

이어 “옥한흠이 한스 큉의 『교회론』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오래 전부터 품었던 교회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참된 교회를 구현해 나가려는 타오르는 열정 때문이었다.”면서 “그는 교회에 대한 끊임없는 숙고와 교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체험을 통해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지상과 조국 땅에 참된 교회를 구현해 나가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갈증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러한 가운데 큉의 『교회론』을 만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서 그는 제자훈련과 교회론을 연결시킬 수 있는 확실한 고리를 마련했으며, 결국은 풀리지 않았던 제자훈련의 신학적 해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옥한흠의 공헌 중의 하나는 바로 평신도나 성직자 구분 없이 성도는 모두 사도성을 계승한 자들이며, 교회를 통해 전해오는 복음을 전파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는 사역에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한국교회에 효과적으로 각인시켰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러한 신학적 깨달음을 옥한흠은 웨스트민스터 유학시절 한스 큉의 저서를 통해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큉의 책을 통하여 옥한흠은 평신도들도 사도의 계승자이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제자요 소명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각인할 수 있었다.”면서 “이러한 사도성의 원리는 옥한흠의 눈을 활짝 열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슴에 열정의 불이 타오르게 했다. 그는 왜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자로 깨워야 하는지, 이것이 왜 자신의 필생의 목회철학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신학적 해답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옥한흠의 사역과 제자훈련은 그의 교회론과 분리할 수 없다. ‘교회란 무엇인가?’를 수시로 자문하고 점검하지 않는 것은 목회자 자신과 교회가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영적인 당위성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교회론의 핵심에는 늘 ‘교회의 갱신을 지향하는 목회’가 자리 잡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옥한흠의 제자훈련은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촉구하는 개혁의 성격을 분명히 띠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러한 교회의 개혁과 갱신은 목회자인 지도자 자신의 개혁이 전제가 되어야 가능한 운동이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내향적인 사고와 편견에서 벗어나 평신도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는 안목은 교회 전체의 개혁이전에, 먼저 지도자 자신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목회 초기부터 제자훈련에 역점을 두었던 옥한흠은 한국교회의 뿌리에는 ‘네비우스 선교방법(Nevius Mission Method)’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면서 “그것은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토대로 자립, 자치, 그리고 자전을 추구해 나감으로 성경적 신앙 위에 교회를 세우려는 선교방법이요 신앙선교(faith mission)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옥한흠의 제자훈련에 대한 열망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인식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서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던 1960년대뿐만 아니라, 70년대는 그야말로 ‘교회성장’을 넘어서 ‘폭발(explosion)’이라고 간주할 수 있을 만큼, 한국교회는 양적성장에 도취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옥한흠은 당시 한국교회가 성장의 그늘 아래 몰아치는 세속화의 물결에 너무 쉽게 무너져 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런 파고를 막아낼 수 있는 대안적 목회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했고, 그에 대한 해답을 제자훈련 목회에서 발견했던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이러한 가운데 양적 성장에만 급급한 한국교회에는 ‘삼허현상(三虛現象)’이라는 후유증이 나타나게 됐다. 그에 의하면, 삼허현상이란, 허수(虛數), 허세(虛勢), 그리고 허상(虛像)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시적 성과와 물량주의에 매몰된 한국교회에는 통탄할 정도의 정직하지 못한 일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상한 현상이 퍼져갔다. 한 사람, 한 영혼에 주목하는 목회가 아니라, 교회의 크기에 주목하고 대형 교회를 이상적으로 보는 목회풍조가 강하게 자리 잡아 갔다.”면서 “이러한 결과, 교회와 성도의 숫자는 상당히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은 이전 세대보다 더 약화되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도의 신앙과 삶에 괴리가 나타났고, 불신자들의 삶과 차별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허상으로까지 이어졌다. 바른 믿음은 바른 삶과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는데, 그 신앙의 변화가 인격과 삶으로까지 연결되지 못한 것이다.”면서. “한국교회는 세상이 보고 싶어하는 신앙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 주기는커녕, 점점 더 ‘비판의 과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면에서 제자훈련 목회를 통해 옥한흠은 허수를 실수(實數)로, 허세를 실세(實勢)로, 그리고 허상을 실상(實像)으로의 변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과 사역을 한 알의 밀알처럼 한국교회 속에 뿌리려고 작정했던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해 온 한국교회가 올바른 목적을 향하여 전진하기 위해서는 일대 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을 인식한 옥한흠은 그 자신부터 각성하고 있었다.”면서 “한국교회가 더 큰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가지고 진군해 나가기 위해서 ‘교회는 옷을 갈아입지 아니하면 안 될’ 때에 당도했음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어 “옥한흠은 평생 제자훈련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그토록 외쳤고, 교회의 양적 팽창보다는 질적 성숙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다수의 대중을 주목하기 전에 대중에게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준비하는 데 전력해야 함을 절감하면서 제자훈련 목회에 임했다.”고 평가했다.


▲ 박응규 목사     ©김준수
박 교수는 “은보 옥한흠 목사의 삶과 사역의 기저에는 철저하고 확고한 구원론적 신앙과 교리가 자리 잡고 있다.”면서 “이러한 신학적인 특성은 제자훈련 과정에도 반영되고 적용되었지만, 그의 강해설교를 비롯한 다양한 목회사역을 통해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였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것은 그의 제자훈련 목회를 구성하고 견인해 가는 교회론으로 발전되어 갔고, 그의 교회를 위한 사역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를 양육하면서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확산됐다.”면서 “그리고 그러한 방향성은 결국 교회갱신과 화합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옥한흠은 어린 시절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무엇인지 확실히 경험하고 깨달았기에 평생 그 은혜를 갈구하며 살아가는 ‘영적 걸인(乞人)’의 삶을 살아갔다.”면서 “그러한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모임이어야 했고, 구원받은 성도라면 구원받은 성도답게 살아가야 하는 제자도의 길을 걸어야 했기에 그는 평생 사랑의교회를 중심으로 ‘제자훈련의 광인(狂人)’으로 그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목회사역에 전념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옥한흠 목사는 ‘실천적 개혁주의자(Practical Calvinist)’로서 이 시대의 철저한 교회론적 개혁자였으며, 제자훈련 목회를 중심으로 선교적 교회를 지향하면서 한국교회를 깨우며 한평생을 올곧게 살다 간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요 진정한 목회자였다.”면서 “그런 면에서 은보 옥한흠 목사의 선교적 교회론과 제자훈련 목회야말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의 목회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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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5/16 [08:0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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