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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0.07.06 [21:05]
그가 ‘성지에서온교회’로 간 까닭은…
‘복음통일’의 길 개척하는 탈북자 손정열 전도사의 교회 개척 이야기
 
이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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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인터뷰로 알게 된 한 탈북청년의 제보였다.

“형, 제가 교회에 다니기로 했어요. 이번에 개척하는 교회인데, 북한에서 오신 분이세요. 전도사님이시고…”

놀랐던 건 이 친구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탈북 후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그곳 선교사님들과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한국에 와서는 정붙일 교회가 없다고 하소연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를 몇 년 만에 다시 교회로 끌어당긴 것은 무엇일까? 그런 궁금증에 교회를 찾았다.

▲ 손정열 전도사     © 이범진
서울 창전동에 위치한 ‘성지에서온교회’(담임전도사 손정열)를 찾은 것은 설립예배를 이틀 앞둔 지난 15일(금요일)이었다. 마침 교회 앞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는 손정열(39)전도사와 마주쳤다. 교회는 한 빌라의 지하에 마련됐다. 예배당과 사무 공간, 그리고 주방까지 총 세 군데(약 40평)로,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듯 새 단장 준비가 한창이었다. 설립예배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인터뷰가 진행됐다.

교회가 편의점 숫자보다도 많다는 한국에서 왜 꼭 개척을 해야만 했는지가 궁금했다. 개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신학대학원을 졸업을 앞두고 기도하던 중 개척을 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며 말을 이었다.

“어제(14일) 신대원(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했어요. 지난 해 11월에 청계산 기도원에서 기도하다가 개척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러다가 요한복음 17장 6절에 나온 예수의 기도에서 큰 힘을 얻었습니다. 특히 그중에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택하셔서 내게 주신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교회 개척은 저에게 그런 사람들을 기다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손 전도사가 ‘내게 주신 사람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꿈은 복음통일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복음통일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북한선교’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는 북한선교라는 용어 사용을 불편해했다. ‘북한’이라는 단어자체가 북한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표현이다. ‘선교’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선교’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매우 부정적으로 가르친다. 미국 제국주의와 짝지어 설명하기 때문이다. 손 전도사는 “북한에 가서 ‘북한선교하러 왔습니다’라고 했을 때 주민들이 느낄 감정은 사랑보다는 거부감일 겁니다. 복음은 사랑인데 시작부터 그들의 마음을 닫히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복음은 사랑이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야 전달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포용하고 수용해주는 사랑’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북한선교’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린 것은 그 자신이 북한 출신이기 때문이다. 북한 사람들의 심정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북한에 복음을 전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현재 유통되는 북한선교와 관련된 담론들이 더 정교하게 다듬어져야 할 필요를 절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신대에서의 7년(학부4년, 대학원3년) 시간도 거기에 매진했다. 특별히 선교학 과목을 좋아한 이유도 그래서다.

“복음의 현실화가 늘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잘 전할 수 있을까? 북한이라는 광야를 사랑의 단비로 적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연구하고 고민했어요. 정치적인 방식으로는 절대로 안됩니다. 제재를 가하고 조건을 거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죠.”

그래서 나온 졸업논문이 ‘수용적 관점에서 바라 본 복음통일 전략’이다. 북한 출신의 입장에서, 북한주민의 입장에서, 쓰인 복음통일 전략서인 셈이다. 선교뿐만 아니라 통일과정에 있을 역사적 쟁점의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어, 남북충돌의 완충역할로도 복음통일을 생각하고 있다. 손 전도사는 이에 대한 깊이를 더하기 위해 올해 신학석사(Th.M)과정에서도 선교학을 전공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때 손님이 찾아와 인터뷰가 잠시 중단됐다. 전에 사역하던 영락교회(담임 이철신)의 교인들이 오셨다며 잠시 양해를 구했다. 돌아온 손 전도사는 “권사님들이 쌀을 가져오셨다”며 밝게 웃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영락교회에서 ‘자유인예배’를 도왔다. 탈북민의 마음으로, 탈북민을 섬겼기에 교회에서도 점점 신뢰를 얻게 되었다. 지난 해 돌연 개척을 선언한 전도사를 보고 교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내 예배당 마련, 인테리어 등을 책임져 주고 하나둘 숟가락 젓가락을 보태주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선교사와 만남, 신앙생활 후 남한에 와서 신학을 공부하는 흐름은 진부한 게 사실이다. 그의 삶도 그렇게 ‘평범하게’ 흐른 것일까? 이를 듣기 위해 먼저 중국에서와 한국에서의 신앙생활 차이를 물었다.

“처음 남한에 와서는 좀 힘들었죠. 중국에서는 절실했는데, 여기는 교회가 형식일 뿐인가? 그런데 계속 살아보니까 남한이 신앙생활하기가 더 힘들어요. 더 절실해져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되는 현실, 예수가 없이도 살아진다는 유혹이 주변에 너무 많으니까 남한에서의 신앙생활이 더 치열하죠.”

중국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알았고, 남한에서는 예수의 십자가를 만났다는 손 전도사는 그러면서 동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남한에 온 2004년, 얼마 안 있어 동생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매일 소리를 질렀단다. 가족을 구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반대의 결과로 응답을 받았다.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주는 하나님을 만난 느낌이었다. 회복되는 데에 1년의 시간이 걸렸고, 이때 신학대의 입학을 결심했다. 자기와 같은 아픔을 지닌 동포들을 위해서였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호프집에서 치킨도 튀기고, 두부공장에서 짐도 날랐다. 기술이 필요하겠다 싶어 에어컨 설치를 배운 것도 그때쯤이다. 그렇게 4년 대학교를 다니고, 3년을 교회 사역을 하며 7년을 준비한 것이다.

손 전도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옆에서 컴퓨터 설치를 하던 이충혁(26)간사가 말을 꺼냈다. 영락교회 자유인예배 청년부 총무였던 그는 손 전도사를 따라 이 교회의 개척을 돕고 있다.

“지구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정치범수용소일 거예요. 거기에 동생이 붙잡혔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그런데 탈북자들이 거의 다 그래요. 온전한 가정이 별로 없어요. 어머니가 있으면, 아버지가 없고. 아버지가 없으면 어머니가 없고. 가족은 북한에 있거나, 하늘나라에 있고요. 전도사님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친형과 같은 사람이에요. 친동생처럼 잘 해주시니까…”

그러고 보니 이 교회를 제보해준 앞서 말한 그 탈북청년도 손 전도사를 소개할 때 ‘제가 정말 좋아하는 형님이 있는데’로 시작했다. 비록 친동생은 만날 수 없지만, 자기에게 준 사람들(요17:6)을 친동생처럼 여기며 살아온 모양이다. 중국에서 돌아와 마땅히 신앙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던 그 친구를 끌어당긴 것도 혹시 손 전도사의 이런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온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렇고 그런 질문에, 그렇고 그런 답변이 돌아왔다. 그의 평범한 답변에 무게감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지금껏 살아온 진실함 때문일 것이다.

“올해 우리교회의 표어가 ‘영적 성장과 따뜻한 이야기를 만드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이 목표를 이루려면 서로가 서로를 대할 때 긴장이 풀려야 해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해야 하죠. 그때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고, 진짜 교제가 시작되는 거죠. 그런 이야기들이 쌓일 때 내면의 힘이 생기고, 외부에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되잖아요. 복음통일도 그렇게 확장되며 나가는 거니까요.”

▲ 설립예배는 2월 17일 오후 5시 성지에서온교회에서 열렸다.     © 이범진
이틀 뒤 설립예배가 드려졌고, 약 80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전에 사역했던 영락교회 교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성지에서온교회’는 10명 안팎의 탈북자와 남한 사람들로 시작한다. “편하게 대형교회의 우산 아래 있지 왜 힘들게 개척하는데 쫓아왔느냐”는 질문에 이충혁 간사는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밥 먹다가 자취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나왔어요. 스스로 서보고도 싶고, 복음통일을 위한 사명감도 생겼고요. 이제는 현장으로 나가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리를 지키면서 차근차근 조금씩 해나가려고 합니다. 가족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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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3/07 [13:07]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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