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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8.10.18 [01:02]
"한국교회 교세 감소 계기는 1992년 10월28일"
총신대 박용규 교수, "이장림의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사건 계기로"
 
정하라
▲ 총신대 박용규 교수.     ©뉴스파워
총신대 신대원 교회사 교수인 박용규 교수는 25일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20년 비평적 평가’라는 주제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세가 크게 감소한 큰 원인이 지난 1992년 10월 28일에 있었던 다미선교회 ‘이장림의 재림론 사건’이 계기가 됐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박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교회는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만나고 있다”며 “이런 부정적인 시각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한 가지 분기점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와 사회를 대혼란으로 몰아넣었던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 사건”이라고 밝혔다.

지금부터 20년 전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은 전국의 250여 교회 2만 명이 추종했던 사건으로 이 사건은 한국 교회와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할 것이라고 믿고 10월 28일 밤, 전국 166개 교회에 흰옷을 입은 신도들이 집결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휴거설의 장본인인 이장림은 그해 9월 25일 신도들의 재산 34억여 원을 헌납 받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됐다.

 
▲ 다미선교회(이장림 목사)  자료사진 ©정하라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한다고 가르친 그의 집에는 수많은 달러 엔화 CD가 발견됐고, 그가 숨겨둔 채권의 지급일은 휴거 일이 지난 1993년 5월이었다. 이는 재림론을 퍼트린 본인은 이를 믿지 않았다는 것. 그 후 이장림은 징역 2년을 선고 받았고 1년 만에 출소했다. 한국사회와 교계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것에 비하면, 그가 치른 대가는 너무 가벼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이장림이 재림론의 근거로 삼은 네 가지를 다음과 같이 꼽았다. ▲직통계시 ▲세상의 징조와 성경예언의 성취 ▲왜곡된 세대주의적 종말론적 성경의 해석 ▲노스트라다무스를 비롯한 2000년 종말설

그는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소위 주변 사람들이 받았다는 직통계시”라며 “신학을 조금이라고 연구한사람들이나 정상적인 평신도들이라도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위배 되며 매우 위험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며 “그것은 직통계시 그것도 주님의 재림과 관련된 ‘그날과 그 때’를 알려주는 특별계시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경으로 초자연적 계시는 종결됐으며 이 때문에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정확무호한 법칙이 된다는 것. 성령은 독자적으로 역사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신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원리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박 교수는 “그의 재림론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도 컸다”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쇠퇴와 부패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진단하기 위해서라도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을 다시 환기할 필요가 있다”며 그의 재림론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을 정리했다.

그는 이러한 움직임으로 ▲한국교회의 급격한 교세 감소 ▲심각한 사회적 폐해 유발 ▲반기독교 정서 확산 ▲교회의 부패이미지 심화 ▲유사이단사이비 시한재림론 양산 등을 예로 들었다.

그는 특히 “1988년부터 완만하게 성장하던 한국교회 교세가 1992년부터 눈에 띄가 줄어들며 하향길로 접어들었다”며 “가장 심각한 폐해는 한국 내 반기독교 정서의 확산으로 한국교회가 이 사건으로 사회적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완전히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림론으로 남편 혹은 자녀들이 가출하는 등 적지 않은 가정이 붕괴됐다. 사회가 교회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교회는 광신자들의 집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사회적 책임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혼란을 야기시키는 이상한 집단으로 인식됐다.

박 교수는 이 사건이 한국교회에 대한 부패 이미지를 심화시켜 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장림이 숨겨둔 달러 엔화 CD가 속속 드러나고, 그가 숨겨둔 채권의 지급일은 휴거 일이 지난 1993년 5월이었다”며 “성도들에게는 휴거할 것이기 때문에 헌금을 강요하고는 정작 자신은 휴거 뒤에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채권 만기일을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장림은 자신이 1992년 10월 28일 휴거를 믿지 않았음을 스스로 천명한 것이며 휴거를 빙자해 자신의 부를 축적한 셈. 그는 이 사건이 “부정축재가 판을 치고 있는 사회 일각의 극단적 이미지가 한국교회로 확대되어 한국교회 역시 사회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이장림의 재림론을 바탕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유사이단사이비 시한재림론 양산된 것이다.

박 교수는 “휴거소동 2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시한부 휴거론이 시들지 않고 있다”며 “오늘날 직통계시를 주장하거나 천국과지옥 간증 신드롬 역시 그것이 남긴 또 다른 아류적 후유증이라 할 수 있다”며 “사실 이것은 양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양육을 게을리 한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 신화가 가져다 준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그는 “가장 큰 한국교회 손실은 종말신앙의 무장해제”라며 ‘성경적 종말론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주님은 불원간 반드시 재림하신다”며 “제자들이 그랬고 기독교 2천년의 경건한 신앙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시대 주님이 재림하실 것을 고대하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종말과 관련해 성경은 인간적 권한과 신적 권한을 분명히 한다”며 “주님이 재림할 그날과 그 때를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신학적으로 맞다”고 설명했다.

철저하게 주님의 재림은 피조물에게 감춰져 있지만 수많은 이단들은 자신들에게 그 비밀이 주어졌다며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예로 “초대교회 몬타니즘이 그랬고 안식교의 밀러가, 여호와증인이 그랬지만 누구도 그날과 그 때를 맞추지 못했다”며 다음의 성경 말씀을 제시했다.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임할는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계3:3) ▲때와 기한은 아버지가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나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 36)
▲     ©정하라


그는 휴거사건 20주년을 맞는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로 종말론에 대한 명확한 성경관과 계시관을 요청했다.

박 교수는 “한국교회는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서 이장림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이것을 정확히 한국교회에 알려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며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하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주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교수는 “분명 1992년 10월 28일 재림론은 한국교회의 성장주의와 신학부재가 가져다 준 결과였다”며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교회에서 성경관과 계시관에 대한 바른 가르침만 있어도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한 오늘날 한국교회의 반성으로 “영적 혼란을 정리해주어야 할 연합기구가 오히려 이단을 비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한기총이 다락방을 영입한 개혁 측을 회원으로 그대로 받아주는 등 한국교회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끝으로 “10월 28일 재림론 2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지금 존폐의 각오를 가지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며 “개교회주의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의 유익과 나갈 방향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지 않으면 내일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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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10/28 [20:46]  최종편집: ⓒ newsp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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